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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자료

리엔필드 소총 이야기

by Ddak daddy 2020. 8. 24.

맘대로 총기백과 시리즈 글들을 쓰면서 여러번 한 말이지만 19세기 말 총기 개발은 정말 흥미로운 시기였다. 분명 몇년 전까지만 해도 화약 가방을 따로 들고 다니면서 머스켓 총들을 장전했었는데 100년도 안되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종이 탄피, 금속 탄피, 무연 화약, 탄창 같은 새로운 기능들이 발명됨에 따라 퍼커션 캡을 사용하는 머스켓에서 단발, 레버액션, 펌프액션, 볼트액션, 반자동 같은 지금 사용하는것과 크게 다름 없는 모양새를 가진 무기들이 등장하였으니 말이다.

나같은 총기 매니아 (총덕후?) 들에게 이런 변화는 흥미로운 연구 주제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바뀌는 최신 기술을 쫓아 군대를 장비해야 했던 19세기 군대들에게 이런 변화는 굉장히 번거로운 존재였을 것이다. 1, 2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의 제식 무기였던 리엔필드 소총은 19세기 중반부터 변화무쌍한 소화기 세계의 새로운 기술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50년 가까이 되는 실험과 개발을 거쳐서 탄생했다.

이렇게 영국군의 제식 무기가 된 이후엔 거의 100년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군용으로 사용되었는데 리엔필드의 개발과 발전 과정을 보고 있으면 왠만하면 혁명적인 새것으로 옛것을 바꾸는것 보다 기존 것을 고쳐가면서 쓰는걸 좋아하는 영국의 국민성을 볼수 있는것 같다 (프랑스 혁명처럼 깽판을 안 치고 민주주의를 이뤄냈고 악명이 자자한 SA80 소총도 고치고 고쳐서 계속 쓰는 영국이다!).


No. 1 Mk. III

No. 4 Mk. I

사용 탄약

.303 브리티시

구동 방식

볼트액션

생산수

~17,000,000

생산년도

1895 - 현재

무게

4.19 kg (No. 1 Mk I)

3.96 kg (No. 1 Mk III)

4.11 kg (No. 4)

길이 (전체/바렐)

"매거진 리엔필드, 롱 (MLE)": 1,260 mm (767 mm)

리엔필드 카빈 (LEC): 1,030 mm (540mm)

No. 1 Mk III: 1,132 mm (640mm)

No. 4 Mk I: 1,129 mm (640mm)

No. 5 Mk I: 1,003 mm (480mm)


이것도 사실 캐나다 총인가?

왠지 악당일것 같은 옷차림과 콧수염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총이라고 할수 있는 M1 개런드의 개발자가 캐나다인이였는데 영국을 대표하는 리엔필드의 개발자인 제임스 파리 리 (James Paris Lee) 도 캐나다와 나름 관련이 있는 사람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캐나다 온타리오주로 어릴때 이민갔다가 성인이 되어 미국으로 내려간 케이스니 이분도 캐나다 발명가였다고 우길수도 있겠다.

여하튼 12살때 부터 여기저기서 부품을 주워다가 수제 총을 만들면서 온갖 사건을 일으키던 리는 성인이 된 후엔 미국으로 건너가 총기 디자이너로 일하게 된다.

그는 전장식 M1861 스프링필드 소총을 탄피에 든 총알을 사용하는 후장식 (breech-loading) 소총으로 개조하는 프로젝트에 자기의 디자인을 제출하여 1,000 정의 소총을 개조하라는 계약을 따내게 되었지만 시간 내에 군에 납품 할수 있었던건 200정 밖에 되지 않았고 그 마저도 부품 규격에 문제가 있어 군이 사용을 거부했었다고 한다. "리 카빈" 이라고 불리는 이 소총들은 현재는 남아있는게 별로 없고 후에 리엔필드를 만든 유명 디자이너의 첫 작품이라는 의미에서 비싸게 거래된다는 모양.

이후 전쟁 도중, 그리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그마한 계약들을 따내 총기를 만들던 리는 1880년대 말 센터파이어 형식의 총알들을 한열 (single column) 이 아니라 살짝 어긋나게 두겹 (double column) 으로 넣음으로써 예전 같았으면 총알 5발이 들어갈 높이의 탄창에 10발이 들어가는게 가능하게 해주는 "리 탄창 시스템 (Lee Magazine System)" 을 개발해내는데 지금 들으면 별로 대단한 이야기 처럼 들리지도 않지만 들어가는 탄약수를 늘리려면 매커니즘을 통째로 다시 만들어야 했던 마우저 액션의 총들이나 아니면 총기 길이에 따라 총알수 제한이 바뀌던 튜브 형식 탄창의 동시대 총들에 비하면 쉽게 장탄수를 늘릴수 있는 혁신이었고 무엇보다 지금 거의 모든 총들에서 사용되는 교환식 탄창들에 모두 적용되는 선구적인 디자인이었다.

