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신비에 눈뜨는 영성(Subversive Spirituality) : 유진 피터슨, 그가 추구한 영성, 그가 걸어온 목회 이야기
하나님의 신비에 눈뜨는 영성 Subversive Spirituality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
Subversive Spirituality By: Eugene H. Peterson
유진 피터슨의 상상력과 통찰력이 빛나는 작품들,
그 속에서 영성을 배운다...
영성은 최신 유행이 아니라 가장 오래된 진리다. 영성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한 깨어 있는 관심이며, 공동체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신실한 반응이다.
우리가 출발점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곧이어 일어나는 순종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놓을 것이다. 우리의 고집스러운 습관이나 틀에 박힌 일상에서 비롯된 상투적인 행동들이 다시금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과 십자가와 부활로 나아간다.
이 책은 유진 피터슨이 목회자로서, 작가로서, 또 교수로서의 삶 가운데서 목격한 내용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영적인 삶 속에서 지나쳐버리기 쉬운 측면에 대한 유진 피터슨의 이 글들은 그만의 뛰어난 상상력과 통찰력으로 더욱 빛난다. 이 책은 유진 피터슨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영성에 대한 그의 묵상, 성경 연구, 시, 목회자들을 위한 글모음, 그리고 여러 잡지사와의 인터뷰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유진 피터슨의 목회관과 영성관뿐만 아니라 그의 삶과 그의 고민까지도 엿볼 수 있다.
유진 피터슨은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크리스천의 삶은 타락으로 상실된 것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러 사물과 개념들, 다양한 사람들과 사건들, 그리고 그 가운데 성경을 만나고, 주목하며, 손을 뻗어, 접촉한다. 그 모든 것들은 자아로 가득 찬 우리의 영혼과 죄로 흐려진 눈으로는 지나쳐버리기 쉽다."
마가복음 속에는 다른 등장인물들도 많이 나온다. 병들고 배고픈 자들, 희생된 자들과 소외된 자들, 친구들, 그리고 적들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중심인물은 언제나 예수님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어떤 사건이나 인물들도 예수님과 상관없이 등장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들의 삶을 위한 맥락과 내용을 제공하신다. 영성, 즉 우리 영혼에 쏟는 관심은 실제로 예수님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께 쏟는 관심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마가복음을 실천에 옮길 때 밝히 드러난다. 마가복음은 그러한 인식과 실천을 우리 속에 훈련시킨다. 마가복음의 한 줄 한 줄, 한 장 한 장에 오로지 예수, 예수, 예수밖에 없다.
한 번의 부활이 있었다. 그리고 부활에 대한 네 가지의 이야기가 있다.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은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에 따라 부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각각의 이야기는 독특하고 저마다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서로 보완적인 네 가지 이야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각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알리고 다른 이야기들로부터 구별되는 독특한 특징들을 확대하여 드러낼 수 있다. 그런 작업을 수행할 때 우리의 상상력은 확장되고, 부활은 선명한 특징들과 실제적인 생명력이라든가 든든한 외관을 지니게 된다. 네 복음서 기자의 예술가적 재능을 통해 한 지역의 역사적 특수성과 구체성은 우리가 그 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살아난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갑작스레 쏟아지는 눈물,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은
깊은 협곡을 침식시키고,
수십 년의 평화로운 세월 속에 묻혀
오랫동안 잊혀졌던 인생의 단층을 드러낸다.
불모지의 아름다움.
매일 화사한 색으로 협곡과 암석의 대지를 장식하는 태양,
바로 그 태양이 모든 과거의 상처와 비탄의 고통까지 비춰준다.
울음은 상처를 깨끗이 씻어내어 그 상처를 아물게 한다.
아무는 데 필요한 한두 세대의 시간.
지나간 고통은 결코 추하지 않다.
자비하심 안에서 모든 상처는
존재의 위대한 사슬과 연결되어 있는 화석이 된다.
파헤치고 드러내는 기도는
죽음의 골짜기에서 건져 올린다.
