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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동식물)

낙타 이야기

by Ddak daddy 2018. 10. 17.





낙타 이야기

 

 

 

 

 

낙타는 중앙아시아에서 아프리카에 걸쳐 살고 있는 사막기후 동물로서, 중앙아시아 쪽 낙타는 쌍봉낙타인데 반해 사우디의 낙타는 단봉낙타다.

 

단봉낙타는 쌍봉에 비해 키가 크고 날렵하여 사막여행에는 더욱 적합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막의 배라고 불릴 정도로 사막 환경에 딱 맞는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다.

 

낙타가 옛날에는 상품을 운반하는 운반용으로, 사람이 타고 다니는 교통용으로, 젖은 식량으로, 마지막에 고기는 식용으로 쓰였지만 현재는 운반용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도 시골 오지에서는 유용한 교통수단으로 쓰이며, 젖은 보조식량으로 쓰이고, 고기는 소고기나 양고기보다 비싸게 팔린다.

 

요즘의 낙타는 팔기위해 키우며, 용도는 경주용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식용으로 팔린다.

 

그래서 원래 사막에 적합하도록 설계된 신체조건은 그 쓰임새가 많이 줄어들었다. 어떠한 동물일지라도 사막의 열기와 갈증에는 몇 시간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지만, 다 성장한 낙타는 한 방울의 물도 마시지 않고 300여 킬로미터나 되는 사막 길을 거뜬히 갈 수 있다고 한다.

 

낙타는 토끼의 입, 쥐의 위장, 코끼리의 발, 새의 피, 파충류의 체온, 그리고 백조의 목을 가지고 있으며 담낭이 전혀 없고 눈을 감고도 볼 수 있으며, 닫을 수 있는 콧구멍을 가지고 있다.

 

사막 기후를 견딜 수 있는 낙타의 이러한 신체 능력은 주로 특수한 구조를 갖고 있는 위에서 비롯된다.

 

즉 단봉낙타의 위장은 소 종류의 동물과 같이 위장이 여러 개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위장의 벽은 수백만 개의 미세한 저장 세포로 되어 있어 몇 주일 동안 견딜 수 있는 물을 이곳에 저장해두고 있는 것이다.

 

맹물은 낙타에게 소위 혼도병을 유발시키며 낙타가 맹물을 마시게 되면 술을 마신 것처럼 취하게 된다고 한다. 낙타는 소금기가 있는 물(사막에서 나는 물)을 좋아한다.

 

낙타의 속눈썹은 태양의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게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모래바람을 막아준다. 또한 낙타는 물뿐만이 아니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랫동안 견딜 수 있는데, 이것은 낙타의 등에 있는 혹 내부의 지방층 때문이다.

 

혹에 저장되어 있는 지방질이 비상시에 영양 공급원으로 변하는 것이다. 잘 먹은 낙타의 혹이 잘 먹지 못한 낙타의 혹보다 크게 자라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낙타에서 유래된 영어의 알파벳이 2개 있다.

 

그것은 'C''G'로서 이 글자들은 낙타의 등에 있는 혹을 묘사한 것이다.

 

낙타는 낙타의 시체를 보면 죽는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런 경우는 있다고 한다.

 

부부로 살던 낙타중 한 마리가 죽으면 남은 한 마리는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식음을 전폐하고 있어서 결국은 죽고 만다고 한다.

 

어떤 분이 실제로 경험한 사실인데 낙타가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로 한 마리가 죽었는데, 그것은 암 낙타였고 남편 낙타가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있어서 낙타 주인이 갖은 수단을 써서 구하려 하였으나, 물도 먹이도 안 먹고 끌고 올래야 끌고 올 수도 없고 하여, 며칠 뒤 총으로 안락사를 시켰다고 한다.

 

이 얼마나 순수한, 지극한 사랑인가

 

그리고 낙타의 걸음걸이가 버터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어떤 유목민이 우유 자루를 낙타에 싣고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유난히 느린 낙타의 걸음걸이 때문에 낙타 등에 있던 우유는 장시간 뜨거운 햇볕을 받아 버터로 변했던 것이다.

 

이 걸어 다니는 식량 창고는 사막에서 살기에 적당한 재주를 또 하나 갖고 있다.

