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자료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by Ddak daddy
2019. 1. 4.
살아야 하는 이유
빅터 프랭클(Viktor Emil Frankl)은 1905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유태인이며 신경정신과
의사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가족들과 함께 기차에 실려 유태인 수용소인 아우슈비츠에
끌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모두 잃고 네 곳의 수용소를 전전하다 기적처럼 살아서
돌아온다.
그가 경험한 수용소 생활은 처참했다. 매일 죽음의 위협 속에서 빵 한 조각으로 연명하며
고통스러운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한마디로 삶이 죽음보다 못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철저히 박탈당한 자유 속에서도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내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빵을 힘든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힘겨운 시간을 이겨낼 수 있도록 용기는 북돋았다.
자신을 넘어 남을 위해 뭔가를 해내는 삶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시련을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이런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빅터
프랭클은 큰 깨달음 하나를 얻게 된다. 살아간다는 것은 시련의 연속이며 이런 시련을 이겨내려면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삶에 대한 의미를 찾은 사람들은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으며 그 고통의 시간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냄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깨달음을 니체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정리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안다는 것, 그것은 곧 자기 삶의 의미를 발견했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강제수용소에서의 삶은 자유를 빼앗기고 구속당하는 시련의 시간이었다. 이런 시련 속에서도 이유와 가치를 발견하고 살아야 하는 의미를 발견한 이들이 사는 방식은 달랐다.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자신의 것을 당당히 나누며 시련에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 덕분에 그들의 의지는 더욱 강해졌으며, 육체적으로도
건강했다. 결국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기만의 의미를 발견한 이들이었다. 수용소의 삶은 갇혀 있고
자유가 제약당하며 그 갇혀 있어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도 않다. 목표를 찾을 수 없고 꿈꿀 수
있는 미래도 사라졌다. 지금 우리의 삶도 수용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는 힘겹고 직장은 밥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빈익빈사회는 꿈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느낀다.
허무감으로 의지를 빼앗긴 삶에 번개탄 연기만 자욱하다.
삶의 의미를 찾아서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통해 빅터 프랭클은 심리학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게 된다.
로고테라피(logotherapy, 의미치료)가
그것이었다. 석가모니가 인생을 고통의 바다에 비유했듯이 우리 삶은 끝없는 시련과 어려움들이
기다린다. 이런 삶을 딛고 일어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가슴에 품고 있을 때 가능해진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빅터
프랭클은 심리적 공황상태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의지를 되살려줌으로써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치료에 매진한다. 덕분에 프로이트와 융, 아들러 같은 심리학자들에 버금가는
심리치료에 중요한 공헌을 하게 된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삶이 무엇인가를 해주길 기대만 할 것이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만 해서는 찾을 수 없다. 의미는 구체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것이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행동과 태도가 올바른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은 삶을 통해 무엇인가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그 반대다. 삶에서 얻을 것을 기대하지 말고,
삶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가치 있는 삶을 사는 현명한
방법이다.
“성공을 목표로 삶지 마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 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고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 여러분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원하는 대로
확실하게 행동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정말로 성공이 찾아온 것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것. 그것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현명한 방법이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짐이 주어진다.
누구도 그 짐을 피해갈 수 없고, 다른 사람이 대신 질 수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어떤 방식으로 지고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다. 시련을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수행할 기회로 산다면 우리는 보다 가치있게 살 수 있다.
의미를 찾는 의지로 사람은 산다
프랭클은 또 수용소의 감시병이나 감독들이 수감자 가운데서 선발된 사람들이었음을 지적함으로써 유대인들도 그 가운데 섞여 있었을 것임을 암시한다. 수감자들에게 그토록 잔인한 폭언과 구타와 살상을 일삼는 감시병들도 어느 순간에 다시 수감자의 일원으로 전락하고 결국 가스실로 가는 운명을 맞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또 감시병 중에서도 따뜻한 인간애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음을 증언한다. 그가 풀려났던 마지막 수용소 소장이 그 한 예이다. 그는 나치 친위대원이면서도 수감자들에게 줄 약을 사기 위해 자기 호주머니를 털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이 소장은 수감자들에게 손 한 번 댄 적이 없었다. 뒤에 미군이 들어와 수용소를 해방시켰을 때 수감자들이 그를 숨겨 주었고 이야기에 감동한 미군 책임자가 그를 복직시켜 수감자들에게 줄 옷을 구하는 일을 맡겼다. 그때까지도 그들은 수용소에 처음 들어올 때 곧바로 가스실로 직행했던 사람들로부터 물려받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자기 자신이 수감자의 한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감시병이나 관리인의 직책을 맡는 순간 그 어떤 나치대원보다 더 지독하게 수감자들을 혹독하게 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음을 상기시키며 프랭클은 강조한다. 누가 수감자였고 누가 감시병이었는가라는 단순한 정보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집단과 집단사이의 경계선이 겹치는 경우가 많아서 이 사람들은 모두 천사, 저 사람들은 모두 악마라고 부르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찰과 사색을 통해 프랭클은 ‘인간은 의미를 찾는 의지’로 살아간다고 확신하고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는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토대로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프랭클 자신도 아우슈비츠에 처음 잡혀 갔을 때 자기가 저술하던 책의 원고를 압수당하고 난 뒤 이 원고를 새로 쓰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과 이를 위해 작은 종이조각에 수많은 메모를 하는 작업이 바로 자신이 죽음의 위험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나치 수용소에서 더 잘 살아 남았다는 것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었고, 수용소 경험이 있는 다른 사람들의 기록들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과 북한 그리고 북베트남(월맹)의 포로수용소에서 실시된 정신치료 연구조사도 꼭 같은 결론은 내리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