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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자료

생태적 사유

by Ddak daddy 2018. 12. 21.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의 생태적 사유*

 

김 철 수

(경북대학교)

 

Kim, Chul-Soo. 2008. Samuel Taylor Coleridge's Ecological Thought. The Journal of Modern British & American Language & Literature. 26.2, 125-148. This paper seeks to assess the significance of ecological thought in Coleridge's intellectual development, and to examine the relevance of this way of thinking to our understanding of his poetry and prose. An ecological reading of Coleridge will enable certain aspects of his conception of poetic form and his actual poetic practice to be understood more adequately than previous critical perspectives have allowed. In particular, the synergistic relationship between an individual organism and its habitat will offers a fresh and suggestive model for analyzing the role of organicism in Coleridge's poetic thought.

Coleridge's holistic conception of langage represents a metaphorical extension of the cyclical view of natural process that was expressed in the notion of the economy of nature. For Coleridge,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language is deeply conditioned by its relation to the natural environment. "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 most fully embodies the poetic praxis envisioned by the organic conception of poetic langage; its eclectic use of archaic diction serves to enhance and preserve the lexical diversity of the English language throughout the broad range of its social, geographic, and historical variation. Coleridge's poetic energies were devoted to the development of a distinctive ecolect that might express the proper role of humankind in the economy of nature.

 

Key words: Samuel Taylor Coleridge, ecological thought, green language, ecolect, ecotone, 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

주 제 어: 사뮤엘 테일러 콜리지, 생태적 사유, 초록언어, 생태언어, 경계지역, 옛 뱃사람의 노래

 

 

1. 서 론

 

오늘날 식자로서 환경위기를 외면할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요즈음 우리는 하루 세 끼 식사를 안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집 근처로 산책을 나가보아도 매연과 소음공해로 가슴이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도시 하늘에서 뭉게구름이 사라진 지 오래고, 여름이 되어도 좀처럼 제비를 볼 수 없게 된 지금, 우리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종래의 관행을 되풀이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환경위기는 인간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자연을 마음대로 이용해도 된다는 오만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의 오만과 끝없는 욕망, 그로부터 비롯된 성장 발전의 신화는 오늘날 신자유주의란 탈을 쓰고 전 세계 민중들의 삶을 질곡으로 몰아넣고 있다. 인간의 행복과 미래와 참된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 문학의 주요 임무일진대, 문학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현금의 환경위기, 생태계 위기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욱이 문학은 희망과 행복과 밝은 미래의 표상인 녹색을 지향하기에 환경위기, 생태계 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일은 문학의 본질과도 합치된다. 오늘날 문학의 입지, 특히 시문학의 입지가 많이 약화된 것도 사실은 현대 물질문명의 반 녹색적 성격에 기인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생태계의 보전을 통해 인류를 죽음의 문명으로부터 구원하는 일은 문학의 입지를 드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위기의식이 점차 확산되면서 1990년대로 접어들자 영미학계에서는 자연 친화의 생태적 관점에서 문학작품을 조망하려는 경향이 대두하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조나단 베잇(Jonathan Bate)낭만적 생태학: 워즈워스와 환경적 전통(Romantic Ecology: Wordsworth and the Environmental Tradition: 1991)이란 저술을 통해 앨런 뤼(Alan Lui)의 자연관을 비판하면서 신역사주의 문학연구 방법과 방향성을 문제 삼기 시작한다. 뤼에게 자연이란 인간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자의적으로 구성한 인간중심적 구성물”(anthropomorphic construct)이며, 의식의 범위를 벗어난 곳에 자연은 존재하지 않는다”(There is no nature). 이러한 뤼의 입장에 대해 베잇은 국제사회의 정치적 지도가 다시 그려지는 상황에서 문학비평도 새로운 방식으로 스스로를 정치화할 시기가 되었다(4), 생태계 보전과 환경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생태비평의 정치화가 절실히 요구될 뿐만 아니라 문학비평과 문학연구의 패러다임 또한 획기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며 이렇게 주장한다.

 

1960년대가 개인의 상상력을 특권화 함으로써 암암리에 부르주아적 편향성을 내비치는 관념론적 낭만주의 읽기를 제공했다면, 1980년대는 낭만주의에 대한 후기 알튀세르의 막시스트적 비판을 제공하였다. 인간의 마음은 자연보다 우월하다는 전제로부터 전자가 출발했다면, 후자는 인간사회의 질서가 자연계의 질서보다 더 중요하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하였다. 현재 초록정치학에 의해 문제시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가정들이다.

학텍스트가 고전적이 되려면 텍스트가 생산된 시대와 후대 모두에게 발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따라서 고전적 텍스트에 대한 최상의 읽기는 역사적으로도 당대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읽기이다. 워즈워스에 대한 녹색읽기는 최상의 예가 될 수 있다. 생태적 관점을 역사화 할 때 대지에 대한 존경심을 내면화하는 동시에 경제성장과 물질적 생산이 인간사회의 전부이고 최종목표라는 고루한 생각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낭만적 전통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며, 그래서 녹색읽기는 강력한 역사적 힘을 발휘한다. 그것은 다가올 시대의 가장 절박한 정치적 문제들, 이를테면 온실효과와 오존층의 감소, 열대우림의 파괴, 산성비, 바다오염, 그리고, 보다 국지적으로는, 즐거움 넘치는 영국 초원의 콘크리트화에 낭만주의를 연루시킨다는 점에서 우리시대에도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 (Romantic Ecology 9)

 