 

아주 뛰어난 후각 기능이 바로 그것인데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물 냄새도 맡아낼 수 있다.

 

이런 낙타의 후각 기능 덕택에 수많은 대상(隊商)들이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낙타가 오랫동안 물을 마시지 않고도 버티는 것은 땀을 적게 흘리기 때문이다. 낙타는 기온에 따라 체온이 35도에서 40도까지 변하기 때문에 땀으로 배출되는 수분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낙타가 숨을 통해 내뿜은 물기도 콧속에 모아져서 다시 입으로 흘러들어 흡수한다고 한다.

 

일생 동안 낙타의 생태를 연구한 동물학자들은 이 동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말할 정도로 낙타는 신비한 동물이다.

 

이렇게 사막 적응에 우수한 낙타가 또한 인간에게 적응하는데도 우수하다. 그래서 낙타는 아무런 굴레나 끈 없이 방목을 하여 키우는데 울도 담도 없는 그 넓은 사막을 돌아다니다가도 때가되면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사람이나 차를 전혀 겁내지 않고 사람이나 차가 가까이 가면 호기심을 가지고 오히려 가까이 와서 친근감을 나타내며 냄새를 맡거나하면서 도망을 가지 않는다.

 

이런 낙타의 성질 때문에 수많은 교통사고가 나기도한다.

 

자동차길을 유유히 건너 가면서 전혀 차를 겁내지 않고 평소의 느릿한 걸음으로 걸어간다.

 

낙타의 몸 색깔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사막의 모래 색깔과 비슷하다.

 

그래서 자동차 운전자는 길을 건너는 낙타를 쉽게 보기가 어렵고 특히 해질 무렵이나 밤에는 사전에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정도로 가까이 접근해서야 낙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 때는 이미 너무 늦은 상황이다.

 

거구의 낙타에 승용차가 부딪쳤을 때는 승용차는 낙타의 다리 밑으로 들어가게 되고 낙타의 몸체는 자동차 보닛 위를 지나 사람이 타고 있는 실내로 밀려들어오면서 대부분 생명을 앗아가는 참사가 된다.

 

 

이와 같은 사고를 방지하고자 수 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도로에 낙타방지용 철망을 쳐놓기도 하였지만 이것도 100 퍼센트 믿을 수는 없고, 일반 국도에는 그나마 없기 때문에 항상 조심 운전하는 수밖에 없다.

 

호주 같은 나라에서는 캥거루교통표지판을 자주보지만 그것은 야생동물 보호차원이지, 사람이 키우는 가축이 교통표지판에 나타나는 것은 사우디의 낙타뿐이지 아닌가한다. 낙타로 인한 교통사고가 잦다보니, 책임 소재문제가 아니 나올 수 없다.

 

그래서 불문율 같이 일몰 전에는 운전자 책임, 일몰 후에는 낙타주인 책임으로 규정한다.

 

일몰 전후해서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니면 아마도 반 반 책임이 아닐까한다.

 

이렇게 사람을 너무 믿고 가깝게 대하는 것이 서로에게 피해가 되기도 하는데, 자동차라는 괴물이 생긴지는 불과 몇 년이지만 사막에서 사람과 함께 살아온 세월은 수 천 년이니, 이들이 자동차를 위험한 것으로 알고 피할 때 까지는 또 다른 수 천 년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미련한 짐승이라고 욕하기 전에 우리가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낙타가 쉬려고 앉아있거나 사람을 태우기 위해 앉아있는 것을 보면 소나 사자 등 다른 짐승들이 앉을 때하듯 두개의 뒷다리를 한 쪽으로 오게 하여 앉는 것이 아니라 뒷다리를 꼭 사람이 무릎 꿇고 앉을 때하듯 좌우가 대칭되게 가지런히 모아서 앉고 앞다리도 그렇게 하여 보기에도 단정하게 앉는다.

 

그래서 사람이 타거나 짐을 싣기 좋게 해준다. 그리고 서 있을 때 사람이 타기위해서는 자기의 기다란 목을 내려서 사람을 등으로 옮겨 주기도 한다. 정말이지 사람에게 맞춘 동물 인듯하다.

