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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자료

리엔필드 - 볼트 액션 소총

by Ddak daddy 2020. 2. 14.





[무기의세계]

연사속도가 가장 빠른 볼트액션식 소총

리엔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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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엔필드 소총(SMLE Mk1)

20세기 초까지 영국은 초강대국이었다. 본토의 몇 십 배가 넘는 엄청난 크기의 식민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본국에 충성을 다하는 영연방 국가들이 전세계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세계 최고, 최대를 자랑하는 해운 교통망이었다. 지구 전체를 망라할 수 있는 이런 거대한 네트워크를 통해 엄청난 인력과 자원을 끊임없이 실어 나르면서 영국은 세계를 호령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제국을 유지하여 준 이런 대동맥을 강력한 해군이 보호해 주었다.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후 영국 해군은 400년간 세계 최강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20세기 초까지 2위, 3위 해군국의 수상함 전력을 합한 것보다 더욱 강력한 해군을 보유하는 이른바 ‘2개국 함대 정책’을 계속 유지한 덕분이었다. 한마디로 해군은 초강대국 영국의 상징과도 같았다. 하지만 육군은 그렇지 않았다.


해군에 국방 자원의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는 섬나라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전통적인 육군 강국인 독일이나 프랑스에 비한다면 영국의 육군은 상대적으로 약소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약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세계를 지배한 나라답게 영국의 육군은 소수지만 강력하였고 최초로 전차를 만든 나라답게 훌륭한 지상군용 무기도 생산하고 사용했다. 이러한 뛰어난 지상군용 무기 중에는 일선 보병들이 오랫동안 애용했던 리엔필드(Lee-Enfield) 소총도 있다.


 

1951년 6.25전쟁 당시 임진강 전투에서 리엔필드 소총로 무장한 영국군의 모습. 글로스터셔 연대 소속의 1개 대대가 중공군 3개 사단과 맞서 3일을 버틴 전투로 유명하다.

한 시대를 풍미한 볼트액션 방식


1951년 6.25전쟁 당시 임진강 전투에서 리엔필드 소총로 무장한 영국군의 모습. 글로스터셔 연대 소속의 1개 대대가 중공군 3개 사단과 맞서 3일을 버틴 전투로 유명하다.


제1, 2차 대전, 6.25전쟁, 베트남전쟁, 중동전쟁처럼 굵직한 전쟁들이 끊임없이 벌어진 20세기는 새로운 무기의 경연장이라 단언해도 무리가 아닌 시절이었다. 그 이전 세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비행기는 어설픈 복엽기에서 시작하여 스텔스기까지 발전했고, 마치 물탱크 같았던 둔중한 모양의 전차는 날개 달린 코끼리처럼 날렵하고 강력하게 변했다. 그런데 의외로 가장 일선의 병사들이 사용하는 총은 그렇게 많은 변화가 없었다.


오늘날 군대는 예외 없이 고성능 돌격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사실 이것도 60여 년 전 처음 탄생한 이후 더 이상의 획기적인 성능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구식 무기다. 돌격소총 등장 이전의 제식 소총은 일일이 노리쇠를 후퇴전진하며 단발로 사격하는 볼트액션 소총이었다.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유명한 볼트액션 소총들 대부분이 19세기 말에 탄생하였다. 그만큼 총은 생각보다 발전이 더딘 무기다.


볼트액션 소총은 연사력이 뒤진다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어 2차대전 이후 주력 화기에서 물러났지만, 정확도가 뛰어나고 화력이 강력하다는 장점으로 말미암아 특수목적용으로 일부 계속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볼트액션 소총으로 제1, 2차대전 당시에 맹활약한 독일의 Kar98k, 소련의 모신나강, 미국의 M1903 스프링필드 등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주로 영국군과 영연방군이 사용한 리엔필드도 그러한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는 소총이다.


 

리엔필드 소총을 개발한 제임스 P. 리(James Paris Lee 1831 –1904)

여러 아이디어를 결합하다


총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제임스 리(James P. Lee)라는 사람이 이 총의 탄생과 관련이 많다. 엄밀히 말하자면 리엔필드는 그의 일방적인 작품이 아니고, 개발 초기부터 여러 좋은 아이디어가 결합하면서 명품으로 거듭난 소총이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서 캐나다로 이주한 후 다시 미국으로 이민을 온 총기 발명가 리는 독일 마우저(Mauser) 사의 볼트액션 소총에 상당히 감명을 받아 이를 참조하여 연사가 빠른 새로운 소총 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 리어로킹 볼트(Rear-locking Bolt) 급탄식의 새로운 소총을 개발했지만 미군으로부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기존에 사용 중인 마티니헨리(Martini-Henry) 단발식 소총을 대체할 새로운 제식무기를 찾던 영국이 관심을 보였다. 영국으로 건너간 리는 1888년, 현지 총기 기술자인 윌리엄 E. 메트포드(William E. Metford)가 설계한 총신에 자신이 만든 급탄 시스템을 결합한 리메트포드(Lee-Metford) 소총을 만들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로 그 해 독일이 무연화약탄을 사용하는 Gew88을 개발하면서 순식간에 리메트포드는 구시대의 소총이 되어 버렸다. 무연화약은 포연(砲煙)이 적게 발생하므로 조준이 쉽고 적에게 발견될 위험을 감소시켰다. 또한 재가 적게 남아 총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고 화력도 강력했다. 부랴부랴 흑색화약탄을 사용하는 리메트포드를 무연화약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량했지만 총신이 급속히 마모하는 문제점이 나타났다.