고통과 상처를.
In Subversive Spirituality Eugene Peterson has gathered together a host of writings penned over the past twenty-five years that reflect on the overlooked facets of the spiritual life. This variety of work captures the epiphanies of life with the pleasing pastoral style and inspiring depth of insight for which Peterson is well known. Freshly phrased and refreshingly honest, these reflections will lead readers into a deeper understanding of the spiritual meaning of the Christian life.
이 책은 유진 피터슨이 목회자로, 작가로, 또 교수로 살아오면서 목격한 내용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영적인 삶 속에서 지나쳐버리기 쉬운 측면에 대한 유진 피터슨의 이 글들은 그만의 뛰어난 상상력과 통찰력으로 더욱 빛난다. 이 책은 유진 피터슨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영성에 대한 그의 묵상, 성경 연구, 시, 목회자들을 위한 글모음, 그리고 여러 잡지사와의 인터뷰 등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유진 피터슨의 목회관과 영성관뿐만 아니라, 그의 삶과 고민까지도 엿볼 수 있다.
유진 피터슨 Eugene H. Peterson
우리 시대 최고의 영성 신학자이자 목회자. 삶의 대부분을 한교회의 목회자로서 보낸 그는 우리 가운데, 또 우리 안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계시를 살아내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곧 기독교적 삶에 대한 천착으로 이어져 그의 영성 신학의 근간을 이룬다. 신학과 교리에 의해 규정된 정형화되고 규범화된 신앙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인도함으로 빚어지는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과 그 순종이 드러나는 장소로서 강조되는 ‘일상’은 그의 삶과 신학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시대와 목회 현장을 이해하기 위해 소설을 읽어야 하며, 말을 사용하여 많은 사역을 하는 목회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시인을 좋아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그에게서 ‘목회자들의 목회자’란 면모를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 자신이 추리소설을 읽고, 고전 소설에서 신학적인 통찰력을 이끌어내며, 마라톤 경주에 참여하고, 아내와 함께 즐겨 산행한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이 살아온 대로 글을 쓰고 있으며, 또한 써 온 대로 살고 있다. 저서로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현실, 하나님의 세계>, <이 책을 먹으라>등 20여 권이 있다. 30여 년의 목회 사역 가운데 다듬어진 그의 시적 탁월함과 탄탄한 주해 실력이 견고하게 결합된 <메시지Message>(2002)는 성경을 현재 미국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영어로 옮긴 것이다. 지금은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리젠트 칼리지의 영성 신학 명예교수로 있으며, 미국 몬태나에서 저술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슬하에 세 명의 자녀, 그리고 여섯 명의 손자와 손녀를 두었다.
목차보기
서문
제1부 영성
1. 마가복음 : 기독교 영성을 위한 기본 텍스트
2. 출발점으로 되돌아가기
3. 영성의 추구
4. 작가와 천사들 : 초월성의 목격자들
5. 영성 형성의 장소, 신학교
제2부 성경 연구
6. 거룩한 그루터기
7. 수덕 신학자 예레미야
8. 요한계시록에서 배우는 경배
9. 계시록 : 메체가 메시지다.