 

이 큰 동물이 사막에 방목되면 무엇을 먹고 사는지 신기할 지경이지만 주로 가시나무의 가는 줄기를 먹는데

 

잎사귀도 없는 그냥 작대기나 다름없는 나뭇가지를 먹고 산다는 게 정말이지 그 환경적응력에 감탄할 뿐이다. 방목을 하면서 주인이 잘 돌 볼 수 없을 때는 낙타의 앞발을 끈으로 묶어서 보폭을 좁게 하여 멀리 가지 못하도록 해놓는다.

 

보기에 좀 안쓰럽고 안됐으나 주인이 그렇게 해 놓았으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낙타는 거의 뛰는 일이 없다.

 

느릿느릿 걷거나 서있다.

 

그러나 경마와 같이 낙타 경주가 있는데 이때의 낙타는 또 빠른 속도로 달린다.

 

큰 도시에는 낙타 경기장이 있어서 경마를 즐기듯 사람들은 경낙을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말이 달리기위한 동물이라면 낙타는 걷기위한 동물이다.

 

달리기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외모를 하고 있다.

 

사막의 이동 목축민(베드윈)들은 대개 낙타를 열 마리에서 서른 마리 정도를 양이나 염소와 함께 키우고 있는데, 이것은 베드윈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재산이다.

 

이들은 필요할 때면 다 큰 낙타는 내다 파는데 한두 마리씩 주인이 픽업차에 싣고 가 팔기도하고 업자가 트럭으로 사 가기도 한다.

 

사막을 달리다 보면 곳곳에 낙타들이 모여 있는데, 이들은 양떼와는 먹이높이가 달라서 서로 먹이다툼 없이 살아가고 있다.

 

양떼는 낮은 나무와 땅에 솟은 솜털 같은 풀을 먹는데 낙타들은 양이 닿지 못하는 높이의 나무에서 먹이를 취한다. 그러니 베드윈들이 낙타와 양을 같이 쳐도 그 지역의 먹이 부족이 빨리 오는 것은 아니다.

 

낙타는 그 색깔이 흰색에 가까운 회색에서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을 가지는데 털은 별로 많지 않고 등의 혹 부위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예전에 보면 양복감은 낙타기지라고하여 최고의 품질로 쳐 주었으며, 실제로 낙타표 혹은 Camel표 상표가 고급 기지의 상표로 쓰였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낙타의 털이 고급 옷감을 만들 수 있는지 모르겠다.

옛날에는 낙타가 중요한 산업수단이었지만 요즘은 낙타를 직접 팔아 돈을 버는 것 외에는 산업적 가치가 많이 떨어졌다.

 

사막에 사막의 배인 낙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화적 가치가 있을 법한데 거기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고, 그렇다면 어떻게 사막에 낙타가 사라지지 않게 할 것인가-

 

아주 비 문화적이고 비 동물적(?)이지만, 낙타고기를 많이 먹어서 낙타 사육 농가(베드윈)들이 낙타 사육을 포기 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낙타를 살리기 위해 낙타를 많이 먹어야한다(?) 모를 일이다. 인슈 알라.

 

 

낙타(Camelus dromedarius)

낙타는 두 종류가 있다. 단봉(單蜂)낙타(Camelus dromedarius)와 쌍봉(雙峰)낙타(C. bactrianus). 단봉낙타는 아라비아 낙타라고도 하며 아라비아를 위시하여 시리아, 페르시아, 아프리카의 북부에 분포되어 있다.

 

쌍봉낙타는 박트리아 낙타라고도 하며 중앙아시아에서 투르게스탄, 티벳, 중국 그리고 바이칼 호반에 걸쳐서 널리 분포되어 살고 있다. 1차 대전에는 단봉낙타와 쌍봉낙타를 모두 동원하여 이용했다. 이스라엘인이 알고 있었던 것은 단봉낙타이며 쌍봉낙타는 후에 아시리아 등지에 갔던 사신이 그곳에서 본 것이 고작일 것이다.

 

사람이 낙타를 키우기 시작한 것은 상당히 오랜 일이며 이미 그 원종(原種)은 찾아볼 수 없다. 힌두스탄에서 발견한 낙타의 화석(化石)C. sivalensis라하여 현재의 낙타와 비슷하지만 몸집이 조금 더 크다.

