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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도서

『복음』

by Ddak daddy 2015. 8. 21.

 

 

복음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폴 워셔 저 생명의말씀사

20131025일 장상욱목사

서문- 복음을 회복하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허락된 가장 귀한 보물이다. 복음은 많은 진리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모든 진리위에 뛰어난 최고의 진리다. 각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청지기다. 복음연구에 몰두하고 최선을 다해 그 진리를 깨치려고 힘쓰며 그 내용을 굳게 지키겠다는 결심이 필요하다.

복음은 흔히 알고 있는 대로, “좋은 소식을 뜻하는 유앙겔리온”(euangelion)에서 유래했다. 어떤 점에서 보면 성경 전체가 복음이라고 할 수 있지만, 특별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과 승천을 통해 완성된 구원사역에 관한 메시지를 가리킨다. 복음의 핵심 주제는 하나님의 공의, 인간의 철저한 타락, 속죄의 피, 참된 회심의 본질, 구원확신의 성경적 근거 등이다.

그러나 강단에서 이런 주제를 다루지 않는 설교가 굉장히 많다. 그 결과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강퍅해졌다.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으로 변화되지 못하고 예배당 자리만 채우다가 떠나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또 교회를 입으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지만 행위로는 부인하는 세속적인 사람들의 집합체로 전락시킨다. 그리고 인간의 힘으로 복음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려는 태도를 부추긴다. 끝으로 축소된 복음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의 권징을 소홀히 하는 탓에 순결함과 명예를 잃고, 아무런 증거의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1. 이 시대가 잃어버린 복음

복음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리다(고전15:1)

복음은 기독교를 소개하는 내용의 첫머리가 아니다. 복음은 기독교의 정수다. 우리 삶의 전부이고, 우리가 탐구해야할 무한한 보고이며, 우리가 선포해야 할 메시지다. 다함이 없는 참된 열정은 진리, 특히 복음의 진리를 아는 지식에서 비롯된다. 바울은 어느 곳에 가든지 복음을 전했다. 우리도 그를 본받아야 한다. 우리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특별히 정해주신 방법은 설교다. 설교자의 역할은 그들이 성령의 기적적인 역사로 복음의 참 맛을 느끼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기까지 저들에게 참된 양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복음과 세상은 양립할 수 없다(고전15:1)

구원받으려면,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받아들여야한다. 이 말은 서로 반대되는 것 둘이 있다면, 그중 하나를 받아들이는 것. 곧 다른 하나를 거부하는 것이다. 즉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세상을 거부하는 것을 뜻한다. 기독교의 신앙은 배타적이다.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면, 그리스도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희망을 두어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삶을 복종시키는 것이다. 모든 자율성과 자치권을 복음의 주님께 기꺼이 넘겨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 중심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스도를 삶의 원천이요 유지자로 인정하는 것이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분 자신이 곧 우리 생명이 되신다. 그리스도인은 또 무엇보다 복음 안에 굳게 서서 조금도 물러나서는 안 된다. 그는 복음을 굳게 지켜 진정으로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이는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는 복음(고전15:2)

본문에서 구원을 받으리라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의 시제는 현재 시제로 현재의 과정과 장래의 현실 모두를 포함한다. 따라서 이 말은 너희가 구원받는 중이다로 번역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을 정죄함에서 구원하셨다.(과거) 이것은 회심의 순간에 일어난다. 성경은 이를 칭의라 부른다. 그리스도인은 죄의 권세에서 구원받고 있다.(현재) 이것은 점진적인 과정으로 성경은 이를 성화라 일컫는다. 그리스도인은 죄의 권세와 영향력에서 영원히 완전하게 벗어날 것이다.(미래) 이 마지막 단계를 영화라 부른다. 선한 사역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그 일을 온전히 이루실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믿음의 결국은 구원이다.

기독교 신앙의 모든 것(고전15:3)

성경의 몇 구절을 암기 했다고 해서 복음을 알거나 이해했다고 생각하거나, 기독교의 기초지식 정도로 생각한다거나, 복음을 모두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복음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역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임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열정을 느끼지 못하는 설교자들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복음을 찾는 참된 열정을 찾기가 힘든 실정이다. 성경 안에서도 복음에 필적할 만한 진리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대한 메시지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을 지탱하는 근거다.

받은 복음을 전하라(고전15:3,4)

본문의 받았다는 말은 복음이 특별계시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계시로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영원불변의 진리다. 복음은 성경이 예언한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대로 이루어 졌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활하심도 현실이요 실제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세 가지 사실을 성경에 근거해 무슨 의미인지를 정확하고 명료하게 설명해야한다.