그는 이런저런 새로운 디자인들을 적용시켜서 M1879/82/85 레밍턴-리 소총이나 M1895 리 네이비 소총을 개발하는데 이들은 미 해군과 중국을 비롯한 군대의 제식무기로도 팔려갔고 민수용 시장에도 출시됐다.

M1885 레밍턴-리 소총. 리엔필드와 윤곽이 비슷한게 보인다.

리 네이비 소총은 만리허와 비슷한 엔블락 형식의 장전방식을 사용했다. 리의 말에 따르면 자기가 먼저 개발한 물건이었고 (아마 우연히 비슷한 시간에 독립적으로 발명한듯 함) 만리허가 특허 침해를 했다고 소송을 걸었으나 승소하지 못했다고.

리엔필드나 K31 처럼 이 당시 탈착식 탄창이 제공되는 총기들은 현대 돌격 소총 처럼 탄창을 바꿔가면서 쓰였던게 아니라 그냥 청소할때 편하라고 탈착 기능이 들어있는 형태였다. 정밀한 기계 가공이 어려웠던 그땐 개발자의 초기 의도가 어땠던 간에 병사들에게 간단히 찍어낼수 있는 스트리퍼 클립을 지급하는게 훨씬 쉬웠을테니 이해가 간다.


리멧포드와 초기 리엔필드

당시 마티니-헨리 (Martini-Henry) 레버액션 단발 소총을 쓰고 있던 영국군은 단발인 베르단 소총으로 무장했던 재정 러시아가 윈체스터 연발 레버액션 소총을 가지고 있던 오스만군에게 고생하는걸 보고 (모신나강 글을 참고) 자기들도 연발 소총을 구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리가 만들었던 레밍턴-리 소총을 보고 감명을 받았던 영국군은 당시 여러 초기 볼트액션 소총과 함께 영국군의 입맞에 맞게 개량된 리의 소총을 시험해보는데 결국 리가 만든 탄창, 리어록킹 (rear-locking) 형태의 노리쇠와 윌리엄 멧포드 (William Ellis Metford) 가 개발한 다각형 멧포드-라이플링 (Metford-rifling) 이 적용된 총신을 합쳐서 리-멧포드 소총을 개발해내게 된다.

리어록킹 노리쇠 덕에 노리쇠 손잡이가 방아쇠와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할수 있어 더 빠른 조작을 가능하게 되었고 다각형 라이플링 덕에 탄매가 덜 쌓이는 등 기술적으로 대단히 발전한 총기였지만 원래 총에 사용되기로 했던 무연 화약 (코르다이트) 의 개발이 느려지는 바람에 흑색 화약을 사용해야 했는데 몇십년씩 육군, 해군, 총기 개발자들이 투닥투닥 해가면서 간신히 리멧포드를 만들어놓고 보니 얼마 되지 않아 프랑스가 세계 최초의 군용 무연 화약 소총인 라벨 1866 M97 을 가지고 나와버렸다.

왼쪽이 Mk. II 리멧포드고 오른쪽이 MLE Mk. I 리엔필드인데 거의 똑같은 생김새를 가진 것을 볼수 있다.

기병용 리엔필드 카빈 (LEC).

가늠쇠가 변경되고 식별 디스크가 사라지고 탄창이 8발 싱글스택에서 10발 더블스택으로 늘어나는 등 자잘한 개량을 거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총의 큰 단점이었던 흑색 화약을 쓰던 탄을 무연 화약으로 갈려고 보니 문제가 생겼다. 멧포드-라이플링은 흑색 화약을 쓸땐 총열에 쌓이는 찌꺼기를 줄여주고 수명을 늘려주는 훌륭한 디자인이었지만 부식성이 강한 새 무연 화약 앞에선 손쉽게 상해버렸고 이를 개량하여 엔필드-라이플링 (깊은 그루브가 생김) 이라는 새로운 디자인이 적용되야 했다.

이 새로운 라이플링 말고는 별다른 개량점이 없었지만 (새로운 탄약에 맞게 가늠자/쇠가 변경되었다) '멧포드' 디자인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았으니 새로운 엔필드-라이플링을 고안한 엔필드 조병창의 이름을 따서 탄생한 총이... 바로 리-엔필드다!

보어 전쟁에 참전한 캐나다군 (제 2 RCRI 소속) 해리 더갈 블랙 일병 (Private Harry Dougall Black).