생태계란 특정의 물리적 환경 내에서 인간을 포함한 여러 생명체들이 수평적으로 연결된 유기적 통일체를 말한다. 그리고 인간의 생태의식과 생명윤리는 생명체의 자아실현(self-realization)과 생명중심적 평등(biocentric equality)이라는 심층생태학’(deep ecology)의 핵심 개념들로 요약될 수 있다(Deval‎l 66-67). 배리 커머너(Barry Commoner)는 생태계의 주요 원리로 1) 유기적 전체성 (“모든 자연물은 다른 어떤 자연물과 연결되어 있다”), 2) 생태계의 순환 (“모든 피조물은 어디론가 가야만 한다”), 3) 자연 자체의 치유력 (“자연이 가장 잘 안다”), 4) 자연훼손에 대한 보복력 (“자연계에 공짜 점심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을 꼽는다(The Closing Circle 2; 최동오, 도로씨 워즈워스의 일기162 n). 같은 맥락에서 프리조프 카프라(Fritjof Cápra)생태계란 식물, 동물, 미생물로 이루어진 유지 가능한 공동체라고 규정하면서, 인간이 생태학적 소양(ecoliterate)을 갖춘다는 말은 생태계의 조직원리를 이해하고 유지 가능한”(sustainable) 생명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해 그 원리를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생태계의 조직원리가 교육, 경영, 정치의 기본 원리가 되어 교육공동체, 기업공동체, 정치공동체 등 여러 공동체들을 소생시킬 수 있어야 한다면서, 생태계의 조직 원리로 1)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 2) ‘자원의 순환적 흐름’(circulation of nature's resources), 3) ‘협동과 협력’(partner ship), 4) ‘유연성’(flexibility), 5) ‘다양성’(diversity),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결과로서의 6) ‘유지가능성’(sustainability)을 들고 있다. 생태계에 서식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자신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유지하며 경쟁하는 가운데 서로를 받혀주기도 하기에, 인간이 다른 생명체들과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겸손과 겸양’(humility)이 내면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생명의 그물390-97).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논자는 워즈워스와 더불어 영국 낭만시의 대부 라 할 수 있는 콜리지를 대상으로 그의 생태사상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그의 시에는 전일적 세계관’(holistic world view)에 바탕을 둔 생태의식’(ecological consciousness)생명윤리’(bioethics)가 내면화되어 있다는 전제 하에 논자는 베잇(Jonathan Bate), 크뢰버(Karl Kroeber), 맥쿠식(James McKusick)으로 이어지는 영미 생태비평가들의 낭만기 문학 연구에 기대어, 그가 펼쳐 보이는 생태계의 한 단면을 편력해 보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논자는 우선 콜리지 사상의 발전 단계에서 생태적 사유가 차지하는 비중을 살핀 뒤에, 그러한 사고모형이 그의 시와 산문을 이해하는 데 적절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생태비평의 관점에서 옛 뱃사람의 노래(“The Rime of the Ancyent Marinere”)를 읽어 볼 생각이다. 맥쿠식(James C. MacKusick)도 지적한 바 있듯이, 생태비평의 관점에서 콜리지 문학에 접근하려 할 때 가장 중요시되어야 할 점은 그의 시적 언어가 지역 환경과의 인식적 정서적 유대 하에서 출현한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일이다(Green Writing 35). 이 점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면 시 형식에 대한 콜리지의 생각뿐만 아니라 실재 시작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도 그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콜리지의 시적 사유에서 유기체론’(organicism)이 차지하는 비중과 유기체론의 역할을 검토하는 데에는 생명체와 주거환경 간의 상호의존적 관계라는 생태학적 관계 모형이 새로운 분석모델로 활용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2. 자연계의 질서

 

콜리지는 1772년에 데본셔 지방의 오터리 세인트 매리’(Ottery St. Mary, Devonshire)란 전원마을에서 열 자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나이 아홉 살 되던 해(1781)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얼마 되지 않는 유산을 콜리지의 몫으로 남긴다.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 런던으로 보내진 콜리지는 크라이스트 호스피털’(Christ's Hospital)이란 이름의 초중등학교에 자선학생’(charity boy) 자격으로 다니게 된다. 감수성이 풍부한 이 고아에게 그 학교는 온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냉랭한 장소였으나, 그의 지적 능력이 예사롭지 않음을 곧바로 알아본 선생님들은 그를 희랍어반에 배정한다. (그 당시 초중등사립학교의 희랍어반은 대학진학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학생들을 위해 편성한 우수반이다.) 콜리지의 학교생활에서 특이 주목되는 것은 그의 수학선생이자 쿡 선장(Captain Cook)의 두 번째 항해에 따라나섰던 천문학자 윌리엄 웨일즈(William Wales)가 희멀건 빛을 발하는 빙산과 그 주변을 날아다니는 알바트로스(Albatross) 등 남극지방에서의 탐험이야기로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곤 했다는 사실이다. 탐험이야기는 콜리지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하였고, 그래서 나중에는 옛 뱃사람의 노래의 배경이 된다.

1791년부터 1794년 사이에 케임브리지 대학에 적을 둔 콜리지는 학문연구의 천부적 소질을 인정받지만 학위과정을 모두 이수하기 전에 대학을 그만둔다. 그 당시 그는 이상에 불타는 젊은이답게 학문연구보다는 이상사회 건설의 꿈에 취해있었다. 그래서 펜실바니아의 서스퀴나(Susquehanna) 강 유역에 팬티소크러시’(Pantisocracy)란 이름의 이상적 농민공동체 건설 계획을 세우고 사우디(Robert Southey)와 함께 그 일을 추진한다. 하지만 그 꿈은 기본적으로 실현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기에 계획 추진 과정에서 조만간 흐지부지되어 버린다. 이 공동체는 십여 쌍의 젊은 부부들로 구성될 예정이었기에, 꿈에 부풀어 있을 당시 콜리지는 사라 프리커(Sara Fricker)와 약혼한다. (그녀는 사우디의 약혼녀 매리 프리커(Mary Fricker)의 여동생이다.) 이상적 공동체의 꿈은 무산되었지만 사우디의 적극적인 권유로 1795년에 내키지 않은 결혼을 강행한 콜리지는 신부와 함께 브리스톨 남서쪽 50마일에 위치한 전원마을 네더 스토위’(Nether Stowey)로 내려가 거기에 정착한다.

네더 스토위에서의 생활은 콜리지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하고 또 생산적인 것이었다. 17977, 워즈워스와 도로시가 콜리지의 오두막에서 오 마일 거리에 있는 알폭스덴(Alfoxden)으로 이사 오게 된 것은 콜리지에게도 워즈워스에게도 축복이었다. 둘은 자주 만나 문학과 정치와 사회에 대하여 생각을 주고받는데, 그들의 교감은 17989월에 공동시집 서정민요시집(Lyrical Ballads) 발간으로 첫 결실을 맺는다. 이 시집은 영국 운문사에서 낭만주의’(Romanticism)라는 매우 새롭고도 대담한 문예운동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이 시집의 주요 특질로는 민요시의 부활, 일상어의 사용, 직접 관찰에서 이끌어낸 자연이미저리의 광범위한 사용 등을 들 수 있다. 서정민요시집을 구상할 당시 워즈워스와 콜리지는 역동적 생태계”(dynamic ecosystem)로서의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일에 깊이 몰입되어 있었다.

