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 (Henry David Thoreau)는 1817년 7월 12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생각이 깊었으며 아름다운 콩코드에서 태어난 것을 무엇보다 큰 행운으로 여겼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으나 부와 명성을 좇는 화려한 생활을 따르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 속에서 글을 쓰며 일생을 보냈다. 소로우는 생전에 자신의 저술로 어떤 경제적인 성공이나 명성을 얻지 못했지만 월든 호숫가에서 통나무집을 짓고 생활한 2년간의 경험을 기록한 《월든》은 19세기에 쓰인 가장 중요한 책들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여 수감되었던 사건을 통해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 권력의 의미를 깊이 성찰한 그의 또 다른 저서 《시민의 불복종》은 세계의 역사를 바꾼 책으로 꼽히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그의 문학적, 사상적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으며, 요즘에 와서는 19세기를 살았지만 21세기적인 환경의식을 지녔던 사람으로 새삼 주목받고 있다. 1862년 5월 6일, 결핵으로 45세의 나이에 눈을 감았다.
역자 : 강승영
역자 강승영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의 훔볼트 주립대학에서 수학했다. 한국에 소로우가 알려지지 않은 것을 늘 안타깝게 생각해오다, 하던 사업을 정리한 것을 계기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월든》의 무대인 메사추세츠 주 콩코드 일대를 답사함은 물론, 각종 참고자료를 구하기 위하여 미국 내의 수많은 도서관을 방문했으며, 귀국해서는 번역 작업 자체에만 1년 이상의 시간을 들였다. 1993년 봄, 출판사를 직접 세우고 첫 책 《월든》을 펴냄으로써 제대로 된 소로우의 문학과 사상을 국내 독자들에게 처음으로 소개했다. 이듬해에는 소로우의 또 다른 명저인 《시민의 불복종》(<야생사과> 수록)을 펴냈다. 2004년부터 약 6년간 틈틈이 《월든》과 《시민의 불복종》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여 오류를 정정하고 문장을 가다듬어 2011년 새롭게 개정판을 내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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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겠다고 마음 먹고 2년이 지나서 책을 사고, 그리고 한 달이 넘어서야 다 읽었다.
내 생활 탓이었는지, 진득하니 책을 읽기가 힘들었고, 책을 읽다가도 자꾸 딴 생각이 나서 화가 났다.
3일 연휴를 앞두고 '월든'을 읽기로 맘 먹은 후 보니까 절반 조금 넘게 읽었더군. 마침 우정이와 와이프가 엄마들 약속차 나가서 여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1817년 태어나서 1862년 44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 중의 2년을 월든 호수에서 자연과 함께 살았다.
세금도 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와 불화가 있었으나 그건 그에게 오히려 훈장이었으며, 그의 아름다운 문장과 함께 그의 월든 호수의 삶이 이 책에 오롯이 살아있다. 그리고 번역도 너무 깔끔하고 친절해서 더 읽기가 편했다.
월든을 읽으면서 미지의 어떤 곳으로 떠난 한 철학자의 여행기를 떠올렸으며, 그곳이 아마도 에덴동산의 삶이랑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담과 이브도 월든 호수의 소로우처럼 꼭 필요한 것만 먹고, 꼭 필요한 데로만 소용하지 않았을까?
중세의 화가들이 그려놓은 에덴동산의 이미지는 극적으로 화려해보인다. 차라리 소로우의 담담한 자연의 삶이 더 가까와보인다.
그렇게 나는 그의 삶을 엿보면서 이데아를 떠올렸고, 내가 참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천하기로 했다. 계속 비우는 삶을....
내가 불필요하게 갖고 있는 것을 처분하는 데에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할 거이고, 불필요하게 더 많이 먹는 것, 소화도 못 시킬 정도로 많은 양의 음식들을 경계하기로 했다.
더 가벼워지리라.
나는 강인하고 용감한 천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생활 규범을 제시하려근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천국에서나 지옥에서나 자기 일을 알아서 처리해나가며, 가진 돈을 탕진하지 않으면서도 거부들보다 더 큰 저택을 짓고 더 풍성하게 돈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사람들이 단 몇 명이라도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모를 일이다.