10. 부활 4중주
제3부 시
11. 거룩한 행운
제4부 목회자들을 위한 글모음
12. 밧모섬에서 지어진 시 : 목회자, 시인, 신학자 사도 요한
13. 상상력의 대가들
14. 울프의 옷을 입고 있는 양
15. 커피잔 사이의 주전자
16. 예식 주관하기
17. 돌보는 법과 돌보지 않는 법을 가르쳐주소서
18. 예상치 못한 동맹군
19. 소설가, 목회자, 그리고 시인
20. 목회자와 소설
제5부 대화
21. 유진 피터슨과의 대화
22. 우연한 의도 : 목회에 대한 접근법
23. 파괴적인 영성
24. 오순절파, 시인, 그리고 교수에 관하여
25. 열정, 기도, 그리고 시에 관하여
거룩함은 우리가 순수한 삶, 즉 먼 곳에서 바라보면서 간접적으로 즐기는 삶이 아니라 근거가 확실하고 직접적인 삶에서 얻는 가장 강렬한 경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말하거나 그것에 관해 읽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그분이 친히 운행하시는 역사 위에서 살아가시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우리가 자기 자신보다 더 확실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또한 자신을 너무나 쉽게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거룩함을 길들일 수 없다.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 사진을 찍어와 아내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 이사야가 보았던 찬양하는 천사들은 헨델의 오라토리오 연주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사야는 그 찬양을 녹음한 CD를 구입하여 나중에 한가한 시간에 다시 들을 수도 없었다. … 거룩함은 거기에 가까이 다가오는 자들을 변화시키는 용광로다. 거룩, 거룩, 거룩은 기독교인들의 장식품이 아니다. 그것은 혁명적인 대변혁을 위한 깃발이다.
우리가 출발점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곧이어 일어나는 순종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놓을 것이다. 우리의 고집스러운 습관이나 틀에 박힌 일상에서 비롯된 상투적인 행동들이 다시금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과 십자가와 부활로 나아간다.
영성은 언제나 자기 열심으로 빠질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영혼의 문제와 깊이 관련되어 있으므로 하나님을 내 경험의 부속물 정도로 취급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잘못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많은 주의와 경계가 필요하다. 영성 신학은 이러한 경계의 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영성 신학은 우리가 예수님의 이야기에 대한 완전한 그리고 성숙한 참여자가 되도록 훈련시키는 규율이며 기술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그 이야기를 대신하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역할도 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마가는 우리에게 기본적인 텍스트를 제공했다. 마가복음 중심에 있는 길과 변화산의 두 이야기는 다분히 예언적이다. 두 이야기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예언한다. 두 이야기는 우리를 금욕적인 부정과 심미적인 확신에 잠기게 하며 훈련시킨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우리를 그곳에 남겨놓지 않는다. 그 이야기들은 우리를 고난 받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단호한 "아니오"와 "예" 속에서만 완성되는 믿음과 순종의 삶으로 던져 넣는다.
영성이 북미지역을 순식간에 휩쓸고 있는 것처럼 지난 십여 년 동안 한국에서도 사람들의 영성에 대한 관심은 더 깊어져 가고 있습니다. 한국은 60-70년대에는 부흥회를 통한 성장이 있었고, 80년대에는 제자훈련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습니다. 그리고 90년대 이후로 성령과 영성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지면서 영성이라는 말은 이제 가장 유행하는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영성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영성을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하나의 유행처럼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진 피터슨은 말합니다. “영성은 최신 유행이 아니라 가장 오래된 진리다. 영성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깨어 있는 관심이며 공동체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신실한 반응이다.”
성장하려고 안달하지 않고, 현상 유지나 내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미국 교회와는 달리, 한국 교회는 성장을 열망합니다. 한국 교회의 급속한 성장은 바로 그러한 성장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유행하면, 너도나도 도입하고, 또 다시 새로운 프로그램을 찾아 해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이 만족되지 않는 것은 한국 교회가 얼마나 세속화되어가도 있는지를 반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식과 쾌락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입력시키려는 세속사회의 모습을 점점 닮아갑니다. 그 채워지지 않는 부분은 인간에 대한 친밀함과 하나님의 초월성을 경험하기 원하는 인간의 심성을 보여준다 할 수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다음과 같이 진단합니다. “사람들은 세속주의가 인간을 풍성하게 해주는 본질적인 두 가지 요소, 친밀감과 초월성을 점점 무시하고 결국에는 제거해 버린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친밀감: 우리는 인간의 사랑과 신뢰와 기쁨을 경험하기 원한다. 초월성: 우리는 신의 사랑과 신뢰와 기쁨을 경험하기 원한다.”