이렇게 리엔필드는 .303 calibre, Rifle, Magazine, Lee–Enfield (MLE; 부를땐 '에밀리' 라고 부르는 듯) 라는 이름으로 1895년에 영국군에 도입되고 이듬해엔 카빈 버전인 Lee–Enfield Cavalry Carbine Mk. I 도 등장한다. 2차 세계대전에 유행했던 카빈 소총들과는 다르게 이건 진짜 기병이 쓰려고 만들어진 소총이다.

리엔필드가 처음 제대로 된 실전을 맞이한것은 남아프리카에서 일어났던 2차 보어전쟁이었는데 영국군은 전열을 갖춰서 공격하던 구시대적인 전술, 한심한 지휘관, 거기에 품질이 들쭉날쭉했던 초기형 리엔필드/리멧포드 소총들 때문에 7mm 무연 화약 마우저 M1895 로 무장했던 보어 게릴라군에게 크게 혼쭐이 난다.

영국군은 간신히 승리를 거머쥐긴 했지만 남아프리카에서 한 고생 때문에 뭉툭한 탄두를 가졌던 303 브리티시 탄과 리엔필드를 아예 전부 퇴역시키고 더 소구경의 탄환과 마우저 액션을 쓰는 신형 패턴 1913 (P13) 엔필드 소총을 만들어 채택하기 직전까지 가지만... 때마침 1차 세계대전이 터져 버린다.

보어인 민병대가 노획한 리엔필드 소총들을 들고 있다 (왼쪽). 간신히 빨간 군복에선 탈피했지만 탄입대가 흰색이었던 영국군은 보어 게릴라한테 쉬운 표적이었다고 (오른쪽 2 사진들).

패턴 1913, 엔필드 소총.

총신 쪽을 보면 확실히 우리가 아는 No. 1 Mk. III 과는 다르게 생긴 초기 엔필드들.


SMLE - 발음은 "스멜리"

P1913 엔필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뒤로 돌아가 제 2차 보어 전쟁 이후 리엔필드에 가해진 개량에 대해 말해보자. 보어 전쟁이 끝난 영국군은 리엔필드를 더 짧게 만들고 무게를 가볍게 하여 1904년 Short Magazine Lee-Enfield Mk. I 을 만드는데 이게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SMLE 소총이다. 총열은 처음 MLE 의 1,000 mm 가 넘는 길이에서 640 mm 로 줄어들었고 스트리퍼 클립 (정확히는 '차져') 가이드 같은 마우저 소총의 특징들 몇개를 모방하는 개량이 거쳐졌다 (이 전에는 한발씩 넣거나 탄창을 빼서 재장전 하거나 해야 했다).

리엔필드의 개량은 계속되어 1907년에는 가장 잘 알려진 두개의 리엔필드 모델 중 하나인 SMLE Mk. III 버전이 등장하게 되는데 Mk. I 의 탄창과 스트리퍼 클립 가이드, 가늠자 등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생산을 좀더 간략하게 만든 버전이었다. 영국군이 이미 가지고 있던 MLE, SMLE Mk. I 들은 Mk. III 이 도입됨과 동시에 Mk. III 의 특징들을 가지게 업그레이드 되었는데 이들은 Mk. IV 라는 이름을 받았었다고 한다.

1916년 생산되었다고 하는 No. 1 Mk. III

초기형 Mk. III 과 다른 초기 엔필드 들에는 여러가지 재밌는 특징들이 있는데 그 중 두개만 이야기 하자면 여러명의 병사들이 곡사 (!!) 로 사격을 할수 있게 해주는 곡사 조준기와 (valley sight) 10발들이 탄창때문에 병사들이 총알을 너무 헤프게 쓸까봐 달려 있던 탄창 차단 (cut-off) 플레이트다.

연발로 사격할수 있는 총알이 너무 많으면 병사들이 총알을 낭비할수 있으니 '적과 멀리 떨어져 있을땐 이 컷오프 플레이트로 탄창에 들어있는 총알을 못 쓰게 막아놓고 단발 소총처럼 사격을 하다가 적이 가까워지면 플레이트를 열고 연발 사격을 하면 되겠구나!' 하고 달아놓은 이상한 물건이었는데, 18세기 말 영국군의 보병 전술은 병사 개개인이 내키는데로 사격을 하는게 아니라 전열을 맞춰 적을 기다리다 장교의 명령이 떨어지면 그제서야 발사하는 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었기에 장착된 물건이었다.

