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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정신분석

한국인의 한에 대하여

by Ddak daddy 2017. 1. 22.




차준구 
한국인의 한에 대하여1 / 이효영 국정언

천안대학교 기독신학대학원
과목 : < 정신의학과 임상목회의 실제 > 과제물 발표


차 례

Ⅰ. 서론

Ⅱ. 본론
1.한국인의 한에 대한 이해
1) 한의 개념
(1) 한에 대한 문자적 개념
(2) 한에 대한 사회학적 개념
(3) 한에 대한 심리학적 개념
① '恨'심리의 세가지 차원
② 한의 심리학의 3가지 차원에 기초를 둔 갖는 문헌분석
③ 한의 발생조건 및 상황
④ 한의 발달단계
⑤ 서편제속의 한의 심리학 예
(가) 기구한 인생들의 예
(나) 대화 및 판소리 가사의 분석을 통한 예

2 한국인의 한처리 방법
1) 산조와 판소리를 통한 해한
2) 가면극(탈춤)으로서의 해한
3) "풀이"의 민속신앙으로서의 해한
4) 의지적 행동으로서의 해한
5) 민요를 통한 서민적 해한

3. 한과 홧병의 관계
1) '화'의 사전적·언어적 의미분석
2) 홧병의 심리적 과정
3) 홧병이란 어떤 병인가?

4. 한에 대한 목회접근
1) 성경에 나타난 한(恨)의 예
(1) 아담--최초로 불순종의 죄를 범함으로 사망을 끌어들인 한
(2) 아브라함 --불신으로 말미암은 가정 불화의 한
(3) 에서와 야곱-- 신중하지 못한 에서와 차남으로 태어난 야곱의 한
(4) 요셉 --배반과 억울함의 한
(5) 다윗 --간음과 살인죄로 인한 후회와 고통의 한
(6) 입다 --출생 신분의 한
(7) 한나 --아들을 못 낳음으로 사무친 원한

2) 목회현장 안에서의 한의 영향
(1) 신자의 한이 가정에 미치는 영향
(2) 신자의 한이 교회에 미치는 영향
(3) 목사의 한이 교회에 미치는 영향
① 공격적 언어사용
② 율법을 강조하는 설교
③ 피해의식으로 인한 미숙한 인간관계
④ 영성의 약화

3) 한에 대한 기독교적 접근
(1) 인간의 창조와 타락
① 창조때의 인간
② 타락한 인간
(2) 한에 대한 목회적 대처 방안
① 예방적 차원
② 치료적 차원

Ⅲ. 결론

참고문헌




한국인의 한에 대하여....

Ⅰ. 서론
한이란 무엇인가?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활발하게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 한국의 소설가들과 문학평론가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또한 "한"이라는 말은 한국문학의 특성과 한국문화의 역사적 성격을 논의할 때마다 빈번하게 다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이라는 말의 개념을 정확히 규정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해석 또한 매우 다양하며 복잡하다
우리들이 흔하게 사용하는 이 단어는 어떤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을까? 사실 자주 쓰는 말이라도 문자로 혹은 학문적으로 정의하라면 그리 쉽지 않다. '오뉴월에도 여자가 한을 품으면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오백년'이라는 민요의 가사 속에도 한은 담겨있다.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한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냐" 그 밖에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한 많은 미아리 고개'라는 대중가요에서도 '한 많은 내 청춘'이라는 가사를 볼 수 있다.
이처럼 "한"(恨)이란 말은 우리 생활 속에서 아주 평범하게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이 무엇인지 그리고 한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지에 대한 심리학적 또는 정신 의학적인 고찰은 많지 않았다. 때문에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 같고 이해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 구체적으로 한이 무엇이며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임상적으로 한의 현상이 있지만 그것에 대한 이해 부족은 결국 한에 걸린 사람을 그 한으로부터 자유하게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예수그리도에 의한 구속과 회복은 단순히 영적 회복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세계가 구속되고 회복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하나나님이 창조한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죄악으로 인하여 그 형상들이 왜곡되었기에 그 왜곡으로부터 회복되어야 한다.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한은 바로 왜곡된 모습중 하나인 것이다.
기독교적으로 한에 대해 처음으로 접목시킨 것은 민중신학이었다. 민중신학은 전통신학의 죄와 죄의 용서를 오로지 종교적인 관점에서 하나님과 인간 개인사이의 문제로만 취급하는 것은 성서의 본래적 구원관의 중대한 왜곡이라고 비판하면서 역사적, 사회적 실체로서의 민중과 민중의 한을 신학의 기본범주로 제시하면서 새로운 신학의 길을 열었다고 주장한다. 한의 문제는 바로 민중신학의 핵심적인 문제였다. 그리고 전통적인 신학이 죄의 문제를 중시하였다면, 민중신학의 핵심문제는 한의 문제라고 한다. 죄의 문제는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억누르기 위해 사용한 이데올로기의 구실로 잘못 이해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당면한 문제는 죄나 회개의 문제가 아니라 "한"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개혁주의적 신학사상과는 상치되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서 한에 대한 정확한 이해 부족으로 인한 주장이기도 하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한'을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한의 특성과 생성등에 대하여 심리학적으로 접근하여 알아보고 그에 대한 목회 상담적 대처 방안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II. 본론
1 한국인의 한에 대한 이해
1) 한의 개념
(1) 한에 대한 문자적 개념 접근
어느 한 나라의 특수한 현상이나 상황을 나타내는 말을 다른 나라 말로 꼭 들어맞게 옳길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런 한국말 가운데 하나가 "한"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원어는 한문이지만 이 말은 한국에 들어와 한국인의 의식구조 속에 풍화작용을 일으켜 그 원어의 뜻과는 다소차이가 있는 독특한 한국적인 의미를 내포하게 되었다.
한에 대한 사전적 의미로써 국어사전에서는 '한'(恨)을 ①'원한(怨恨)'의 준말. 및 '한탄(恨歎)"의 준말이라 한다. 이 '원한(怨恨)'이라는 단어는 "원통하고 한되는 생각"이라 풀이하였고, '한탄'은 "원망하거나 또는 뉘우침이 있을 때에 한숨짓는 탄식"이라 설명하고있다.
"한(恨)"에 대한 한자에서의 의미는 옥편에서, '한'(恨)을 ①'원지극(怨之極)'이라 하였고 ②'회야(悔也)'라 풀이하였다. '원지극'(怨之極)이라 함은 '원망의 극한상황'을 가리키는 것으로, 한이란 원망이 최악의 상태에서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갈 수 없을 만큼)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 앉아있는 미움과 복수의 응어리를 말한다. 이는 '원망의 최악의 극한 상태'를 표현한 말이다. 또한 '회야'(悔也)는 후회함과 탄식의 감정상태를 가리킨다.
즉, 한은 마음을 뜻하는 심(心)과 가만히 멎어 있다는 뜻인 간(艮)과의 회의문자이다. 나무뿌리가 땅속에 가만히 멎어있기 위해 뿌리를 내리고 있듯이 마음속에 상처를 가만히 간직하고 있는 상태가 한이다. 달리 풀이하면 외부의 충격을 반사하지 않고 마음속에 수용 처리하는 과정으로 한이 차지하는 의미공간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2) 한에 대한 사회학적 개념 접근
문 순태는 '한'을 몇 마디로 정의하기는 매우 어려우나 잠정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욕구나 의지의 좌절과 그에 따르는 삶의 파국, 또는 삶 그 자체의 파국등과, 그에 처하는 편집적이고 강박적인 마음의 자세와 상처가 의식, 무의식적으로 얽힌 복합체이다".
문동환은 "한"을 "삶을 짓밟는 악한세력을 향한 꺼질 줄 모르는 분노의 불길이요 못다 산 삶에 대한 끊을 수 없는 미련의 줄이요, 사람다운 삶을 살게 해 달라는 영원한 호소"이며, 아울러 "누구나 다 할 수 없다고 하는 불가능을 몸으로 부인하면서 스스로의 사람됨의 권리를 되찾으려고 몸부림치는 실존의 외침"이라고 규정하였다.
결론적으로 "한"은 아픔과 불행을 가져온 상대방을 향한 강한 분노와 원망이 녹아있는 것이며 아쉬움과 미련이 남아있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강렬한 소망의 욕구가 잠재되어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3) 한에 대한 심리학적 개념 접근
① '한'심리의 세 가지 차원
문학이나 민속분야에서 한('恨)'의 성격을 규정해보려는 노력이 이루어져 왔으나, 이들 분석에서는 심리학적 측면에서 한의 심리상태, 즉 '한' 심리를 개념화하는 분석적 시각의 결여를 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학문의 성격상의 특성에서 이해될 수는 있으나, 심리학적 측면에서 궁극적으로 '한'을 이해하고 개념화하는데 있어서는 심리학적 분석의 조망체계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는 많은 문제가 남는다.
문학분석에서는 '한' 감정이 분노나 적개심과 같은 특정대상을 지향해서 발기된 emotion인지 아니면 대상이 불분명한 상황에서의 sentiment와 같은 정서체계인지를 분별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 감정을 혼용하고 있으며, '한'과 '원'(怨)을 동일한 개념으로 혼돈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한의 유형은 물론 시간적 경과에 따른 한 감정 및 한의 인지적 구조변화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또한 특정한 상황에서 욕구좌절로 인한 흥분된 세속인의 한 감정과 순화되고 승화되며 정련 된 문학 속의 한 정서, 한국인의 성격특성으로서의 한 성격과 세속적 한풀이 형태의 한 감정을 구분하지도 않는다. 더 나아가 한의 발생 구조적 조건분석도 미흡한 상태이며, 일반인의 한에 대해 지니고있는 이해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없는 것이 현실실정이다.
그러나 한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에 차원의 한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즉 성격특성으로서의 한 특성(trait), 감정상태로서의 '한' 센티먼트(sentiment), 흥분된 정동상태로서의 '한' 감정(emotion)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성격-정서-정동차원과는 달리 인지적 차원에서의 '한'이해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성격특성으로서의 '한' 특성을 불안의 경우와 설명하면, 성격특성으로서의 불안에 해당된다. 즉 한 성격특성에서 보면 허무주의적 성격, 현실 초월적 성격, 비관적 성격, 운명론적 귀인 등으로 표현해 볼 수 있다.
'한' 센티먼트는 위의 성격상태와 연결된 감정적 정서체계를 말하는데 쓸쓸함을 느낀다든가, 무상함을 느끼는 정조체계를 예시해 볼 수 있다. 한의 정동은 초기 '한' 상태에서 불행에 대한 원망감, 적개심이나, 후기상태에서는 자책의 감정 등을 들 수 있다.
'恨' 정동은 초기 '恨' 상태에서 불행에 대한 원망감, 적개심이나, 후기상태에서는 자책의 감정 등을 들 수 있다.
끝으로 '恨' 인지도식은 일반인이 '恨'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일반인이 가지고 있는 인지적 쉐마를 말한다. 즉 '恨'은 왜 발생한다거나 또는 어떤 조건에서 생성되는 것인가에 대한 일반인의 자기도식을 지칭한다.