기독교 역사 속의 위대한 인물들은 결코 영성에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친밀함 없이 신학적인 사유만을 통해서 기독교 거장이 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과의 친밀함과 초월성을 경험하는 훈련들을 삶을 통해 했기 때문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지식의 전달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초월을 경험하기 원하고, 만져보기 원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유진 피터슨의 글을 통해 설교와 설교의 관계에 대해 나의 이해에 도움을 준 개념은 설교는 그 설교를 하는 설교자의 영성, 즉 사람들과의 친밀함과 하나님과의 초월성의 체험, 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이 시대가 그토록 친밀함과 초월성을 갈망한다는 사실은, 이 시대의 설교자들의 설교가 사람들과의 친밀함과 하나님과의 초월성의 깊은 체험으로부터 나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서, 메마르고 건조한 지식 전달 중심의 설교는 더 이상 사람들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또한 설교자 자신이 움직여지지 않는 설교는 청중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영성에서 흘러나오는 설교, 사람들을 움직이는 설교를 위해 설교자는 사람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설명하며 돕는 신학자이자 바른 목회자가 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설교자는 청중들로 하여금 말씀의 현장을 더욱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풍부한 상상력의 시인이요 소설가와 같아야 합니다. 이처럼 설교에 있어서 “상상력과 설명이 상호보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설교는 설교자의 영성에서 흘러나와야 한다는 개념은 단순히 유행하는 설교 기술의 하나라기보다는 설교자가 자신의 삶과 주변의 사람들과의 친밀함을 통해 그리스도의 역사하심을 발견하고, 깊은 말씀의 묵상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초월성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값진 통찰력입니다.
그러나 영성을 추구함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영성은 말씀에 대한 지식이 결여된 열광 혹은 체험으로 치우친 그 무엇이라는 잘못된 개념을 갖고 있었지만, 피터슨은 말합니다. “말씀은 언제나 최우선순위이다. 말씀이 그러한 최초성, 그러한 탁월함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 때, 모든 것이 그릇된 길로 나아간다.” 기독교 영성도, 나의 영성도 말씀을 그 중심에 놓지 못할 때, 오히려 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국어 성경에 많이 번역된 "알다"이라는 단어는 “그러하다고 믿거나 생각한다."를 뜻하며 경험적, 체험적 의미는 다소 배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알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인 “야다”는 남녀 간의 성적인 관계를 뜻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곧 그분과의 깊은 친밀함과 초월감의 체험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머리나 사유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육신이 되신 말씀은 지금도 살아 내 삶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그분의 역사하심을 사람들의 삶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깊은 통찰력을 얻기 원하고, 또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들을 섬기는 가 되고 싶습니다. 사람들과의 사랑과 신뢰를 통해 경험하는 친밀함과 말씀의 깊은 묵상과 친밀한 기도의 시간들을 통해 경험하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날마다 만져보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성경적인 영성"에서 흘러나오는 설교를 통해, 삶을 통해 주님을 섬길 수 있기를 가만히 기도해 봅니다.