내가 두번째로 제외하고 싶은 사람들은 자기의 현재 상황 속에서 자극과 감흥을 발견하며 연인들 사이에나 있을 법한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인데 나 자신도 어느 정도는 이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세번째 제외 대상은 어떤 직업이건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로서 본인 스스로가 직업에 대한 만족감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말하려는 주요 대상은 인생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로, 자신의 운명을 개선해보려는 노력은 보류한 채 타고난 신세와 때를 잘못 만난 것을 한탄만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28)
책의 첫 부분에 이 책이 꼭 필요한 독자에 대해 친절하게 소개한다. 소로우는 독자던 아니던 사람을 4부류로 분류한다.
1. 슈퍼 히어로, 2. 종교인이나 철학자(소로우도 속해있는), 3. 전문인 또는 기능인, 4. 이도 저도 아닌 주변인..이들은 항상 갈피를 못잡고 불만에 싸여 있으며 시대를 탓하며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아마도 앞서말한 이들도 여기서 출발을 했던가, 아니면 이쪽으로 돌아올 가능성을 항상 갖고 있지 않을까? 암튼 가장 많은 머릿수를 갖고 있는 집단이며 너무나 당연스럽게도 소로우는 많은 독자층을 상대로 이 책을 쓴다고 당당히 밝힌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지고 할' 그 무엇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그 무엇, 혹은 차라리 자기가 '되어야 할' 그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헌 옷을 입고도 새사람처럼 느껴질 때까지는, 그래서 그 이상 헌 옷을 계속 입으면 낡은 병에 새 술을 담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처신해왔거나 일해왔거나 또는 긴 여로를 밟기 전에는, 우리의 옷이 아무리 남루하고 또 더럽더라도 새 옷을 사서는 안되겠다.(38)
소로우는 옷을 대표적인 과소비의 사례로 지목한다. 가장 쉽게 빠지는 유혹,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나 관심을 가지는 쓸데 없는 일로 말하고, 오히려 옷에 지나치게 관심쏟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듯 하다. 그가 생각하는 이 시대의 옷은 생필품이 아니라, 해야하는데 필요한 것, 무엇이 되고자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이런 것에 절대 반대란 것이다. 생필품으로서 옷을 사용하라고 한다. 왜냐, 정신이 썩기 때문이다. 옷에 신경쓸 때마다.
내가 마을의 여자 재봉사에게 가서 이러이러한 옷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하면 그 여자는 정색을 하며 "요즘에는 사람들이 그런 옷을 맞추지 않아요."하고 말한다. 그녀는 마치 '운명의 세 여신'같은 초월적인 권위를 인용하는 것처럼 '사람들'이라는 말을 전혀 강조하지 않는다. 내 말이 진심일 리 없고 또 내가 그처럼 경박할 리가 없다는 그녀의 믿음 때문에 나는 내가 원하는 옷을 맞추어 입기가 힘든 것이다. ....
...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도 '사람들'이라는 말에 힘을 주지 않고 그 여자처럼 신비스러운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사실 얼마 전까지는 사람들이 그런 옷을 맞추지 않았지만 요즘은 맞추지요."(40)
유행의 권위에 대한 피곤함과 유행의 속성에 대한 소로우의 갈파. 사람들과 함께 무난하게 살고 싶어하는 게 유행이라면, 나 또한 그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게 유행의 역설. 나의 취향도 반드시 존중돼야 한다. 유행보다 몇 단계 더 높은 위치에서....
우리의 대학들과 똑같은 실정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무수한 '현대적 개선'이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어떤 환각이 작용하고 있다. 항상 긍정적인 발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현대적 개선'에는 악마가 초기에 투자해놓은 몫이 있는데, 이것과 그 후 계속적으로 투자한 몫에 대하여 악마는 가혹한 복리를 짜내고 있다. 우리의 발명품들은 흔히 진지한 일로부터 우리의 관심을 빼앗아가는 예쁘장한 장난감일 경우가 많다. 그것들은 '개선되지 않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개선된'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그 목적이란 기차가 보스턴이나 뉴욕에 쉽게 도착하듯이 이 신발명품 없이도 너무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것들이다.(76)
내가 생활 속에서 투쟁하는 것들이다. 야구, 음주...그리고 아이폰... 등의 신기술....이걸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개선되지 않은' 목적인지 아닌지 잘 살펴봐야겠다. 하나씩 버려야지. 머...