② 한의 심리학의 3가지 차원에 기초를 둔 기존 문헌분석
그 동안 한국인의 의식구조나 심성적 특성, 더 크게는 한국의 문화적 특성을 파악하려는 노력에서 한은 한국인의 한국문화의 고유한 특성으로 학자사회는 물론 일반인의 사회에서 표면화되어 왔다. 특히 문학, 인류학(민속학 포함)분야의 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어온 한의 특성이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기술하는데 연구의 방향이 지향되어 왔다. 예컨대 김열규, 이어령, 김용운, 이 규태등은 '한'을 "마음속의 응어리"로, 최 길성은 고은의 정의를 빌어, "영구적인 절망이 낳은 체념과 비애의 정서"로 수렴하고 있다.
이들이 '한'을 한국인의 특성이라고 규정하고 한의 특성이 어떤 것이라고 주장하는 논리전개의 과정은 고대와 현대에 이르는 대표적 문학작품과 시가 속에서 '한'적 에토스나 주제가 많다는 것을 찾아내거나 또는 동시에 굿(예 별신굿), 전통놀이(예 산대놀이, 탈춤), 민속신앙과 역사적 사건(예, 산대놀이, 탈춤), 민속신앙과 역사적 사건(예, 동학운동)속에서 한풀이나 한적 상징들을 찾아내고 여기서 한 심리와 한문화의 특성을 추출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먼저 김 열규는 '한'을 단선이 아닌 복합적 감정상태로 보고, 한의 특성을 묘사하는데 그는 한을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이라는 차원을 넘어 한의 생성을 심리학적 차원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한'과 '신명'을 서로 양극을 이루고있는 심리상태로 설정하고, 이 사이를 '정'이 파탄될 때 '한' 또는 '원망'이 생기며, '정'이 회복될 때 '신명'이 난다고 하였다.
김 열규의 견해를 보면, 첫째, 그는 한속에 '원'으로서의 '한'과 '한'으로서의 '한'을 모두 포함시키고 있다. 그의 표현 속에 한을 외로움, 서러움, 뉘우침이란 표현은 '한'으로서의 '한'이, 원망에 서린 '한(恨)'이란 표현 속에는 '원(怨)'으로서의 '한'으로 암시하고 있다. 그의 '한'에 대해보면 복수심, 분노와 같은 '원'으로서의 '한' 감정을 여러 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둘째, 그는 '한'을 정동수준, 정조수준, 성격특성 수준 등으로 구분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전반에는 이 세 가지의 감정, 심리상태가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의 '한' 특징묘사에서도 외로움 같은 한, 허전함 같은 한 등의 표현은 성격특성이나 정조수준의 한에, 괴로움 같은 한, 슬픔 같은 한, 서정 같은 한 등의 표현은 정조수준의 한에, 비참한 '한', 처절한 아픔인 '한', 원망에 서린 '한' 등의 표현은 정동수준의 한에 가까운 감정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어령은 한국의 시가 속에 한국인의 '한'이 깊게 서려있음을 지적하면서, 한국의 문화를 '한'을 푸는 문화로 규정하고 있다. 그는 일본과 한국의 문화를 '원(怨)'과 '한'의 문화로 대비시키면서 두 문화의 차이를 칼과 에밀레종의 문화로 비유하고 있다.
그는 '원'을 원망과 복수의 함축적 의미로 풀이하고, '한'은 꿈과 욕망이 깃드린 좌절상태로 비유하면서 '원'의 문화를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부끼의 하나인『주우 신꾸라』에서, '한'을 이에 대응하는 한국의『춘향전』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한'이 풀릴 때 신바람이 난다고 봄으로서 '한풀이=신명'이라는 김 열규의 입장과 같이한다.
또 '원'의 일본문화는 빚이나 은혜를 갚는 문화로, '한'의 한국문화는 갚는 것이 아닌 푸는 문화로 비유하면서, 그 예로 살풀이, 샤머니즘, 푸닥거리 등을 들고있다.
이 어령의 견해를 보면, 그는 '원'과 '한'을 구분하여 '원'은 직접적 보복의 형태로 풀고, '한'은 복수보다는 좌절의 회복 그 자체로 풀 수 있다고 보고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원'과 '한'의 발생기제가 어떻게 다르다거나, 감정상태에서 이 두 개념이 어떻게 구분되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김 용운은 '한'의 원형을 귀신에게 아내를 빼앗긴 처용에서 찾고있다. 그의 표현을 인용하면"아내를 범한 귀신과 맞싸우자니 힘이 없고, 울자니 자신의 신세가 안타깝다. 그는 화도 내고 웃기도 했으나 결국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그 자리에서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그는 은근히 아내가 무사히 돌아올 날을 믿었다. 그의 울음 속에 '恨'과 '怨'이 함께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1989).
그는 처용의 심리에 대한 분석에서, 좌절은 웃어넘기면서도 자신의 못난 힘을 자학하기 때문에 '한'의 심정이 우러나온다는 것이다. 처용의 예와 더불어 그는 2차대전 당시 징용으로 끌려간 한국 젊은이들의 행동을 기술하면서, 거기서 한국인의 한을 그려내고 있다.
내용인즉 한국의 젊은이들이 북해도 탄광으로 가는 수송열차를 기다리면서 마땅히 슬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슬픈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제기차기, 자치기를 하면서 큰소리로 웃고, 떠들며 논다는 내용이었다. 김 용운은 그때의 한국 젊은이들의 마음에 '한'이 응어리져 있다고 가정하면서 그런 상황에서 한국인은 울기보다 웃는다는 것이며, 그것을 '한'의 본질적 심성으로 그리고있다. 더 나아가 그는 병신춤을 예술화시킨 민족은 한국인뿐일 것이며, 여기서 불쌍한 병신거지가 명랑하게 노래하며 춤을 춘다는 것이 아이러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웃음 속에는 눈물이 가려져 있으며, 이것을 곧 '한'의 미묘한 심성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는 또한 "일본인과 한국인의 의식구조"(1986)에서 한국인의 민족성을 눈물과 인정에서 우러나오는 용서로 특징짓고 눈물에서 비롯된 '한'이 오래지나 '원'에 이르는 의식구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누한원(淚恨怨)"의 한국인 심성관이다.
김 용운의 견해를 분석해보면, 그에게 있어서도 '한'은 김 열규, 이 어령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맺힘, 곧 응어리와 같은 것이며 '한'의 심리상태 속에는 분노와 자학이 복합적으로 얽혀진 것으로 일본인의 무상과는 다른 개념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그리고 '원'과 '한'을 동일선상에서 보며, '한'이 오래 지속되면 '원'이 된다고 보고있다.
이 규태는 한국인의 '한'의 의식구조를 역사적 사건, 문학 및 민속에서 찾고있다. 먼저 그는 '한'의 마음을 풀리지 않은 응어리로 특징짓고, 한자의 "한"분석을 통해 설명한다. '한'은 마음을 뜻하는 심( )과 가만히 멎어있다는 뜻인 간(艮)과의 회의문자로, 마음속에 상처를 가만히 간직하고 있는 상태를 '한'이라는 것이다.
즉 외부의 충격을 반사하지 않고 마음속에서 수용, 처리하는 것이 '한'이라는 것이다 '한'은 무형의 '무(氣)'가 외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맺혀진 것이 응어리이고, 불평, 불만, 원망, 탄식 등을 발산하지 못하고 속에 맺혀두는 것을 응어리지는 것으로 보았다. 이 응어리가 오래 풀리지 않으면 '한'이 사무치고 공감대를 형성하면 '원'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무속의 푸닥거리가 "분풀이", "살풀이"등으로 불리는 것도 응어리를 푼다는 의미에서 "풀이"라는 말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응어리를 푸는 방법에 있어서는 응어리의 원천을 본질적으로 제거하는 실질적 방법과 불평, 원망 등을 말로 표현하는 카타르시스적인 간접적 방법이 있다면, 그는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푼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으나, 그의 글 내용 속에는 이를 밖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를 푸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한국인의 응어리 병을 말못해서 생긴 병으로 상징화한다. '한'은 좌절이 축적되어 생기는 것이며, 좌절의식의 내향축적은 피해의식이 되며, 그 좌절이 외적요인에 의해 발생했을 때 원 념이 생겨나는 것으로 '한'을 파악하는 바, 그에게 있어서 '한'은 원망과 피해의식의 복합이 되는 것이다. 이 피해의식은 '한'에 자학적 요소를 복합시키며, 한국인은 스스로 약자의식을 가짐으로서 자기 속에서 '한'을 처리하는 성향이 높다고 말한다.
이 규태의 견해를 보면 첫째, '한'을 응어리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김 열규, 이 어령의 '한'과 유사하다. 둘째, 이규태는 '원'과 '한'을 질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한'이 사회적 공감대로 발전할 때 '원'이 된다고 하였다. 이는 '한'은 개인적 수준의 심리상태라면 '원'은 그러한 '한'이 사회적 의식화 및 감정공감대를 형성할 때보다 대상지향적인 '원'이 된다는 점으로 해석된다. 세째, 이 규태는 '한'의 발생원인을 단순히 외부로만 돌리지 않고 개인 내적 특성 즉 의식구조와도 관련됨을 주장한다. 즉 피해의식에 관련된 약자의식, 자학의식을 '한'의 심리적 기제로 들고있는 점은 개인수준에서의 성격특성이나 의식구조가 욕구좌절 상황에서 '원'의 형성에 관여됨을 시사한다.
위에서 나타난 것처럼 '한'의 심리상태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에 대해 아직 상세화되어 있지 않으며, '원'과 '한'이 구분될 수 있느냐, 또는 왜, 그리고, 어떻게 구분되거나 구분되지 않는가에 대한 구체적이고 심층적인 논의가 없다. 또한 '한'이 좌절이나 고통, 분노와 같은 감정이라면 그것이 외부적 상황요건에 의해서 조성되는 것이냐 아니면 그러한 상황에 대한 수용방식 및 반응양식과 같은 사람의 내적특성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없다.
정 대현은 "한의 개념적 구조"라는 제목 하에 한과 원한(怨恨)이 사용되는 언어의 분석에 철학적 시각을 적용하여, 한과 원한의 개념을 분석하였다. 그는 '원'과 '원한'의 개념이 사용되는 문장에서, "'한'은 맺히는 것이고 원한은 품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한'은 의도에 독립적인 것임에 반하여 원한은 의도에 의존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원한은 지향성의 개념이라면 '한'은 어떠한 대상에도 향하여 있지 않은 비지향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은 통증처럼 맺혔을 때 경험될 뿐이라고 한다. 원한은 발생적으로 부당 또는 불의라는 사회정의의 개념과 관련되어 있으며, '한'은 불행의 인식론적 규범이 막혔을 때 생성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한풀이는 인식적이기보다는 예술적이거나 종교적이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이 대상지향적이 아니라고 해서 대상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것이다.
'한'의 발생이 불의에서 출발했다면 그 불의를 인식하는 상태에서는 '한'은 비대상적 체험에서 대상적 체험으로, 즉 원한은 한으로 전환된다고 본다. 끝으로 그는 '한'은 한국인에게 고유한 특성이라기보다는 외국인에게도 존재하며, 다만 한국인에게 더 많이 나타나는 특성이라고 했다.
그의 이러한 분석은 첫째, 그는 '원'과 '한'을 대상 대 비대상, 지향성 대 비지향성의 차원에서 다른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 둘째, '원'이나 '한' 모두 부당 및 불의에 의해서 생성되나 '원'은 불의를 인식한 반면 '한'은 불의를 불의로 인식하지 않는 점. 세째, '원'이나 '한'의 발생원천인 좌절은 기본적으로 이 좌절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특성보다는 외적 억압상황에 기인하며, 이 좌절은 '원'과 '한'의 발생에 거의 전적으로 기여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은 다른 나라에도 똑같이 존재하는 현상이라고 본다.
정 대현의 '원'과 '한'의 구분은 이 규태, 김 용운, 이 어령, 김 열규 등의 개념과는 크게 다르다. 후자의 집단에서는 대상에 따른 구분, 지향성에 따른 구분, 불의인식에 따른 구분 등을 의도적으로 시도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대현은 '한'이 한국인의 고유한 심성특질이라는 입장과 달리 그는 '한'의 생성에서 체험하는 사람의 심리적 특성을 거의 무시하거나 중요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점은 자학의식이 '한'의 형성에 관여된다는 이규태의 견해와는 상치된다.
한완상은 '한'을 민중의 생활체험의 한 모습으로 파악하면서 '한'을 한국민중 특유의 정동적경향 및 태도와 관련된 집합적 정동체험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가 말한 정동이란 개념은 "개인의 일시적인 심리적 반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집합적인 차원과 문화적인 차원에서 쓰여지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한'을 한국민중의 삶에 가장 널리 그리고 깊이 뿌리내려 있는 민중감정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한'은 민중의 실존적 체험이며 또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체험으로, '한'은 억울하고 비참한 고통의 현실 속에서 형성되고 유지되며 표출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상황 속에서 좌절된 희망과 그것에 따른 증오식 원상회복에의 열망등, 마음속에 맺혀있는 모든 정서들을 '한'이라고 보았다. 그는 '한'의 경험상태를 정의 집단적 무의식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동시에 변화가능 한 출현적 규범의 성격도 갖고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한'에 대한 한완상의 시각은 첫째, '한'의 감정상태를 외부의 자극에 대한 수용태도 및 반응특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 점, 둘째, '한'은 역사 및 사회적 억압상황 속에서 형성된 한국적인 감정체계로 보고있으며, 이는 과거의 외적상황이 개인 내적 특성으로 또는 집단의 심리적 특성으로 '한'이 내재화되어 있다는 점, 세째, '한'을 변화를 동기로 작용할 잠재적 에너지로 보고있다는 점과 더불어, 네째, '한'심리의 사회적 형성과정을 사회적 구성의 입장에서 파악하고 있는 점이다.
끝으로 '한'의 감정상태가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을 느끼는 상태인가를 경험적으로 밝히려는 연구로 민 성길의 "홧병과 한"에 대한 연구를 들 수 있다. 그는 '한'이 한국인의 고유심성의 하나라는 기존의 시각을 수용하면서, 정신병원에 입원환자 중 스스로 또는 주변에서 홧병환자라고 생각하는 환자를 선택하여, 홧병과 한에 대한 자기보고 형태의 자료를 수집, 분석하였다. 그는 홧병에서 충격, 분노, 증오 등 즉각적 대응반응이 많이 나타난 반면, '한'에서는 허무, 후회, 고통, 열등감등 장기적 억제의 결과가 '한'의 감정반응으로 많이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한'의 감정은 현재의 불행이 아닌 과거의 불행에 대한 심리적 처리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 성길의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첫째, '한'을 감정상태로 파악하고 있는 점, 둘째, '한'의 감정은 개인들의 의식속에 표면화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한'의 감정에 대한 개인적 보고를 들어본 결과 상당히 일치된 감정특징을 도출하고 있다는 점, 세째, '한'의 감정특성을 허무, 후회, 고통, 열등감과 같은 정조(sentiment)수준의 감정이며, 따라서 emotion의 감정과 같이 강하게 활성화된 면이 약하다는 점, 네째, '한'의 감정속에는 타책이 아닌 자책의 정념이 많이 반영되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가뇌영명(加瀨英明)'(1989)이 '한'을 밖을 향한 것이 아니라 안쪽으로 향해진 자책의 정념에서 생겨난다는 시각과 일치한다. 다섯째, 홧병을 유발한 사건은 가까운 현재의 사건인 반면, '한'을 유발한 사건은 지나간 과거의 불행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③ 한의 발생조건 및 상황
'한'이 어떤 심리상태를 지칭하는 개념인가를 알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일은 '한'이란 개념이 어떻게 사용되는가 알아보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이나 대화에서 "한맺힌다", "한스럽다", "한이다"라는 상황을 서술하는 사건이나 상태를 검토해볼 때 다음과 같은 세가지 '한' 사건 내지 상황을 추출할 수 있었다.
첫째 부당하게 차별대우를 받을 때 '한'이 결과될 수 있는 상황을 들 수 있다; 예로 서민이 부당하게 관료에게 핍박받을 때, 못가진 자가 부당하게 가진 자에 의해 피해 당하거나 무시당할 때, 한이 나타난다는 대화적 또는 언어적 용례는 매우많다. 여기서는 부당한 차별대우에 대한 억울함의 인지와 감정이 욕구좌절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예1) 남아선호사상에 의한 여아의 한
유교의 이데올로기는 철저하게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만들었으며 여비의 사상을 뿌리깊게 내리도록 하였고 나아가 남아선호가 당연한 가치체계로 받아들이게 하였다. 조선시대의 인간관계는 근본적으로 친족중심적이며 주로 부계혈통중심의 남성지배적인 체제였다. 이로 말미암아 유교적 혈연주의, 가부장적 부계혈통의 유지와 정통성의 고수, 직계주의, 장자 우선주의등이 사회의 중요한 지배원리가 되었다.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가문중시현상에 따라 여성의 삶은 통제되었고 비인간적인 억압으로 흘러갔다. 여성의 성관계는 철저히 통제되었고 한 남성을 위하여 수절을 하고 심지어 따라 죽기까지 하도록 장려되었던 열녀문은 높은 지지와 호응을 받았으며, 여성은 '혈통이 다른 후손을 낳기 때문에' 친정에서는 '출가외인'으로 철저히 배제되고 남편가문의 혈통을 잇는것을 지상의 과제로 삼고 시집에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예2) 장남편애에 의한 차남의 한
조선시대 가부장제의 근원은 따지고 보면 부계혈통을 조장한 유교의 가치체계에 의한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부계혈통중심의 원리에 따라 장남만이 제사를 맡을 수 있었고 호주상속의 권리가 주어졌다. 여기서 차남은 배제되고 딸이 소외되었다. 이와 함께 가정안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심각한 현상의 하나로 장남편애의 경향을 들수있다. 같은 아들이라 하여도 장남을 더 끔찍이 위하는 어른이나 부모때문에 상처받는 차남들이 의외로 많다.