서정민요시집2(1800) “서문”(Preface)에서 워즈워스는 하층민들의 투박한 삶과 그들의 언어”(language of the low and rustic life)를 선호하는 이유로 그런 조건 속에서 사람들의 열정은 영속적인 아름다운 자연물들과 혼합된다는 점을 들고 있다. 여기서 간과되어서는 안 될 대목은 인간의 열정이 인간과 자연의 통합을 가능케 한다는 생각이다. 통합의 메타포가 본질적으로 생태학적인 이유는 인간의 의식과 언어가 주변 자연물들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계는 인간의 사고와 감정과 언어가 태어나고 또 활동하는 장소이다. 콜리지는 워즈워스의 언어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언어적 형식은 지역적 조건 속에서 구성되기 마련이라는 워즈워스의 견해에 동의한다. 칸트철학을 연구하기 위해 약 일 년 간 독일에 체류하다가 돌아온 직후에(1799) 쓴 글에서 그는 호수지방에서의 이름붙이기는 지역주민들의 정치적 독립심 못지않게 자연현상과의 근접성을 확인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워즈워스처럼 콜리지도 친숙한 장소에 이름붙이는 행위에 매력을 느꼈고, 그래서 그는 호수지역을 배회하면서 그 지역 특유의 지명들을 모아 정리한다(Notebooks, 1:1207). “장소에 이름붙이기”(naming the place)는 언어가 지역풍토와 지역주민들 간의 복합적 상호작용에서 생성되는 것임을 보여주는 명백한 사례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콜리지에게 언어란, 특히 지명의 경우에는, 땅과 그 땅에 사는 사람들 간의 지속적인 대화의 결과이다.

언어의 본질에 대한 콜리지의 통찰은 문학적 자서전(Biographia Literaria: 1817)에서는 유기체론’(organicism)의 맥락에서 개진된다. 그런데 콜리지의 유기체론은 18세기 주요 과학 이론인 유기적 조직체’(organism) 론을 발전시킨 것이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 과학적 논쟁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던 콜리지는 에라스무스 다윈(Erasmus Darwin)의 교훈적인 시 식물원 이야기(The Botanic Garden: 1791)와 의학논문 주노미아, 혹은 유기적 생명체의 법칙(Zoonomia; or, the Laws of Organic Life: 1794-96)을 읽고 자율적이고 순환적이며 자기조절이 가능한 실체로서의 유기적 조직체란 개념에 깊이 매료된다. 이올러스의 수금(“Eolian Harp”)을 보면 1795년에 이미 유기체의 은유가 그의 사변적 범신론”(speculative pantheism)의 개념적 기초로 튼튼히 뿌리내렸음을 알 수 있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명체들이

다양한 형태의 유기적 하프들일 뿐이라면?

광활하고 조형력이 풍부하고,

개체의 혼이자 모든 사물들의 하느님 격인

지성적 산들바람이 스쳐 지나가듯,

사상으로 영그는 하프들일 뿐이라면?

 

And what if all of animated nature

Be but organic Harps diversely fram'd,

That tremble into thought, as o'er them sweeps

Plastic and vast, one intellectual breeze,

At once the Soul of each, and God of all? (lines 44-48)

 

여기에서 유기적”(organic)이란 단어는 과학적 엄밀성에 따른 과학적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모든 생명체는 서로 다른 모습을 취하게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모두가 나름대로 자기조절”(self-regulation)의 내적 과정을 가동시킨다. 그런데 콜리지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유기체의 자율성”(autonomy of organism)이 아니라 외부의 자극”(external stimulus)에 대한 유기체의 역동적 반응”(vital response)이다. 이 구절에서 외부의 자극은 유기체들을 스쳐지나가는 지력이 깃든 산들바람”(intellectual breeze)으로 재현되고 있다. 더욱이 이 구절은 표면적으로는 감각을 갖춘 존재의 본성에 대하여 발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시의 제작과 관련된 시적 창조론이 강하게 암시되고 있다. 한 편의 시가 유기체라면 그것은 잘 짜여진 구조물일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과도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여기에서 주변 환경이란 문학적 담론적 맥락에서 은유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한 편의 시도 다른 생명체들처럼 지역적 토양에 뿌리내리는 존재라는 생각은 시 형식과 관련된 18세기 미학의 정점을 이루는 것으로 옛 뱃사람의 노래에도 넌지시 암시된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유기체론의 미학적 함의를 논의하기 이전에 우선 유기체론의 과학적 계보부터 더듬어 보기로 하자.

18세기 동안에 서구유럽에서는 유기체 하나하나에서 지구전체에 이르기까지 폐쇄체계들의 역동적 작용”(dynamic operation of closed systems)에 대한 지식이 서서히 증대되며, 그에 따라 자연계의 제 현상을 전체론적”(holistic)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경향이 동력을 얻는다. 동물은 자신들의 에너지 자원을 어떤 식으로 공급하고 또 조절하는가? 특히 생물학적 탐구의 진전에 힘입어 이 문제에 대한 이해력이 더욱 더 증대되는데, 1628년에 해부학자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 1578-1657)는 심장이 폐쇄회로 속에서 피를 순환시키기 위해 펌프처럼 작동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주었다. 이 예기치 않은 발견은 18세기 동안 생리학 분야에서 엄청난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생명체 일반에 대한 기존의 관념들이 대폭 수정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고등동식물들은 몸의 각 부분으로 영양소를 공급하는 순환현상의 기초 위에서 활동한다는 사실이 이제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네델란드 출신 해부학자 안톤 반 류웨녹(Anton Van Leeuwenhoek: 1632-1723)은 순환현상에 대한 탐구를 미시적 수준에서 계속해 나간다. 그는 처음으로 적혈구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모세혈관의 기능에 대한 지식을 더욱 더 확장시킨다. 특히 그는 미세동물군(animalcules)의 존재를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데, 물웅덩이처럼 흔해빠진 장소에 미생물들이 들끓는다는 사실은 통상적 인식의 범위 너머에 미지의 세계가 펼쳐져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발광성 미세동물들이 바닷속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쿡 선장의 첫 항해 때 관찰되며, 옛 뱃사람의 노래에서 그 같은 발견은 적도의 밤하늘 아래 망망대해에 어른거리는 이상야릇한 빛들로 문학적 표현에 도달한다.

스웨덴 출신 식물학자 린네(Carolus Linnaeus, 1707-78)는 수분의 증발과 응고와 강우라는 수문학적 순환”(水文學的 循環, hydrological cycle) 현상을 지랫대로 삼아, 지구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을 순환의 그물망으로 그려보았다. 그리고 자연계의 질서("Oeconomy of Nature": 1751)란 논문을 통해 그의 제자 아이작 비벅(Isaac Biberg)은 수문학적 순환에 의해 지구 도처에 물이 공급되고 그 결과 온갖 생명체들이 먹이사슬을 이룬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개진한다. 육식동물과 먹이가 위계적 먹이사슬 내에서 공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다양한 종들 간 개체수의 균형”(population balance)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세계를 조화로운 자기조절적 체계” (harmonious self-regulating system)라 주장하는 비벅의 논문은 18세기 지배적 과학사상을 공식화한 고전적인 글이다. 비벅의 말을 직접 인용하자면, “자연계의 질서로 인해 인간은 지극히 현명한 창조주의 성격을 자연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게 되며, 그러한 질서로 인해 자연물들은 보편적 목표와 상보적 효용성을 생산하는 방향으로 유도된다.” 모든 자연물들은 상보적 관계”(reciprocal relation)로 존재하면서 순환의 복합적 질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비벅의 이 같은 생각은 지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란 인식에서 출발하는 오늘날의 생태사상과 기능적인 면에서 유사성이 많다고 하겠다.

