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소개·서평

[스크랩]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김호동)

by Ddak daddy 2016. 1. 23.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 Historical Atlas Series 5 ㅣ김호동 지음ㅣ사계절

 

 

중앙유라시아사 연구의 세계적 석학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김호동 교수의 역작.
전 세계 학계가 인정한 독보적인 전문성으로
시간의 축(역사 해석)과 공간의 축(지도)을 결합하여
새로운 중앙유라시아 통사를 완성한 우리 역사학계의 쾌거!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서구 중심의 세계사에 외면당하고,
소수민족의 역사를 흡수하려는 중국사의 그늘에 가려진
중앙유라시아 초원과 오아시스의 역사가
치밀한 사료 분석과 고증을 통해 새롭게 그린
총 113컷의 음영기복지도를 통해
세계사의 주역으로 되살아난다.

출간 의의

우리 학자가 우리말로 쓴 최초의 중앙유라시아사 개설서


지금까지 세계사는 농경 정주문명 중심으로 서술되었다. 세계사 교과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그리스, 로마 제국, 중세 이후의 유럽, 근세 이후의 아메리카, 그리고 진한 제국, 수당 제국, 명청 제국 등 중국 역대 왕조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세계사를 좀 더 폭넓은 시야로 바라보면, 또 하나의 거대한 무대와 숨은 주인공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바로 중앙유라시아 초원의 유목민과 오아시스 도시민이다. 초원의 유목민은 교류와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문명을 일구어오는 한편 농경 문명에 끊임없이 자극을 주었고, 오아시스 도시민들은 실크로드를 종횡무진하며 세계사의 동맥 역할을 했다.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는 지난 3000년 동안 농경 정주문명과 함께 세계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중앙유라시아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유목민의 탄생과 오아시스 상인의 출현, 몽골 제국을 비롯한 유목 세계제국들의 활약과 그 이후의 변화상에 이르기까지 3000년 중앙유라시아의 역사를 한 권의 책에 체계적으로 담았다.
그동안 1990년대 후반부터 중앙유라시아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꾸준히 소개해온 사계절출판사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1998)를 필두로 『중앙유라시아의 역사』(소나무, 2005), 『교양인을 위한 중앙아시아사』(책과함께, 2009), 『중앙유라시아 세계사』(소와당, 2014) 등 중앙유라시아사의 역사적 의의를 강조한 통사가 몇 종 출간되었다. 이 책들을 통해 우리는 중앙유라시아의 역사에 대한 갈증을 어느 정도는 풀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외국학계의 성과를 번역한 책들이었다. 신간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는 국내 연구자가 우리말로 쓴 최초의 중앙유라시아 통사일 뿐 아니라, 해당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 자신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결과다.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다양한 언어로 쓰인 1차 사료와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서술해낸 3000년의 역사와 일일이 새로 그린 113컷의 지도로 구성된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세계적 수준의 성과물이다.

중앙유라시아사 연구의 ‘대칸’ 서울대학교 김호동 교수의 역작


이 책의 저자인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의 김호동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중앙유라시아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그는 최근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 역사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케임브리지 몽골제국사』의 책임 편집을 맡아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 각국 40여 명의 몽골제국사 전문가들이 보내온 원고를 검토, 선별하고 수정을 요청하여 2017년 상하 2권의 책으로 완성해내는 것이 목표다. 이 책의 간행은 몽골제국사를 세계사에서 하나의 중요한 시대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국내 중앙유라시아사 분야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저자는 전문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보기 드문 연구자다. 중앙유라시아사를 현지어로 공부한 첫 세대로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 주요 언어뿐 아니라 페르시아어, 몽골어, 터키어, 위구르어 등 소수 언어까지 10여 개 언어를 구사하는 그는 자신의 연구뿐 아니라 후학들을 위해 주요 1차 사료의 역주서를 다수 출간했다. 아랍의 역사가 이븐 칼둔의 『역사서설-아랍, 이슬람, 문명』, 그리고 『몽골비사』 『원사』와 함께 몽골제국사 연구의 3대 기본 사료라 할 수 있는 라시드 앗 딘의 집사 3부작 『부족지』 『칭기스 칸 기』 『칸의 후예들』, 팍스 몽골리카 시대의 여행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몽골제국 기행?마르코 폴로의 선구자들』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더해 일반 독자들에게 중앙유라시아 역사의 가치와 재미를 전하는 대중교양서도 다수 집필했다. 『황하에서 천산까지』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 『유라시아 천년을 가다』 등이 그것이다. 이 책들을 통해 그는 강대국의 역사에 가려져 있던 초원과 오아시스의 찬란했던 과거, 옛 영광을 잃어버린 채 몰락한 소수민족의 비통한 역사를 복원해 세계사를 바라보는 독자들의 편향된 시선을 교정하고, 역사를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이처럼 전문성과 대중성을 결합해온 오랜 경험과 자신의 35년 연구 성과를 집약해 출간한 것이 바로 이 책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이다.

사계절출판사 아틀라스 역사 시리즈 완간
지난 2004년에 시작된 사계절출판사의 아틀라스 역사 시리즈는 시간에 한정되어 있던 그동안의 역사 인식을 지도를 통해 공간으로 확장하고자 한 야심찬 기획이자, 한국 출판계의 대형 역사 기획물의 절정을 보여주는 수준 높은 역사 교양서다. 이와 같이 지도와 역사를 결합하는 시도는 영미권에서는 이미 많이 이루어졌지만, 우리나라에서 장기간에 걸친 기획과 추진력, 국내 연구자들의 완성도 높은 역사 서술과 전문적인 지도 제작 노하우를 바탕으로 출간한 성과물은 사계절 아틀라스 역사 시리즈가 최초다. 이 선구적인 시리즈의 출간에 자극을 받아 이후 국내 출판계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지도로 보는 역사 시리즈’가 출간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번역서이고, 국내 집필서는 여전히 많지 않다.
원고 집필부터 지도 개발, 도판 선정과 편집에 이르기까지 총 3년 가까운 시간이 투여된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는 『아틀라스 한국사』(2004), 『아틀라스 세계사』(초판 2004, 전면개정판 2009), 『아틀라스 중국사』(초판 2007, 개정증보판 2015), 『아틀라스 일본사』(2011)에 이은 아틀라스 역사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이자 시리즈의 문을 닫는 마지막 책이다.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는 단지 텍스트 위주의 개설서 수준을 넘어서 역사 학습과 이해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주요 내용