둘째,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심각하게 결핍되었거나 일반타인에 비교해서 필요한 것이 상대적으로 현격히 결핍(deprivation)되었을 때, '한'이 나타난다; 이 상황은 앞의 "차별대우"의 경우와 비교할 때, 욕구좌절의 면에서는 유사하나, 욕구좌절의 원천이 3자나 제3집단이라기보다는 애매한 비인적 요인에 의해 결과된 결핍 내지 박탈된 상황이다. 예로 가난하다든가, 자식이 잘못 되었다든가, 원하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팔자나 운명 등으로 그 원인을 돌리면서 자신을 한탄하는 경우를 말한다.
(예1) 동학농민운동-
1894년(고종 31년) 전라도 고부군에서 동학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민중운동으로서, 그 규모와 이념적인 면에서 농민봉기로 보지않고 정치개혁을 외친 하나의 혁명으로 간주하여 동학농민전쟁 혹은 동학혁명이라고도 부른다. 농민들이 궐기하여 악정에 항거하며 내정개혁을 요구하고 외국세력을 배척하는등 대단한 농민운동이었다.
-전라도 농민들의 한-
전라도 고부군의 농민들은 농업을 천직으로 알고 하늘을 바라보며 열심히 농사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이며 착하게 살고 있었다. 군수이하 모든 관리들을 하늘같이 떠받들고 모든 명령에 언제나 순종하였다. 세금을 얼마 내야한다고 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법인줄 알고 순종하였으며 부역을 시키면 역시 불평하지 않고 성실하게 자기 책임을 다하였다. 남을 속이거나 억지로 빼앗을 줄 모르고 착하고 순박하게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순박한 농민에 비해 관리들은 썩을대로 부패하였고 무지한 농민을 우롱하였다. 그리하여 갖가지 명목의 세금을 만들어 부과하려고 백성들을 속이기까지 하였다. 황무지 개간을 시키면서 전혀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해놓고도 가을이 되면 추수한 곡식을 세금을 부과하여 강제로 거두어 갔다. 시급하지도 일은 만석신보를 축조한다고 농민을 강제로 동원하고는 가을엔 수세로 700여 섬을 받아 착복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농민들의 마음에는 관리들에 대한 불신의 벽이 높이 쌓임과 동시에 피땀 흘려 거두어들인 곡식을 빼앗기는데 대한 불평과 상실의 한이 쌓여만 갔다. 그리고 부농 지주들은 또 다른 한이 맺히게 되었다. 고부군수 조병갑은 부민들을 체포하여 강제로 감금시킨 각종 죄목을 붙여 재물을 강탈하였던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염치와 체면을 그 무엇보다 귀히 여기던 지주들에게 불효, 음행, 잡기등의 치욕스런 죄명을 뒤집어 살게 하였던 것이다. 뿐만아니라 이런 억울함을 진정했던 농민들에게 후임 군수 박원명과 안핵사 이용태는 민란의 책임을 농민과 동학교도들에게 전가시켜 농민봉기의 주모자를 색출하는 한편 동학교도들 명단을 만들어 체포하려함으로 평화롭던 고을에 불안과 긴장을 조장하며 피신의 고통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세째, 앞의 첫째나 둘째의 상황에서는 제3자나 통제불능성 외적요인에 의해 욕구좌절이 나타나는 상황에서의 '한'과 관련되나, 여기서는 자기자신의 지울수 없는 실수에 의해 만들어진 욕구좌절이나 불행과 연계된 '한'을 말한다. 예로 살아생전 불효하던 자식이 부모의 사후에 이를 후회하는 상황과 결부된 뉘우침의 고통을 지칭하는 말이다.
(예1) 6 ·25 전쟁
전쟁의 배경, 전쟁의 진행상황 그리고 결과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려진 바이므로 생략하고 피해를 중심으로 민족의 공동체가 가지게 된 한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전쟁으로 말미암은 한민족의 한-
한반도에서 있었던 동족간의 3년 동안의 전쟁은 인적, 물적 피해와 많은 손실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한을 가슴에 심어주기에 충분하였다. 특히 이 전쟁은 전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비전투요원의 인적손실을 엄청나게 많이 가져왔다.
이 전쟁의 과정에서 우리 민족은 '이산의 한'이 쌓이게 되었다. 한국전쟁은 민족의 대이동을 가져왔다. 특히 북한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산통치를 피하여 남한으로 대거 이동하였는데, 대체로 황해도와 함경남도 그리고 강원도지역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들은 살던 곳이 가까워 얼마동안만 지나면 다시 고향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몇 달 혹은 길어야 2-3년안에 정든 고향집에 돌아가려고 마음먹었었다. 그래서 정식으로 이별인사도 하지 않은 채 노부모와 형제들을 떠나 몇몇 식구만 데리고 덜렁 떠나버렸던 것이다. 오늘같이 남북이 고착될 줄이야 꿈에도 상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이 세가지 유형의 '한'을 쉽게 표현하면, 부당한 차별 및 업신여김 당하는 '한', 불행성 결핍의 '한', 취소불가능한 자기실수의 '한'으로 말해볼 수 있다. 동시에, 이 세가지 유형의 '한'은 모두 자기 통제불능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한'은 욕구좌절이나 불행의 원천이 본래는 통제가 불가능한 요인이나 상황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시간적 경과 및 심리적 고통의 과정속에서 망각 및 자기적응과정을 통해 자신이 감내하거나, 수용할 수 있는 형태의 인지적 및 감정적 재구성을 해나가는 특성을 지닌다고 하겠다.
예로 인지적 재구성의 경우 자기팔자나 운명 또는 자기 탓으로 돌리는 등의 자기 책임적으로 재조정을 하거나,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거나, 그런 거지 뭐.. 등과 같은 제3자적 관조적 인생관을 수용하여 자신의 고통의 불행을 소화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초기상태의 '한'은 '원'에 가까우나,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원'의 표적이 불분명하고 원망의 강도가 낮은 자기책임 지향적 자기수용의 속성과 연관된 "그저 허무하고 서러운 일반화된 센티먼트의 순화된 형태로 변질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한'의 초기 심리상태 즉 '원'과 '한'의 특징을 대비시키면 아래의 도표와 같다.