화학자 조지프 프리슬리(Joseph Priestly, 1733-1804)1772년에 광합성’(photosynthesis) 이론을 발표하면서 식물의 호흡작용을 순환모델의 지침에 따라 설명한다. 식물은 인간과 동물이 내뱉은 탁한 공기”(vitiated air)를 정화시키기 위해 빛의 에너지를 사용하는데 그것은 복원적”(restorative)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왕립협회(Royal Society) 회장이던 존 프링글(Sir John Pringle)은 프리슬리 가설의 의미를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프리슬리의 생각으로는 도시가 배출한 오염된 공기를 정화시키기 위해서는 사람이 살지 않는 머나먼 지역의 식물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좋은 공기와 나쁜 공기는 수문학적 순환과 유사하게 바람이라는 공기이동현상에 따라 끊임없이 순환한다는 것이다. “식물계의 질서”(The Economy of Vegetation)라 이름붙인 식물원 이야기1부에서 에라스무스 다윈(Erasmus Darwin)은 식물이 광합성운동을 통해 산소와 당분(糖分)을 생산한다며, 환경과 관련된 초록식물의 역할을 기술한다. 또한 그는 개체들 간의 경쟁은 종 전체를 더 낳은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며, 손자인 찰스 다윈을 예견케 하는 진화론적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런데 린네에서 에라스무스 다윈에 이르기까지 즐겨 사용되는 경제 은유”(economic metaphor)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 1776)에서 자유시장경제체제의 상품순환 과정을 기술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그들은 이 은유를 통해 자연계의 순환이야말로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과 소비를 증진시킨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18세기 과학이 기술하는 바에 의하면, “보이지 않는 손”(hidden hand)에 의해 개체들의 행위 결과가 완벽하게 활용되는 자연계는 마치 자본주의 경제체제처럼 작동하면서 질서를 이룬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과학자들이 인간의 자연개입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지도 문제시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방적 규모에서 자행되는 인간의 행위는 분명히 파괴적인 경우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천연자원의 개발과 개선에 기여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18세기로 접어든 뒤에 새롭게 출현한 전체론적 과학사상은 인간의 자연계 침탈 가능성을 외면했다는 점에서 크나큰 한계를 드러낸다고 하겠다. 또한 특히 생물학의 영역에서는 대우주와 소우주 간에 상당한 갭이 존재했다. 유기체 내부의 역동적 움직임과 지구환경 전체의 광범위한 순환 과정들에 대한 이해가 급속도로 증대되고 있었음에도, 특정 동식물들이 서로 연계되는 방식을 지역적 맥락에서 탐구함으로써 다양한 이론들을 통합해 보려는 노력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분류학 분야에서는 분류된 종의 수가 엄청나게 증가하지만, 특정 종의 활동범위와 서식지를 서술하려는 노력도 특정 종의 활동상황과 생명사이클에 대한 관찰도 너무나 미미했다. 그러던 와중에 길버트 화잇(Gilbert White)자연계의 질서”(the economy of nature) 내에서 특정 생명체가 수행하는 역할에 주목하면서 지역적 탐구를 정밀하게 수행해 나간다. 그가 저술한 셀번의 자연사와 문화유산(Natural History and Antiquities of Selborne: 1789)은 생태적 사유의 고전이라 할 만하다. 셀번은 특정 지역에 서식하는 생명체에 눈을 돌림으로써 18세기 자연사 기술을 특징지었던 표본수집과 분류의 편협한 연구관행을 뛰어넘어 생태계 연구에 획기적 첫 발을 내딛는다.

서식지에서의 종의 적응력, 모든 생명체의 상호의존성, 인간이 자연생태계에 개입할 경우 파국의 가능성 등 생태적 사유의 몇몇 본질적 통찰들은 18세기 과학적 저술들을 통해 분명하게 개진된다. 이안 와일리(Ian Wylie)젊은 콜리지와 자연철학자들(Young Coleridge and the Philo- sophers of Nature: 1989)에서 보여준 바 있듯이, 콜리지는 그 당시 과학사상에 정통해 있었고, 화학과 생물학 분야의 새로운 발견들이 의미하는 바를 한층 더 폭넓은 수준에서 충분히 내면화하고 있었다. 특히 자연의 운행과 관련하여 그는 새로운 순환론적 관점에 매료되어 있었다. 리빙스턴 로우(John Livingston Lowes)에 의하면, 그는 자연의 본질적 요소들에 대한 일련의 찬가의 기초로서 이 과학적 모델을 활용할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Lowes 69-72, 83-84; Wylie 73).

콜리지에게 이 과학적 모델은 또한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그의 팬티소크러시 기획은 서스퀴하나 강 어귀에 자연계의 질서를 구현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된다. 콜리지 초기의 급진적 정치관은 자연계를 생물학적 평등주의 공동체로 보는 그의 견해와 맞닿아 있다. 팬티소크러시의 주요 정치적 신조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평등의 정치”(the equal government of all)이며, 그것은 사유재산의 공유화”(the generalization of individual property)를 지향하는 아스페터리즘’(Aspheterism)과 맥을 같이한다. 그러므로 자연계의 질서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 신조는 정치경제의 영역에서도 실행 가능한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콜리지는 생각했다. 그런데 자연계의 질서 이론을 수용할 때 그는 아담 스미스의 자유방임의 경제 모델을 곧이곧대로 수용하지는 않는다. 그에게 자연계는 먹고 먹히는 무한경쟁의 장이기보다는 생명체 하나하나가 나름대로 특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이 충분히 조성되어야 하는 평등의 땅, 희망의 땅이다. 이렇듯 자연계의 질서와 관련된 콜리지의 평등주의적 관점은 어린 나귀에게(To a Young Ass)란 시에도 암시된다. 이 시에서 그는 나귀를 형제”(Brother)로 환대하는가 하면 팬티소크러시 공동체를 두고 인간과 짐승이 조화롭게 함께 살 수 있는 곳, “평화와 부드러운 평등의 골짜기”(Dell/ Of Peace and mild Equality)라 부른다.