차단 플레이트 (왼쪽) 과 곡사 조준기 (오른쪽)

Mk. III 부터 '소드 총검' 이라고 불리는 굉장히 긴 총검이 지급되기 시작했는데 아마 총열이 짧아진 만큼 혹시나 나폴레옹 전쟁 때 처럼 총검으로 기병을 물리쳐야 할때 불편이 없도록 길게 만든게 아닌가 싶다. 이 소드 총검들은 1차 세계대전 동안 쓸때 없이 불편하다는 지적에 따라 단검형으로 얼마 가지 않아 변경되었다. 소드 버전을 지급 받은 병사들은 그냥 야매로 짧게 만들어서 썼다고 하는데 긴것도 나름대로 멋지다.

Mk. III 는 또 스핏쳐 모양의 탄두 (뾰족한) 을 사용하고 총알의 장약을 변경하여 더 빨라진 Mk. VII 303 브리티시 탄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제법 업그레이드가 된 리엔필드는 마우저의 7mm 탄을 베껴서 만들어진 .276 엔필드 탄을 사용하고 마우저 액션을 답습한 P13 엔필드와 비교해서 큰 단점이 없어지게 되었고 앞서 언급하였듯이 1차 세계대전까지 터져 버리자 완전히 새로운 탄약을 도입하여 보급계를 복잡하게 할 여유가 없던 영국군은 엔필드 소총을 포기하고 리엔필드 생산에 집중하게 된다.

여담으로 미국에 설치되어 있던 P13 엔필드 생산 장비를 가지고 .303 탄과 .30-06 탄을 쓰는 P14 와 M1917 엔필드 소총들이 만들어져 영국의 보조 제식 무기와 미국의 사실상 1차 세계대전 제식 총기로 사용된다.

1915년 1차 세계대전이 심화되어가고 전례 없던 스케일의 전쟁에 더 많은 수의 소총을 더 빨리 생산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영국군은 탄창 차단기를 없애고 가늠자 조절기능 삭제, 콕킹 피스 간략화 등의 개량을 거친 Mk. III* 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후에 No. 4 Mk. I 이 등장한 후에도 적지 않은 Mk. III* 가 계속해서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태평양 등에서 사용되었고 인도와 호주군은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 그 후에도 계속해서 Mk. III* 를 생산하여 제식 소총으로 사용했다.

1차 세계대전 Mk. III 을 사용하는 캐나다군. 캐나다는 처음엔 로스 소총이라는 303 탄을 사용하는 토종 소총을 들고 전쟁에 참여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영국제 리엔필드로 제식 무기를 바꾸게 된다.

호주군은 한국전때 까지 No. 1 Mk. III 을 사용했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될때 영국엔 제대로 된 저격수 라는 병과가 없었는데 독일이 적극적으로 광학 스코프가 달린 게베어 98 을 이용해서 저격을 하기 시작하자 영국도 새로 저격 교육 시설을 건설하고 1915-16 년 부터는 저격수를 직접 운용하기 시작했다. 스코틀랜드의 사냥꾼들이 쓰던 길리슈트가 처음 사용된것도 이 무렵. 여하튼 영국군은 이 새로운 저격수들에게 민수용으로 구할수 있던 스코프를 마구잡이로 명중률이 좋은 일반 리엔필드 소총들에 결합하여 지급하였는데 스코프의 종류와 스코프 마운트 방식이 굉장히 다양하다고 한다.

대부분의 경우엔 스코프는 스트리퍼 클립 장전을 방해하지 않게 왼쪽으로 (off-axis) 기울어져 설치가 되었다.

리엔필드를 쏘고 있는 여왕 (왼쪽). 처칠 (중앙). 병사가 제대로 조준을 하고 있나 확인중인 조교 (오른쪽).


No. 4 소총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영국은 전쟁때 배운 교훈들을 토대로 리엔필드를 향상시키는 작업에 들어간다. 단조 (forging) 와 절삭 (machining) 작업이 많이 필요했던 총몸 부분을 좀더 만들기 쉽게 개량하였으며 가늠자를 P13 에서 쓰였던것과 같은 에퍼쳐 형식으로 바뀌고 위치도 훨씬 뒤로 옮겨졌다. 이로써 가늠자와 가늠쇠 사이의 길이가 길어져서 더 정확한 조준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렇게 개량된 소총에는 Mk. V 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IV 는 어떻게 된걸까) 이들은 그렇게 많이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2만정) 지금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보다 더 희귀한 Mk. VI 도 천정 가량이 생산되었는데 이는 가늠자를 좀더 간략화 시켰고 노즈캡도 마찬가지로 좀더 짧아졌다. 또한 이상하리 만큼 얇던 기존의 No. 1 의 바렐을 헤비 바렐으로 대체하였는데 이들은 No. 4 Mk. I 과 성능 면에선 큰 차이가 없다. 사실상 No. 4 채용 직전 실험용 소총이라고 볼수 있겠다.

