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 문명(기원전 7000년경)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지역 일대를 이르는 명칭. 그리스어로 ‘두 강 사이의 땅’이란 뜻이며, 세계 최고의 문명 발상지이다. B.C 7000년경 동북부 산기슭에 자르모 등 농경촌락이 형성되고, 관개농경이 시작되자 남부 저지에 B.C 4000~BC 3000년 도시와 읍이 생기고 사제계급이 등장하였다. 햇볕에 말린 벽돌로 대건축이 이루어졌고, 녹로· 배· 수레· 문자 등이 출현하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개방적인 지리적 요건 때문에 외부와의 교섭이 빈번하여 정치·문화적 색채가 복잡하였다. 폐쇄적인 이집트 문명과는 달리 두 강 유역은 항상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고, 국가의 흥망과 민족의 교체가 극심하였기 때문에 이 지역에 전개된 문화는 개방적, 능동적이었다. 메소 포타미아 문명은 주위의 문화적 파급과 후세의 영향을 고려해 볼 때 세계사적 의의가 크다. B.C 2333년경까지 우르· 라가시 등 많은 도시국가가 패권을 다투었으며, 아카드시대 때 사르곤 1세가 통일하였다. 광역관개의 필요성이 통일을 촉진하였으나 BC 2154년경 동방민에게 멸망하고, 라가시가 예외적으로 번영하였다. 수메르인이 동방민을 구축, 이어 BC 2112년경 우르 제3왕조가 성립되었다. 본격적인 전제통일국가였으나 아무르인의 침입으로 멸망하였고, 여러 문화유산은 바빌로니아인에게 계승되었다. 1. 메소포타미아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크게 수메르, 아카드, 앗시리아로 나뉘어 진다. 메소포타미아는 그리 스 말로 mesos과 potamos(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두 강 사이의 땅'이란 뜻으로 비옥한 반달 모양의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유역을 중심으로 번영한 고대 문명이다. 바빌로니아·아시리아 문명을 가리키나 넓게는 서남 아시아 전체의 고대 문명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지리적 요건 때문에 외부와의 교섭이 빈번하여 정치·문화적 색채가 복잡하였다. 폐쇄적인 이집트 문명과는 달리 두 강 유역은 항상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고, 국가의 흥망과 민족의 교체가 극심하였기 때문에 이 지역에 전개된 문화는 개방적, 능동적이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주위의 문화적 파급과 후세의 영향을 고려해 볼 때 세계사적 의의가 크다. 나일강 유역에서 번영한 이집트 문명, 인더스강 유역의 인더스 문명, 황하강(黃河) 유역의 황허 문명 등과 더불어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의 하나로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문명을 가리킨다. 그러나 넓게는 서남아시아 전체의 고대문명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셈족에 속하는 아카드인(人) ·아무르인 ·아시리아인 ·칼데아인 등과 인도-유럽 인종에 속하는 히타이트인 ·카사이트인 ·메디아인 ·페르시아인 및 수메르인 ·엘람인 등이 활약하였으며, 공통의 문자로서 설형문자가 사용되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18세기 후반에 탐험가와 여행가들이 이 지방에 대하여 보고를 하게 되면서 관심을 끌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조각품의 일부 또는 명문이 들어 있는 벽돌을 가지고 돌아온 사람도 있었다. 또, 구약성서에 실린 유명한 ‘바벨탑’이나 헤로도토스의 《역사》 등 고전시대의 작품을 통하여 메소포타미아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졌다. 그런데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해명은 아시리아학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2. 메소포타미아의 역사 B.C 5000년경: 신석기 시대를 벗어나 채도문화가 발달 B.C4000년경: 수메르인들이 정착하여 청동기 문화가 발전하게 되는데 이들이 메소포타미아문명을 발생시킴 B.C 3000년경: UR, Lagash. Umma, Nippur, Kish같은 도시들이 발생 B.C 24000년경: 메소포타미아 북쪽지역에 살던 아카드인(셈족)들이 주변국가를 정복하여 통일왕국을 세움. 이로서 수메르인들은 셈족의 지배를 받음 B.C 21000년경: 수메르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셈족으로 몰아내고 Dung가 왕이 되어 다스림 B.C 1900년경: Gutr족의 침입을 받아 혼란상태가 됨 B.C 1800년경: Amor인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정복하고 나라를 세움-바빌 로니아 왕국 이 시대에 함무라비왕이 바빌론市에 수도를 정하고, 성문법을 제정하여 국가의 발전에 기틀을 세웠으나, 고바빌로니아는 B.C 1600년경 카시트에 의해 멸망됨 B.C 1300년경: 앗시리아 인들이 세계전역을 통일하여 세계 대제국을 세움. 이들의 철저한 정복정치를 통해 각 지역의 상황을 감시하여 반란의 기미가 있으면 잔악하게 진압하여 속국들을 통치하였다. B.C 625년경: 칼데아인들이 앗시리아인을 멸망시키고 바빌로니아 왕국을 계승하며 신바빌로니아 왕국을 세움 B.C 550년경: 페르시아인이 침입하여 바빌로니아왕국을 멸망시키고 페르시아 왕국을 세움. 