2. 성경이 말하는 복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1:16)

복음은 오직 하나다. 복음은 복음을 위해 복음을 더 새롭게 발전시킬 필요가 없다. 성경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전하면 된다. 바울의 복음이 다른 사도들의 복음과 다른 복음이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예수님의 전하신 복음과도 전혀 다르지 않았다. 특정한 문화에 속한 복음을 전하거나, 자신만의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거리끼는 복음(1:16)

복음은 믿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지만, 타락한 세상의 귀에는 믿기 어려운 불쾌한 메시지로 들린다. 복음은 상대주의- 절대적인 것은 없다-에 대해 스스로 빠져든 잠에서 깨어나 반역과 타락의 상태에 처한 자신의 실상을 깨닫고 자율성을 주장하는 대신 죄를 뉘우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복종하라고 요구한다. 다원주의- 모든 것, 특히 종교에 관해서는 어느 종교든 진리라는 주장-에 대해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며, 예수만이 유일한 길이시다 라고 전하는 복음은 철저히 배타적이다. 또 인본주의- 인간 스스로를 만물의 중심이자 척도요 목적으로 삼음- 에 대해 환상을 깨뜨려 그의 타락한 상태와 죄책감을 드러낸다. 그 외에도 복음은 세상의 지혜로는 어리석다고 할 수 밖에 없는 메시지, 곧 도무지 믿기 어려운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거리끼는 복음이라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복음은 선포될 때 로마제국을 넘어 온 세상에 퍼져나갔다. 바로 이것이 복음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이다.

강력한 복음(1:16)

오늘날 교회는 오로지 복음을 통해 역사하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과 복음만 굳게 붙들고 적대적인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은 회심할 것이다. 하나님께는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음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영혼의 구원이다. 그 구원은 정죄함에서의 구원이며, 죄의 권세에서의 구원이고, 죄의 현실에서의 온전한 구원이다.

모든 믿는 자를 위한 복음(1:16)

복음은 한쪽에는 용서와 생명이, 다른 쪽에는 정죄와 죽음이 새겨진 동전과 같다. 복음은 모든 사람이 아니라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한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복음은 모두를 위한 것이지만, 유대인이 먼저고, 이방인이 그 다음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그분의 성품과 선택에 따라 사람들을 다루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주권적인 사랑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3. 다시 복음으로

죄를 경시하지 말라(3:23)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죽음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죄 때문에 죽으셨다. 죄의 극악한 본성을 일깨우고,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정죄가 목표가 아니다. 그들이 자신의 도덕적 부패를 깨닫고 회개와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께로 돌아서게 하기위해서다. 죄의 심각성을 뼈저리게 의식하고,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진리를 가르쳐야한다.

하나님을 알라(3:23;51:4)

죄의 심각성을 알았다면, 이제 모든 죄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리고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려면 하나님을 아는 참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게 되면, 죄의 극악한 본질을 더욱 선명하게 의식할 수 있다. 하나님의 탁월하심, 주권, 거룩하심, 의로우심, 사랑 등에 관해서 성경의 가르침을 가감 없이 전해야 한다.

모두가 죄인이다(2:23)

로마서 3장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가 죄를 지었다고 선언한다. 이 진리는 성경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죄는 허물이다. 하나님의 인격과 권위를 무시한 채 그분의 율법을 회피하거나 간과하는 것을 의미한다. 죄는 반항과 불순종이다. 강퍅하고, 뻔뻔하고, 무례하고, 주제넘고, 교만하다. 죄는 불법이다. 하나님이 중립적이거나 무관심하시다고 여기며 산다. 죄는 적대감이다. 의로우신 하나님을 미워하고, 율법을 증오한다. 죄는 반역이다. 충절을 저버리는 반역은 모든 죄의 공통 요소다. 죄는 가증스럽다. 죄는 무엇이든 하나님께 가증스럽다.

죄인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3:23)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을 그분께 돌리지 못하고, 그분의 영광을 반영하는 특권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과 찬양과 선하신 기쁨을 위해 창조되었다. 마음과 영혼과 생각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이 우리의 최고선이다.

철저히 부패한 죄인(3:23)

인간이 부패했다는 말은 의롭던 본래 상태에서 타락했다는 뜻이며, 그 결과 모든 인간이 부패한 본성을 지닌 죄인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전적타락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심각하게 훼손 변형되었으며, 그 결과 도덕적 부패가 인간의 육체, 생각, 감정, 의지 등 존재전체를 오염시켰다는 의미다. 양심의 소리에 복종하지 않으며, 미덕의 동기가 하나님과 무관하고,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마음 때문에 복종을 거부한다. 특별한 은혜의 사역이 필요하다. “영적사망아담의 불순종의 결과 인간은 육체적으로는 살아있지만, 영적으로는 죽었다. “도덕적 무능력고의적 적개심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의로운 분노(7:11;5:5)

하나님의 의로운 분노는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이자 참된 복음 선포의 핵심 요소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를 미워하신다. 악은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든다. 그분은 선한 모든 것을 강렬하게 사랑하신다. 의를 향한 강렬한 사랑은 모든 악을 강렬하게 증오하기 마련이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의롭고, 사랑이 많으시기 때문에 죄를 미워하실 뿐만 아니라 종종 무섭고 격렬한 진노를 쏟아내 죄를 징벌하신다. 더욱이 하나님은 종종 타락한 인간들을 향해 증오심을 드러내신다.