위 사진의 총이 Mk. V. No. 1 Mk. III 의 노즈캡과 No. 4 의 가늠자를 섞어놓은것 같은 신기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리엔필드 진화의 '미싱링크' 정도로 보면 될듯.

No. 4 의 에퍼쳐 사이트. 왼쪽의 배틀사이트는 300야드에 맞게 만들어져있고 오른쪽에서 처럼 더 장거리 조준을 할때 더 정밀한 조절도 가능하다. 위 Mk. V 와 가늠자를 보면 양옆으로 있는 보호용 귀 (protective wing) 가 없어진 걸 알수 있다.

또한 1926년엔 이전까지 "SMLE Mk. III" 이라고 부르던 소총의 이름을 정식으로 No. 1 소총 Mk. III 로 변경하였으며 새로운 병사들을 훈련할때 쓰기 위해 22구경을 쓰는 리엔필드 개조형을 여러가지 만들어서 No. 2 소총이라고 이름붙인다. 1차 세계대전때 또 많이 생산해서 썼던 P14 소총엔 No. 3 소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다음 세대 리엔필드에 왜 No. 4 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이러면 이해가 된다.

1930년대에는 No. 1 Mk. V 의 특징들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고 노즈캡을 단순화시킨 No. 4 Mk. I 이 등장하는데 초반에 2,500 정을 만들어서 실험하던 영국군은 1941년 (덩케르크 이후다) 정식으로 제식 총기를 No. 4 으로 바꾼다. 이전 버전들 보다 성능면에서 더 뛰어난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대량 생산이 쉬웠기 때문에 유럽 본토에 소화기들 대부분을 놓고와 스텐건을 간략화 시켜서 무작정 찍어내고 브렌건도 더 만들기가 쉬운 기관총으로 대체하려고 했던 영국군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영국은 미국과 캐나다에도 리엔필드 No.4 의 대량 생산을 발주했었는데 캐나다의 롱브랜치 (Long Branch) 조병창과 미국의 새비지 (Savage) 는 탄창멈치 같은 자잘한 부분들이 더 간략화된 No. 4 Mk. I* 를 생산한다.

이렇게 간략화된 부품들엔 총열도 포함이 되어 있는데 총열의 그루브 (홈) 이 6개 부터 시작해서 5개, 4개, 2개 까지 여러가지 종류가 생산되었다. 명중률과 사정거리, 내구도는 버전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듯. 그래도 가치는 그루브가 더 많은게 더 높게 평가되는 모양이다.

총기 레인지에서 만난 다른 아재들한테 들은 이야기지만 캐나다제 리엔필드는 다른 것 보다 품질이 좋다더라. 미국제 (Savage) 리엔필드는 '쇠 품질이 안좋다' 라면서 불평하던데 카더라 정보통이라 적당히 가려들어야겠다. 롱브랜치 리엔필드엔 상부 핸드가드에 특유의 미끄럼 방지 문양이 새겨져 있다.

1차 세계대전때 거의 마구잡이로 No. 1 Mk. III 소총들을 민수용 스코프와 결합시켜서 전선으로 보냈던것과는 대조되게 No. 4 를 개발하던 시점의 영국군은 이미 이 새로운 리엔필드 소총의 저격용 버전이 필요하다는걸 인지하고 있었는데 처음에 2,500 정 만들어졌던 '프로토타입' 이라고 할수 있는 소총들은 대부분 저격용인 No. 4 Mk. I (T) 로 개조되었다. 저격용 리엔필드 제작을 맡았던 회사는 지금도 유명한 굉장히 비싼 커스텀 총기 제작사 홀란드&홀란드 (Holland & Holland) 였는데 평범한 No. 4 중에서 특히 잘 맞는 소총이 있으면 그게 H&H 로 보내져서 완전히 분해되어 다시 조립되었다.

참고로 여기 쓰인 스코프는 원래는 브렌건에서 쓸 목적으로 개발되던 물건이다.

사진 모두 한국전 당시 캐나다 저격수들의 사진이다. No. 4 Mk. I (T)

오른쪽은 독일군이 노획한 저격용 리엔필드.


"매드 미니트"

다른 자잘한 리엔필드의 파생형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리엔필드의 가장 큰 특징이라 생각되는 빠른 발사 속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잘 훈련된 영국군 병사들은 M1 개런드 보다 더 빨리 리엔필드를 쏠수 있었다-" 라는 좀 믿기 힘든 소문도 돌아다니는데 1차 세계대전 초반 굉장히 잘 훈련됐었던 영국 육군 병사들이라면 실제로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과장이 (좀 많이) 섞인 소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과장을 감안하더라도 리엔필드는 다른 방식 (마우저 소총, 모신나강, 심지어 K31 같은 스트레이트 풀 소총들과 비교해도) 확실히 발사속도가 빠른 총이었다.