 

앞에서 말한 등의 혹은 지방으로 먹이를 얻을 수 없게 되면 그 혹이 점점 작아지고 먹이를 얻게 되면 다시 부풀어오른다. 비축한 지방이 영양을 보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물이 들어있는 주머니가 위에 많이 달려 있다. 사막의 여행자가 목마름을 견디다 못해 낙타를 잡아 그 주머니 속의 물을 먹는다는 이야기는 지어낸 말 같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한다. 이 물 주머니는 낙타 자신에게 목이 말라도 견딜 수 있는 기관(器官)이 되어 있다. 그것이 물의 보급원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낙타는 광야에서 자라는 가시 돋친 관목 잎사귀 등을 조금씩 진미(珍味)처럼 먹는다. 눈과 코에는 바람이 불어와도 모래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으며 가슴과 무릎에는 앉아도 피부가 손상되지 않는 못이 박혀 있고 발바닥은 작은 방석처럼 되어 있으므로 모래 위를 걸어도 박히지 않고 산악지대를 걸어도 미끄러지지 않아 깊은 진창이 아니면 200킬로가 넘는 짐을 지고도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같은 보조로 아무렇지 않게 걸어간다. 몸의 구조가 하나에서 열까지 사막을 다니기에 알맞게 되어 있다.

 

낙타를 히브리어로 gamal이라고 한다(어린 낙타는 bikrah라고 한다. 이사60,6;예레2,23). 셈어는 모두 같은 말을 쓰고 있다. 이것으로 셈족이 아직 분열되기 전부터 이 짐승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어떤 학자는 이것을 근거의 하나로 하여 셈족의 근거지는 중앙 아시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집트인이 사용한 말도 히브리어와 연관이 있고 그리스, 라틴, 그리고 서유럽에도 마찬가지이다. 바빌로니아인은 페르시아 만을 배로 지나다니는 동안에 이 동물을 알게 되었기 때문인지 '바다에서의 짐승'이라는 뜻으로 이 짐승을 지칭하고 있다고 한다. 아시리아인은 쌍봉낙타의 그림을 후세에 남기고 있다.

 

아라비아인과 그밖의 유목민은 옛날부터 낙타를 이용했다. 이스라엘인은 향품(香品)과 유향(乳香)과 몰약(沒藥) 등을 낙타 등에 싣고 이집트로 팔러 다녔다(창세 37,25). 이디오피아(구드)인은 많은 낙타를 갖고 있었다(대하 14,15). 미디안인과 아말렉인들에게는 낙타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았다(7,12). 욥기의 주인공은 3천 마리의 낙타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스바의 여왕 일행이 엄청난 선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왔을 때에도 낙타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1열왕 10,2).

 

옛날에 낙타가 많았던 가나안 동남부는 오늘날에도 낙타가 많다. 루우벤인은 하갈인을 무찌르고 5만의 낙타를 전리품으로 얻게 되었다(1역대 5,21). 오늘날 이 지방을 차지하고 있는 베니 사크르(Beni Sahhr)의 부족은 10만 마리의 낙타를 소유하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평소에 부리고 있는 이 짐승을 군대에서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윗의 군사에게 패배한 아말렉인은 낙타를 타고 도망쳤다(1사무 30,17). 이사야 21,7에도 낙타가 전쟁에 동원된 기사가 나온다. 바빌로니아, 아시리아에서도 낙타를 전쟁에 사용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건설과 키루스(Cyrus)가 리디아의 크로에수스와 싸울 때 리디아군의 방어선이 기병 제1진 보병 제2, 다시 기병 제3진으로 이어진 것을 알아내고 전선에 동원한 모든 낙타 등에서 크고 작은 짐짝들을 모조리 내리고 병사로 하여금 낙타를 타고 앞장서게 하여 적의 말을 놀라게 해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처럼 갑자기 낙타를 사용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전쟁에 낙타를 동원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아라비아인은 낙타를 타고 창을 휘둘렀다.