 

거듭된 개량을 거쳐 탄생하다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리메트포드의 메커니즘이 좋다고 평가하던 영국군은 이를 바탕으로 대대적인 개조에 착수하였다. 프로젝트를 주관한 곳이 엔필드 조병창(Enfield Armory)이었는데, 1895년 이곳에서 총신을 비롯한 여러 부분의 개조를 거쳐 새로운 소총이 탄생했다. 이를 매거진 리엔필드(Magazine Lee-Enfield), 줄여서 보통 MLE라고 하는데 1907년까지 생산되어 1926년까지 일선에서 사용되었다.


MLE는 1899년 보어전쟁에서 최초로 실전에 투입되어, 일선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특히 기존 소총 대부분이 5발 정도를 삽탄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탄창을 사용할 경우 2배 수준인 10발의 총탄을 적재할 수 있다는 점은 상당한 장점이었다. 클립은 물론 탄창도 사용할 수 있어 범용성이 높았고 단발로 장전할 수도 있었다. 볼트액션 방식임에도 숙련된 사수가 15초에 10발을 사격할 수 있을 만큼 발사속도도 좋았다.


500미터 유효사거리는 전투에 충분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303 브리티시탄(7.7×56mm)의 파괴력도 훌륭했다. 하지만 너무 길어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단점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단점을 개량하여 1907년부터 생산된 모델은 쇼트 매거진 리엔필드(Short Magazine Lee-Enfield), 또는 SMLE라 한다. 흔히 ‘리엔필드’라 부를 때는 SMLE를 의미하는데, 이 모델은 이후 영국군과 영연방군의 주력 소총으로 대량 보급되었다.


특히 SMLE는 가장 연사속도가 빠른 볼트액션식 소총이라는 평판을 들었다. 볼트액션 소총은 기계적인 차이가 아주 크지 않다면 사수의 능력에 따라 연사속도에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1914년 당시 사용되던 여러 종류의 볼트액션 소총을 대상으로 한 영국군의 실험에서 SMLE는 가장 뛰어난 연사력을 기록했다. 리어로킹 볼트처럼 새롭게 적용한 기술 덕분에 리엔필드의 연사력은 이처럼 자타가 공인할 만큼 뛰어났다.


 

(좌)1942년 엘알라메인 전투 당시 리엔필드 소총을 들고 돌격하는 영국 육군
(우)캉 전투 당시 리엔필드 소총으로 전투 중인 캐나다군. 리엔필드는 영국뿐만 아니라 영연방 여러 나라의 주력 소총이기도 했다.

구식이라 폄하할 수 없는 성능


1차대전이 발발했을 때 영국은 독일이나 프랑스에 비해 육군이 강력하지는 못했지만 상당히 선전했다. 그러한 이면에는 독일군의 자랑이던 Gew98과 맞먹는 리엔필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엔필드 소총은 2차대전 때에도 믿음직한 역할을 담당했다. 일부 자료에는 예산 문제로 신형 소총을 개발할 수 없던 영국이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구식 소총을 계속 사용한 것이라 표현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다.


2차대전 당시에도 수적으로 리엔필드 같은 볼트액션 소총이 대부분 국가의 주력 화기였다. 전격전의 신화를 창조한 독일군이 사용하던 Kar98k이나 소련군의 모신나강도 리엔필드와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소총들이다. 굳이 세대 차이가 상이한 주력 소총을 들라면 미군이 사용한 반자동소총인 M1 개런드(Garand) 정도였다. 이후 리엔필드는 6.25전쟁에서도 영연방군의 주력 화기로 명성을 떨쳤다.


리엔필드는 여러 총기의 기본 플랫폼 역할도 담당했다. 대표적인 것이 기존 브렌 경기관총이나 루이스 경기관총을 대체하기 위해 1941년 뉴질랜드에서 개발한 찰턴(Charlton) 자동소총과 특수부대용으로 1943년 개발된 소음(消音) 소총인 드라일(De Lisle) 카빈 소총이다. 비록 이들은 소량만 생산되었지만 이런 새로운 소총의 기반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리엔필드에 대한 신뢰가 컸다는 뜻이다.


 

SMLE을 기반으로 뉴질랜드에서 만들어진 찰턴 자동소총. 약 1,500정이 제작되었다. <출처 (cc) BAS at gunpics.net >

이후 리엔필드는 7.62×51mm 나토탄을 사용할 수 있는 개량형, 저격 용도인 L59A1 등으로 변신을 거듭하며 오늘날까지도 생명력을 이어가, 약1,700만 정이 생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구닥다리 냄새가 물씬 풍기는 볼트액션식 리엔필드가 이처럼 오랫동안 많이 사용된 이유는 사막, 습지, 혹한 등에서도 무난히 작동한 안정성은 물론 많은 장탄량과 속사력 때문이다. 한마디로 빨리 쏠 수 있어 좋은 소총이었다.


 

제원
탄약 7.7×56mm (.303 브리티시탄) / 작동방식 볼트액션 / 전장 1,100mm (MLE) / 중량 4kg / 발사속도 분당 20~30발 / 유효사거리 503m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