소아시아, 이집트까지 정복하고 강력한 통치국가를 유지하였다. B.C 330년경: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멸망하고 헬레니즘 세계를 건설하였다. 메소포타미아는 여러 민족이 침략하고 지배하는 동안 여러 왕조의 교체를 통해 복합적인 문화가 형성되었고, 경제, 과학, 법 등 시대별로 각기 독특한 체계를 이룩하였다. 3.메소포타미아의 변천 1) 수메르 시대 수메르인은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동부 산악 지대에 살다가 메소포타미아 남부로 이동하였다. 그들은 원래 거주지에 있을 때부터 어느 정도 문명 단계에 들어서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에는 금속과 돌을 함께 사용하는 문명이 알루바이드, 우르크 등과 같은 지역을 중심으로 상당히 발달해 있었다. 여기에 수메르인들이 나타난 것은 B.C3500년경이었다. 정치는 왕은 신의 대리자로서 최고의 사제가 되었으며, 신권 정치가 실시되었다. 신관, 관료, 전사 등이 지배 계층이었다. 지구라트라는 큰 탑을 가진 신전이 국가의 중심이 되었다. 경제는 교역이 일어남에 따라 상인이나 공인도 나타나게 되었다. 법전은 세계 최고의 성문법인 수메르 법이 1947년부터 발굴되었다. 2) 아카드 시대 B.C 2350년경 아카드 인이 수메르 인을 정복하고 처음으로 통일 왕국을 세웠으나 오래 지탱하지 못하였다. 3) 아무르 시대 아무르 인들이 다시 이 지역을 통일하고 바빌론에 도읍지를 정하고 바빌로니아 왕국을 건설하였다. 함무라비 대왕은 B.C 18세기경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하고 '함무라비 법전'을 편찬하여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하였다. 4) 인도 유럽 어족의 침입 B.C 16세기에 오리엔트 최초의 철기 사용자인 히타이트 인이 침입해 들어와 바빌로니아 왕국을 위협한 후 카사이트 인이 진출하여 바빌로니아를 지배하였다. 그 뒤 이 지역은 오랫동안 분열과 혼란이 계속되다가 아시아아에 의해 통일되었다. (B.C 667) 4. 메소포타미아의 문화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농업상의 필요에서 역법(달력)·천문학·수학 등의 실용적인 문화가 발달하였다. 그런데 이 곳 사람들은 이집트인과는 달리 달의 운행을 바탕으로 한 태음력을 만들었다. 이 태음력은 1년 12개월, 1개월 30일로 나누고 3, 4년에 한 번씩 윤달을 둔 것으로, 후세에 널리 사용되었다. 천문학도 발달하여 일식·월식이 있는 날을 미리 알았다. 한편 60진법(12진법)에 따른 수학이 발달하여 곱하기·나누기는 물론, 분수·대분수까지 썼다. 그들은 시간이나 각도를 재는 데에도 60진법을 응용하여 1시간을 60분, 1분을 60초, 원의 각도를 360도로 나누었다. 7일을 1주일로 정하고, 1일을 24시간으로 나눈 것도 그들에게서 비롯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도 다신교를 믿었으나, 이집트인과 같은 내세 나상은 없었고, 현세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 그쳤다. 또 그들은 해·달·별 등의 천체가 인간의 운명을 지배한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함으로써 앞날의 예견하려는 점성술이 크게 성행하였다. 이 점성술은 천문학과 역법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1) 메소포타미아 사회 메소포타미아는 셈족의 문명이다. 특히, 수메르인의 문명이 토대가 되었고 아카드·아무르 인들의 문명이 가미되었다. 화폐는 쓰이지 않아서 물물 교환이 이루어졌다. 2) 종교 현세적 다신교로서 사후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점성술도 현세의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로서 발전하였다. 3) 과학 점성술, 천문학, 태음력, 7요제, 60진법, 24시간, 360도 등이 나타났다. 4) 문자 수메르 인은 쐐기 문자(설형문자)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점토판에 갈대로 찍어 썼는데 표음 문자로 발전했다. 페니키아 인들이 사용한 문자는 오늘날 알파벳의 시조가 되었다. (쐐기 문자는 점토판에 새겨진 이 글자들은 가로, 세로로 쐐기를 나란히 놓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쐐기 문자라 하는데, 매우 딱딱하고 익히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오리엔트 지역 대부분의 국가들은 쐐기 문자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중동 지역의 역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 5) 건축 궁전과 신전 건축에 아치와 둥근 천장이 사용되었다. 이 지역은 돌이 매우 귀했다. 그래서 수메르인들은 벽돌로 건축하였으며 그 벽돌을 이용하여 물을 끌어오기 위한 커다란 수로도 건설하였다. 6) 미술 우루크에서 발굴된 여성 두상과 ‘하얀 신전’은 거의 같은 시대의 대리석으로 된 상으로, 감성적인 표현이 뛰어나다. 