 

낙타는 짐을 싣기에 특히 적합하다. 게다가 낙타는 매우 유순하다. 그리고 낙타는 인내성이 많지만 한 번 틀어지면 사람이 아무리 달래어도 듣지 않고 도망치기도 한다. 예레미야는 야훼를 등진 이스라엘인을 이런 낙타에 비유하여 "암낙타가 몸이 달아 이리저리 날뛰며"(예레2,23)라고 질책했다. 라헬이 탄 낙타에는 안장이 얹혀 있었다(창세 31,34). 기드온은 제바와 살문나를 쳐죽이고 "낙타의 목에서 목걸이를 떼어 가졌다"(판관 8,21). 아라비아 소녀는 지금도 몸에 초승달 형상의 장식을 한다. 그것은 화를 면하고 복을 가져오는 일종의 부적(符籍)이다.

 

이스라엘인은 낙타의 고기는 먹지 않았으나(레위 11,4 ; 신명 14,7) 젖은 먹었을 것이다. 야곱이 에사오에게 젖이 나는 낙타를 선물했다는 기사가 있다(창세 32,15). 세례자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있었다(마르 1,6).

 

낙타를 다룬 여러 가지 속담이 아라비아인이나 유대인 사이에 전해지고 있다. 아라비아인의 속담으로는 '사람도 낙타와 같아서 백에 하나도 쓸만한 사람이 없다' 또는 '이쪽에서는 포도주를 내놓았는데 저쪽에서는 낙타의 젖을 맛있어 한다’(보잘 것 없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는 뜻)는 등이 있고 유대인의 속담으로는 "늙은 낙타가 젊은 낙타의 가죽을 쓰고 있다"(알맹이 없는 상품의 야단스러운 포장을 비꼰 말). 또는 "낙타는 뿔이 탐나 귀를 없앴다"(낙타의 귀가 작은 데서 명예를 얻기 위해 실속을 차리지 못한다는 뜻)는 등등이 있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마르 10,25)는 예수님의 말씀은 여러 모로 풀이되고 있지만 "바늘 귀"라는 문이 있는 것은 아니라,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기까지"라는 구절이 코란에도 있다고 한다. 한편 이 말씀의 '낙타''밧줄의 오역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초원을 따라 옮겨 다니는 유목민이었을 무렵에는 낙타를 많이 길렀다. 그러나 산이 많은 팔레스타인에 정착하면서부터 사정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후대에 와서 낙타는 성서에 족장(族長)의 이야기에서처럼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고대 이집트인이 낙타를 사용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론이 많다. 이집트의 옛 그림에서는 낙타를 찾아볼 수 없다. 이집트인에게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어서 낙타를 그리지 않았을까? 뿐만 아니라 낙타에 대한 기록도 없다. 그래서 동식물의 이동(Wanderings of Plants and Animals)의 저자 빅터 헨(Victor Hehn)도 리비아 사막에 낙타와 흡사한 동물이 A.D 3세기 경까지 아프리카에 옮겨오지 않은 것을 문화사에서 이상한 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런데 성서에는 아브라함이 이집트의 왕으로부터 양, , 나귀, 낙타를 받은 기사가 있고(창세 12,16), 이집트인의 말과 나귀와 소와 양이 고약한 병으로 쓰러졌다고 쓰여 있다(출애 9,3). 여기에 하나의 이설(異說)이 있다. 즉 아브라함이 말한 이집트와 모세가 싸운 이집트도 아프리카의 이집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쉬라더(Schrader)는 아시리아의 비문에 나오는 Musri는 이집트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빈클러(Winckler)는 이집트의 Musri 이외에 북시리아와 북아라비아에도 Musri라는 지명이 있는 것을 알아 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인이 이집트에 있었다는 것은 이집트의 Musri와 아라비아의 Musri를 혼동하여 한 말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 따르면 하갈로 이집트가 아니라 북아라비아에서 온 것이 되며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에 나오는 바로도 북아라비아의 Musri의 왕이며 롯의 이야기에 나오는 이집트(창세 13,10)도 북아라비아가 되고 요셉의 이야기의 배경과 모세의 이야기의 무대도 이집트가 아니라 북아라비아가 된다. 그리고 아라비아의 일부에 이집트의 세력이 확대되어 이스라엘인은 이 아라비아인과 싸웠다는 주장도 있고 이스라엘의 일부가 이집트에 가 있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집트인은 종교상의 이유로 꺼렸기 때문에 낙타에 대해 쓰지 않았는지 오래 전에 들어온 낙타가 멸종되었다가 기원후에 다시 이집트에 들어왔는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