④ 한의 발달단계
한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심층적인 한국인의 감정 및 심성특질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한이 한국인의 민족적 감정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최상진은 한을 세개의 수준으로 구분, 첫째는 감정수준의 한, 둘째는 자신의 감정이 직접관여된 상태라기보다는 심미의 대상으로 전환된 정서체계로의 한, 세째는 한 많은 사람의 성격특성과 같은 성격특질의 한으로 구분하였다.
한의 발생단계를 시간차원 상에서의 심리적 변화와 관련시켜 분석해 보면
제1단계는 억울함을 함유하는 비극적 사건이 일어나면서 당사자는 욕구좌절과 분노, 적개심, 복수심, 원한 같은 강력한 감정경험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의 직접적이며 대상지향적인 표출은 사회로부터 용인되지 않거나, 복수의 경우 복수상대로부터 보복을 받을 위험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거나 억제하지 않으면 안된다.
제2단계는 억제된 분노나 적개심을 자기 스스로 약화시키고 수용하는 감정 및 사건해석의 전환단계에 해당된다. 여기서는 억울함이나 불행의 책임을 그 원인제공의 당사자인 외부의 사람에게 돌리는 1단계에서, 자기 스스로에게 적어도 부분적인 책임을 전가시키는 책임전환과 더불어 분노감정의 약화와 질적 전환을 가져오는 심리 내적 적응과정이 일어나게 된다. 보통 비극의 자기책임 수용방법은 자기 저주나 비하, 운명으로의 귀인, 허무주의 또는 합리화 과정 등을 통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비극의 수용은 제1단계의 강력한 부정적 감정을 완화시키거나 약화시키는데 기여한다. 예컨대 분노는 슬픔으로, 욕구좌절은 무력감으로, 복수심은 자기 증오로 전환되게 된다.
제3단계는 2단계를 통해 가라앉힌 분노의 감정을 다시 반성해보고 음미해 보는 심리적 활동이 일어나게 된다. 억울하게 피해를 받은 약자가 그 책임을 일단 2단계에서 자기 자신의 무능력에 돌렸다고 할 때 제 3단계에서는 다시 이러한 해석전환에 따른 불행수용에 회의를 느끼는 경험을 하게된다. 즉 위의 경우 "힘이 약하다고 당하고만 있는 것이 부당하지 않은가" 또는 내 팔자가 나빠서 그런 불행을 당했다고 일단 생각했다면 "왜 하필이면 나만 팔자가 사나워야만 하는가"등 앞의 2단계에서와는 다른 차원의 회의를 갖게된다.
이 단계에서의 감정상태는 슬픔, 흥분 등이 함유된 부정적 감정이 생기고 다시 가라앉고 하는 기복을 반복하면서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안정된 한의 감정상태로 침전된다. 이러한 상태의 한은 적절한 사회적 통로를 통해 표출되기도 하며, 예술이나 문학과 같은 승화된 형태의 감정이나 Sentiment로 전환 표현되기도 한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한은 바로 이 3단계의 한을 말하며, 분노한 상태의 한은 제1단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제2단계는 어떤 면에서 1단계에서 3단계로 전환되는 중간단계로서 1단계의 강렬한 분노반응 직후에 나타나는 반전감정현상으로서의 자책의 감정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마지막 단계인 4단계의 한은 한이 자신의 감정적 관여로부터 분리되어 객관화되어진 상태의 한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이제 자신의 한을 남의 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신의 한을 분리시킨 상태를 말한다. 이 단계에서의 감정상태는 평온하며, 조용하고, 쓸쓸하며, 한적하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현실을 초월한 것 같은 초연성을 나타내 보이기도 한다.
예로 처용가에서 처용이 자신의 비극을 노래로 읖조리는 행동은 어떤 면에서 제4단계의 한심리 상태에 해당되는 행동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⑤ 서편제속의 나타난 한의 심리학적 분석 예
<서편제>를 '한'심리라는 심리학적 차원에서 분석해 보면 '한'의 심리에 대해서는 이미 최상진의 연구에서 개념화되었다.

