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쓰는법
서평을 한번이라도 써 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서평 쓰기에는 많은 유익이 있다. 서평을 쓰다 보면 그저 한번 읽고 지나칠 때에 비해 책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깊어진다. 또한 책을 깊이 이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책을 소개할 때 좀더 명확하고 자신있게 소개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주제, 혹은 동일한 저자의 책에 대한 서평을 몇 번 쓰다 보면 그 주제 혹은 그 저자에 대한 일가견이 생겨, 한번 자신의 글을 써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도 한다. 재창조 및 글 쓰기 훈련에 서평만큼 좋은 것도 별로 없다는 생각이다.
이렇듯 많은 유익이 있지만, 서평 쓰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매년 2월에 열리는 문서학교에서 참가자들이 써온 서평을 일일이 평가해 주면서 놀라는 것이 하나 있다. 그 서평들 중에 최소한의 수준에라도 도달한 것은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의 서평을 검토하면서, 그리고 여러 매체에 실린 이런 저런 서평을 접하면서 서평을 잘 쓰기 위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 본다.
서평은 서평자 자신의 글이다.
서평은 저자의 글이 아니라 서평자 자신의 글이다. 책 내용만을 잘 간추리고 마는 경우가 적잖은데, 그것은 요약이지 서평이 아니다. 요약은 엄밀히 말해서 서평자 자신의 글이 아니다. 서평에는 서평자 자신의 판단이 들어가야 한다. 서평이 분명히 남의 책을 다루긴 하지만, 서평자 자신의 판단과 주장이 들어갈 때에만 비로소 자신의 글이 된다. 서평은 책의 주제, 논점, 내용, 구성, 방법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서평자 자신의 판단을 내리는 행위다. 서평은 저자의 글이 아니라, 저자의 책에 대한 서평자 자신의 글이다.
따라서 서평에는 저자의 글과 자신의 글이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서평을 읽노라면, 어떤 것이 저자의 것이고 어떤 것이 서평자 자신의 것인지 그 소유권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이래서는 독자들이 도무지 책에 대한 바른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저자의 말인 경우 큰 따옴표로 정확한 인용 표시를 해준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용 부호 대신 저자의 말을 자신의 말로 풀어 쓸(paraphrase) 경우에는, 독자들은 자칫 저자의 글을 서평자의 글로 오해할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인데’ 하는 식으로 저자의 글임을 분명히 밝혀 줄 필요가 있다.
서평이 서평자 자신의 글이라면 그 속에 서평자 자신의 판단과 주장이 들어있다는 말인데, 서평자는 자신의 생각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흔히 다짜고짜 ‘저자의 생각은 틀리다’라는 판단을 내리고 마는 경우가 있는데, 서평자로서는 그러한 자신의 판단이 왜 타당한지 밝힐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주장은 일방적인 선언이나 억지일 뿐이기 때문이다.
비판이나 찬양에 앞서 책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흔히 책에 대한 흠집을 찾고 비판을 늘어놓아야 좋은 서평이라는 오해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좀더 비판적이어야 좀더 지적으로 보일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책은 없으니 책에 너무 빠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책에 대해 배울 점과 교훈만을 찾거나 찬양 일변도로 나가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나보다 잘난 사람이 쓴 것이니 비판은 무슨 비판이냐고 미리부터 꼬리를 내린다. 이러한 비판 일변도와 찬양 일변도는 둘 다 성실한 태도가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읽은 책의 핵심을 분명히 파악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서평은 저자의 글이 아니라 나의 글’이라는 말이 자칫 저자와 상관없이 내 말만 하는 것으로 오용될 수도 있다. 진지한 대화가 가능 하려면 나의 편견을 제거하고 상대방의 말을 잘 들을 필요가 있듯이, 성실한 서평을 위해서는 먼저 저자의 주장에 대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모티머 애들러는 “독자가 미숙하거나 무례하다면 대화는 결코 재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저자는 자기의 처지를 변호할 수가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정확한 이해가 없이 비판을 한다는 것은 저자에 대한 무례이고, 무조건적인 찬양은 저자에 대한 아첨이다.
적절한 독서법을 익히라.
