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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묵상

주님과의 사귐

by Ddak daddy 2023. 8. 3.

주님과의 사귐(교제)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우리는 여러분도 우리와 서로 사귐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입니다. 우리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우리 서로의 기쁨이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새번역 요한일서 1:3-4)

 

 

 

 

 

우리는 교제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친구(벗)일 것이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친구"라 하셨다.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선택한 야곱아, 나의 친구 아브라함의 자손아!"(사 41:8)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굉장히 아끼고 사랑하고 신임하셨음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주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친구(동창, 선배, 후배)를 내세우거나 자랑할 때가 있다.
 
"경찰청장이 내 동창이야, 아무개가 내 친구야, 누가 내 선배야" 등 등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과의 교제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은
주님과의 교제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야 될 것이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과 함께하시겠다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에녹과 300년 동안 동행하셨다. 에녹은 300년 동안 늘 하나님께 순종하며 교제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과 함께 하셨으며 이집에서부터는 모세, 아론, 여호수아와 함께 하셨으며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 후에는 여러 사사들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을 비롯한 여러 왕들과 여러  예언자들과 함께 하셨다.
그리고 이 땅에 자신의 아들을 보내시기 전에 그 아들에게 "임마누엘" 이라는 이름을 주셨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과 함께하시기 위해서 그 아들까지 이 땅에 보내셨다. 그리고 그 아들 예수도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고
"친구"라고 하셨다.(요 15:15) 그리고 우리 인생들(성도들)에게 자신과의 교제(사귐)를 명령하셨다.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너희도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새번역 요한복음 15:4-5)
 
또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마 28:20)
 
이 말씀은 무엇보다도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한하여 하신 말씀이라고 여겨지며, 주님을 믿고 영접할 때에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계시록 3:20)
 

 

요한일서에 강조되어 있는 것은 교제와 이단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요한일서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사귐’이. 사귐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이며, 또한 교회 공동체에서의 성도 간의 사귐인 것이다.

 

공관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생애가 집중적으로 기록되었다면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기 위해 집중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요한일서, 이서, 삼서에서는  요한복음에서 보여준 예수님과의 진정한 사귐이 무엇이며, 어떻게 사귀는 것이 옳은가를 가르쳐주고 있다. 요한이 사귐에 집중하는 이유는 초대교회 안에 일어나 영지주의적 이단들 때문일 것이다. 그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하며, 정결한 삶을 거부하였다.

하나님은 거룩하신분으로서 우리와의 사귐에 있어서 우리의 거룩한 삶을 원하신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 19:2)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대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요일 1:6-7)

 

 

우리의 삶에 있어서 늘 주님과의 사귐(교제)이 있으면 요한복음 15장 5절의  말씀처럼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우리의 육적인 것은 둘째로 치고 영적으로 풍성한 삶이 이루어질 것이다.

요한일서는 균형 잡힌 기독론을 제공하고 있으며, 윤리적인 잘못을 논박하고, ‘미래적 종말론 강조하고 있다. 요한일서는 세상을 이기는 방법이 그리스도와의 사귐에 있으며, 사귐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이해와 믿음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성령을 통해서 바른 사귐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요한일서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영적 친밀함을 누려야 될 것이다. 여기서 영적친밀함은 바꿔서 말하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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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 6:6)

 

예배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형식적인 예배보다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고 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무시했고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행동했다. 해서 그들의 인생은 죄로 얼룩졌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른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잘 알고 계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른다 하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행동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다 알고 계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갈 때에 하나님이 나를 알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참으로 우리가 바른 인생, 올바른 삶을 살아가려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 9:10)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우리는 아는 것은 보통 지식으로 아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체험적으로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알라고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 바른 교제관계에 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의미이다.

성경에서 안다는 것은 인격적인 앎을 의미한다.

우리는 주님과 사랑의 파트너가 되어서 교제하며 동행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 안에서 실천적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알고, 친밀히 교제하며, 동행하는 삶을 영위할 때에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말을 바꾸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주님과의 사귐의 삶인 것이다.

 

끝으로 주님과 사귐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기도하는 사람이며, 늘 주님을 찬양하고, 늘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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