인간은 얼마나 자주 궁지에 빠지는가? "여보시오, 선생! 외람된 말이지만 궁지에 빠진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이오?" 당신이 예민한 관찰력의 소유자라면,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 뒤로 그가 소유하는 모든 것과 자신의 것이 아닌 척하는 물건들, 심지어는 부엌 가구와 그 외에 그가 계속 모아두면서 태워버리지 못하는 온갖 잡동사니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것들에 묶인 채로 어떻게든지 앞으로 전진해보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을 것이다. 자신은 옹이구멍이나 출입문을 빠져나갔지만 썰매에 실은 자신의 가구와 짐은 문턱에 걸려 나오지 못할 때 나는 그가 궁지에 빠졌다고 말한다. (96)
ㅋㅋㅋ 장난꾸러기처럼 나한테 말까지 건다. 궁지에 빠진 사람...아 통쾌하다.
사람들 사이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유일한 협력은 극히 부분적이고 피상적인 것이다. 진정한 협력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적기 때문에 마치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화음처럼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신념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서나 똑같은 신념으로 협력을 하려들 것이며, 신념이 없는 사람은 그가 누구와 함께 일하든지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대충 살아가려고 할 것이다. 협조한다는 것은 가장 높은 의미에서든 가장 낮은 의미에서든 생을 같이하는 것을 뜻한다. (103)
진정성에 대한 좋은 예가 되겠다.
우여곡절 끝에 당신이 어떤 자선 행동을 하게 되었다면,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알지 못하도록 하라. 그것은 알 가치가 없는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 다음에는 묵묵히 구두끈을 매라. 숨을 돌린 다음에는 당신이 하고 싶은 일에 착수하라.(112)
우리는 다시 깨어나야 하며 그 깨어난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어떤 기계적인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고, 가장 깊은 잠에 빠졌을 때도 우리를 버리지 않는 새벽을 한없이 기대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나는 의식적인 노력에 의하여 생활을 향상시키는 그 의심할 여지없는 인간의 능력보다도 더 고무적인 사실을 알지 못한다. (129)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맑은 정신과 이성을 갖고 하루를 준비하고 시작하는 것이 삶의 기쁨이다. ...... 나도 몇 번 느껴봤는데, 이걸 매일 느끼려면 술을 끊어야 한다. 아...술 조심.
뉴스가 도대체 무엇인가? 그보다는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는 것을 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다! 위나라의 대부 거백옥은 공자에게 사람을 보내 근황을 물었다. "그대의 주인은 지금 무엇을 하시는가?" 사자는 공손히 대답했다. "저의 주인은 지금 무엇을 하시는가?" 사자는 공손히 대답했다. "저의 주인은 스스로의 허물을 줄이려고 하시지만 여의치 않사옵니다." 사자가 간 다음에 공자는 말했다. "좋은 사자로다! 참 좋은 사자로다!"(137)
아... 가슴을 쳤다. 좋은 사자였던가. 그리고 내 스스로도 뉴스에 매몰돼있지 않았는가... 나를 알리는 내 스스로의 사자로서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을 잊지 말자.
사색을 함으로써 우리는 건전한 의미의 열광 속에 빠질 수 있다. 마음의 의식적인 노력으로 우리는 행위들과 그 결과들로부터 초연하게 서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만사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격류처럼 우리의 옆을 지나치게 된다. (193)
이 경지를 알 듯 모를 듯... 잡힐 것도 같은데 쉽지 않다. 사색에 힘을 써보자.
그들에게 마을이란 문자 그대로 '커뮤니티', 즉 '공동 방어를 위한 동맹'이었다. 그들은 약상자 없이는 산딸기도 따러 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내 말의 요지는 사람은 살아 있는 한 늘 죽음의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람이 처음부터 산송장과 비슷하면 비슷할수록 죽음의 위험은 적다고 보아야겠지만, 앉아 있는 사람이나 달리는 사람이나 위험의 정도는 똑같은 것이다. ...
...나는 병아리를 기르지 않았으므로 솔개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사람을 귀찮게 하는 인간 솔개는 두려워했다. (220)
인생을 도전하면서 살자는 것이고, 마지막 솔개 얘기는 개혁가들을 지칭하면서 그들이 사람들을 너무 귀찮게 한다는 말이다. 자칭 개혁가들...즉 얼치기
빵이 항상 우리를 배부르게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인간이나 자연 가운데에서 어떤 너그러움을 깨닫는 것은, 그리고 순수하고 영웅적인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은 반드시 우리에게 이익이 된다. 더욱이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괴로움의 원인을 모르는 경우에도 우리의 굳은 관절을 풀어주고 우리로 하여금 유연성과 탄력성을 지니게 한다. (237)
자연 가운데에서는 그런 경험이 없지만, 인간 가운데에서는 그런 경험이 많았다. 나의 괴로움을 모르는 경우에도 나는 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항상 고마와한다. 땡스 포 올!
