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는 눈물의 예언자로 알려져 있다. 이는 예레미야가 ‘예레미야 애가’를 통해서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에 대해 슬퍼한 내용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예레미야 애가’ 에 보면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의 파괴 직후에 그 참상을 목격한 예레미야의 강렬한 슬픔의 탄식을 엿볼 수가 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예언자 예레미야의 고통과 절규를 통해서 무엇을 느낄 수가 있을까?
사람은 태어나서 살아가면서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눈물을 흘리거나 고통 할 때가 있는데 어느 누가 고통당하기를 원하겠는가? 그러나 사람은 태어나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느 누구든지 고통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숙명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들은 먼저 자신의 죄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탄식해야 된다. 그리고 자녀들을 위해서 눈물로 탄식해야 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니고 골고다로 향하시면서 슬피 우는 여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는 말씀은 우리의 삶 속에서 눈물의 탄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성도들은 신앙생활 속에서 우리 자신의 죄 뿐만 아니라 자녀들을 위해서 탄식의 눈물을 흘려야 될 것이며 우리가 전도할 대상인 영적인 자녀들을 위해서도 탄식의 눈물이 필요한 것이다.
예수께서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셨을 때에 편협적으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만 울라고 하셨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우리 자신과 자녀들 뿐만 아니라 영적인 자녀들을 위해서도 울라고 하셨다.
남해안의 어느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과 자녀들 그리고 믿지 않는 이웃들을 위해서도 가슴을 치며 울며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경제가 성장하여 국민소득이 높아진 가운데 의식주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었는지 예전보다 사람들 가운데서 눈물이 적어진 것 같다. 그래서 영화, 드라마, 문학 작품 등도 눈물을 자극하는 최루탄 작품이 줄어들고 가벼운 웃음을 자극하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탄식할 때는 탄식해야 될 것이며 특히 복음을 받아들이고 눈물의 탄식이 있어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