팬티소크러시의 정치경제적 신조는 콜리지의 생태적 신조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팬티소크러시 공동체에서는 모든 피조물들이 에덴적 상태에서 평화롭게 공존한다. 맥쿠식이 급진적 아담주의”(the radical Adam- icism)이라 부르는 이 같은 입장은 블레이크의 예언의 정치학”(visionary politics)을 연상케 한다(MacKusick 41). 훗날 콜리지는 젊은 시절의 급진주의와 의절하지만, 보다 보수적인 버크적 정치관으로 선회한 뒤에도 그는 유기체론의 기본 골격을 포기하지 않는다. 국가와 교회의 조직에 대하여(On the Constitution of Church and State)란 글에서도 그는 국가와 시민, 교회와 교구민 간에는 자기조절의 관계가 부단히 진화 발전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생역정에서 그는 정치적 견해를 바꾸는가 하면 그의 정치적 견해는 일관성을 결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같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 전반을 굳건히 떠받쳐 주는 것은 국가와 사회를 비롯한 자연계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보는 젊은 시절의 이상주의적 관점이다.

 

 

3. 산골마을의 생태언어

 

호수지방’(Lake District) 자연생태에 대한 관찰은 전체론적”(holistic) 인식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초점이 모아진다. 18028, 그는 호수지방을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그곳에 자생하는 식물들의 이름을 채록하는가 하면 식물들 서로간의 관계를 재현하는 일에도 신경을 쓴다. 그때 정리한 노트북에는 식물의 이름과 함께 식물들 서로간의 관계가, “접시꽃과 야생 다임(wild thyme)이 함께 배회하고 -- 그들과 함께 여우꼬리도 -- 고사리, 골풀, 등등.” 식으로 기술되어 있다(Notebooks, 1:1216). 길버트 화잇처럼 콜리지도 린네적 학명보다는 지역주민들이 늘 사용하는 토속적인 이름을 선호한다. 그처럼 흔해빠진 이름들이야말로 그 지역의 역사와도 지역주민의 정체성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1803년의 노트북 도입부에서도 그는 내 젊은 시절 모두의 아니 내 인생 전체에서 (가장) 품위 있는 시”(a noble Poem of all my Youth nay of all my Life)를 짓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거기에는 식물과 꽃, 학명으로 인해 언제나 생기를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한 나의 열정이 담길 것임을 분명히 한다(Notebooks, 1:1610). 이때부터 그는 호수지방 자생식물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에 골몰한다. 180012, 사라 허친슨(Sara Hutchinson)은 윌리엄 위더링(William Withering)영국 식물 분류(Arrangement of British Plants: 1796)에 기록된 식물이름 목록 가운데 여러 장을 콜리지의 공책에다 옮겨 적는다. 이 목록에는 사라 자신이 개작한 식물이름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그런 이름들은 그 지역 식물들에 대한 사라의 개인적인 지식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아래 인용을 보면 사라가 기록 정리한 식물이름 목록의 성격과 함께 그녀의 개작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고지 오이풀. 쥐오줌풀. 비로도 잎사귀. 비너스의 머리빗. 비너스의 거울. 봄풀. 마편초. 살갈퀴. 애기살갈퀴. 개망나니 넝쿨. 제비꽃. 갈라티안 제비꽃. 독사풀. 처녀의 보금자리(= 나그네의 기쁨, 천방지축 오름꾼, 꽃꽃이, 클레머티스).

 

Upland Burnet. Valerian. Velvet leaf. Venus Comb. Venus Looking glass. Vernal Grass. Vervain. Vetch. Vetchling. Vine wild. Violet. Violet Calathian. Viper Grass. Virgins' Bower (= Traveller's Joy, Great Wild Climber, Honesty, Clematis).

 

이 현란한 식물이름들은 모두가 민중적 경험에 튼튼히 뿌리내린 것들로, “아가씨들의 별장”(Virgins' Bower)을 대상으로 한 사라의 개작명칭들을 보면 토착식물에 대한 그녀의 지식이 매우 광범위하고도 정확함을 알 수 있다. 콜리지에게 이 토속식물이름 목록은 차후에 문학적 개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언어적 자료의 저장소로 여겨졌을 것이다.

18028월의 도보여행 과정에서 콜리지는 호수지방의 집과 마을과 길과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역사과정의 산물로 인식하기보다는 자가발전된 그 지방 특유의 것들로 인식하면서 울파 커크”(Ulpha Kirk) 주변 풍경을 이렇게 묘사한다.

 

지극히 낭만적인 골짜기. 골짜기를 품은, 나지막한 가파른 산들. . . . 울퉁불퉁 낮은 언덕 위에 서 있는 교회, 교회 위로 산길이 가파르게 뻗어나간다. 그 너머에는 고지의 평평한 들판. 뒤에는 서로 다른 모습의 깎아지른 산들이 버티고 서 있다.

 

이 서술문에는 사물 하나하나가 바로 행위의 주체임을 드러내는 동사들이 배치되며, 그래서 작인(作人)으로서의 인간(human agency)이란 관념이 암암리에 배제된다. -- 교회는 턱 버티고 서 있고”, 그 위로 산길이 가파르게 뻗어나가는것이다. 자연으로부터 인간의 개입이 차단된 뒤에는 자연물의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능동적 구문들이 이어진다. -- “이 집 너머로 한 줄기 시내가 샘까지 가파르게 내달리고, 언덕 너머로는 아름다운 길이 뱀처럼 기어가네.” 그래서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에스크델(Eskdale) 양치기의 나지막한 오두막들은 다른 지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 지방 특유의 매력을 발산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그 모든 것들이 자율적이고 자족적인 유기적 형상들로 비쳐질 뿐만 아니라 광활한 풍경과 분리될 수 없는 요소들로 인식되는 것이다.

콜리지의 미학적 유기체론을 논의할 때면 칸트철학을 비롯한 독일 미학사상의 영향을 도외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콜리지의 유기체론은 젊은 시절 자연과 교감하며 소중하게 간직했던 생각과 정감들이 미학적으로 발전된 것이다. “유기적 조직체”(organism)라는 전체론적 관념이 생태학적으로 완결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주거지와의 관계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었다. “유기체론”(organicism)의 경우에도 잘 빚어진 항아리”(the well-wrought urn)처럼 형태의 완결성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미적 대상을 에워싼 그리고 그 대상을 먹여 살리는 언어적 문화적 환경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다. 호수지방의 여행기록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유기적 형태”(organic form)라는 미학적 개념을 정립함에 있어 콜리지는 미적 대상이 환경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다양한 방식들을 모색한다.