프롤로그

중앙유라시아사는 국내 독자들에게 아직은 생소한 분야이다. 본격적인 역사 읽기에 앞서 중앙유라시아와 관련된 주요 개념들을 설명하는 게 독자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으리라는 판단으로 프롤로그를 마련했다. 중앙유라시아라는 용어, 초원과 사막, 유목민과 오아시스 주민의 개념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1부 고대 유목국가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경까지의 시대를 다룬다. 유라시아 초원의 서쪽과 동쪽에서 스키타이와 흉노가 역사상 최초의 유목국가를 건설하여 주변의 정주 농경민들과 정치·경제적 관계를 맺고, 동시에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 문명의 교류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시대이다. 이들 유목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고 운영되었는가, 남쪽의 농경국가와는 어떠한 관계를 맺었는가 하는 점들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중앙유라시아사 전반에 나타나는 중요하고 전형적인 특징들이 이 시기에 거의 다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고대 유목국가의 활동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그 후 중앙유라시아의 역사적 전개를 이해하는 초석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흉노와 같은 유목국가와 한나라와 같은 정주국가가 동요를 일으켜 서로 관계했던 패턴이 무너질 때 정치적 혼란과 함께 대규모 민족 이동이 발생하는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중국사에서 오호십육국과 남북조 시대로 불리는 분열의 시대는 사실상 중앙유라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민족 이동을 일컫는 하나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었다.

2부 투르크 민족의 활동
민족 대이동과 그에 따른 혼란의 시대가 끝나고 투르크인들이 중앙유라시아의 정치적 패권을 장악하는 시대, 즉 6세기부터 10세기까지를 다룬다. 과거 중국의 기록에 ‘돌궐突厥’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집단이 알타이 산맥 부근에서 흥기하여 유목제국을 건설하였는데, 그 영역은 과거 흉노에 비해 훨씬 더 서방으로 확장되었다. 돌궐의 뒤를 이어 같은 투르크계 집단인 위구르 역시 유목국가를 건설하였다. 중앙유라시아를 무대로 한 유목국가의 활동 범위는 중국의 당나라, 유럽의 비잔티움,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에까지 미칠 정도로 광범위하였다. 또한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도시의 주민인 소그드인들은 이들 유목민과 손을 잡고 유라시아 전체를 무대로 교역활동을 벌였고 여러 지역의 문화를 매개하는 역할도 하였다.
그러나 9세기 중반 위구르 제국이 붕괴하면서 투르크 민족 패권의 시대도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이는 당 제국의 붕괴, 아바스 왕조의 쇠퇴와 시기적으로 일치하였기 때문에 유라시아 전역에 걸쳐 광범위한 정치적 혼란을 야기했다. 나아가 이는 과거에 나타났던 현상, 즉 대대적인 민족 이동을 촉발하게 되었다.

3부 정복왕조와 몽골 제국
민족 대이동이 다시 나타나는 10세기부터 몽골 제국이 흥기하여 붕괴하는 14세기까지를 다룬다. 몽골 제국이 출현하기 전에 중국사에서 소위 ‘정복왕조’로 알려진 거란(요)과 여진(금)이 북중국에 건설한 국가들의 특징을 살펴본 뒤, 몽골 제국이 어떤 역사적 환경 속에서 등장하게 되었는가를 살펴본다. 특히 몽골 제국이 중앙유라시아의 초원은 물론이고 동아시아와 서아시아 및 러시아와 흑해 북방을 포괄하는 역사상 최대의 육상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를 탐구하는 것은 흥미로운 주제다.
그러나 제국의 영토적 거대함, 칭기스 일족 내부의 대립과 전쟁 등으로 몽골 제국은 초기의 통합성을 상실하고 정치적으로 비교적 자립적인 몇 개의 ‘울루스’로 분할된다. 즉 카안 울루스(대원大元)를 정점으로 서방의 3대 울루스로 나뉘게 되는데, 이제까지는 그것을 단일한 제국에서 여러 개의 계승국가들로 분열된 것이라고 이해해왔지만, 이 책에서는 몽골 제국이라는 정치적 통합성이 상당 정도로 유지되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몽골 제국은 유라시아를 포괄하는 거대한 통합을 통해서 역사상 유례없는 소통을 가능케 했기 때문에, ‘팍스 몽골리카’라는 말로 표현되는 이 시대의 문명 교류의 실상과 그 역사적 의의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4부 계승국가의 시대
포스트 몽골 시대, 즉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의 중앙유라시아사를 다루고 있다. 흔히 몽골 제국의 멸망과 함께 유목민들은 더 이상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15세기 이후 사태의 전개 과정은 이러한 통념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초원으로 후퇴한 몽골 유목민들의 세계는 한동안 명나라의 공세와 유목사회 내적인 분열로 인하여 소강상태에 접어들지만, 15세기 들어 오이라트 서몽골의 주도로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강력하게 압박하기 시작했고, 뒤이어 동몽골에 의해 대통합을 이루게 되었다. 중앙아시아에서도 차가다이 울루스를 모태로 티무르 제국이 등장하여 서아시아까지 석권하면서 맹위를 떨쳤다. 또한 이 시기에는 티베트 불교와 이슬람교가 각각 몽골 초원과 동투르키스탄을 무대로 적극적인 포교 활동을 펼쳤고, 그 결과 중앙유라시아의 동방과 서방의 주민들은 각각 불교와 이슬람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이슬람 세력은 위구리스탄(투르판과 하미)을 거쳐 감숙과 섬서까지 확장되었고, 티베트 불교는 청해 지방을 매개로 내외 몽골 초원과 연결되었다. 이로써 불교와 이슬람교라는 종교적 이념에 바탕을 둔 새로운 정치적 정통성이 표방된 것 역시 포스트 몽골 시대의 중요한 특징을 이룬다.

5부 유목국가의 쇠퇴
17세기부터 19세기 후반에 이르는 시기를 다룬다. 즉 한쪽으로는 만주인들이 세운 청 제국이, 다른 한쪽으로는 러시아인들이 중앙유라시아로 팽창해 들어오면서 이 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던 유목민과 오아시스 주민들이 이들 제국에 복속하고 편입됨으로써, 중앙유라시아가 주체가 되는 역사적 동력이 최종적으로 소멸되어가는 과정을 다룬다.
칭기스적 전통에서 배양된 정치적 정통성과 국가적 이념을 학습하면서 성장한 만주인들은 내몽골과 외몽골의 유목민들을 차례로 복속시키고, 마침내 18세기 중반에는 최후의 유목국가라고 할 수 있는 준가르를 붕괴시킨다. 나아가 이를 계기로 티베트와 신강마저 흡수함으로써 중앙유라시아의 동부 지역을 완전히 석권하였다. 러시아 역시 16세기 중반 이후 맹렬한 기세로 동진을 시작하여 시베리아 전역을 장악하고, 19세기 중후반까지는 중앙아시아에 있던 코칸드, 부하라, 히바 등 세 칸국들을 차례로 병합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로써 중앙유라시아는 청과 러시아라는 두 제국에 의해 완전히 분할되었고, 역사적 독자성과 동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에필로그
이 책의 본문은 시기적으로 19세기 후반에 끝난다. 현대사는 에필로그에서 다룬다. 저자가 서문에서 지적했듯이 “러시아 및 중국의 일부가 되어 주체적인 역할을 상실한 시대에 대해 서술상의 차이를 두는 것도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소비에트 혁명 이후, 중앙아시아, 몽골, 신강, 티베트 등 중앙유라시아 주요 지역이 현대에 들어 어떤 운명을 맞이했는지 서술하면서 책을 마친다.