이런 빠른 발사속도는 제임스 리가 처음 총기 디자인을 할때 부터 방아쇠와 노리쇠 손잡이를 가까이 둬서 그런것도 있지만 콕킹 되는게 노리쇠를 들어올릴때가 아니라 밀어넣으면서 내릴때 되는 콕-온-클로우즈 (cock-on-close) 를 쓴게 큰 영향을 끼쳤다. 사실상 들어가는 힘은 같지만 (스프링 압축) 밀때 힘을 넣는게 더 쉬워서 사수가 상대적으로 덜 '힘들게' 할수 있다고 한다.

 

발사 속도에서는 다른 볼트액션 소총들에 비해 우위에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정확도 면에선 리엔필드는 디자인적으로 단점이 많은 총이었다. 좋은 정확도를 위해 총이 필요한것들을 생각해보자. 흔들림이 없고 튼튼한 원피스 (one piece) 몸체, 프리플로우팅이 되어 있는 두꺼운 총신, 좋은 트리거, 규격에 변화가 적은 계속해서 일정하게 결합되는 약실 같은것들을 떠올릴수 있겠다.

리엔필드는 위에 언급한 요소들이 전부 (!) 없었는데 몸체는 나무 두 조각을 손잡이에서 결합하는 투피스 형식이었고 특이하게도 총신에 스프링을 통해 장력을 가하고 있었으며 (이래서 민간 사냥꾼 같은 사람들이 무게 아끼겠다고 나무 핸드가드를 없앤 소총들은 정확도가 더 떨어진다) 리어 락킹 돌기들은 오랫동안 사용하면서 약실을 크기를 조금씩 늘려서 명중률을 떨어트렸다. 여기에 전쟁 기간동안 생산된 소총들은 이것저것 규격들이 "넉넉하게" 잡혀있었고 일반 병사용으로 지급되었던 .303 탄도 그다지 어떻게 보든 정밀 사격에 유리한 소총은 아니었다.

캐나다 저격수들이 1차 세계대전 다른 병사들은 못 없애서 안달이던 로스 소총을 더 선호했던것도 이 이유고 1, 2차 세계대전 동안 P14 엔필드 소총 (작동 구조는 그냥 게베어 98 카피 수준이다) 이 계속 저격용으로 사용된것도 리엔필드의 고질적인 명중률 문제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영국과 캐나다군 저격수들이 P14 저격총을 사용중이다.

1993년 출판된 Ian Skennerton 의 "리엔필드" 라는 책에는 "No. 4 Mk. I (T) 소총들은 200 야드에서 5인치 지름의 원을 7번 쏴서 7번 맞출수 있어야 하고 400 야드에서 10인치 지름의 원을 7번 쏴서 6번 맞출수 있어야 한다" 라고 설명되어 있는데 (더 자세한 내용은 이 뉴질랜드 리엔필드 매니아의 블로그에 영어로 굉장히 잘 설명이 되어있다) 즉 저격용 리엔필드가 대략 2.5 MOA 정도의 최저 명중률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물론 그리 길지 않은 교전 거리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하기엔 리엔필드는 무리가 없었지만 지금까지 장거리 경기용으로 사용되는 K31 이나 Kar98k 같은 동시대 다른 소총들과 비교하면 좀 부족해보이는게 사실. 여기에 M1 개런드나 SVT-40 같은 반자동 군용 소총들도 등장하면서 리엔필드의 빠른 발사 속도도 그다지 큰 장점이 아니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후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영국은 계속해서 리엔필드를 개량하였는데 1949년엔 No. 4 Mk. 2 (1944년 부터는 로마식 숫자 표기를 아라비아 숫자로 바꿨다) 가 등장한다. Mk. 2 는 Mk. I 에서는 방아쇠울의 일부분이던 방아쇠가 리시버에 직접적으로 붙게 변경되었는데 온도와 습도에 따라서 나무 개머리판이 팽창이나 수축하면서 방아쇠울을 건드리면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던 것을 해결한 것이었다. 이 외에 전쟁 기간동안 생산을 간편하게 하기 위해서 생략되거나 한 부품들이 다시 추가되었고 부품의 품질 자체도 향상되었다.