(가) 기구한 인생들의 예.
< 서편제>의 가장 대표적 주제를 하나 잡는다면 '기구함'이다. 우리는 '기구하다'는 말을 쓸 때 '기구한 팔자', '기구한 운명', '기구한 사람', '기구한 생활'등의 맥락에서 사용한다. 서편제에는 바로 위에서 언급된 사안들을 모두 포함한다. 즉 기구한 운명 또는 팔자를 가진 사람들(유봉, 송화, 동호, 낙산거사, 이도령, 주막집 천씨등)이 기구한 생활(떠돌이 생활, 가난한 생활, 천대받는 생활, 폐가망신의 생활등)을 하면서 이를 기구한 내용과 곡조를 가진 판소리를 통해 풀어나아가는 '기구성'의 총집합이다
먼저 이 작품의 주인공인 유봉, 송화의 한를 보면.
유봉은 원래 당대의 최고명창 이동성의 수제자로 가장 촉망받는 제자였으나, 스승의 첩 추월이를 먹고 파문당하여 떠돌이 소리꾼이 된 사람이다. 그러다 어찌어찌하여 청산 과부인 동호의 모와 관계를 맺고 결과적으로 그 관계행위로 인해 애를 배어 출산하다가 죽게되었다. 그 후 유봉은 애매한 남매지간인 송화와 동호를 이끌고 남도를 떠돌아다니며, 한편으로는 송화와 동호를 소리꾼으로 기르고, 다른한편으로는 생계를 위해 약장수판, 술판등을 전전긍긍하며 소리를 팔아 연명해 나아간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술판의 손님으로부터, 약장수 부부로부터, 이동성의 문하생 동료들로부터 모멸과 멸시를 당하며, 더욱 충격적인 사건은 동호가 자신을 멸시하고 자신의 곁을 떠나게 된 것이다. 결국 송화에게 자신의 소리를 전수시키기 위해 송화를 장님으로 만들었으나 송화는 초기에 소리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유봉의 마음을 읽고 유봉을 용서하면서 송화는 소리에 전념하게되고, 유봉은 식음을 전폐하고 소리를 하다가 죽어가면서(소설) 송화에게 용서를 비는 것으로 일생을 마친다.
송화는 조실부모한(영화) 천애의 고아로서 유봉을 아버지 아닌 아버지로 삼고 그 밑에서 판소리를 배우게 된다. 그 소리를 배우는 과정은 일관되게 고통, 시련과 가난으로 점철되어있으며, 이 과정에서 소리를 팔아 연명해 나아가는 생활의 형편이 기구의 극치를 이룬다. 힘이없어 소리를 못내는 송화에게 고기를 먹이기 위해 남의 닭을 도적질하였다가 주인에게 들켜 유봉이 혼줄이 나기도한다. 송화는 동생동호가 자신의 곁을 떠났을 때 괴로워하고 계꾼모임에서 하기 싫은소리를 하지 않아 계꾼들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는다. 송화의 가장 큰 돌이킬 수 없는 시련은 아버지에 의해 인위적으로 눈이 멀게되는 사건이다. 늙은 아비와 눈이 먼 송화는 공동묘지 고개인 소릿재주막에서 소리를 하면서 아버지 유봉의 임종을 맞고 아버지를 그 곳에 묻고 삼년상을 치른 후 술집을 떠돌다가 늙은 무자식 홀아비 천씨를 만나 그 곳에 정착한다. 천씨는 송화를 부인도 애인도 아닌 어정쩡한 관계에서 서로 함께 살아가는 동거인으로 송화와 관계를 가지며, 술손님이 송화와 동침을 원할 때 옆방에서 동침을 별생각 없이 허락하기도 한다(소설). 천씨 역시 생활이 기구하며 홀혈단신으로 주막을 지키며 살아가다 송화를 만나고 송화가 오라버니인 동호를 해후한 후 송화의 마음이 자신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 덤덤히 송화를 떠나보낸다.
동호는 유봉의 의붓자식으로 아주 어린나이에서부터 어머니인 청상과부의 손에서 자란다. 동호의 어머니는 산골짜기의 밭떼기를 일구어가며 생계를 유지했으며, 밭을 일굴 때 동호는 나무에 끈으로 묶인 상태에서 어머니의 흥얼거리는 소리와 기다림으로 지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러다 자신의 어머니가 죽게되자 유봉의 밑에서 살아가면서 유봉에게 소리를 배우게 된다. 그러나 동호는 소리를 배워먹고 살기가 어려우며 소리꾼이 천시받는 것을 유봉의 생활을 통해 확인하고 유봉의 곁을 떠난다. 그 후 동호는 한약재 수집상의 점원으로 일하면서, 자신의 남매인 송화를 찾아 남도를 헤맨다. 마침내 송화를 천씨의 주막에서 만나게되고 송화와 더불어 밤새소리를 하면서 지새운다. 그러나 서로가 남매임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소리를 통해 '한'의 감정과 남매지간의 정을 교감하고 말없이 송화를 떠난다.

(나) 대화 및 판소리 가사의 분석을 통한 예
(1) 세월내의 소리가사중 "갈까보다 갈까보다 님따라 갈까보다"는 실제로 가지도 못하면서 가보겠다는 응석적 표현으로, 이는 소월의 시 {진달래} 등에서 나타나는 심리상태와 모두 일맥상통하는 약자의 자기위안 심리와 관계된다고 하겠다.
(2) 송화가 한량들 술자리에서 술을 강제로 따르게 된 후, 집으로 돌아와 유봉이 송화의 뺨을 치며 "빌어먹을 년, 술 따르란다고 따러?"라고 소리친다. 이런 행동은 송화를 미워서 꾸짖는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책의 반동적 표현형이라고 볼 수 있다.
(3) 이 과정에서 동호는 유봉에게 반발하고 송화는 동호를 달래면서 "얼마나 괴로우시면 그러시건냐, 아버지도 불쌍하신 분이여"라고 말한다. 여기서 송화는 아버지에 대해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아버지의 자신에 대한 꾸짖음에 대한 긍정적 이해가 이루어 졌음을 시사한다.
(4) 유봉의 노래 속에 "개똥같은 세상", "떠돌이 인생", "수심도 많다", "날두고 가는 님은 가고 싶어서 가느냐"는 구절이 나온다. 이 말들은 모두 '한'의 부분적 속성을 함축한다.
(5) 유봉은 송화의 소리를 들으며 "그게 소리냐, 넋두리 흥타령이제"라고 송화의 소리를 책한다. 여기서 판소리는 넋두리도 흥타령도 아니며 이를 초월 극복해야함을 뜻한다. 유봉은 소리를 득하려면 '한'을 극복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번 반복한다. 여기서 '한'을 극복함은 증오를 극복하고 자기비하나 지기모멸감을 이겨 낸 상태의 초연성과 힘을 가져야 함을 시사한다.
유봉이 송화에게 "니가 나를 원수로 알았다면, 니 소리에 원한이 사무쳤을텐디, 니 소리 어디에도 그런 흔적은 없더구나", "동편제는 무겁고 맺음새가 분명하다면, 서편제는 애절하고 정한이 많다고들 하지, 허지만 한을 넘어서게 되면 동편제도 서편제도 없고 득음의 경지만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원한과 한이 구분되고 애절하고 정한이 많은 것을 '한'이라 한다면 이 '한'을 극복해야 함을 강조한다.
한을 넘어선다는 말은 자신의 감정이 깊이 관여된 '한'에서 자신의 감정을 벗어난 '한'의 상태로 전환되는 것을 암시하며, 이 상태의 '한'을 객관화된 '한'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이 단계가 불교에서의 초월의 경지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6) 송화와 동호가 밤새소리를 하면서, 서로 남매지간임을 말로 밝히지 않았음을 천씨가 알고, 왜 모른척하고 헤어졌는가를 묻는다. 이에 대해 송화는 "한을 다치고 싶지 않아서였지요"라고 답한다. 이때 천씨는 "무슨 한이 그렇게도 깊이 맺혔간디 풀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헤어졌단 말이여?"라고 묻는다. 이 때 송화는"간밤에 한을 풀어냈어요"라고 답한다. 여기서 '한'을 다치지않고 싶어 서로 모른척했다는 것은 서로를 밝힐 때 이미 각자의 감정상태에서 처리된 '한'의 구체적 사건들이 다시 회상되어 또 다시 마음속에서 처리해야 할 '한'의 소재가 생길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으로 해석된다.

2 한국인의 한처리 방법
한은 세가지 조건에서 발생되었다고 이미 위에서 말하였다. 다시한번 생각해보면 첫째는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았을 때이며 둘째는 필요한 것이 타인에 비해 현격히 결핍되어 고통을 당할 때이고 세째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를 범했을 때 발생한다. 이미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한의 발생단계에서의 시간상의 변화를 통해 심리적 변화를 말하였다. 그 심리적인 변화의 마지막 단계인 제4단계의 한은 한이 자신의 감정적 관여로부터 분리되어 객관화되어진 상태의 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한국인의 전통적인 해한의 과정을 살펴보려고 한다
보통 한은 그 불행의 원천을 근본적으로 해소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며, 따라서 한의 원천은 대부분의 경우 직접 제거할 수 없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한은 간접적 방법으로 푸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때 그 방법은 사회적으로 수용된 방법으로 표현하거나 승화된 방법으로 전환시켜 표현하거나, 또는 사회적으로 수용된 형태의 한 표출을 보고 동일시하여 감소시키기도 한다.

1) 산조와 판소리를 통한 해한
한은 체념에서 끝나지 않고 정신적인 어혈의 상태로 오래 축적되어 억제의 강요로 불안을 유발시키고, 불안은 불만으로 변하여 폭력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한을 극복하는 데는 개인차가 있는데 체념으로 끝나는 무력함으로 끝나지 않고, 억제로 인한 불안의 우울증에 걸리지 않고, 복수의 의지인 폭력으로 유발되지 않는 최선의 해안의 길이 예술에로의 승화의 길이다. 예술성 높은 전통음악의 종류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이중에 한의 표현에 가장 가까운 것은 산조요, 판소리이다.
"기악곡 중에서 한국인의 전통적인 미의식 내지 정서적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는 산조는 느린 진양조의 가락이 한에 가까운 슬픈 정서를 많이담고 있으며, 또한 조선말기에 사회적으로 낮은 신분의 천민계급에 의해서 전승되어 내려온 민속음악 가운데 판소리 또는 시나위의 음악적 영향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 형성된 독특한 장르의 음악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천민이라는 현실적으로 서글픈 인생경험을 음악이라는 표현수단을 통하여 맘껏 승화시키려는 것이 산조의 내용이기 때문에 한을 담는 수단으로 적합하였다.
성악곡 쪽에서의 한의 표현에 가장 가까운 것은 판소리이다. 판소리는 민중이 문예에 굶주리고 있을 때 18세기에 들어서 천민, 광대에 의해 창조되었다. 판소리 안에는 경묘한 해탈미와 미묘한 인정 풍속이 담겨져있어, 한문학 때문에 막혔던 민중의 체취와 슬픔과 한이 판소리를 통하여 나타난다."고 한다고 박황은 자신의 저서 "판소리 소사(小史)"에서 말하고 있다.