나는 그의 노동을 경멸하며 모든 것에 가격표가 매겨져 있는 그의 농장도 경멸한다. 그는 단 몇 푼이라도 받을 수만 있으면 경치라도, 아니 그가 믿는 하느님이라도 시장에 가지고 나가 팔려고 할 것이다. 사실 그의 진자 하느님은 시장에 있다. 그의 농장에서는 아무것도 공짜로는 자라지 않는다. 그의 밭에서는 곡식 대신 돈이 자라며, 그의 꽃밭에서는 꽃 대신 돈이 피어나며, 그의 과일나무들에는 과일 대신 돈이 열리는 것이다. 그는 과일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며, 과일이 돈으로 환금되기 전에는 완전히 익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282)
매우 급진적이어서 놀랐다. 이걸 옮길까 말까.... 무정부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의 주장이 아닌가...일단 자본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으로 따지는 것은 어리석어보인다. 그의 말이 틀리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불편한 건 사실.
나의 천재성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낚시와 사냥을 가라. 날마다 멀리, 더 멀리, 또 더 멀리. 그리고 시냇가이든 난롯가이든 두려워하지 말고 쉬어라. 그대의 젊은 날에 조물주를 기억하라. 새벽이 되기 전에 근심에서 깨어나서 모험을 찾아 떠나라. 낮에는 다른 호수에 가 있도록 하라. 밤이면 뭇 장소를 그대의 집으로 삼아라. 이곳보다 젋은 평야는 없으며, 여기서 하는 놀이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다. 그대의 천성에 따라 야성적으로 자라라. 여기 있는 골풀이나 고사리처럼 말이다. ....(298)
나도 나의 천재성이 말하는 바를 귀기울여 들어보기로 한다.
인간에게 보다 깨끗하고 건전한 식사만을 하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인류의 은인으로 대접받을 것이다. 나의 식사 취향과 관계없이 인류가 점점 발전함에 다라 육식의 습관을 결국엔 버리게 될 것이 인류의 운명임을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것은 야만족들이 비교적 개화된 민족들과 접촉하게 되면서 서로를 잡아먹는 식인습관을 버린 것만큼이나 확실하다. (311)
나도 동감한다. 육식은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내 식성은 유별나게 까다롭지는 않다. 먹을 거이 엇어 굶주려야 한다면 튀긴 쥐라도 맛있게 먹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음료수로 말만 마셔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아편 중독자가 느끼는 황홀한 천구고다 자연스러운 하늘이 내게는 더 좋은 이유와 똑같은 것이다. 나는 언제나 취하는 일 엇이 지내고 싶다. 취기의 정도에는 한이 없다. 물이야말로 현명한 사람들을 위한 유일한 음료라고 생각한다. 술은 그다지 고상한 음료가 아니다. 아침의 희망을 한 잔의 뜨거운 커피로 꺼버리고, 저녁의 희망을 한 잔의 뜨거운 차로 꺼버리는 것을 생각해보라! 이런 음료들의 유혹을 받을 때 스스로 얼마나 천박하게 느껴졌던가!(312)
여기서 만난 소로우의 물 예찬론! 방가방가!!!!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사람을 천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음식을 먹을 때의 탐욕스러운 식욕이 그를 천하게 하는 것이다. 음식의 양이나 질이 문제가 아니고 감각적인 풍미에 빠지는 자세가 문제이다. 먹는 음식이 우리의 동물적 생명을 유지하는 양식.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고무하는 양식이 되지 못하고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벌레들의 양식이 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314)
탐욕스러운 식욕, 감각적인 풍미에 빠지는 자세가 문제지...다산 선생님의 입을 속이는 쌈싸먹기가 생각나네. ^^
"그대의 눈을 안으로 돌려보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속에
여지껏 발견 못하던 천 개의 지역을 찾아내리라.
그곳을 답사하라.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우주학의 전문가가 되라." (456)
맺는 말에 나오는 소로우의 시이다.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서 현대사회로부터 일부러 자신을 격리시킨 소로우의 이 말이 진정으로 와 닿는다.