이 책의 특징

하나의 테마가 두 페이지에

이 책은 ‘인구어족의 이동’부터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점령’까지 총 96개 테마로 구성되어 있고, 각 테마는 두 쪽의 펼친 페이지에 담겨 있다. 본문 내용과 함께 해당 주제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 위한 지도, 계보도, 도판이 배치되어 있다. 각 테마의 왼쪽 첫머리에 배치된 연표는 독자가 현재 읽고 있는 내용이 어느 시기에 해당하는지를 알려주는 좌표 역할을 한다.

역사적 사건을 생생하게 담아낸 총 113컷의 역사지도와 22개의 계보도
본문의 내용을 지도에 압축적으로 표현해 시간에 갇혀 있는 역사 이해의 폭을 공간으로 넓히는 것이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의 핵심이다. 저자는 이 책에 나오는 거의 모든 지도를 직접 제작했다. 우선 경도와 위도를 따진 뒤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앙유라시아 역사에 등장하는 주요 지명을 일일이 지도 제작 프로그램에 입력했다. 그런 다음 철저한 사료 해석과 지리 고증을 바탕으로 역사적 사건과 그 전개, 영역 등을 지도로 구현했다. 이 책에 나오는 지도는 물론 지도 일러스트레이션 전문가의 손을 거쳐 시각화되었지만, 그 내용은 모두 저자 김호동의 해석과 고증을 따른 것이다. 저자가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만큼 이 책에 수록된 지도들은 그 자체로 역사에 대한 하나의 권위 있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113컷의 지도는 유목민족의 이동과 거주, 민족 간 또는 국가 간의 전쟁, 교역, 여행과 같은 중앙유라시아 전반의 교류 등 중앙유라시아사의 다양한 국면들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22개의 계보도는 복잡다단한 유목민족 군주들의 가계를 한눈에 계통적으로 정리하여 본문을 읽을 때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한다.

수준 높은 그래픽 입체 지도
대개의 역사서에 나오는 단조로운 평면 지도를 탈피하여 산맥과 강줄기, 고원과 평지가 현실감 있게 드러나는 입체 지도를 주로 사용했다. 점, 선, 면을 사용하여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지점이나 국경, 세력 범위가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했고, 여기에 다양한 스타일의 화살표를 사용하여 정지된 듯 보이는 공간에 시간이라는 역동성을 구현하고자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도만 쭉 살펴보아도 중앙유라시아사의 전체상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다.

별책부록 ‘연표로 보는 중앙유라시아의 역사’
복잡다단한 중앙유라시아의 역사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연표로 보는 중앙유라시아의 역사’라는 제목의 별책부록을 책에 더했다. 부록을 옆에 펼쳐놓거나 벽에 붙여놓고 책을 읽는다면 자신이 읽고 있는 시기가 어디쯤인지를 수시로 확인해볼 수 있다. 닫기

 

 

 

 

 

 

국내 학자가 쓴 첫 중앙유라시아 개설서 발간 [연합뉴스] 2016.01.19

김호동 서울대 교수의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우리나라 학자가 우리 말로 쓴 첫 중앙유라시아사 개설서가 나왔다.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가 쓴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사계절. 272쪽. 2만9천800원)'는 지난 3천년간 농경 정주문명과 함께 세계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중앙유라시아 초원의 유목민과 오아시스 도시민의 역사를 다뤘다.

책은 유목민의 탄생과 오아시스 상인의 출현, 몽골 제국을 비롯한 유목 세계제국의 활약과 변화상을 총망라했다.

저자는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다양한 언어로 쓰인 1차 사료와 학계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3천년의 역사를 서술했다. 독자의 이해를 돕도록 113컷의 지도도 함께 수록했다.

중앙유라시아 분야 권위자인 김 교수는 현재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 역사 시리즈 중 하나인 '케임브리지 몽골제국사'의 책임 편집을 맡아 2017년 상·하권 출판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출판사는 "그동안 중앙유라시아 역사서가 일부 출간되긴 했지만 모두 외국학계의 성과를 번역한 책이었다"며 "이번에 발간된 책은 국내 연구자가 우리 말로 쓴 최초의 중앙유라시아 통사이자 해당 분야의 석학이 자신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보려면 중국 너머 ‘유라시아 시각’ 되찾아야” [한겨레] 2015.07.16

지금 집필중 ⑧ 김호동 서울대 교수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는 중앙유라시아사의 세계적 권위자다. 출판계와 학계에서 두루 손꼽는 저자요, 중요 고전 판본을 비교·분석해가며 정밀하게 옮기고 주를 다는 철저한 번역자로 이름 높다. 열정적 강의로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고 누리꾼들 가운데서도 그를 역사 연구의 ‘대칸’이라 일컫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 평가는 고맙지만 과장된 것도 있어요. 쉽지 않은 일이긴 하죠. 언어도 여럿 해야 하고, 작업도 전문적으로 파고들어야 하니까….”

10월 출간 예정으로 김 교수가 최근 원고를 넘긴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사계절)는 그의 엄밀한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역사적 사건과 변화의 흐름을 지도로 표현한 시리즈물로, 2004년부터 한국사 중국사 일본사 등이 나왔고 김 교수의 책으로 5권 전체가 11년 만에 완간된다. 중앙유라시아는 만주, 몽골, 중국, 신장, 티베트, 러시아, 인도 북부, 이란, 터키를 포함하는 방대한 지역이다. 동서 문명의 통로이자 ‘세계사’를 가능하게 한 교류의 장이었지만 ‘원재료’가 부족해 애를 먹었다.