2) 가면극(탈춤)으로서의 해한
조선사회의 규범을 벗어나 인간본연의 생활감정을 느끼는대로 표현하기 위하여, 평민들은 풍자와 해학의 수단으로 양민의 윤리도덕을 비웃고 파괴시키려는 의도가 전통 민속극인 가면극에 잘 반영되어 있는데 가면극과 인형극은 한의 이차적인 해한으로 파악할 수가 있다. "한국의 전통민속극으로서 인형극이나 가면극에 반영된 주류사상은 양반등 지배계급에 대한 원한의 반발로서, 양반에 대한 조롱과 모욕, 타락의 풍자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민속극이란 민중의 공동체 의식의 소산이다. 그것은 민중사를 엮어 온 대다수 민중의 뜻과 한과 원의 결집이 독창적인 형식에 의해서 꾸며져온 것이다. 인형극이나 가면극으로서의 민속극은 민중의 그때그때 처한 사회전반의 객관적인 의의와 한계를 올바르게 이해함으로써 공동체의 발전과정을 보편적 민중사의 발전에 연결 참여하는 속에서 창조되는 민중예술의 총체로서, 민중생활을 바탕으로 빛어지는 것이었다. 탈춤을 통한 신명풀이는 맺힌 한을, 곧 쉽게 풀어지지 않는 한을 집단의 신명풀이로 전환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풀어보려는 것이다." 라고 심우성은 "한국의 민속극"을 통해 말한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한을 집단적인 한으로 전환시켜 그 집단적 동질성을 계속 유지시켜 나가는 것이 탈춤을 통한 신명풀이라 할 수 있다.

3) "풀이"의 민속신앙으로서의 해한
민속신앙의 하나인 무속은 죽은 원령과 산 원령이 거듭 만나서 풀고 또 푸는 한판의 굿거리이다. 신과 인간의 중간에 자리잡고서 인간의 고난을 신에게 의지하여 해결해주고 신의 의지를 인간에게 전달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맡아하는 사람이 무이고, 이러한 무들이 주도하는신앙습속을 무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굿은 그 목적이나 제신의 종류에 따라 여러유형으로 나뉘는데 제의로서의 굿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재수굿(기복굿)과 진혼의례인 오귀굿이다. 그 중에 오귀굿은 억울하게 죽어서 맺힌 한을 풀어주기 위한 굿판으로 한과 관련이 많으며 죽어서 맺히는 사람, 사후에 맺히는 원한이 있으면 살아있는 자가 푸는 구실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굿은 정령과 직접 연결을 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것이 한의 희망이며 풀이인 것이다. 이렇게 억울하게 좌절된 소망인 한을 풀어주는 의식은 무속에 있어서 한 핵심적인 기능이며 화해의 정신이었다. 그리하여 굿에서는 대립갈등의 해소가 민중의 차원에서 이뤄진다.

4) 의지적 행동으로서의 해한
한은 민란과 동학과 같은 민족운동으로 해안의 길을 찾으려 했음을 볼수 있다. 사람이 하늘이요, 하늘이 사람이라는 천도교에 바탕을 둔 동학이 해한을 위한 혁명이었다.
5) 민요를 통한 서민적 해한
서민들은 직설적이고 구체적인 언어의 표현인 민요를 통하여 순간적인 해한을 하였다. 민요는 오랜 세월동안 민중속에서 구전으로 내려온 노래이기 때문에 특별한 수련이나 기술을 필요를 요하지 않으며 그 소재 또한 다양하고 감정의 표현도 쉬었다. 그 내용은 주로 시집살이, 과부의 설움, 노동의 고됨, 편의 처첩관계, 시누이와 올케사이의 알력등 서민생활의 생활감정을 거리낌없이 나타내는 것들이었다.
이와같은 서민여자들의 한은 모두 운명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은 원망과, 증오와, 슬픔과 고됨을 민요를 노래하는 것으로 참아내야만 했으며, 결코 반사회적, 또는 부도덕적인 방향으로 항거하지는 못하였다.

3. 한과 홧병의 관계
'홧병'이란 말은 그 어휘가 나타내는 바대로 민간의학적 용어로서 서구정신의학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기존의 정신의학적 연구와 치료는 서구에서 체계화된 정신의학의 이론적 틀에서도 서구의 이론적 틀 속에서 정신과적 문제의 표현형과 발생기제가 문화간에 어떻게 다른가를 알려고 했다는 점에서 '서구이론의 문화비교적 검토'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홧병과 관련해서 우리나라 정신의학자들이 보이고있는 접근의 방식은 상기한 기존의 접근방식과 다르다.

1) '화'의 사전적·언어적 의미분석
『우리말 큰사전』에서 '화'와 관계된 정의를 보면
·화- 노엽거나 언짢아서 달아오르는 불쾌한 감정
·화나다- 성이 나서 화기가 생기다
·화기- 가슴이 번거롭고 답답하여지는 기운
·심화- 마음속에서 복받쳐 일어나는 화
위의 '불쾌한 감정', '성이 나서', '답답하여지는', '마음속에서 복받쳐 일어나는' 등의 서술에서 화가 마음속에서 존재하는 불쾌한 심리상태임을 알 수 있다. 화의 동사형은 '화가 난다'와 '화를 낸다'로써 '화가 난다'는 마음속에 화가 생겼다는 뚯이며, '화를 낸다'는 마음속에 생긴 화를 밖으로 표출한다는 뜻이다. 일반인의 심리학(folk psychology)에서 '정이 우러난다', '화가 난다', '기분 난다' 등의 표현은 화나 정, 기분과 같은 감정은 물이 샘에서 솟아 나는 것처럼 마음속에서 저절로 생겨난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본다.
그러면 화의 감정은 왜 생기는 것일까? 이러한 화의 원인에 대한 대답의 내용이 곧 일반인이 생각하는 화 발생원인이기도하다.

2) 홧병의 심리적 과정
먼저 '낼 수 없는 화'는 어떤 것인가? 앞에서 화는 사적인 토로(discourse)를 통해서 풀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사적인 토로가 불가능한 화가 있다. 화를 유발한 상대가 자신과 경쟁관계에 있거나 이해상충관계에 있거나 공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일 때 사적인 화내기와 화 토로(discourse)는 상대의 심정변화나 기대하는 효과를 가져오기 어렵다. 따라서 화를 내봤자 또는 화를 토로해봤자 어떠한 변화나 효과를 기대할 수 없고 가져오지도 못한다. 이러한 경우 화는 참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화의 강도가 위의 사례에서처럼 강할 때 실제로 참는 일은 불가능하거나 어렵다.
갈등의 고부관계에서 화 토로는 사적인 측면과 공적인 측면의 양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화가 날 때에 부분적으로는 사적인 심정을 통해 화를 풀 수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전통적 지위관계 때문에 사적인 통로에 제한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사적인 통로가 막힌 고부관계에서는 화를 푸는 통로가 폐쇄되어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 경우 화는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참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화의 강도가 크면 참을 수 없는 데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와같이 화를 낼 수도 풀 수도 없는 상황에서 참을 수 없는 화를 참아야 하는 고통은 그 자체로 괴로움을 줄뿐 아니라 화의 통제에 대한 능력을 약화시켜 격한 흥분상태를 조장하는 감정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상태는 화의 감정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욱 격화되는 상태로서 화의 감정이 격할수록 더 큰 자제의 능력이 요구되나 현실적으로 자제의 능력은 오히려 약화되어 화의 기승에 따라 고통의 강도는 커질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화 감정의 순환적 증폭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만성적 홧병의 시작으로 이어질수 있다. 이와는 달리 화 감정이 발생 당시 지나치게 강해 화에 대한 자제력을 잃게되는 경우가 있다.

3) 홧병이란 어떤 병인가?
홧병은 화라는 한국인의 독특한 문화 심리적 감정체계와 연루된 병이라는 점에서 그 성질과 발생과정 및 증상면에서 한국적 고유 질을 띨 수 있다. 홧병의 성질은 과중한 심적 고통을 수반하는 억울과 분함의 감정이 인지적 금지기제에 의해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극한적 흥분과 흥분에 뒤따르는 쇠진의 순환을 나타내는 성격 및 정서장애의 한 특수형으로서, 강하고 반복적이며 지속적인 심적 고통에서 오는 생리적 신체적 행동적 증상을 실제적으로 또는 가경험적으로 수반한다.
홧병의 특성은 1) 과중한 심적고통 2) 억울과 분함의 격앙감정 3) 극한적 흥분과 쇠진의 순환 4) 생리적 신체적 행동적 증상을 수반하는 성격 및 정서장애의 한 특수형 등으로 요약된다.
먼저 과중한 심적고통은 화를 유발하는 억울과 분함이 자신이 수용하기 어려운 회복불가능성의 부당한 피해자체와 이러한 피해의식의 감정을 심리내적으로 인내해야 하며 동시에 인내의 실패에 따른 감정의 흥분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결과되는 심적 정서적 시련이 크고 심각함을 말한다.
둘째로 억울과 분함의 격앙감정은 화의 성격이 외부의 자극에 대한 단순히 반응성 흥분이 아니라 자신의 자존감과 존재성이 파괴되는 자책과 원망이 핵심적으로 개입되는 피해의식성 흥분이기 때문에 자아관여도가 높으며 생각할수록 불쾌감정의 강도가 높아지는 '불쾌감정의 자기 내적확대 재생산화 심리기제'와 관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째로 극한적 흥분과 쇠진의 순환은 화의 감정자체가 불과같이 강하여 흥분의 강도가 높고 이에따른 정신 신체적 에너지의 과소모로 인해 쇠진이 뒤따르며 그 순환의 반복에 따라 흥분과 쇠진의 강도는 더욱 커짐을 말한다.
끝으로, 홧병을 성격 및 정서장애의 특수한 유형으로 규정하는 배경은 다음과 같다. 앞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홧병은 강한 억울성 감정이자 인지적으로 수용 또는 통제될 수 없기 때문에 불쾌감정의 조절이 불가능하며,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상황적으로 돌출-쇠진하는 반복순환에 의해 감정통제의 기제에 장애가 나타나며 반복적인 통제실패에 따른 개인 내적, 사회적 부적응으로 성격적 장애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한에 대한 목회접근
한국인에게만 한이 존재한 것은 아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한에 사무친 많은 인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성경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한의 사례와 그 한의 원인이 무엇이었던가를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그들 나름대로의 상처와 아픔을 한국인의 한의 개념에 적용하여 설명하였다.
1) 성경에 나타난 한(恨)의 예