영국인이나 미국인들은 그들이 당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당신의 말을 평이하게 하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스꽝스러운 요구이다. 사람이든 버섯이든 그런 식으로 자라나지 않는다. 마치 그들이 당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며, 그들 이외에는 당신을 이해할 사람이 없다는 듯한 태도이다. 마치 대자연이 한 가지의 이해 방법만을 지지한다는 듯한 태도이며, 또 대자연이 네발짐승과 동시에 새들을, 땅을 기는 생물들과 동시에 하늘을 나는 생물들을 멱여 살리지 못한다는 태도이다. 그것은 소가 알아듣는 "이러"나 "워"가 가장 훌륭한 말이라고 생각하는 태도이다. 또한 안전이라는 것은 우둔 속에만 있다는 듯한 태도이다.(463)
알랭드보통의 책, "불안"에 이런 우리들의 심리가 잘 나타나 있다. 남들에게 평이하게 인정받지 않는다면 심히 불안해지는 현대사회의 우리들....
이걸 극복해내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자신을 찾는 것. 그리고 그와 대화하는 것.
샐비어 같은 약초를 가꾸듯 가난을 가꾸어라. 옷이든 친구이든 새로운 것을 얻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라. 헌 옷은 뒤집어서 다시 짓고 옛 친구들에게로 돌아가라.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 자신을 개발하기 위하여 서두른 나머지 수많은 영향력에 자신을 내맡기지 마라. 그것도 일종의 무절제이다. 겸손은 어둠이 그러하듯이 천상의 빛을 드러나게 한다. 가난과 옹색함의 그림자는 우리 주위에 드리워 있지만, "그런데 보라! 창조는 우리 시야에서 전개되어 간다."(469)
가난을 가꾸어라. 수많은 영향력에 자신을 내맡기지 마라. 그것은 일종의 무절제이다. 이건 겸손의 무절제를 말하는 듯 하다.
이 말은 지금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수많은 영향력에 자신을 내맡기다보면, 지나치게 겸손해지게 된다. 그런 무절제는 진정한 겸손이 아니다.
[출처] [월든]헨리 데이빗 소로우|작성자 eiron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 윌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윌든이라는 책은 많은 지성인들의 추천서라고 하여서
꼭 한번 읽어보고 싶던 차에, 우연히 킨들용 텍스트 버전을 구하게 되어서 읽게된 책입니다.
시간이 많고 한자리에 앉아 있을 일이 많다면 종이 책도 좋겠지만,
전자책을 읽는 것도 책을 읽는 데 아주 좋은 방법이 아닌가 합니다.
출퇴근 시간에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도 편치는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종이책이 가진 장점을 전자책이 대신하기는 아직은 어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만...
여튼,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2년여의 짧은 시간동안 호숫가에 혼자서 통나무집을 짓고 살면서
상당히 많은 생각을 이 책 속에 정리해 놓은 듯 합니다.
대부분의 사상을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대략의 뜻은 읽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 나름대로의 편협함 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선입견 이라고 할까요?
그런 제 스스로의 삐딱한 시선때문인지... 책 자체는 아주 좋은 내용이겠지만
제 입맛에는 맛지 않았다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모든 종교는 사랑과 용서를 가르치고, 그리고 어떤 고난이든 참아낼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윌든 같은 책 또한, 가난하게 사는 미덕을 가르칩니다.
이 순간 또 움베르토 에코님의 장미의 이름 이란는 책의 한귀절이 생각이 납니다.
"도시라는 곳은 부자인 목사가 가난한 백성들에게
가난함의 미덕을 가르치는 부끄러운 곳입니다."
윌든의 책이 세상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는 제가 정확히 알 방법은 없습니다.
사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책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나만은 살아남을 수 있도록 가르친다는
손자병법류의 책과, 모든 역경을 그저 참고 참고 또 참아서 이겨내라는
종교적인 혹은 순종적인 가르침의 책, 두가지 입니다.
이러한 가르침만 가득차 있는 세상이라면,
누가 우리에게 시민의 권리를 가르치고, 어떻게 그 권리를 찾을 것인가를 가르치고
불평등한 세상을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있도록 만드는 그런 귀중한 가르침은
어디에서 배워야만 하는 걸까요?
세월호의 예를 든다면...
어떤 어려움과 슬픔도 참아내고... 받아들이고 다만 기도하라고 가르친다면...
이러한 사건 사고가 언제나 멈추겠습니까?
비록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윌든이라는 책 자체의 목표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고 할 지라도,
이 책을 읽는 보통 사람들이 어떤 가난이나 고난이라도 참아내는 것이 미덕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운다면... 그것이 당사자는 물론,
그 후손들에게까지 과연 좋은 영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그것이 저는 궁금할 따름입니다.
다들 참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인내하고 기도만 해도 되는 걸까요? ㅠㅠ
[출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 윌든|작성자 풍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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