“중국사나 서양사처럼 기존 지도가 풍부하지 않아서 지도 그리는 프로그램을 배워 직접 그렸어요. 경도와 위도를 따진 뒤 고대부터 근대까지 중앙유라시아 지명을 하나씩 넣기 시작했죠. 책에는 구체적으로 표시하기에 한계가 있지만 연구자로서 기존 지도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정확한 데이터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거시적 통찰을 중시하지만 먼저 매우 견실한 미시적 연구를 토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중앙유라시아사를 현지어로 공부한 첫 세대로서, 그의 자료 장악력과 독보적인 전문성은 스승들에게서 힘입은바 크다. 스승 민두기 교수의 권유로 중앙아시아사를 선택했고 1980년 미국 유학을 떠나 하버드대 조지프 플레처 교수를 만났다. 플레처 교수는 곧장 러시아어를 배우라고 했다. 그 뒤엔 페르시아어, 몽골어, 터키어, 위구르어 같은 ‘특수어’ 습득을 요구했다. 플레처 교수는 모국어인 영어를 빼고 14개 국어를 알고 있었고 김 교수 또한 10여개 국어를 익혔다. 이번 책을 집필하며 ‘컴퓨터 언어’까지 배운 셈이다.

1990년부터 번역서를 내기 시작해 박사학위논문을 기초로 집필한 <근대 중앙아시아의 혁명과 좌절>(1999) 이후로 거의 2~3년에 한권 꼴로 저서나 번역서를 냈다. 곧 그가 역주 500여쪽짜리 <몽골제국기행>(까치)도 나올 예정이다. 1200년대 중반 몽골을 다녀간 두 유럽 수도사들의 기행문으로, 이들은 마르코 폴로보다 30~40년 앞서 몽골을 방문했다. ‘코리아’(카울리)라는 말이 처음 나오는 서구의 문헌이기도 하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몽골제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책입니다. 3000~4000㎞ 정도 거리를 두세달 만에 주파해 가는데 그 과정이 참… 적국으로 가는 두려움도 있었을 테고 간난신고가 컸죠. 청빈, 검약을 강조하는 선교회 수도사답게 맨발로 영하 20~30도 추위에 텐트 앞에 서 있자니, 대칸이 괴물처럼 쳐다보더라는 거죠. 그 장면을 읽으면서 800년 전이지만 역사 현장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중앙유라시아사 세계적 권위자. 현지어공부 첫 세대로 왕성한 활동. ‘아틀라스’ ‘케임브리지 몽골제국사’ 집필

역사 에세이를 보면 한때 ‘문학청년’이던 그의 섬세한 감수성을 느낄 수 있다. <황하에서 천산까지>가 대표적이다. 중국에 맞선 달라이라마와 티베트인들의 독립운동, 순교자들의 피와 눈물로 얼룩진 회족의 역사, 위구르인들의 독립투쟁 같은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는 이 책으로 “약하고 짓눌려온 민족들의 비가”를 들려주고 싶었다면서도 “어느 민족에게도 언제나 비통한 과거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썼다. 역사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잃지 않는 것이다.

사실 그는 세계사의 통념을 뒤집는 시각으로 역사의 잃어버린 조각들을 맞춰왔다. 이를테면 세계사는 농경민과 유목민의 두 축으로 이뤄졌으며, 근대 유럽의 성공은 그리스·로마 문명의 결과라기보다 몽골시대가 낳은 ‘세계사’의 탄생 덕분이라는 것, 칭기스 칸은 정복을 위한 전쟁광이 아니라 유목세계의 군주로 보아야 한다는 것 등이다. 세계사는 민족이나 국가를 뛰어넘어 각각의 역사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개된 총체적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그는 거듭 강조했다.

“역사 연구는 주요 문명과 강대국 중심 ‘메이저 리그’니까요. ‘마이너한’ 부분을 알아야 세계사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하나의 세계사를 보기 위해서는 중앙유라시아사가 중요하다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파괴와 정복을 일삼는 몽골제국이라는 고정관념 대신 그는 제국 형성 뒤 일어난 수많은 교류와 통합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몽골인들은 일제나 중국처럼 자기들의 신앙이나 가치를 남에게 강요하지 않았고 문화적·민족적으로 다원주의적이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요즘 2017년 완간을 목표 삼아 <케임브리지 몽골제국사>를 집필중이다. 몽골제국의 교류와 통합의 역사를 다룬 케임브리지대학출판부 역사시리즈로, 이스라엘 학자와 함께 책임을 맡아 “가장 일선에서 뛰는” 세계 40여명 학자를 필자로 위촉했다. ‘총체적 역사’(integrative history) 서술의 출발이자 몽골제국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며 인류사를 한단계 높일 대기획이다.

“몽골제국사는 총체적 역사 서술의 시험대이자 종착역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도 세계와 단절되고 중국에 매몰될 이유가 없지 않아요?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가 다시 유라시아적 시각을 회복하는 것이 의미가 있겠지요. 중국을 넘어 세계에 대한 생각을 갖고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터키쪽 문화와 연구 교류도 많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그는 후학에 대한 걱정을 거두지 못했다. 일본만 해도 이란의 대서사시 <제왕의 서>(Shahnameh)가 완역됐지만 우리는 페르시아어로 된 중요 고전들에 무관심하다. 동양사학에서도 중국 중심의 문화적 편향성이 심해 역사연구의 불균등 발전이라는 제도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연구를 할 인재를 키워야 하고 그들이 밥걱정 없이 연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후학을 위한 선학의 ‘터닦이’는 계속된다. 그는 곧 최초의 세계사인 <라시드 앗 딘의 집사> 4~5권 번역에 돌입할 예정이다.

 

김호동 교수는 ‘칸’이라 불리는 사나이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내륙아시아 및 알타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중앙유라시아연구소 소장, 제23대 동양사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스웨덴 웁살라대 교환교수, 독일 뮌헨대 교환교수 등을 지냈다.

학부 시절에는 동양사학의 대가인 민두기·고병익 교수에게 배웠다. 박사학위 논문을 지도한 플레처 교수는 김 교수가 박사논문 자료를 수집하려고 외국에 머무를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플레처 교수가 옛날 해당 분야 최고 권위자인 중동학의 프라이, 투르크학 프리착, 몽골학의 클리브스 세사람의 지식과 학맥을 이어받았으니 김 교수 또한 그들을 사숙한 셈이다.