호수지방 자연생태와 사회생태의 매력은 언어 또한 지역환경 속에서 진화 발전한다는 인식과 연계되어 있다. 앞에서 우리는 호수지방의 장소명 뿐만 아니라 동식물의 토착명칭에 대한 콜리지의 각별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직업문인으로서의 콜리지는 단어만들기에 몰입함으로써 언어의 진화를 적극 유도한다. 그의 시와 산문을 보면 그가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일에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작가 초년생 시절에 기록한 노트북에서 그의 단어만들기는 풍경묘사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그는 언어적 형식도 땅과 그 땅에 사는 사람들 간의 지속적인 대화의 결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때로는 장난기로 넘쳐나는가 하면 때로는 너무나 진지한 그의 비공식적 산문들은 낭만기 어느 작가도 넘볼 수 없는 언어적 풍요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그의 산문들은 “treeage”, “hillage”, “cloudage” 등 무리접미사 “-age”가 붙은 신조어(新造語)들로 넘쳐나는데, 이는 그가 자연물들을 개체가 아닌 복합적 무리로 인식함을 말하여 준다. 작은 규모의 “cataracts”를 장난스레 재현하기 위해 “kittenracts”란 합성어를 만들어 내며, “breezelet”“wavelet” 또한 같은 류에 속하는 조어들이다. 뿐만 아니라 폭포의 특이한 모습들은 “waterslide”“interslope”란 조어들로 조형적 표현에 도달하는가 하면, 바위틈에서 자란 나무의 뒤틀린 모습은 “twistures”로 재현된다. 그리고 특이한 지세를 재현하는 단어들은 역동적 에너지로 또는 병치적 암시들로 넘쳐난다.

단어만들기와 관련된 이 같은 대담성은 자연력을 찬양하기 위해 일련의 시를 지으려는 그의 계획에도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자연의 모든 매력 또는 엄청난 힘’(Tremendities)”을 하나하나 열거하는 숭엄한대목에서 시가 절정에 이르도록 할 계획이었다(Notebooks, 1:174). 앞서 인용한 조어들뿐만 아니라 “tremendities”란 신조어를 통해 콜리지가 보여주려 한 것은 무엇이었던가? 이처럼 새로운 어휘 형태를 통해 그는 자연계란 다양한 종들이 우글거리는 단순한 집합소가 아니라 그 모두를 아우르는 유기적 조직체임을 보여주려 했을 것이다. 세상을 통합적 공동체로 보는 이 새로운 세계관은 자연물들 간의 유기적 관계를 드러내는 새로운 어휘 형태들을 매개로 생생하게 표현된다. 그러므로 새롭게 창조된 이 어휘 형태들을 두고 우리는 모든 생명체의 주거지(όίκος)인 지구를 위해 발언하는 언어, 생태언어”(ecolect)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시적 언어가 문화적 주류와 뒤엉켜 사실상 둘 사이의 차이점을 식별하기가 쉽지 않은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콜리지는 자기만의 생태언어를 창조하는 데 대부분 성공한다. 앞서 전개한 내용을 반복 요약하자면, 콜리지가 창조한 언어는 호수지방의 자연조건을 반영하는 생태언어이자 자연에 대한 콜리지 특유의 인식과 반응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4. 배 그림자의 생태학

 

콜리지의 생태의식은 옛 뱃사람의 노래(The Rime of the Ancyent Marinere)에서도 쉽사리 확인된다. 중세 철자법에 따라 시종일관 민요연’(民謠聯, ballad stanza)으로 구성 전개되는 이 담시’(譚詩, narrative poem)서정민요시집초판본(1798)의 서두를 장식한다. 따라서 시집 전체의 전반적 주제를 천명하는 이 시는 생태적 이탈의 비유담”(a parable of ecological transgression)으로 읽을 때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MacKusick 44).

한 마디로 매리너’(Mariner)는 중세 도덕극’(morality play)만인’(Everyman)과도 같은 인물이다. 남극을 향해 (탐험하기 위해서일까?) 망망대해를 항해하던 중 매리너가 탄 배는 생명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음바다에서 표류하게 된다. “인간의 모습도 짐승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 / 사방은 온통 얼음뿐.”(Ne shapes of men ne beasts we ken -- / The Ice was all between.: 55-56) 콜리지가 “ken”(=know)이란 사어(死語)를 매개로 암시하려 한 것은 무엇일까? 매리너는 생명의 세계에 대한 공감력도 참여의식도 거세된 채 단순히 초연한 관찰자로 탐험선에 승선한다. 그러므로 매리너는 사물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데카르트적 이원론자인 셈이며, 그의 위기상황은 서구인들 사이에 보편화된 세계인식 방식에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남극지방의 피조물들로부터 매리너를 분리시켜 차가운 얼음덩어리들 사이를 떠돌게 하는 것은 데카르트적 이분법”(Cartesian dualism)이 야기하는 "인식론적 틈새 혹은 간극"(epistemic gap)인 것이다.

앨버트로스는 인식론적 안개”(epistemic fog)를 헤치고 홀연히 나타나 배 주위를 유유히 선회하는데, 선원들에게 그 새는 남극지방의 추위와 황량함을 완화시켜 줄 수 있는 사자(使者) 혹은 수호신으로 비쳐진다. 그 새를 보는 순간 선원들 모두가 일체감을 맛보게 되며, 그래서 이교신이 지배하는 이역만리 타지에서 기독교도를 만나기라도 한 양 그들은 그 새를 환대한다.

 

마침내 알버트로스가 지나갔네,

안개를 뚫고 그것은 왔네.

마치 기독교인을 만나기라도 한 듯,

우리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걸 환대했네.

 

At length did cross an Albatross,

Thorough the Fog it came;

And as it were a Christian Soul,

We hail'd it in God's name. (lines 61-64)

 

얼음세계를 가로질러 인간의 세계로 날아온 앨버트로스는 자연과 문명 사이에 가로놓인 장벽을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다. 인식론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앨버트로스의 출현은 매리너의 절연과 고독을 어루만져줄 해결의 가능성으로 마음에 와 닿는다. 그 새는 음식을 받아먹기 위해 또는 함께 놀기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every day for food or play: 71) 날아와 외로운 선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동료애를 일깨우는가 하면 배를 빙산들 사이로 안전하게 인도한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도 매리너는 앨버트로스를 ”(cross bow: 79)로 쏘아 죽인다. ”(cross bow)은 유럽 기술문명의 파괴성을 표상하는 끔찍스런 무기이자 아이러니하게도 십자가”(cross)를 연상케 하며, 그래서 파괴와 잔혹의 표상은 어느덧 희생과 속죄의 표상으로 바뀐다. 앨버트로스를 남극지방의 순수한 사자로 볼 때, 매리너의 무동기 살해행위는 그 지역의 모든 피조물들을 향한 무차별 공격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남극지방은 남극의 혼령”(Polar Spirit)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통렬하게 보복을 가한다. 피조물 하나의 파괴가 곧바로 자연계 질서 전체의 와해로 이어지기라도 하듯이, 매리너는 동료선원 모두의 죽음뿐만 아니라 생명계 전체의 부패를 목격하면서 죽음의 나락을 헤매어야 했다.