이미 생산된 Mk. 1 소총들은 Mk. 2 사양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는데 그냥 Mk. 1 들은 Mk. 2/2 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Mk. 1* 소총들은 Mk. 2/3 이라고 바뀐 제식명을 부여받았다. 1954년 7.62mm 나토탄을 쓰는 L1 (FN FAL 의 영국 버전) 이 정식으로 채택되기 전까지 영국군의 제식으로 사용되던 리엔필드가 바로 Mk. 2 버전.

위가 Mk. I, 밑이 Mk. 2.

전쟁 말기에 영국은 Mk. 2 와는 별개로 또 다른 소총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정글 카빈' 이라는 이름으로 흔히 알려진 No. 5 Mk. I 소총이다.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군과 싸우던 영연방군 병사들은 길고 거추장스러운 기존 리엔필드 소총이 정글 환경에서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보고를 하였는데 No. 5 는 이에 따라 등장한 더 많이 단축된 카빈 버전 소총이라고 할수 있겠다.

독특한 소염기 (flash hider) 가 눈에 띈다.

총신 길이는 기존의 640mm 에서 580mm 로 줄어들었고 총몸도 "라이트닝 컷" 이라고 불리는 작업을 통해서 필요 없는 부분을 최대한 깎아내 무게를 0.9 kg 가량 더 줄였다. 또한 No. 1 과 No. 4 소총에 있던 총신의 코마개가 사라지면서 프리 플로우팅 상태의 총신을 가지게 되었고 개머리판 끝부분에 철로 된 플레이트가 있던 자리에는 고무로 만든 패드가 붙어졌는데 .303 브리티시탄을 짧고 가벼운 소총으로 발사할때 생기는 반동을 흡수하려고 붙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용자가 어깨에 붙이는 면적이 오히려 No. 4 보다 더 줄어들어서 실질적으로 느끼는 반동은 더 쌔졌다고. 가늠자는 No. 4 와 같은 시스템의 것이 사용되었는데 최대 표시 거리가 800 야드로 조금 줄었다.

1945년 노르웨이 침공을 시작한 영국의 제 1 공수부대 연대에 지급되기도 하였고 2차 세계대전 후 말레이 분쟁에서 사용되었던 No. 5 소총은 들고다니기 편하게 짧고 가볍다고 호평을 들었다고 하는데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더 이상 리엔필드를 사용하기엔 시대가 너무 바뀌어 버려 크게 사용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No. 4 Mk. 2 소총과 같은 사양의 업그레이드를 적용한 No. 5 Mk. 2 소총도 디자인이 제출되기는 하였으나 생산은 진행되지 않은 모양.

노르웨이의 No. 5.

이스라엘 전쟁터에서 발굴된 No. 5.

No. 5 가 널리 사용되지 않은것에는 '흔들리는 영점 (wandering zero)' 라고 불리는 No. 5 특유의 문제점도 있는데 정확히 이유가 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말 그대로 총이 영점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문제가 민간 사격 애호가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

깎아낸 총몸이 총알 압력에 모양이 바뀐건가, 총신이 프리 플로우팅이 되면서 명중률이 떨어지는건가 (앞서 언급했듯이 리엔필드는 어느정도 장력을 받을때 제일 잘 쏴지게 개발되었다), 소염기가 문제인건가 여러 이론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제대로 확인된건 하나도 없는 듯 하다. 상당한 '케바케' 인것 같은데 일단 총이 공장을 떠날때엔 No. 4 와 같은 동일한 조건의 명중률 검사를 거쳤기 때문에 명중률이 못쓸 정도로 크게 떨어진다는건 신빙성이 떨어진다. 전후 민간 건스미스/수집가들이 No. 4 를 구해다가 자기가 직접 가짜 No. 5 를 만든 경우도 많아서 주의가 필요하다.

참고로 '정글 카빈' 이라는 이름은 미국으로 중고 No. 5 를 잔뜩 수입했던 총기 판매업자가 광고용으로 붙였던 이름이 유명해진 것.

가장 왼쪽 사진은 호주 조병창에서 실험용으로 만든 20발들이 리엔필드 No. 6 카빈.

No. 1 Mk. III 을 2차 세계대전과 그 후 까지도 사용하던 인도와 호주는 영국/캐나다의 No. 5 소총 개발자들과는 또 독자적으로 (도움을 받기는 했다) No. 1 기반의 카빈 소총을 이맘때 개발하고 있었는데 호주에서 개발된 버전이 No. 6 이란 이름을 부여받고 '채택' 되긴 했었다고 한다. 일본과의 전쟁이 더 길어지기 전에 전쟁이 끝나면서 대량생산 되지는 않은듯.

영국과 캐나다에서 1944년 훈련용으로 만들어진 22구경 리엔필드에는 No. 7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MLE 부터 No. 5 까지!