(1) 아담--최초로 불순종의 죄를 범함으로 사망을 끌어들인 한
최초의 인간으로 창조된 아담은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이었으며 축복의 대상이었다. 그를 창조할 때 여느 피조물과는 구별되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 아울러 독처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사 깊이 잠들게하신 후에 갈비뼈를 뽑아 하와를 만들어 주셨다고 창 2장 7-21절에 말씀하신다. 아담은 가장 좋은 환경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 수 있었고 낙원의 삶을 영위하였다. 풍성한 과실을 마음껏 먹으며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졌다. 그리나 아담은 하나님의 금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음으로 한을 남겼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 1:17)는 말씀처럼 이 땅에서 맨 처음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 죄를 지었고 그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게 하였으며 이 세상에 사망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인되게 하였고 사망의 지배하에 있게 만들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아담을 원망한다. 그는 최초로 불순종의 죄를 범함으로 사망을 끌어들인 한의 장본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2) 아브라함 --불신으로 말미암은 가정 불화의 한
갈대아 우르에서 75세의 나이에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던 아브라함... 하나님께서는 비록 나이 많아 늙었지만 무자한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도록 하리라는 축복의 약속을 주셨다(창 12:1-4). 그러나 그 약속이 더디게 이루어지자 10년 만에 아내 사래의 말을 듣고 여종 하갈을 취하여 아들을 낳았다(창 16: 1-5).그 이름은 이스마엘 이었는데 이 때부터 여주인 사래와 여종 하갈 사이에 잦은 싸움이 일어나게 되었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고 사래가 90세 되던 해에 아들을 낳아 이삭이라 하였는데(창 21:1-7), 이삭이 커가면서 이스마엘과 다툼이 있게되자 다시 아브라함의 마음이 강하고 근심거리가 되었다(창21:9-11). 결국 하나님께서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쫒으라'는 지시에 의해 아픔을 참고 눈물을 머금으며 집에서 내어쫓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참았더라면 이 괴로움과 근심은 없었을텐데... 그렇게 지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고 눈물거리가 되었다. 아브라함은 한탄하며 가슴에 한이 맺히게 되었다.
(3) 에서와 야곱-- 신중하지 못한 에서와 차남으로 태어난 야곱의 한
에서와 야곱은 이삭의 아들로서 쌍둥이 형제간이다. 일순간 먼저 태어남으로 에서는 장자가 되었고 야곱은 차남이 되었다. 그러나 에서는 평상시 장자 권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아니하였으나 야곱은 그렇지 않았다. 야곱은 '형님' 소리 들어보는 것이 소원이었고 그것이 지나쳐 한이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형의 장자 권을 손에 집어넣을까 깊이 생각하다가 기회를 만들었다. 한순간 늦게 태어남으로 영영 장자가 될 수 없었던 야곱은 자기의 실수나 게으름이 아닌, 절대적인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출생의 순서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장자 권을 쟁취하였으나 그로인해 많은 세월동안 외롭고 힘든 삶을 살아야 했고 마지막 귀향 길에서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환도뼈가 위골되는 아픔까지 감내하여야 하였다. 한편 너무 쉽게 장자 권을 포기했던 에서는 자기의 경솔함과 성급함을 두고두고 후회하면서 가슴을 폈을 것이다.
두 형제가 한 많은 일생을 살아갔을 것이라 생각된다.

(4) 요셉 --배반과 억울함의 한
야곱의 열 한 번째 아들로 때어난 요셉은 영리했고 꿈을 많이 꾸었다. 그는 구김살 없이 자랐고 아버지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7살 때에는 형들의 잘못을 가끔 아비에게 고하므로 형들에게 미움거리가 되었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멀리 도단까지 찾아갔다가 미디안의 상인들에게 은 20개에 팔렸고, 애굽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으로 팔려갔다. 그는 형들에게 살려달라고 그렇게 애원하고 지난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이 때 요셉은 가슴에 한이 맺혔다. '어떻게 자기들의 음식을 가지고 온 동생을 은을 받고 팔아버린단 말인가?' 참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요셉은 배반감과 배신감에 눈물을 삼켜야했다. 그러나 바로의 꿈을 올바르게 해몽해 줌으로 요셉의 지혜와 능력을 바로 왕으로부터 인정받게되어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발탁되었다. 훗날 애굽에 양식을 구하러 찾아온 형들과 극적으로 상봉하게 되고 꿈을 이루며 아버지 이삭까지 애굽으로 모셔와 한을 풀게 되었다. 요셉은 가까운 형제들에게는 버림받았으나 타국의 왕에게 인정받았다. 기나긴 타향살이에 설움도 많았고 외로움과 절망의 때도 많았으나 끝까지 견디고 기다림으로 억울함을 보상받고 배반의 감정을 치유하였다.

(5) 다윗 --간음과 살인죄로 인한 후회와 고통의 한
이새의 여덟째아들로 태어나 목축에 힘쓰다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어 사무엘 선지자가 머리에 기름을 부음으로 새로운 인생이 되었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오직 여호와의 이름만 의지하고 나아가 골리앗을 물리침으로 일약 유명인사가 되어 이스라엘 여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여러번 죽을 고비가 있었으나 요나단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고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등극하였다(삼하 5: 3). 여호와를 구하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쟁에서 이기고 나라에 평강이 찾아왔다. 자기의 궁전을 짓고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므로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결정적인 실수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통하여 임신케되자 이 사실을 숨기려고 묘안을 짜내었으나 충성스러운 우리아의 곧은 의지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죽음으로 내몰았다. 우리아의 전사이후 밧세바를 궁으로 데려왔는데 나단선지자를 통해 책망을 듣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였으나 하나님은 밧세바의 몸에서 나은 아이를 심히 앓게하셨다. 이에 다윗은 아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밤새도록 엎드려 기도하였으나 이레만에 데려가시고 말았다. 이 때부터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보응하시기 시작하였고 이어서 다윗의 아들 암논이 누이 다말을 침상에서 겁탈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삼하 13: 1-14), 아들 압살롬의 반역이 일어나 맨발로 예루살렘에서 감람산 길로 울면서 도망쳤으며(삼하 15: 13-14, 30), 압살롬이 지붕 위에 친 장막에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남겨둔 후궁 10명으로 더불어 동침하여 다윗의 침소를 더럽히고 말았다(삼하 17: 20-22).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저질렀던 죄와 악을 철저히 눈물로 통회, 자복하며 뼈아픈 후회를 하였다. 아마도 다윗은 죽을 때까지 그 날의 범죄를 가슴아프게 되새기며 기쁨을 상실한 채 한없이 괴로워하였을 것이라 추정된다.

(6) 입다 --출생 신분의 한
입다는 길르앗이 기생의 몸을 통해 낳은 아들이었다. 그러나 길르앗의 본처의 아들들에게 미움과 멸시를 받아 집에서 쫒겨 났다. 형들에 대한 미움과 반항심으로 가출하여 돕땅으로 가서 건달패들과 몰려다녔다. 그러나 입다는 큰 용사로서 힘이 장사였으며 전쟁에 능하였다. (삿 11장 1-3절)그러던 중 암몬자손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오게되었다. 장로들은 전쟁에 능한 입다를 찾아가 그에게 '당신은 우리의 장관이 되라'고 하였다 입다는 길르앗 장로들에게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네게 왔느냐?'고 하며 거절하였다. 장로들은 맹세하며 '이 싸움에서 이기면 네가 우리의 머리가 되리라'고 거듭 약속하였다. 건달패의 신분으로 살던 입다는 한을 풀려는 욕심으로 이스라엘의 머리와 장관이 되어 암몬 자손과 싸워 이겼다. 이에 앞서 입다는 여호와께 서원(삿 11장 30, 31절)하였고 암몬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고 입다는 그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였다.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의 무남독녀가 나와서 반갑게 영접하였던 것이다. 입다는 하나님께 한 서원을 생각하며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라고 자기 옷을 찢으며 외쳤다. 결국 입다는 출생신분으로 말미암은 원한은 풀었으나 무남독녀를 잃는 큰 아픔을 겪어야만 하였다. 이것이 입다에게는 또 다른 한이 되었다.

(7) 한나 --아들을 못 낳음으로 사무친 원한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나와 브닌나 였다. 한나는 남편의 사랑은 듬뿍 받았으나 아들이 없었고 브닌나는 첩으로 들어왔으나 아들들을 두었다. 아무리 남편이 애정표현을 해주어도 한나의 빈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다. 한나는 그 무엇보다도 아들을 낳고 싶었다. 그래서 아들을 낳지 못함으로 첩 브닌나에게서 받는 모든 수모를 갚고싶었다. 이것이 너무 강하다보니 원한처럼 가슴에 남게 되었다.

5 목회현장 안에서의 한의 영향
1) 신자의 한이 가정에 미치는 영향
가정은 혈연 공동체이며 동시에 사랑의 공동체이다. 그래서 지구상 어느 단체보다도 결속력이 강하고 이해관계를 초월한다. 그러나 가정의 구성원이 마음에 깊은 상처와 한을 가지게 되면 상황이 급속도로 반전된다. 어릴 적에 생긴 한은 부부관계도 정상적이지 못하게 하며 원만한 부부생활에 지장을 초래한다. 주부는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인데 경쟁자나 감독자로 생각하고 애정을 키우지 않는가 적극적인 애정표현을 피하고 형식적인 부부행세에 그치며 마음을 감추고 절대로 털어놓지 않는다. 따라서 남편이나 아내로서의 자기의무조차 기쁨으로 수행하지 않고 억지로 하거나 가능하면 회피한다 한을 품고있는 사람은 언제나 불평, 불만이 많고 자기 자신외에는 관심이 없으며 특히 매사에 시댁이나 처가에 대해 원망이 많고 명절이나 회갑, 결혼등의 가족모임에 소극적이며 비판적이고 비협조적이다. 더욱이 힘없는 자녀들에게나 혹은 애완동물에게는 공격적이거나 가학적이 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불평, 불만을 발산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대부분 한이 있는 사람은 대부분 말수가 줄어들며(때로는 그 반대가 되기도 함) 대인관계를 피하고 공격적인 성품으로 바뀌며 상대방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부족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 고집이세며 자제력이 약하게 된다. 한은 신앙생활에도 적극적이지 못하게 하며 기도생활과 말씀을 가까이 하는 개인 경건생활에 지장을 가져오고 지극히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감사와 헌신, 찬송과 예배참여가 부진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연스레 영적으로 나태하게 되고 영적성장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 한은 가정의 화목에 지장을 초래하고 원만한 대화가 단절되며 사랑의 관계가 허물어지고 오해와 불평이 많은 부정적인 가정분위기를 만들게 된다