 

깊은 심연은 썩어 들고. 오 주님!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이까!

, 끈적끈적한 생물들이

끈적끈적한 바다위를 기어다녔네.

 

The very deeps did rot: O Christ!

That ever this should be!

Yea, slimy things did crawl with legs

Upon the slimy Sea. (lines 119-122)

 

박물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끈적거리는 피조물들은 인간의 파괴행위에서 비롯된 것들로 자연의 죽음을 표상한다. 역사의 구체적 맥락에 비추어 볼 때 매리너의 항해는 쿠크 선장의 두 번째 항해에 비유될 수 있다. 그 항해 과정에서 남극지방의 지도가 상세하게 그려질 뿐 아니라, 거기에 서식하는 동물군에 대한 관찰기록들이 대거 출현하며, 그것은 곧바로 해표와 고래 등 남극지방에 서식하는 생물들의 대량살상으로 이어진다.

매리너가 탄 배가 태평양 상의 열대지방을 항해할 즈음 다양한 생물들이 무리지어 배 주위를 헤엄쳐 다닌다. 목재선이 열대바다를 오래 항해하다 보면 배 밑바닥에는 삿갓조개와 해초를 비롯하여 배 그림자 안에서 서식하는 물고기떼에 이르기까지 온갖 생물들로 들끓게 마련이다. 배는 떠다니는 암초와도 같은 것이, 배 주변에 서식하는 갖가지 바다동물과 식물들은 배에 탄 사람들에게 위험과 함께 기회도 제공한다. 수중생물들로 인한 배 바닥의 손상과 급격한 부식은 배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도 있으나, 풍요롭고 다양한 수중생물들은 영국 탐험가들에게 경이감과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리빙스턴 로스(Livingston Lowes)는 쿡 선장(Captain Cook)의 세 번째 항해 일지 가운데 옛 뱃사람의 노래를 연상케 하는 다음 대목을 인용한 바 있다.

 

둘째 때 되는 날 아침 고요 속에서, 바다의 어떤 부분들은 끈적끈적한 점토 같은 것으로 덮여 있는 것 같았고, 조그만 바다생체들이 주변을 헤엄쳐 다니고 있었다. . . . 그것들은 등, 옆구리, , 할 것 없이 아주 손쉽게 헤엄쳐 다녔는데, 그때마다 가장 값비싼 보석들의 현란한 광채들을 뿜어 내었다. . . . 그것들은 . . . 아마도 밤에 항해할 때 배 옆에서 흔히 관찰되는 그런 생물들일 것이다. (Lowes, 42)

 

콜리지의 시에서 물뱀들”(water-snakes)은 배 그림자라는 지역생태계 내에서 생태계의 순환에 적극 참여하는 것들로 재현된다. 마찬가지로 쿡 선장(Captain Cook)의 배 근처를 헤엄쳐 다니는 이 끈적끈적한 생물들도 그것을 관찰하느라 여념이 없는 과학자들의 눈에 예기치 않은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것들이 역겨움을 유발했던 것은 그것들 고유의 내재적 결함 때문이 아니라 매리너의 인식 방식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매리너가 물뱀이 발산하는 아름다운 불꽃에 매료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unawares) 물뱀들을 축복하는 순간 그것들은 배 그림자”(the shadow of the ship) 안에 서식하는 생물들로 인식된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늪지와도 같은 열대바다에서, 배의 그림자가 드리운 곳은 바다생물들의 풍요로운 서식지 역할을 하는 경계지역”(ecotone, or boundary region)인 것이다.

 

길게 드리운 배 그림자 안에 나는

그것들의 화려한 모습을 보았네.

푸른 빛, 윤기 나는 초록빛,

검정 비로도 색으로 뒤엉켜 헤엄쳐 다니며,

눈부신 황금빛 불길을 일으키고 있었네.

 

Within the shadow of the ship

I watch'd their rich attire:

Blue, glossy green, and velvet black

They coi'd and swam; and every track

Was a flash of golden fire. (lines 269-273)

 

물뱀들의 이 눈부신 행렬은 에라스무스 다윈이 식물계의 질서(The Economy of Vegetation)에서 서술한 빛의 사슬과 대단히 유사하다. 다윈에 의하면, 그 같은 현상은 물고기 분비물이 부패하는 초기단계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처럼 끈적끈적한 생물들에게서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한 매리너는 모든 생명체들이, 심지어는 미생물들까지도, 생태계 전반의 순환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임을 깊이 인식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물뱀들을 축복한 결과 목에 걸려있던 앨버트로tm납처럼 바다 속으로 떨어지고”(like lead into the sea), 드디어 그는 자연으로부터의 소외 상태에서 해방된다. 분리의 영역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인간과 새와 짐승”(man and bird and beast: 646)하나임”(oneness)을 인식케 하는 무동기적 공감”(unmotivated compassion)이 필연으로 요구된다. 그는 그러한 사실을 앨버트로스를 통해 배우게 되는 것이다. 경계지역에 대한 관심이란 관점에서 볼 때 이 시는 현대 환경론자들의 몇몇 핵심적인 생각들을 사전에 예견하는 측면이 있다. 경계지역과 환경윤리(“Ecotones and Environmental Ethics”)란 글에서 로먼드 콜스(Romand Coles)는 경계지역이 갖는 윤리적 상상적 의미의 중요성을 이렇게 기술한 바 있다.

 

경계지역은 주변들이 복잡하게 뒤섞이며 공존하는 대단히 비옥한 공간으로, “진화적 가능성으로 충전된 특별한 만남의 장소이다. 에코톤느(ecotone)의 어원이 처소(oikos)와 긴장(tonus)의 합성어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우리는 다양한 사람과 존재와 풍경들 사이 긴장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처소의 비옥성과 다산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 . . “풍요로워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북극의 꿈서문에서 로페즈는 묻는다. 그는 북극 생물들의 보금자리에 대한 생물학적 은유적 풍요를 현란하게 보여줌으로써 이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Coles, 234)

 