또 아스마르의 아브신전에서 발굴된 일군의 신상은 이보다 5세기 정도 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같은 대리석으로 된 것으로 원뿔과 원통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기하학적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들 예배상의 거대한 눈에는 채색된 동공을 끼워 넣었으며, 이는 예배자와 눈에 의한 영혼의 교신을 말해주고 있다. 한편, 목재와 금박 등을 소재로 만든 조각상이나 부조는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만들어졌다. 즉, 우르 제1·2왕조의 왕묘군에서 발굴되어 현재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떨기나무에 뒷다리로 선 숫양은 그 좋은 예이다. 이 밖에도 같은 시대 우르왕묘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황금의 투구와 식기, 조가비를 세공하여 장식한 하프, 그리고 유명한 우르의 스탠더드 등이 미술적 일품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7) 문학 수메르인의 문학은 주로 신화를 토대로 한 것이었다. 여러 신화와 전설들은 각 도시의 건설자, 유명한 왕들에 관한 것이었다. 이 중 유명한 것이 우루크시의 왕이었던 '길가메쉬'에 관한 서사시이다. 8) 자연 환경 이집트가 건조하면서도 상쾌한 날씨라면,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여름에는 무척 덥고, 습도도 다소 높은 데다가 열대성 질병이 흔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타는 듯한 바람은, 비록 사람의 기운을 빼앗아가긴 하지만 대추야자가 열매를 맺는 계절에 맞춰 불어 풍성한 수확을 가능하게 했다. 더욱이 북부 산악 지역의 눈 녹은 물은 바빌로니아 평원에 매년 홍수를 가져왔는데, 그 결과 토양은 물기를 머금게 되었고 대단히 비옥한 진흙층이 그 위를 덮게 되었다. 강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홍수가 물러간 지 몇 주일 뒤에는 땅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러므로 비옥한 토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관개가 필수적이어서, 이 지역에서는 오래 전부터 정교한 댐과 관개용 운하가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에 이미 구축되었다. 5. 메소포타미아의 중심지 - 바빌론 바빌로니아라는 이름의 왕국이 들어선 것은 기원전 1830년경으로 셈족 계통의 아모리인들이 바빌론시를 중심으로 ‘고 바빌로니아’로 불리는 제1왕조를 세우면서부터다. 이들의 수도 바빌론은 이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정치와 상업의 중심지가 된다. 바빌론은 수많은 정복자들에 의해 정복, 파괴, 약탈됐지만 그때마다 다시 복원됐다. 유명한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바빌론을 사상 최대의 성곽을 가진 도시로 건설해 그 세력이 최고조에 달한다. 당시 바빌론에는 위대한 신들을 위한 신전 53개, 마르둑신을 위한 예배당 55개, 대지의 신들을 위한 예배당 3백개, 하늘의 신들을 위한 예배당이 6백개가 있었으며, 여러 신들을 위한 제단이 4백개가 있었다. 이 중에는 ‘신의 문’이라는 뜻의 바벨탑이 있었는데, 이 탑은 7층으로 높이가 90m며 8천 5백만개의 벽돌을 사용했다. 6. 메소포타미아의 지방과 이집트의 차이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는 모두가 강물의 범람을 이용한 효과적인 경지 정리와 대규모의 관개 사업을 통해 문명을 일으켰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세계관과 문화 예술에 있어서는 커다란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집트인에게 있어서 나일 강의 정기적인 범람은 행운이었고, 오히려 범람하지 않을까봐 걱정 할 정도였는데 반해,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의 불규칙적인 범람은 참혹한 재앙을 가져왔고, 개방적인 지형은 끊임없는 외적의 침입을 불렀다. 이러한 자연 환경의 차이는 메소포타미아의 정치와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집트인이 현재의 풍요로움을 연장하기 위해 인간의 불멸을 믿고 내세를 준비하였다면, 메소포타미아 인은 지극히 현세적인 삶을 꾸려 나갔고, 사후 세계에 대해서는 거의 희망을 갖지 않았다. 또한, 이집트인의 생활이 신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메소포타미아 인은 신에 대해서도 사랑보다는 두려움으로 대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메소포타미아 인은 신을 재앙을 안겨 주는 존재로 인식하였으며, 운명론적이고 현세적인 삶의 방식이 뚜렷하였다. 또 문화적으로도 이집트보다 훨씬 호전적이고, 암울하고, 비관주의적인 특징이 강하였다. 이러한 현실 중심의 가치관은 메소포타미아에 구전되던 수많은 홍수 설화와 전설 등에도 잘 나타나 있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석재가 부족하여 점토판을 햇볕에 말리거나 가마에 구워 문서로 사용하였다. 점토판 문서의 크기는 매우 다양하였으며, 그 내용은 모두 쐐기 문자로 기록되었다.
세계 4대 문명 다큐멘터리 메소포타미아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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