*좀 더 깊은 묵상을 원하시는 분들은 유진 피터슨의 "Subversive Spirituality" (하나님의 신비에 눈뜨는 영성, 좋은씨앗)를 보기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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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헌] 유진 피터슨의 영성세계
목회자들의 목회자로 알려진 유진 피터슨의 글은 언제나 영성이 풍부한 글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이 책은 그런 영성을 추구한 유진 피터슨의 영성을 여러 가지 성경의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책이다. 영성은 무엇보다 공동체 속에서 일어나야한다.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것으로 나타나기 보다는 습관적인 행동에서 상투적으로 나타나기 보다는 예수님과 함께 부활까지 가는 힘은 진정한 변화를 삶속에서 접했을 때이다. 유진 피터슨의 영성을 토대로 지금 영성시리즈를 읽는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김형식] 조금은 어려운 영성 이야기
가장 첫 느낌은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서평을 꼭 써야하는 부담이 없었다면 아마도 중도에 포기를 했을 만큼 어렵고 무거운 책인 것은 분명하다. 400쪽에 가까운 분량도 부담이...100쪽 정도를 읽다가 포기하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꼈지만, 드디어... 영성신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저자가 영성, 신앙생활 그리고 신학 등 전체의 부분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중간부에 시도 있고, 마무리는 대화로 이루어져 보기가 훨씬 좋았다. 개인적으로 인터뷰 식으로 구성된 글들은 보기도 좋고 이해하기도 쉬웠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그것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하든지 그 중심이 주께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영성에 의한 삶이라 여기질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단순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씀을 듣기만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분의 속죄의 수혜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참여자의 자유와 품위를 가지고 그분의 죽음을 함께 죽고 그분의 생명을 살라고 초대받았다. 바로 여기에 놀라운 사실이 담겨 있다. 우리는 이야기의 중심이 되지 않으면서도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p31)
기독교의 영성은 우리의 경험을 말하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진정한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고, 치료하고, 용서하는 것을 들음으로부터 시작된다(p49)
크리스천의 삶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행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로 이루어진다. 크리스천의 삶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우리도 무언가를 행하기도 하며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행동하고 말할 때마다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곧 하나님과 거의 혹은 전혀 상관없는 영성을 실천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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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유진 피터슨의 작품들에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찾아 볼만하다. 나 또한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묵시 , 현실을 새롭게 하는 영성', '주와 함께 달려가리이다.', '한길 가는 순례자' 등을 통해 그에게 매료되었기에 이 책까지 온 것이다. 이 밖에도 많은 작품들이 번역되어 알 만한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고 본다. 이 책을 읽어보면 그의 작품의 모티브(요한 계시록, 예레미야, 모세 등)를 발견할 수 있어 그의 작품의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뷰 내용은 목회자가 아니더라도 공동체에 대해 함께 공유해야 할 귀한 가르침이 녹아있다. 주로 목회자들의 목회자라고 불린다지만 소위 평신도로 분류되는 사람들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인물이다. 아니 오히려 삯군이 많은 이 시대에 평신도들이 그의 이런 작품들을 더 가까이 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제가 기도라는 외형적인 행위에 몸담고 있을 그 시간, 누가 보아도 제가 기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챌만한 시간, 사실은 진짜 기도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어느 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전 그저 기도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침 8시에 제가 무릎 꿇은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의자에서 일어날 때, 바로 그 때가 기도를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제가 입술로 기도드리는 시간은 제가 기도를 준비하기 위해 지내는 시간일 뿐입니다"
" 저에게 공동체란 서로 돌보는 법을 배워야 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효율적인 모든 조직들은 공동체를 제한하고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조직들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결코 교회에 걸맞은 분위기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 사무실의 직원들은 어떤 면에서는 비효율적이지만, 효율성이라는 문제는 사람들을 인내로 대하며 동역자로 인식하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이 교회에 부임했을 때, 우리의 목표는 영적인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일이 아주 쉽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 함께 기도하고, 찬송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향상을 이루었다는 느낌도 받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교인들 가운데 젊은 여인이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녀는 서른한 살이었고 여섯 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죽은 후 한 달 후에, 아이들의 아버지는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집마저 잃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아이들을 우리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갑자기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음식이 현관 앞에 놓여 있기도 하고, 교인들이 전화를 걸어 아이들을 데리고나가 즐겁게 놀다오기도 했습니다. 이제야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촉진제가 되었지요.
이제 교인들 속에 믿음의 공동체가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불길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친절한 배려가 곳곳에 나타났고 교인들은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기적처럼 보였지요. 한 가지 사건이 그런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이전의 모든 시도가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구제를 위한 모임까지 만들어졌습니다.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교회가 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공동체는 세워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계획하지 않았던 일을 행했고, 성공-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을 가져왔습니다. 제가 보기에, 성공하기를 원하는 오만하고 고압적인 욕망이 진정한 공동체의 형성과 진정한 성공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험적인 일들을 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지요. 그러면 우리는 참된 성공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교회의 가장 큰 적은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지니고 있지만, 그런 욕구들은 상당히 왜곡되어 있습니다. 영적 지도력의 기술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채워주면서도 거기에 휩쓸리지 않게 보살피는 것이죠. 목회자는 교인들의 삶의 영역이 서서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쪽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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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하늘과 땅,
현재와 과거,
현재와 미래 사이를 연결하는 능력이다.