2) 신자의 한이 교회에 미치는 영향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요 신앙공동체로서 신자에게는 가장 평안한 장소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평안함이 유지되지 못하니 교회 안에서 늘 불안하고 쫓기는 것 같은 긴장감을 갖게된다. 그러다보니 늘 초조하고 안정감이 없으며 어쩌다 한번 감정이 폭발하면 무섭게 돌변하여 포악하게 된다 목사에게 인정받기 위해 양처럼 순종을 잘하며 칭찬받기를 좋아하고 매사에 헌신적인 경우가 많으나 기회가 되면 오히려 사나운 이리처럼 공격해 올 수도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매사에 부정적이어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주장하고 자기가 앞장서서 최고인 것처럼 활동해야 되고 목사의 사랑이나 인정을 독차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웃과 어울릴 줄 모르고 독불장군처럼 고집인 강하고 양보할 줄 모른다. 다시 말하면 신자가 가슴에 한을 품은 상태에서 교회에 와서 목사와 인간관계를 맺을 때 악영향을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신자의 한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목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3) 목사의 한이 교회에 미치는 영향
목사는 한 교회의 지도자로서 그 마음의 상태가 교회에 미치는 영향이 지극히 큼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마음에 한을 품고 있을 때 미칠 부정적 영향은 목회전반에 걸쳐 표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음의 생각이 말이나 설교로 표현될 것을 생각해 보면 신자들에게는 크게 작용할 것이다. 가슴에 한을 품고 있는 목사는 다음 4가지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1) 공격적 언어사용
언어는 그 사람의 마음상태를 나타내는 잣대이다. 그가 가진 사상과 신학, 경험이나 질병, 그리고 아픔이나 상처에 따라서 사용 언어가 달라질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목사들이 상처와 한을 가지면 파괴적이고 공격적이며 비판적인 언어를 많이 사용하게 된다. 신자를 포용하고 따뜻하게 감싸주며 위로하고 격려하기보다는 날카로운 말로 아픈 상처를 건드리고 좌절감에 빠지게 하며 의욕이나 용기를 빼앗아버리는 것이다.

(2) 율법을 강조하는 설교
목사는 설교를 한 주간에도 여러번 감당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데 목사의 가슴에 불평과 한숨이 가득차 있으면 은혜와 사랑, 감사와 평화, 소망과 축복등의 내용보다는 주로 율법을 강조하는 설교를 하게된다. 내가 감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감사에 관한 본문의 선택을 피하게 되고 내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기 때문에 평화에 관한 본문의 선택도 주저하게 된다. 이렇게 설교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불순종에 대한 저주, 불신앙에 대한 재앙, 불선행에 대한 죄악을 지적함으로 신자들을 위축시키고 계명과 법도를 따를 것을 강요하게 된다. 결국 한을 풀기 위해 자신들이 공격적인 설교를 할 가능성이 있음을 긍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목사는 설교를 통하여 내재된 스트레스와 억압된 감정을 발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3) 피해의식으로 인한 미숙한 인간관계
목사의 상한마음은 평상시에도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갖지 못하게 작용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이해가 부족하여 사소한 일에도 분열이나 갈등을 유발한다. 그래서 이런 성품의 목사는 신앙(교회, 노회, 총회 또는 기관 등)를 분열시킬 소지가 매우 많다. 우리나라의 교단의 분열이 심각한 것도 이런 각도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4) 영성의 약화
목사는 언제나 경건생활에 힘쓰며 자신의 영성을 유지함으로 목회사역에 충실하여야 한다. 그렇지만 목사의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는 한은 이런 정상적인 경건생활에 지장을 초래하여 영성을 떨어뜨리고 목회의욕을 상실케 하는 경우가 있어 매우 조심스럽다.
목사의 한은 목회(교회)와 개인의 영성생활에 커다란 부정적 요인으로 적용하므로 이를 빨리 해소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은 한 개인의 성격에 흠이가게함으로, 건전한 인격을 소유하지 못하게하며 이기적이고 편협한 사고의 틀에 얽매이게 하고 가정생활에도 원만치 못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자녀와의 관계나 부부관계 또는 고부관계, 부자관계에도 많은 지장을 초래하여 결국 바람직한 인간관계의 저해요인이 되고 만다.
아울러 신자의 한은 교회안에서도 평안을 깨뜨리고 화목한 분위기를 해치며 이기적이고 독선적이게 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목사가 한을 가지게 되면 목회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데, 특히 설교에서나 일상 언어생활에서 매우 공격적인 언어를 선호하고 은혜보다는 율법을 강조하는 쪽으로 기울며 미숙한 인간관계를 갖게되며, 무엇보다 자신의 경건생활 즉 기도와 말씀묵상, 심방이나 설교등에 까지 너무나 치명적인 영향을 주어 영성이 깨어지고 믿음의 능력을 상실할 위험까지 내포하고있음은 주목해야 할 것이다.

6 한에 대한 기독교적 접근
1) 인간의 창조와 타락
(1) 창조 때 인간
인간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였다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아더라고 말씀하실 만큼 선하고 아름다운 존재였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보시기 심히 아름답다고 말씀하실 만큼 거룩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인간에게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부여해 주셨다.. 창조때 인간의 모습은 온전한 모습의 존재였다.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의지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세상을 다스리는 역할을 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존재였다. 지금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인간의 역기능적 모습을 볼 수 없는 완전한 존재였다.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그리고 의지적으로 아무런 문제를 소유하지 않은 존재였다. 그 어떤 역기능의 모습도 관찰할 수 없는 완전한 존재였다. 따라서 창조 때의 인간은 왜곡된 지각체제를 가지지 않았고, 왜곡된 정서를 가지지 않았고, 왜곡된 의지를 가지지 않은 존재였다, 따라서 인간은 인간들 끼리 잘못된 정보나 정서를 나눌 수도 없는 존재 이기에 갈등이나 상처를 주고 받지 않는 존재였다. 잘못된 의지력이나 행동을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2) 타락한 인간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부패해지고 무능해 졌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이 죄로 오염되었다. 인간은 의인에서 죄인으로 전락한 것이다. 죄인된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통하던 위치에서 전락하여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위치로 떨어졌다(창3:10) 죄인으로 전락한 인간은 의인으로서 누려야 할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를 박탈당하고 죄인들이 겪어야 할 모든 비참함과 나약함을 당해야만 한다. 죄인된 인간은 이제 그 성향이 선보다는 악으로 치우치게 된 것이다.
죄로인하여 타락한 인간은 죄악된 본성을 지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죄의 종이 되었고, 선을 추구하기보다는 악을 추구하게 되었고 인간의 심성은 죄로 오염되어 인격의 변화를 가져왔다. 따라서 인간의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죄로 말미암아 죄성으로 오염되고 오염된 인격은 창조 때의 온전한 모습이 아닌 왜곡된 모습으로 작동되고 있다.
그리하여 인간은 그 마음에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여 졌고(창6:5) 마음이 전적으로 부패하여 졌으며(렘17:9) 그 성품이 완악해 졌고(롬2:5), 삶의 전 영역에서 탐욕을 품게하였다(벧후2:14)
죄로 오염된 인간은 영적으로 죽음에 이르렀고, 육체에는 질병이 찾아오게 되었으며, 정서에는 부정적인 감정의 지배를 받게되었고,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대한 지식을 상실하였고, 죄인된 인간은 삶의 매 순간 갈등에 쌓인 채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특별히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된 죄인된 인간은 그 마음에 버림받은 마음이 자리하게 되엇고 영적으로 죽은 이유로 인하여 공허감을 가지게 되엇다. 이 버림받은 마음으로부터 탈피하여 다시 수용되어지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또 영적 죽음으로부터 오는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인간은 다양한 방법의 활동과 목적을 가지고 활동을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기에 그 어떤 활동에서도 만족감 안정감 충족감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죄로 인하여 오염되고 손상된 우리의 인격은 인간 상호간의 상호작용에 늘 혼란을 가져오고 갈등이 유발되게 하고 있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오염되었기에 창조 때의 순수함과 순전함이 없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제 불만족의 존재요 갈등의 존재요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밖에 없고,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힐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우리의 육체 조차도 질병을 가지지 않을 수도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죄된 모든 인간은 상처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바로 이 상처를 다루는 것이 내적치유의 문제이고 목회상담의 문제이고 오늘 우리가 다루고 있는 한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2) 한에 대한 목회적 대처 방안 제의
(1) 예방적 차원
- 기독교적 세계관 교육프로그램의 확대
-. 기독교적 인간이해 교육프로그램의 확대.
(인간의 내면적 상처 및 한에 대한 이해)
- 상호작용(communication) 기술 숙지화
- 예방적 차원의 내적 치유프로그램
- 교회내 다양한 활동프로그램 제공
- 기독교 상담심리 및 목회적 차원의 치유프로그램의 학문적 연구확대
- 내면적 갈등을 해소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제공
-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사회 계몽운동 전개
(2) 치료적 차원
- 목회자 자신의 내면적 상처 치유 참가
- 목회자 자신의 내면적 상처치유 기술 습득
- 내담자 중심의 치유프로그램 제공
( 내담자의 현재 그대로의 모습을 수용하고 인정해 주는 프로그램)
- 자신의 한과 관련된 사건을 마음껏 토로 할 수 있는 환경제공
- 전인적 치유프로그램 제공 및 전문기관 연결
(예 죄된 인간이해 프로그램 제공, 건전한 전인적 활동을 활성화 하는
프로그램 제공)



Ⅲ 결론
한국인들이 특별히 많이 가지고 있다는 '한'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듯한 개념인 것 같으면서도 심리학적으로나 정신의학적으로 그 개념의 규정에서부터 그 생성과정 및 발달에 대한 연구가 아직도 미흡하다. 따라서 한에 대한 이해와 접근은 여러 면에서 미흡한 실정이다. 특별히 목회적 차원에서의 연구는 더더욱 미흡하여 한에 대한 목회적 접근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심리학적 의학적 성경적 측면에서의 문제발생 원인 규명 및 진행과정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도출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에 대한 접근 역시 한의 치유방법에 대한 접근보다는 먼저 학문적인 측면에서 한에 발생원인 및 한의 진행과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문의 말미에 제시된 기독교적 대처 방안은 포괄적일 수 밖에 없었고, 피상적일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앞으로도 한에 대한 더 깊은 연구가 필수적임을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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