옛 뱃사람의 노래도 서로 다른 영역들 사이에 위치한 경계지역의 윤리적 의미에 대하여 사색한다. 시의 초반부 에피소드에서 앨버트로스는 에머럴드 초록빛”(as green as emerald: 52) 빙산들이 떠다니는 비인간적 세계를 가로질러 선원들이 서식하는 인간공동체로 날아온다. 시의 정점에 오면 열대바다의 풍요로운 경계지역으로 배의 그림자”(shadow of the ship: 264, 269)가 드리운 배 그늘이 제시된다. 매리너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물뱀들을 축복할 정도의 무동기적 공감이 요구되며, 그 물뱀들은 열대바다와 배의 중간지대, 즉 배 그림자가 드리운 곳에 서식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시의 종결부에서 매리너는 바다에서 육지로 귀환하는데, 은자(隱者, Hermit)의 도움으로 바보소년이 젖는 조각배에 몸을 싣고 포구에 도착한다. 그런데 그 은자는 바다로 경사져 내려오는 숲”(that wood/ Which slopes down to the Sea: 547-548) 속에, 즉 또 다른 경계지역에 둥지를 틀고 서식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경계지역들은 초록세상과 문명의 파괴에 대한 사색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이다. 매리너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결혼식 하객은 미물이라 할지라도 의도적으로 생물을 죽이면 예기치 않은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음을 뼈저리게 인식하면서 보다 더 진지하고 보다 더 현명한 사람”(a sadder and a wiser man)으로 거듭난다. 그러므로 영장과 미물 모두”(all things both great and small: 648)의 입지를 똑 같이 옹호하는 이 시는 콜리지의 생태적 비전 가운데서도 환경보전 전략을 가장 잘 예시한다고 하겠다.

옛 뱃사람의 노래에 사용된 콜리지의 언어는 새로운 생태언어 구축 노력의 결정적 증거가 된다. 재너두로 가는 길(The Road to Xanadu)에서 로스가 장황하게 기술한 바 있듯이(296-310), 1798년 판본은 퍼시(Thomas Percy)고대 영시의 유산(Reliques of Ancient English Poetry: 1765)과 채터튼(Thomas Chatterton)라울리”(Rowley) 시편들을 모델로 한 단순한 모조품은 아니다. 로스의 학설에 의하면 콜리지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세 가지 유형의 고어를 사용하며 그 결합을 시도한다. 첫째, 전통민요의 어휘(pheere, eldritch, beforne, I ween, sterte, een, countree, withouten, cauld); 둘째, 초서와 스펜서의 어법(ne, uprist, I wist, yspread, yeven, n'old, eftsones, lavrock, jargoning, minstralsy); 셋째, 항해용어(swound, weft, clifts, biscuit-worms, fire-flags)가 그것이다. 그런데 1800년 판본에서는 그런 어휘나 어법들이 대부분 사라진다. 아마도 17998브리티쉬 크리틱(British Critic) 지에 실린 어떤 논자의 글 때문이리라. 그 논자는 콜리지의 고어사용 경향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특히 “swound”“weft”를 두고 엉터리 어법의 극치라며 매도한다. 그 결과 1800년 판본에서는 어법의 현대화가 이루어지며, 더욱이 무당의 서(Sibylline Leaves: 1817)에 실린 제3의 판본에서는 여백설명”(marginal gloss)이 첨가된다.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오랫동안 장단점 논쟁이 가열되는데, 로스는 개정판을 크나큰 진전으로 보는 입장이며, 현금의 비평가들 대부분이 로스의 견해에 동의한다. 하지만 1817년판본의 접근가능성과 응집력은 초판본의 혼합주의적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결과이다. 논자의 생각으로는 초판본이야말로 고어의 파편들을 주워 모아 한층 더 다채로운 조직과 한층 더 폭넓은 표현 양식으로 나아가려는 시인의 야심 찬 욕망을 보여주는 듯하다.

1798년판 옛 뱃사람의 노래는 어휘적 다양성 유지를 통한 생태적 주제의 고양을 목표로 한다. 고풍스런 어법과 철자의 사용은 단순히 이상야릇하게 보인다거나 문학적 유행을 따르기 위함이 아니다. 특정 시기 특정 장소의 언어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여러 역사적 층위와 사회적 층위들에서 사용되던 다양한 어법들에 절충주의적으로 기대는 것이다. 맥쿠식도 지적하듯이(49), 어휘적 다양성의 목표는 언어의 다중언어적 특질과 통시적 특질을 한데 아우르는 매리너 특유의 개인언어’(idiolect) 구축에 있다. 현대어와 고어의 인접으로 인하여 매리너는 지리적 공간과 역사적 시기를 가로지르는 보편적 떠돌이”(wanderer)의 특질을 부여받는다. 더구나 고어 하나의 소멸이 언어현상 전반에 예기치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에, 이 시의 고풍스런 어법은 환경적 주제의 언어적 등가물인 셈이다. 영어단어 또한 촘촘하게 짜여진 하나의 유기체라면, 단어의 소멸은 매리너가 앨버트로스를 쏘아죽인 뒤에 겪은 것과 같은 엄청난 고통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유기적 언어관의 관점에서 볼 때 옛 뱃사람의 노래는 고어의 회복과 보존을 통하여 우리시대 언어를 더욱 더 풍성하고 활기 넘치는 시어로 거듭나게 하려는 시인의 열망을 표현하고 있다.

 

 

5. 맺음말

 

서정민요시집을 함께 준비하면서 워즈워스와 콜리지는 자연계란 역동적 생태계라는 인식 하에 아름다운 자연과 거기에 서식하는 야생동식물들의 보존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한다. 1798년판 공동시집은 언어의 비옥한 서식지이다. 거기에 수록된 시들 모두가 다양성의 터전에서 자기만의 개성을 십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 공동작업의 성과들 가운데 유독 콜리지만의 몫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언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관점이다. 한 편의 시 또는 한 권의 시집이라는 언어생태계 내에서 시인은 새로운 조어를 만들거나 고어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 등 언어의 다양성과 비옥한 언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콜리지의 전체론적 언어관은 18세기 생물학이 제공한, 유기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바탕 위에서 전개되며, 그것은 또한 자연계의 질서란 생각 속에 표현된 순환론의 은유적 확장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언어의 발달은 자연환경과의 관계에 의해 조건 지워지며, 유기체론의 미학도 시의 언어적 주거지를 의미의 본질적 결정인자로 간주한다. 옛 뱃사람의 노래는 시적 언어와 관련된 콜리지의 유기체론이 가장 잘 구현된 작품이다. 이 시에서 고풍스런 어법의 절충주의적 운용은 사회적, 지리적, 역사적 변이의 폭넓은 지형을 가로지르며 영어의 어휘적 다양성을 보존 확산시키는 데 기여한다.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처럼 콜리지도 언어를 단순한 생산품”(a product, ergon)이 아닌 일정 행위”(an activity, energeia)로 보았으므로, 그의 시적 에너지는 자연계의 질서 내에서 인간의 역할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생태언어 개발에 초점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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