거의 모든 관심을 비가시적인 세계에 쏟고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상상력은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로지 상상력을 통해서만 실체를 그 맥락 속에서 온전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그루 나무를 눈앞에 두고 내가 ‘바라보는’ 것은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나는 대지 아래로 뻗어 있는 뿌리체계를 본다. 뿌리는 땅속으로 덩굴손으로 뻗쳐 토양에서 양분을 빨아들인다. 나뭇잎에 에너지를 쏟아 붓는 태양빛을 본다. 그리고 몇 달 후에 열리게 될 열매를 본다. 다가올 겨울, 눈과 바람을 맞으며 검소하게 살아갈 나뭇가지를 한참 동안 응시하기도 한다. 나는 모든 것을 바라본다. 하지만 당장 그 자리에서 그런 모습들의 사진을 찍을 수는 없다. 상상력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미숙해 활동하지 못할 때 나는 오직 내가 만질 수 있고 눈앞에 있는 것만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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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을 요구하지 않는 영성은 피하라.
예수님 안에서 인격적으로 계시된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헌신이야말로 영성의 중심이다. 교회 안팎에 널리 퍼져 있는 이상한 영성들은 헌신을 무시하거나 부정한다.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믿고 따르고 인내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모든 영성의 핵심에 놓는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에 대한 평생에 걸친 믿음의 헌신은 참된 영성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소설가 포스터는 “황홀경은 영원하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영원한 것을 향한 통로를 단절시켜버린다”고 말했다. 성실하고 인내하는 믿음은 영성의 진정성을 확인시켜준다. 영성의 문제에 대해 우리가 격려를 구하는 믿음의 선조들, 예를 들어 히포의 어거스틴, 노리치의 줄리앙, 존 칼빈과 에이미 카마이클, 존 번연 그리고 아빌라의 테레사 등은 가볍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헌신 없는 영성은 책임 없는 성행위와 비슷하다. 성급하고 우발적이며, 피상적이고 비인격적이며, 이기적이고 사랑이 없다. 그것은 결국 처음에 했던 약속에 대한 서투른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 헌신이나 책임이 없는 성행위는 중독과 폭력, 그리고 권태로 전락한다. 헌신 없는 영성은 아무리 그럴 듯하고 유망해보일지라도 오래 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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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향하여 살아가기-유진 피터슨 읽기
유진 피터슨에게 영성은 “하나님을 향하여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유진은 어떤 특정 시대의 문화적 흐름으로서의 영성이라는 단어에 대해 경계한다. 그에게 영성은 다만, 오래된 진리다. 그것은 아주 오래 전에 성경으로 주어졌으며 교회의 역사 속에 던져진 전통이었다. 그리고 그 영성은 어떤 언어로 규정된 역할들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일관됨’과 ‘통합성’으로 다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유진의 저작들은 큰 흐름에서, 그가 말한 영성에 대한 정의를 ‘이야기’로 풀어내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진리는 곧 ‘이야기’ 자체다. 우리는 해석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러티브, 즉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하나님의 신비에 눈뜨는 영성」, p. 299). 모든 존재는 저마다 자신을 형성해 나가는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진리도, 성경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유진의 주요 저작 대부분도 ‘이야기’라는 주요 수단을 통해 그 진리를 풀어내고 있다.