거룩한 전쟁(63:10;1:2)

복음 설교자는 하나님이 원수들에게 성전을 선포하셨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너무 늦기 전에 하나님과 화해를 시도하라고 권유해야 될 의무가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회개하지 않는 죄인을 그분의 원수로 간주하시고, 그들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셨다고 분명히 가르친다. 죄인의 유일한 희망은 무기를 내려놓고 너무 늦기 전에 백기를 들고 항복하는 것이다.

가장 값비싼 선물(3:24)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의 지위가 완전히 달라졌다.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상태다. “칭의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권리나 능력이 없다. 자격이 없다. 이런 결함이 극복 되려면,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해주셔야 한다. 바로 그것이 칭의 이다. 법정적인 선언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되었다고 선언되거나 그렇게 간주된다. 칭의의 순간 실제로 의로워진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이 그를 의인으로 대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정에서 심문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된다. 의인의 대우를 받으며,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으로 가능해진 구속을 통해 주어지는 선물이다.

하나님의 딜레마(3:25)

어떻게 의로우신 하나님이 심판을 자제하시고, 정죄당해야 마땅한 죄인들에게 용서를 베푸실 수 있는가? 예수님이 죽음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 화목제물이 되신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를 만족시키셨으며, 그분의 진노를 가라 앉히셨다. 예수님이 자기 백성의 죗값을 단번에 치르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죄인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실 수 있게 되셨다.

온전한 자격을 갖추신 구원자(1:14;3:25)

예수님은 하나님이자 인간이시다. 그분은 아무 죄가 없으시고, 무한한 가치를 지니신다. 그리스도께서 그런 자격을 갖추지 못하셨다면, 그분이 우리를 대신해 치르신 희생은 아무 결과도 가져오지 못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15:34;22:41~44;19:30)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백성의 허물을 짊어진 채 죽으셨고, 하나님이 정하신 죄의 형벌을 모두 담당하셨으며,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께 버림당하기까지 그분의 진노를 고스란히 감당하셨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한다. 메시아는 실제로 버림받았다. 이는 우리 모두의 죄를 예수님께 전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기입증(3:25,26)

갈보리 십자가는 하나님의 의와 죄에 대한 관용, 그와 관련한 모든 의문을 말끔히 해소한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모든 의심을 불식시켜 그분의 백성으로 하여금 더 이상 그분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게 만든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며,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십자가로 입증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24:5,6;1:4;4:25)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은 기독교신앙의 위대한 진리 가운데 하나다. 그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그분의 부활을 전하지 않는 설교는 복음 설교가 아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전할 때만큼이나 열정적이고 철저하게 부활을 전해야 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 속의 다른 사람들의 부활과 달리 잠시 생명을 연장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았다. 죽음과 지옥과 무덤의 권세를 정복 하신 것이다. 그분은 다시 죽지 않으시고 영원히 살아계신다. 빈 무덤은 온 세상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입증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확증한다.

부활 신앙의 근거(26:8)

부활 신앙은 모두 성령의 조명과 중생의 사역에서 비롯된다. 새로운 탄생이 이루어지는 순간,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기적을 통해 그리스도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기독교 신앙의 정당성을 믿는 확신을 심어준다. 거듭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수백 년 전부터 구약성경을 통해 확실하게 예고되었다. 또 빈 무덤과 예수님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부활의 강력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정직하고 충분한 목격자가 있어 증언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승천: 대제사장(24:7~10;4:14,15)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은 그분이 대관식을 거쳐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이자 전조였다. 예수님은 천지의 재판관이시자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린 대제사장이시다. 그분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 역할을 감당하신다.

그리스도의 승천: 만민의 주님(2:9~10;1:20~22)

예수님은 세상의 구원자이실 뿐 아니라 세상을 다스리는 절대적인 주권자이시다. 그리스도의 주권은 그리스도만이 참된 구원자라는 진리와 더불어 복음 선포의 핵심을 구성한다. 성경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주님이 되셨다. 절대 주권자라는 칭호는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취하신 것이 아니라 성부하나님이 부여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범위, 세력권은 우주에 이른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리스도의 승천: 만민의 재판관(17:30,31;25:31,32)

성경과 교회는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그리스도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며, 그분이 모두의 운명을 결정하실 것이라고 증언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재판관도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라는 것이다.

정리를 마치며

복음을 다양한 성경적 근거와 함께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게 하는 점에서 유익하고, 우리 각자의 강단이 복음 선포의 장으로 세워지고 있는가를 다시금 살필 수 있게 도전을 준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한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