정확한 독서를 위해서는 모티머 애들러의 고전적인 책 「생각을 넓혀 주는 독서법」이 큰 도움이 된다. 그 중에서도 그가 제시한 분석 독서의 3단계가 가장 큰 도움이 되므로 나름대로 간단히 요약, 재구성해 본다.
제1단계: 관찰 단계
1) 장르와 주제에 따라 책을 분류한다.
2) 책 전체가 무엇에 대해 다루는지 간결하게 서술한다.
3) 책 전체의 흐름을 구조적으로 파악하면서 간단히 정리해 본다.
4) 저자가 해결하려는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한다.
제2단계: 해석 단계
5) 핵심 용어에 대한 개념을 파악한다.
6) 저자의 명제를 파악한다.
7) 저자의 논증을 파악한다.
8) 저자가 해결한 문제와 미해결한 문제가 무엇인지 판별한다. 또한 저자 자신이 미해결 여부를 인식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제3단계: 비평
9) 관찰과 해석을 끝내기 전에는 비판에 착수하지 않는다.
10) 비판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제시한다.
11) 저자가 부족한 지식에 근거하고 있는지 파악한다.
12) 저자의 지식에 오류가 있는지 파악한다.
13) 저자의 논리에 결함이 있는지 파악한다.
14) 저자의 분석이나 설명이 불완전한지 파악한다.
이상과 같은 방식으로 책을 읽고 정리해 보면 분명히 독서 수준의 향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또한 애들러의 이러한 독서법은 사실 서평에 거의 그대로 적용해도 무방하다. 아래에서 내가 제시하는 서평의 실제적인 구조 역시 애들러의 독서법이 상당 부분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서평의 실제적인 구조
서평을 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주로 사용하는 구조는 다음과 같다. 아래 방식은 서평이 서평자 자신의 글이라는 점과 책에 대한 성실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1. 서론: 책의 주제와 문제, 그리고 핵심 주장을 언급한 후, 그에 대한 서평자 자신의 판단과 어떻게 글을 전개할 것인지를 밝힌다. 이렇게 하면 서론만 읽고도 책과 서평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2. 본론: 책의 주요한 개념들과 명제들의 의미를 분명히 하고,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밝히고 나서, 서평자 자신의 판단과 판단 근거를 제시한다. 또한 책에서 채택한 방법의 일관성 및 적절성에 대한 판단과 그 근거를 제시한다.
3. 결론: 서론과 본론을 종합하여 서평자 자신의 결론을 맺는다. 책의 긍정적인 기여 및 공헌, 비판, 발전 방향 및 과제 등을 밝히면 된다.
보너스: 글쓰기의 기본기 두 가지
이러한 서평의 구조를 이해하고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글을 쓰다 보면 생각대로 잘 써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러 경험에 따라 중요한 점 두 가지만 제시해 본다.
첫째, 주제가 있으면 반드시 그 내용이 있어야 한다. 어떤 글들은 주제만 계속해서 반복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은 이 주제(S)에 대한 것인데, 주제1(S1)과 주제2(S2)와 주제3(S3)에 대해 다룬다는 식으로 주제만 나열하는 경우다. 껍질만 있고 정작 그 알맹이는 없는 셈이다. 한 문장에 주어가 있으면 반드시 술어가 있어야 하듯이, 글에서도 주제가 있으면 반드시 그 주제에 대한 필자의 주장이 있어야 한다. 내가 곧잘 하는 짓궂은 질문이 하나 있다. 모임에서 한참 책 소개를 하는 사람이 지루하게 주제만 나열할 경우 나는 ‘그래서 그 주제에 대해 저자가 뭐라고 하는데?’라고 묻는다. 이 간단한 질문 하나가 책에 대한 이해를 높임은 물론 나 자신의 글을 더욱 분명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한 단락에는 하나의 주제문이 있어야 한다. 글을 쓰다 보면 도대체 어디서 단락을 끊어야 할지 난감해지는 경우가 있다. 단락은 적당히 길이를 봐서 끊을 것이 아니라, 하나의 핵심 주장을 다룬 후 끊으면 된다. 잘 쓴 글일 경우 핵심 문장만 뽑아서 잘 읽어도 글의 내용이 확 들어온다. 훈련을 위해 잘 쓰인 책 한 권을 선택해서 단락별로 주제문을 찾아 밑줄을 그어보면 의외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