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기록의 나라였습니다.
중앙정부에서는 그야말로 집요다하고 할 정도로 조선왕조 실록이라는 공식기록을 남겼고
승원원 일기라고 국정에 관련된 시시콜콜한 기록이 다된 일지도 남겼습니다.
전란와 왕조의 멸망이 이 기록들의 보존에 문제가 되었지만 다행히도 귀중한 기록들이 남아서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식적인 기록이외에도 개인들은 각종 일기, 편지등을 남겼고
위인들은 사후에 후손들이 문집을 편찬, 간행해서 조상의 공덕을 기렸습니다.
그동안 국역화 사업이 왕조 실록과 승정원 일기등에 집중되었다가 어느정도 성과를 거둔이후
이제는 개인 문헌등에도 힘이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덕에 좋은 기록등이 국역화되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북평사로 순조시기 함경도 일대를 점검한 내용입니다.
함경도 병마절도사의 보좌직으로 함경도의 무과를 실시하고 전투준비태세를 점검하고 돌아다닌 내용입니다.
아무래도 개인 일기라서 지루한 점이 많지만 당시 조선의 북방 사정을 알려주는 사료라고 할수 있습니다.
조선의 가장 최전선이라고는 하지만 전투준비태세는 미흡해서
병사들은 지쳐있고 성곽들의 상태는 허술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나마 친기위 상태는 훌륭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숙종 10년 (1684년)에 편성된 이 친기위가 북방 방어의 중추 부대라고 할수 있겠는데
문제는 이 친기위가 수백명 수준이었고 나머지 부대가 문제라고 볼수 있습니다.
이 당시에도 북방은 여전히 기병 중심으로 방어 태세를 유지했다고 볼수 있겠네요.
이외에도 여러 증언이 있지만 아무래도 사료로서 참고가 될만한 내용이라서
본격적인 밀리터리 내용은 부족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저 자 : 박래겸
본관은 밀양, 자는 공익公益, 호는 만오晩悟·탑서塔西다. 경상도 구미 봉곡에서 박선호朴善浩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810년부터 1811년까지 가주서假注書로 봉직했고, 그 후 주서, 정언, 지평, 장령 등을 역임했다.
1819년 부안 현감에 임명되었다. 1822년 암행어사에, 1827년 함경도 북평사에 제수되었다.
또 1829년 영의정 이상황이 심양 정사로 갈 때 서장관으로 임명되어 수행했다.
그는 이러한 체험을 통해 마흔세 살에 평안남도 암행어사의 체험을 담은 『서수일기西繡日記』,
마흔여덟 살에 함경도 북평사 때의 공무를 기록한 『북막일기北幕日記』,
쉰 살에 서장관으로 심양을 다녀온 견문을 담아 『심사일기瀋使日記』를 씀으로써 총 세 권의 일기를 남겼다.
1833년 예조참판으로 있을 때 동지부사로 임명되어 두 번째 연행을 다녀왔다.
1837년부터 1840년까지 여러 관직을 제수받았으나 신병을 핑계로 사직했다.
저서로는 『탑서유고초塔西遺稿抄』 『만오유고晩悟遺稿』 등이 있다.
출판사 : 글항아리
가 격 : 16,000원
출간일 : 2016년 02월 22일
목 차 :
머리말
7월 | 013
8월 | 023
9월 | 081
10월 | 105
11월 | 151
12월 | 161
1월 | 175
2월 | 189
3월 | 201
4월 | 235
박래겸의 공무 여행 루트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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