대중강연이나 언론 연재에서도 그의 열정적인 이야기를 가끔 만나볼 수 있어, 올 초에도 석학들을 초청하는 ‘문화의 안과 밖’(네이버문화재단) 강연에서 연사로 나섰다. 그는 “대중성과 학문적 엄밀성의 조화는 언제나 고민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1860~70년대 신장 무슬림 봉기에 대해 박사논문을 쓰고 1986년 귀국한 뒤 중앙아시아 초원의 유목민족사와 14세기 이슬람화 이후 중앙아시아의 무슬림 사회 연구에 집중했다. 2000년께부터 집중적으로 몽골제국사 연구에 몰두했다. “몽골제국의 크기가 엄청났고, 그간 훈련해온 다양한 언어와 지식을 활용해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나고 도전의식이 생겼다”고 그는 말했다. 몽골제국은 우리 역사와 관련해 의미 있는 연구 분야이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 <근대 중앙아시아의 혁명과 좌절>(1999: 미국 스탠포드대학 출판부에서 ‘Holy War in China’라는 제목으로 2004년 출간) <황하에서 천산까지>(1999) <동방기독교와 동서문명>(2002) <몽골제국과 고려>(2007)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2010)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공저·2007) 등이 있다. 주요 역서로는 <유목사회의 구조>(하자노프, 1990) <이슬람문명사>(버나드 루이스, 1994) <유라시아 유목제국사>(르네 그루세, 공역·1998)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2000) <부족지: 라시드 앗 딘의 집사1>(2002) <역사서설>(이븐 할둔, 2003) <칭기스 칸기: 라시드 앗 딘의 집사2>(2003) <칸의 후예들: 라시드 앗 딘의 집사 3>(2005) 등이 있다.

 

 

 

 

유목 제국 3000년을 망라하다 [조선일보] 2015.01.18

국내 첫 중앙유라시아사 개설서 출간한 김호동 서울대 교수
초원 유목민·사막 오아시스인… 113장의 역사지도 등으로 정리

 

 

"중앙유라시아의 동부뿐 아니라 흑해 등 서부까지 망라하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한반도와 관계가 깊었던 중국 북방의 유목민들에게 주로 관심을 갖습니다만, 유라시아 초원의 서쪽에서도 중요한 사건이 많았기 때문에 균형 있게 다루려고 노력했습니다."

중앙유라시아 연구의 권위자인 김호동(62) 서울대 교수가 이 지역의 3000년 역사를 지도와 함께 정리한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사계절)를 펴냈다. 흑해 북방의 초원에서 중국 동북의 싱안링(興安嶺) 산맥까지, 시베리아 남부의 삼림지대에서 힌두쿠시 산맥과 티베트 고원에 이르는 방대한 중앙유라시아는 초원의 유목민과 사막 오아시스인의 역사 공간이었다. 뛰어난 기마술을 무기로 초원 지대를 종횡으로 누빈 유목 제국들은 아시아와 유럽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수많은 종족과 국가가 명멸했고 근대에 들어서는 초강대국 러시아와 중국에 분할 점령되는 바람에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국내 학자가 쓴 첫번째 중앙유라시아사 개설서인 이 책은 유라시아 초원 서부의 첫 유목국가 스키타이(BC 7~BC 2세기)와 초원 동부에서 중국을 강타했던 흉노(BC 3세기~AD 2세기)의 흥망으로 시작한다. 김 교수는 "유목국가와 주변 정주국가의 안정적 관계가 무너질 때 정치적 혼란과 대규모 민족 이동이 발생하는 역사적 패턴이 이때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AD 6세기 중앙유라시아의 새 주인으로 등장한 투르크인들이 유목제국 '돌궐(突厥)'과 '위구르'를 차례로 세워 당(唐)·동로마제국·페르시아와 패권을 겨루는 과정을 서술한다.

다음으로 AD 10~14세기 중앙유라시아 초원을 근거지로 역사상 가장 큰 육상(陸上) 제국을 건설했던 몽골의 흥기와 붕괴 과정을 상세히 다룬다. 김 교수는 "몽골 제국이 거대한 통합을 통해 유례없는 문명 교류와 소통을 바탕으로 한 '팍스 몽골리카(몽골의 평화)'를 이뤘다"고 높이 평가했다. 종반부는 몽골 제국 멸망 이후의 역사다. 유목민족은 전반적 쇠퇴 속에서도 14세기 티무르 제국이 서아시아를 정복했고, 티베트 불교와 이슬람교의 적극적인 포교 활동으로 종교적 색채가 강화됐다. 하지만 17세기 들어 몽골 전통에서 성장한 만주인이 세운 청나라와 러시아가 양쪽에서 밀고 들어오고 20세기에는 중앙유라시아 전 지역이 사회주의 혁명에 휩싸이게 된다.

106개 항목, 113장의 역사지도와 관련 사진·연표·계보도로 된 책을 읽다 보면 중앙유라시아에 대한 한국인의 평균 인식이 얼마나 낮은지 깨닫게 된다. 쿠샨·키다 라·헤프탈·카라한·준가르 등 수많은 낯선 국명을 만나게 되고, 고려와 직접 관련 있는 몽골 제국만 해도 상당 부분이 생소하다. 그럴 때 저자가 본문 내용을 담아 직접 만든 역사 지도들이 이해를 돕는다. 김호동 교수는 "유라시아 내륙 교통로의 중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이 지역의 역할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그 역사에 좀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학자가 쓴 중앙유라시아 3000년 역사서 나왔다 [서울신문] 2016.0.1.18

서울대 김호동 교수 이메일 인터뷰… 美 머물며 마르코 폴로 책 집필중

 

 

한국 학자가 한국어로 쓴 국내 첫 중앙유라시아 개설서가 처음으로 편찬됐다. 집필과 수정에만 장장 3년이 걸린 대장정 끝에 중앙유라시아 유목 제국의 3000년 역사인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사계절)를 펴낸 주인공은 김호동(왼쪽)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다. 중앙유라시아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그는 현재 미국에 머물며 후속작으로 마르코 폴로에 대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김 교수는 지난 17일 서울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2012년에 첫 집필을 시작해 초고를 완성하고도 각종 지도와 계보도를 수정하고 교정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고 밝혔다. 총 96개 테마로 113장의 역사 지도와 시대별 유목국가 군주들의 가계를 계통적으로 정리한 22개의 계보도를 담아 우리에게는 낯선 중앙유라시아 역사의 이해도를 크게 높였다. 

김 교수는 세계사 교과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그리스, 로마 제국, 중국 역대 왕조 등이 주역으로 늘 주목받았다면 중앙유라시아 초원의 유목민과 오아시스 도시민은 실크로드를 종횡무진하며 세계사의 동맥 역할을 한 숨은 주연배우들이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그동안 해외 학술서를 번역한 책만 국내에 존재했던 현실에서 처음으로 한국 학자가 철저한 고증을 통해 집대성한 첫 한국어 작품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책은 유라시아 초원 서부의 첫 유목국가인 스키타이(BC 7세기~BC 2세기)와 초원 동부에서 중국을 공략했던 흉노(BC 3세기~AD 2세기)의 흥망을 조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김 교수는 중앙유라시아 통사를 두 가지 측면에서 저술했다고 설명했다. 실크로드로 잘 알려져 있듯이 중앙유라시아는 세계 여러 문명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했다는 점과 고대 흉노, 중세 돌궐과 몽골에 이르기까지 유목제국은 동아시아와 서아시아 그리고 세계사를 변화시킨 결정적 요소였다는 점이다. 그는 “고려 시대까지는 흉노, 선비, 거란, 여진, 몽골 등 유라시아 국가가 우리 역사에 깊이 들어와 있었지만 조선 건국 이후 유라시아 커넥션이 사라지기 시작했다”며 “조선의 이념으로 성리학이 자리잡으면서 중국 중심의 역사로 기울었다”고 우리 역사에서 멀어지게 된 이유를 덧붙였다.