그의 저작에 나타나는 주요 관심은 대략 다음 세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첫째, 성경 자체에 대한 추구와 순종. 둘째, 영성을 오늘의 언어와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 셋째, ‘목회자들의 목회자’로서의 관심과 저술. 물론 이 세 가지 관심은 각기 다른 지향점을 가진다기보다는, 오히려 동일한 전제 위에서 동일한 지향점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2005년에 미국에서 출간되었으며 한국 IVP에서 2월 출간될 「일상, 그리스도의 영광이 깃드는 자리」(Christ plays in ten thousand place)는 바로 그것을 종합적으로 규정하는 작업일 것이다]. 다만 그것을 각기 다른 독자를 대상으로 대화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여기서는 국내에 소개된 저작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성경 자체에 대한 추구와 순종은 유진에게는 매우 오래된 작업이었다. 그것은 그의 평생의 작업이자 사역이었으며, 모든 저술과 강연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오늘의 그를 전 세계에 알리게 한 대표 저작인 The Message를 필두로 「시편으로 드리는 매일 기도」, 「복음서로 드리는 매일 기도」(이상 홍성사), 「아침마다 새로우니」(복있는사람), 「모세와 함께하는 기도」, 「선지자와 함께하는 기도」, 「누가와 함께하는 기도」(이상 죠이선교회) 등이 이에 속할 것이다.
유진은 영성을 논할 때 우선적으로 ‘출발점으로 돌아갈 것’을 강조한다. 그 출발점은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이다(「하나님의 신비에 눈뜨는 영성」, p. 38). 따라서 유진의 영성은 성경을 향한 깊이 있는 추구에서 시작된다. The Message는 그의 필생의 작업이었다. 유진에게 성경은 공부하고 해석해 내야 하는 학문의 대상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 속에서 우리들의 언어로 풀어내야 할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런 그의 작업은 전 세계 수백만의 독자들에게 성경을 그들의 삶으로 구현해 내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 왔다. 또한 그는 성경으로 기도하는 훈련을 권한다. 다른 대부분의 저작들은 언어적 상상력이 매우 돋보이기도 하지만, 정작 그는 실제적인 영성 훈련은 성경 말씀 그 자체로 이루어질 때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깊이 있게 진행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은 오래된 교회의 전통이었으며 순종 그 자체다. 우리는 이 책들을 통해, 그 말씀이 우리 ‘속사람’의 가장 정직한 언어를 담아내고 있음을 발견하며 놀라게 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깊은 내면세계, 성경에서 흔히 ‘마음’이라고 하는 우리 인격의 핵심이 드러날 때,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맨 처음 언어로 되돌아가 기도하게 됩니다”(「시편으로 드리는 매일 기도」, 머리글 중에서).
그의 저작에 나타난 두 번째 관심은, 영성을 오늘의 언어와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다. 그의 저작 중 가장 사랑받는 작품들이 대부분 여기에 속해 있으며, 그에게 붙은 ‘영성신학자’라는 칭호는 이 저작들로 인한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가장 잘 보여 주기에 유진 스스로 가장 애착을 갖고 있다는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을 비롯하여 「한 길 가는 순례자」, 「묵시: 현실을 새롭게 하는 영성」, 「주와 함께 달려가리이다」, 「응답하는 기도」(이상 IVP), 「유진 피터슨의 기도학교」(죠이선교회), 「친구에게」, 「거북한 십대, 거룩한 십대」(이상 홍성사) 등이 여기에 속한다.
