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경험했고 또 사랑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 또 많은 사람들이 소설 같은, 영화 같은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은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사랑은 정답게 주고 받는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노래 가사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사랑하고 싶고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은 한결 같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 어떤 장르의 영화라도 영화 속에는 사랑의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 속의 사랑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나거나 해피엔딩으로 끝나거나 대부분 아름답게 묘사 되기에 영화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영화 같은 멋진 사랑, 아름다운 사랑, 아기자기한 사랑, 달콤한 사랑을 꿈꾸기도 한다.
셰익스피어 원작의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원수지간의 두 가문 사이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끝내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아름다운 사랑을 한다. 둘의 사랑은 세상의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는 사랑으로 그 사랑 때문에 죽음도 불사했던 것이다.(비록 영화나 문학 작품의 내용이지만)
누군가의 글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사랑 때문에 아파해 본 사람만이 사랑 때문에 눈물을 흘려본 사람만이 사랑의 소중함을 안다고 하였다. 그래서 사랑의 힘은 놀라운 것이며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사랑은 초능력을 유발한다고 한다.
훼밍웨이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스페인 내란에 참전한 미국 정보국 요원 로베르트는 산속에서 게릴라들과 생활하는 마리아를 만나 둘은 사랑하게 되며, 마리아는 남자와 키스를 해본 경험이 없기에 로버트에게 "코를 어떻게 하지요?" 묻는다. 영화를 본 사람은 짧은 머리의 청순한 모습의 '잉그리드 버그만'을 기억할 것이다. 로베르트와 마리아는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서로간에 깊이 사랑했으며 마지막에 로베르트는 사랑하는 마리아와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서 죽음도 불사하고 적들에게 총을 쏘며 적과 대치하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에서도 끈끈한 형제애가 나타나는데 형은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동생을 피신시키고 자신은 적과 대치하다가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죽어가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는 모습은 영화 타이타닉에서도 볼 수 있다. 호화 여객선에서 만나 사랑하게 된 두 남녀는 배가 빙산에 침몰되어 배에서 탈출하였으나 남자는 구조선이 오기 전에 여자를 지키다가 차거운 바닷물 속에서 저체온으로 죽고 말았다.
영화 "대장부리바"에서도 코삭크 추장의 아들 안드레이는 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자신의 동족을 배신하고 적군을 도우다가 끝내 죽고 마는데 아버지 부리바의 총에 의해 숨을 거두고 만다. 그래서 다시 반복하지만 사랑의 힘은 놀라운 것이며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사랑은 초능력을 유발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고전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춘향전도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로서 영화로도 수차례 만들어졌으며 저 멀리 베트남에도 우리의 춘향전과 거의 흡사한 이야기가 있는데 여주인공 이름도 우리와 같은 춘향이며 남자 주인공은 완전히 베트남식 이름으로 "똥 누라이"라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 간의 사랑의 이야기는 아름답게 표현 되었으며 수많은 사랑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의 사랑에 있어서 남자가 주도권을 행사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과거에서 현대까지 우리의 사회가 남성 주도의 사회였기 때문일 것이다.
최인호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영화 "별들의 고향"에서 여주인공 경아는 깡소주를 마셔가며 남성 주도 사회에 반기를 들었지만 그녀의 행동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으며 그녀는 짓밟히고 무너져갈 수밖에 없었다.
여성은 확실히 신체적으로 남성보다도 약하다 그래서 수많은 남성들은 연약한 그릇인 여성을 참으로 아끼고 사랑한다. 남성이 여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아마 에덴동산의 아담에서 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아담은 처음 자기 앞에 나타난 이브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하고 자신의 몸처럼 사랑했을 것이다.
아름다운 사랑은 남녀 서로 자기 몸처럼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신체적으로나 여러가지 상황에서 상대보다 우월한 사람이 부족한 상대를 아낌없이 포용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부족하고 연약하고 병들고 심지어 죽어갈지라도 포용하고 사랑할 때야 말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며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라 여겨진다. 사랑은 그래서 세상에서 아니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며 가장 아름다워야만 하는 것이다.
성경에도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 사랑이 제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보다 신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는 아가페의 사랑을 말하는 것으로서 아가페의 사랑은 조건이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희생적인 사랑이다.
세상에서 남녀 간의 사랑도 아름다운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은 놀랍고 위대하고 신비로운 것으로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 서로 사랑하면 더욱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가 있으며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가 있을 것이다.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며 사랑에는 언제나 낙원이 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20대 때 소설 같은, 영화 같은 낭만적인 사랑을 경험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 당시 나의 생활은 집과 직장 그리고 교회가 전부였으니까 누구를 사귈 여유가 없었다. 30 이 넘어서 사랑이 찾아왔지만 소설 같은, 영화 같은 낭만적인 사랑은 없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람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요한일서 4:7-12, 개역 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