지금은?

1954년 영국제 FN FAL 인 L1A1 에 의해 제식소총 자리를 물려준 다음 리엔필드는 비상 물자로 저장되었는데 60년대에 7.62 나토탄으로 이 소총들을 개조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제대로 시험을 하기도 전에 L8 이라는 제식명을 부여시키기도 했으나 (Mk. 2, 2/2, 2/3, 1, 1* 들이 각각 L8A1 에서 A5 까지 다른 이름을 받았다) 막상 해보니 그다지 성능이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대량으로 L8 소총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60년대 말에는 7.62 로 개조된 리엔필드를 민수 시장에 "엔필드 엔보이" 같은 다른 이름을 붙인 후 영국군이 직접 팔았다는 모양.

영국군은 그래도 이때 배웠던것들을 토대삼아 No. 4 Mk. 1 (T) 소총, 즉 저격용 리엔필드 소총들을 L42A1 저격총을 만들었는데 흥미롭게도 Mk. 2 가 아닌 2차 세계대전 Mk. 1 기반의 저격총들을 가지고 만들어져서 Mk. 2 에서 해결되었던 방아쇠울-방아쇠 문제 같은게 그대로 남아있었다.

리엔필드의 '최종 진화형' L42A1. 인포서 라는 이름으로 경찰용으로도 만들어졌다.

1970년대 정식으로 채용되어 포클랜드 전쟁과 걸프 전쟁을 겪고 90년대 까지 사용이 되었던 L42A1 은 고품질의 새로운 바렐등 할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업그레이드를 한 리엔필드였으나 몇몇 부품들은 2차 세계대전때 쓰던걸 그대로 재활용하고 있었던 늙은 소총이었고 결국 애큐러시 인터네셔널의 L96 에 의해 대체된다. L39A1 이라는 이름의 경기용 버전도 만들어졌다.

이샤포어 2A1 (왼쪽) 과 오스트레일리아 인터네셔널 암스 (AIA) 가 만든 리프로덕션 소총들 (오른쪽).

이와는 전혀 별개로 다른 영연방 국가들도 리엔필드의 개발과 사용을 전쟁 후에도 계속했는데 인도같은 경우엔 1962년 있었던 중국과의 전쟁 후에 No. 1 Mk. III 를 기반으로 완전히 다시 만들어진 2A1 소총의 생산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다양한 리엔필드 소총들과 함께 사용중이다. 또 2000년대 초에 호주의 AIA 라는 이름의 민수용 회사가 개조된 M14 탄창을 사용하는 No. 4 Mk. 2 기반 소총을 출시했는데 쇠의 품질도 별로 안 좋고 전체적인 제품의 마감도 별로 안 좋아 리엔필드 매니아들은 싫어하는듯. AK 탄창을 사용하는 7.62x39mm 버전도 출시되었다는건 좀 흥미로운 점.

AIA 는 자기들의 새로운 리엔필드 소총을 캐나다군에게 판매하고 싶어했는데 21세기에 군용 리엔필드 소총이 무슨 소리냐고 할수도 있겠지만 캐나다의 북극 지방을 순찰하는 캐나다 레인저들 (예비군 - 민병대 정도의 군사 집단) 은 이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잘 작동하는 볼트액션의 리엔필드 소총을 몇년 전까지만 해도 제식 무기로 사용하고 있었다.

탄약도 구하기 힘들고 더 이상 만들어진지 거의 100년이 다 되가는 소총을 부품을 돌려가면서 쓰기 싫었던 캐나다군은 AIA 에겐 불행히도 이 호주제 리엔필드는 제대로 고려하지도 않았고 (성능 미달) 체코 조병창의 CZ 557, 핀란드 티카의 T3, 그리고 미국 루거의 루거 스카웃을 고려하다가 특별히 만들어진 T3 를 C19 라는 이름으로 채택했다. AIA 는 2011년엔가 파산 신청을 하고 조용히 사라진듯.


지금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군용으로는 사용되지 않고 있는 리엔필드지만 미국, 캐나다, 영국 등 전세계 민수 시장에서 리엔필드의 인기는 여전하다. 탄약도 구하기가 어렵고 부품도 수명이 다 해 가는데다가 원래부터 명중률이 그리 좋은 총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직접 탄약을 만들고, 직접 총을 개조해가면서 사용하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이 글 자체도 처음에 구상했던것 보다 훨씬 길게 되었는데 여기서 언급되지 않은 실험용 리엔필드 개조 자동 소총들, 경기관총들, 총류탄 발사기, 45구경 탄을 사용하는 소음 소총 같은것들은 다른 글에서 또 다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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