성경 신학적 바탕을 통해 관찰된 내용들을, 풍부한 상상력이 깃든 매력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그렇게 풀어 낸 이야기들은 가장 인간적인 존재감을 기반으로 한 일상에의 탁월함을 지향한다. 이러한 저작들 속에 나타나는 유진의 언어는 매우 간결하다. 에둘러 가지 않으면서도 본질을 쉽고 일상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국내에 제일 먼저 소개되었던 유진의 책이 「친구에게」가 아닌가 싶다. ‘우정으로 양육하는 편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바로 그러한 유진의 언어가 갖는 매력을 마음껏 맛볼 수 있다. 40년 간 교회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친구에게 쓴 54통의 편지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유쾌한 언어로 신앙생활 전반(성경, 기도, 영성, 교제, 교회, 직업관, 하나님의 뜻을 찾는 법 등)에 관해 실제적으로 안내해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책은, 그가 세상에 처음 출간한 책인 「한 길 가는 순례자」다. 제자도를 다루는 수많은 책 가운데, 나는 이 책을 첫 손에 꼽고 싶다. 그의 말대로, 진정한 제자의 삶은 오랜 세월, 오직 하나의 진리를 향한 지고지순한 순종과 다름 아니다(A Long Obedience in the Same Direction). 제자의 삶은 완고한 고집과 순간의 열정적 몸짓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오랜 여정 속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유진 피터슨은 한편 ‘목회자들의 목회자’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29년 간 한 교회에서 사역했던 목회자이기도 하다. 그에게 목회는 그가 오래도록 추구했던 영성에의 추구, 영성을 오늘의 언어와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과 다름 아니다(“목회 사역은 평범한 속에서 구체화되는 기독교 신앙의 특징적인 단면이다. 신앙을 현실 속에 실용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목회 사역은 분리나 중립, 고의적인 고립, 또는 이원론적인 내세관을 싫어한다.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목회 사역이다”, 「다시 일어서는 목회」, p. 9). 그는 목회자들을 향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돕기를 원했다. 29년간의 자신의 목회 사역을 마감한 뒤,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강연과 집필을 계속했다. 마르바 던과 함께 작업한 「껍데기 목회자는 가라」를 비롯하여, 「다시 일어서는 목회」, 「균형, 그 조용한 목회 혁명」, 「성공주의 목회 신화를 포기하라」, 「목회 영성의 흐름, 주일과 주일 사이」, 「하나님의 신비에 눈뜨는 영성」(이상 좋은씨앗) 등은 목회자들을 향한 그의 애정과 관심을 잘 보여 주는 주요 저작들이다.
이 부분의 가장 대표적인 저작은 「다시 일어서는 목회」일 것이다. 이 책은 목회 사역의 두 영역을 언급함으로 자신의 논의를 발전시키고 있다. 첫 번째 영역은 영원하신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일이다. 두 번째 영역은 각기 다른 환경과 특성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그 첫 번째 영역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첫 번째 영역의 당위는 두 번째 영역에 대한 탁월함을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그 탁월함은 구체적으로 기도의 목회 사역(아가서), 이야기 서술의 목회 사역(룻기), 고통 분담의 목회 사역(애가), 거절의 목회 사역(전도서), 공동체 건설의 목회 사역(에스더서) 등을 고찰하고 훈련함으로 이루어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유진 피터슨은 내 삶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선생 중 하나다. 때로 그는, 시대의 아픔을 가슴에 간직하되 시대의 야만과 용감하게 싸웠던 전사 다윗의 모습으로, 존재가 가진 필연적 한계와 시대의 절망을 눈물로 탄원하여 희망으로 바꾸었던 예레미야로, 천지를 진동하는 뇌성으로 임하던 그분의 신비를 목격하며 감동했던, 그것을 벅찬 기쁨으로 토해 내던 사도 요한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또 때로는 기민한 감수성과 탁월한 언어를 가진 시인으로, 거북한 십대를 거룩한 십대로 껴안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교사로, 절망하여 주저앉은 사역자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목회자로 다가온다.
분명히 난 아직, 그가 그토록 강조한 ‘한 길 가는 순례자’의 오랜 순종을 가지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희망적으로 기대하는 한 가지가 있다. 내 안에 그 진리에 대한 출발점이 이미 오래 전에 주어져 있다는 것과 그 진리를 향한 발걸음을 따뜻하고 유쾌함으로 안내해 주는 선생, 유진이 여전히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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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신비에 눈뜨는 영성 원 제 Subversive Spirituality 부 제 유진 피터슨, 그가 추구한 영성, 그가 걸어온 목회 이야기 저 자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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