김 교수는 중앙유라시아 언어뿐 아니라,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터키어, 위구르어 등 소수 언어까지 10여개 언어를 구사한다. 학계 권위자로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 역사 시리즈 중 하나인 ‘케임브리지 몽골제국사’의 책임 편집도 맡고 있다. 그는 “지난 20~30년 사이에 몽골제국사 연구가 세계적으로 진전되면서 해외 학자들과 광범위하게 접촉해 연구 성과를 모으고 있다”며 “해외 40여명의 학자가 공동으로 저술해 몽골의 제국 통치 제도를 분석한 제국사가 2~3년 내에 상하 2권으로 출판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19세기 후반 중국 신강 무슬림 반란에 대한 박사 논문으로 내륙아시아 및 알타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목제국 3000년史 , 국내 학자가 집대성 [문화일보] 2016.01.20

김호동교수 ‘아틀라스 유라시아사’

몽골 활약상부터 러시아 점령까지. 96개 테마…113컷 지도 이해 도와


농경 정주 문명 중심의 세계사, 이집트·그리스·로마를 거쳐 중세 유럽·근세 이후 아메리카 혹은 중국 역대 왕조 중심의 세계사, 그리고 서양학자들의 세계사. 기존 세계사 연구의 세 가지 주요 프레임을 넘어선 의미 있는 작업이 나왔다. 우리 학자가 우리말로 쓴 최초의 중앙 유라시아사 개설서가 그것이다. 김호동(사진)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의 ‘아틀라스 중앙 유라시아사’(사계절)다.

김 교수는 세계사를 좀 더 폭넓은 시야로 바라보면 또 하나의 거대한 무대와 숨은 주인공이 있다면서 그 주인공은 중앙 유라시아 초원의 유목민과 오아시스 도시민이라고 했다. 초원의 유목민은 교류와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문명을 일구는 동시에 농경 문명에 끊임없이 자극을 주었고, 오아시스 도시민들은 실크로드를 종횡무진하며 세계사의 문명과 문물을 전달하고 교류시키는 동맥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아틀라스 중앙 유라시아사’는 지난 3000년 동안 농경 정주 문명과 함께 세계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이 같은 중앙 유라시아의 역사를 다룬다. 유목민의 탄생, 오아시스인의 출현, 몽골 제국 등 세계 유목 제국들의 활약과 변화상까지 중앙 유라시아 3000년 역사를 추적한다. 이 3000년 역사는 인구어족 이동부터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점령까지 총 96개 테마로 구성된다. 테마마다 연표를 배치해 독자들이 현재 읽고 있는 내용이 어느 시기에 해당하는지를 알려 주고, 역사 지도 113컷과 계보도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김 교수는 국내에서 중앙 유라시아사를 현지어로 공부한 첫 세대이자 이 분야의 선구자로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 주요 언어는 물론 페르시아어, 몽골어, 터키어, 위구르어 등 소수 언어까지 10여 개 언어를 구사하며 자신의 연구뿐 아니라 후학들을 위해 주요 1차 사료의 역주서를 출간한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 연구자가 우리말로 쓴 최초의 중앙 유라시아 통사라는 의미를 가진 이 책도 해당 분야의 석학인 저자가 다양한 언어로 쓰인 1차 사료와 학계 연구 성과를 철저히 고증해 서술해낸 결과다. 한편 김 교수는 현재 케임브리지대 출판부 역사 시리즈 중 하나인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의 책임편집을 맡고 있다. 김 교수는 세계 각국 40여 명의 몽골 제국사 전문가들이 보내온 원고를 검토, 선별하고 수정을 요청해 2017년 상하 2권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세계사 동맥 역할했던 중앙유라시아 유목민 [국민일보] 2016.01.21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김호동/사계절출판사



지금까지 세계사는 농경 정주문명을 중심으로 서술됐다. 하지만 좀 더 시야를 넓히면 또 다른 주역이 있다. 바로 중앙유라시아 초원의 유목민과 오아시스 도시민이다. 이들은 실크로드를 종횡무진하며 세계사의 동맥 역할을 했다. 특히 고대 흉노, 중세 돌궐과 몽골에 이르기까지 유목제국은 아시아와 유럽의 역사를 변화시키는데 결정적이었다.
 
세계적인 중앙유라시아 권위자인 김호동 서울대 교수가 쓴 이 책은 유목민의 탄생과 오아시스 상인의 출현, 몽골제국을 비롯한 유목제국의 활약과 변화상을 총망라했다. 저자는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다양한 언어로 쓰인 1차 사료와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3000여년의 역사를 서술했다. 특히 113컷의 지도와 22개의 계보도는 유목민족의 이동과 거주, 왕족들의 가계를 한눈에 보여준다. 

김 교수는 그동안 전문 연구서는 물론 대중교양서를 다수 집필해 왔다. 강대국의 역사에 가려져 있던 초원과 오아시스의 찬란했던 과거, 옛 영광을 잃어버린 채 몰락한 소수민족의 비통한 역사를 복원해 세계사를 바라보는 독자들의 편향된 시선을 교정하기 위해서다. 책은 국내 연구자가 우리말로 쓴 최초의 중앙유라시아 통사일 뿐만 아니라 해당 분야 석학이 자신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결과다.




세계사 쥐락펴락 중앙유라시아사 이제 입체로  [한겨레] 2016.01.22

서울대 김호동 교수 철저한 고증. 지도 113장에 3000년 역사 한권에. ‘아틀라스 역사 시리즈’ 마지막권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김호동 지음/사계절·2만9800원


660년 백제를 멸망시킨 나·당 연합군의 당나라 장수 소정방(592~667)은 바로 그 전해까지 서쪽 티베트(토번)와의 전쟁을 지휘하고 있었다. 659년 티베트 군은 당의 지원을 받고 있던 ‘토욕혼’을 공격해 당 군도 치명타를 입었다. 소정방은 그 패배의 책임을 지고 동부전선인 한반도로 전격 전보된다. 토욕혼은 티베트 고원 북쪽 타림분지의 동부·오늘날 중국 칭하이(청해) 지역에 있던 선비족 계통의 국가로, 당은 서역과의 교통을 위해 이를 복속시켰는데, 신흥세력 티베트가 등장해 알력을 빚고 있었다. 당은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670년 설인귀가 이끄는 10만 대군을 보냈고, 678년에도 18만 대군을 투입했으나 연이어 참패했다. 그로써 당의 서역지배는 무너졌다.

소정방은 고구려가 멸망(668)할 때까지 살진 못했으나 평양성을 포위하기도 했다. 당시 당은 동부전선보다 서부전선이 더 위급하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백제·고구려 멸망 뒤 당이 신라에 쫓기듯 한 발 물러선 것이 그런 정세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그런데 토욕혼은 어디며, 칭하이·타림분지는 또 어딘가? 장안에서 하서회랑의 둔황을 거쳐 누란, 호탄 또는 그 위쪽의 투르판 카쉬가르, 사마르칸드를 거쳐 오늘날의 중동과 서방으로 가는 길을 머리 속으로 그릴 수 있는 이는 또 얼마나 될까? 평면적인 문헌 텍스트만이 아니라 시각자료를 통해 이해의 폭을 공간적으로도 확장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당대 역사를 훨씬 더 쉽게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가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는 바로 그런 요구에 부응하려는 책이다. ‘아틀라스’라는 말에 걸맞게 이 책에는 113장의 지도가 들어 있다. 모두 컬러판인데다 지형의 실제 높낮이와 형태 등을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입체감을 살렸고, 지명들은 실제 경도와 위도에 정확하게 맞춰져 있다. 이런 류의 책이 기왕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외국책을 우리말로 옮긴 번역서들이다.

지도와 사진들은 물론 서술 텍스트들은 하나하나 이 분야 최고 수준의 전문가 손을 거쳐 검증·작성된 것이다. 하버드대에서 내륙아시아 및 알타이학으로 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내년에 2권으로 출간될 예정인 <케임브리지 몽골제국사>(’케임브리지대학교 출판부 역사 시리즈’) 책임편집을 맡고 있을 정도로 이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전문가다.

중앙유라시아(Central Eurasia)는 지리적으로는 서쪽으로 흑해 북방 초원에서 동쪽으로 베이징 동북쪽 싱안링산맥, 북으로는 시베리아 남부 삼림지대, 남으로는 파미르고원 왼쪽 인도 북서쪽의 힌두쿠시산맥 왼쪽 소아시아 일부, 티베트고원까지를 포괄하는 광대한 지역이다. 이는 또한 초원(스텝)·사막·오아시스·실크로드·유목민과 정주민 등이 어우러진 역사·문화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중앙유라시아는 주변 대국들과 서구중심 역사에서 소외되거나 그 존재의미가 평가절하돼 왔지만, 때론 대제국을 이루면서 주변 문명들을 자극하고 이어주며 세계사 전개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중요한 지리·역사·문화권역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코리아’가 세계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프랑스 국왕 루이 9세의 친서를 휴대하고 1253년 몽골(원) 수도 카라코룸에 갔다가 1255년에 귀국한 윌리엄 루브룩의 <여행기>(Itinerarium) 를 통해서다. 그 책에 나오는 ‘카울레’(Caule)가 나중의 코리아다. 루브룩과 동시대의 플라노 카르피니, 마르코 폴로 등 유럽과 동아시아를 오간 여행가들의 이동 경로를, 위도에 따라 지형이 심하게 왜곡되는 메르카토르 도법의 평면지도가 아니라 구형상의 입체지도로 확인해 볼 수 있다.

한나라 정벌군에 밀려 텐샨산맥 북쪽 발하시호 아래 ‘오선의 땅’을 지나고 카자흐스탄, 흑해 북쪽을 거쳐 알란족과 고트족을 밀어냄으로써 민족대이동을 촉발하고 동·서 로마를 위기에 빠뜨린 흉노(훈족)의 발원지는 바이칼 호수 남쪽이다. 그 오른쪽, 옛 발해 영토와 겹치는 곳, 아무르강과 그 지류인 쑹화강 일대는 세계최대의 육상제국을 건설한 몽골과 금-후금-청 제국을 건설한 여진, 그리고 거란·선비 등의 본향이다. 이들의 터전과 움직임을 텍스트로 읽으면서 동시에 입체적 이미지의 지도에 표시된 그들의 행적을 조감하노라면 당대 역사가 훨씬 더 선명하게 그려진다.

말갈 후예인 여진의 쑹화강 유역 완안부 출신으로 금나라를 세운 아쿠타의 조상 ‘함보’는 원래 ‘고려’에 살았던 사람으로 돼 있다. 그때 고려는 고구려로 봐야 한단다. 김 교수는 흉노, 선비, 거란, 몽골 등 중앙유라시아 강자들 이름을 종족이나 부족, 민족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흉노가 선비에 멸망당한 뒤 편입된 주민들이 스스로를 선비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처럼, 그것은 거기에 통합·편입된 모든 사람·종족들을 포괄하는 명칭이라는 것이다. 고구려나 고조선, 발해 등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기원전 2000년 무렵 청동기 문화의 시작과 함께 본격화한 카스피해 북쪽 인구어족의 대이동과 스키타이·흉노 등 유목민·유목제국의 출현, 6세기 투르크(돌궐) 제국의 탄생, 거란·여진 등의 정복왕조들을 거쳐 대제국을 건설한 몽골, 티무르·우즈벡·셀주크·티베트 등 계승국가들의 등장, 그리고 사회주의 러시아(소련)와 중화인민공화국의 등장으로 동서로 분할되면서 쇠퇴해 간 중앙유라시아 유목민들의 역사. 하지만 소련이 해체되고 중국 또한 개혁개방 뒤 급변하고 있는 21세기에 중앙유라시아는 세계사 무대에서 또 어떤 역할을 맡게 될까.





몽골 황제는 ‘칸’이 아니라 ‘카안’  [한국일보] 2016.01.22

김호동 서울대 교수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김호동 지음, 사계절 발행ㆍ272쪽ㆍ2만9,800원



중앙유라시아는 우리에게 익숙치 않다. 크게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중국에 사대한 조선 때문에 관심이 확 줄었다. 현대 들어서는 소련ㆍ중공이라는 두 거대 공산국가에 막혀 접근 자체가 안됐다. 냉전은 끝났지만 북한에 막혀 섬나라처럼 살다 보니 여전히 대륙과는 떨어져있다. 그 덕에 광활한 만주벌판과 중앙아시아 초원지대가 실은 다 우리와 연결된 땅이었다는 얘기는 많지만, 정작 송-원-명-청 같은 중국식 왕조 이름은 알아도 위구르, 키타이, 티무르, 오이라트, 준가르 같은 이름엔 아무 대책이 없다.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는 이 부분을 메워줄 수 있는 책이다. 국내외적으로 내륙아시아사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가 썼다.

책의 포인트는 몽골사와 신청사다. 신청사는 한족 중심의 중국사 연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미국쪽 연구 흐름이다. 여진, 거란, 만주족 등이 앞선 무력으로 중국을 정복했을지는 몰라도, 야만적 유목민이라 결국 문화 수준이 높았던 정주문명국 중국에 동화됐다는 시선을 거부한다. 청나라를 단순히 명나라와 싸워 이긴 나라, 중국 역대 왕국 가운데 하나로 보지 않고 만주족 중심으로 한족을 포함한 여타 민족들을 정벌하고 지배한 제국주의 국가라고 보는 시각이다.

이런 시각이 나오게 된 것은 만주어 독해 덕이다. 만주어를 읽지 못하던 시절엔 한문 번역을 보고 만주어 기록도 똑 같은 내용이겠거니 했지만, 만주어 독해가 되면서 한족에겐 한문을 써서 적당히 립서비스 해주고 만주족에겐 만주어로 진짜 속내를 드러냈다는 점이 포착됐다. 명나라를 계승한 청나라가 아니라, 한족의 명나라와 달리 다민족ㆍ다언어 집단을 노련하게 분할 통치하는 제국으로서 청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당연히 만주족 때문에 서양에 당하고야 말았다는 강렬한 한족 중심의 민족주의가 밑바탕에 깔린 현대 중국에게는 굉장히 껄끄러운 접근방식이거니와, 어찌 보면 동북공정 같은 작업을 그리 서두르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도 신청사를 적극 수용한다. 가령 청나라의 몽골 지배에 대해 “군주, 신민의 관계라기보다 연맹과 협력에 기초한 동반자적 관계”라면서 “중국 내지에 대한 지배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달랐다”고 지적해뒀다. 이는 저자가 중국어, 영어, 러시아어는 물론, 몽골어, 위구르어, 터키어, 페르시아어 등 10여 개 언어를 다룰 수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기존 한문 기록 외에도 14세기 라시드 앗 딘이 아랍어로 집대성한 세계사 ‘집사’ 등 다양한 원전 자료를 섭렵한 결과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케임브리지 몽골제국사’ 책임편집자인 저자의 책답게 책의 백미는 역시 몽골사 부분이다. 저자는 지도로 보는 역사책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전체 흐름을 중학생 수준에서 읽어나갈 수 있도록 편안하게 서술하면서도, 그간 잘못 알려진 역사적 상식을 일일이 바로 잡는다.

대표적으로 몽골의 우두머리를 일컫는 ‘카안’과 ‘칸’을 저자는 엄격히 구분했다. 미국에 머물고 있는 김 교수는 이메일 답변에서 “원래 카안은 몽골제국 최고 군주를 뜻하고 칸은 칭기스 칸 후예 중 카안보다 아래 있는 왕을 뜻한다”면서 “일종의 황제와 왕의 관계와 비슷한 건데 몽골제국이 무너진 뒤 이 구분이 희미해지다가 16세기 이후 사라져버렸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굳이 나눈 건 몽골제국 당시에는 중요한 구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칭기스 칸의 손자인 쿠빌라이가 원(元)을 세웠다는 대목에도 연결된다. 저자는 “라시드 앗 딘의 집사나 다수의 몽골문 연대기 어느 곳에서도 쿠빌라이가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면서 “쿠빌라이는 원이라는 중국의 왕조가 아니라 대몽골 울루스의 최고 지배자 칸이라는 생각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고 했다. ‘원’이란 명칭은 한족용 이름이었을 뿐이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당연히 저자는 책에서 ‘원’이란 우리에게 친숙한 국호를 쓰는 대신 ‘카안 울루스’라는 이름을 쓴다. 울루스는 나라라는 뜻이니 카안 울루스란 모든 울루스를 아우르는 카안의 울루스, 곧 황제국임을 뜻한다. 쿠빌라이 때 몽골제국이 여러 칸국으로 갈라진 게 아니라 몽골제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울루스의 연합체였다는 얘기다.

또 몽골의 후예로 나중에 청나라에 정복당한 ‘최후의 유목국가’ 준가르에 대해서도 ‘준가르 칸국’이라 쓰면 안 된다고 지적해뒀다. 저자는 “칭기스 칸의 일족이 아니어서 준가르의 왕들이 대부분 ‘칸’을 칭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준가르는 칸보다 한 단계 낮은 홍타이지(황태자)급의 나라였다.


최근 가장 눈길을 끌고 있는 대목을 저자에게 물었다. 일부에서 돌고 있는, 칭기스 칸 일족이 발해 유민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는 주장이다. 칭기스 칸 일족이 발해 유민의 도움으로 몽골을 장악하고, 세계 지배로 나갈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 얘기는 ‘솔롱고스의 나라’로 상징되듯 몽골과 한반도가 애초부터 가까웠고, 이 때문에 몽골제국 당시 고려는 부마국의 지위를 얻었고, 몽골 계승을 자임한 청나라도 명나라 사대에만 몰두하는 조선을 안타깝게 여겼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마침 책에도 “칭기스 칸이 속한 집단이 살던 오논 강 상류지역 발굴조사에서 12세기에 이르러서는 매장 방식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이 주목을 받았다”고 했다. 흔히 매장방식 변화는 지배세력의 중대한 변화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발해 유민 관련설에 대해 김 교수는 “금시초문”이라면서 “중앙유라시아사와 우리와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것은 좋지만 인상주의적 근거만 가지고 민족주의적, 감상주의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답했다.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 김호동 지음  [매일경제] 2016.01.22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의 역작. 서구 중심 세계사에 외면당한 중앙유라시아 초원과 오아시스의 역사를 치밀한 사료 분석과 고증을 통해 새롭게 썼다.사계절 펴냄.





유라시아 3,000년 역사 한권에  [서울경제] 2016.01.22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김호동 지음, 사계절 펴냄,  2만9,800원)



중앙유라시아사 연구의 세계적 석학인 김호동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가 지난 3,000년 동안 농경 정주문명과 함께 세계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중앙유라시아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유목민의 탄생과 오아시스 상인의 출현 등 3,000년 중앙유라시아의 역사를 한 권의 책에 체계적으로 담았다.

출처 : mooncourt
글쓴이 : mooncourt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