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이란 무엇인가] - 에르네스트 르낭(1823~1892).
미루어 두었던 리뷰를 이제야 쓰다..^^
조제프 에르네스트 르낭(Joseph Ernest Renan, 1823년~1892년)은 프랑스의 언어학자·철학자·종교사가·비평가이다. 39세에 철학교수 자격을 얻지만 취임연설에서 예수의 신성성을 부인하여 그는 결국 해직된다. 프랑스와 독일 전쟁 당시 독일의 신학자 슈트라우스와 서신을 교환하면서 자유주의 사상을 교유하고 전쟁이 중단되어야 함을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프랑스의 재건을 위해서는 프로이센(비스마르크)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이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공직에서 물러나 저술 활동에만 주력한 인물이다.
그는 생전에 존경과 야유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받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극단적 민족주의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예가 역사에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독일 나치, 게르만 족들에 의한 이스라엘 유태인들이 대규모 학살을 당한 일일 것이다. 이 민족이란 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그들은 그러한 만행을 저질렀을까(물론 이유가 복합적임을 짐작한다). 자기 민족만 우수하고, 신에게 부름을 받았으며, 선하다고 믿는 이러한 민족성은 믿음 그 자체로 머물지 않고 전쟁과 침략을 통해 무수한 인명과 문화를 죽이고 깨 부수었다.
오늘날, 세상이 많이 변했다지만 가까이에 있는 중국의 중화사상(화이사상)이나 (아직도) 천왕제가 있는 일본을 바라볼 때 이 민족이란 개념이 객관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아직도 각자의 논리에 맞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나라의 문화는 이적이라 하여 무조건 배척하고, 자기 민족은 '하늘의 왕'을 모시고 있다는 일종의 선민사상을 지니고 있는 민족이 우리의 이웃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민족'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
르낭은 민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민족은 인종에서 유래하는 것도, 언어로 구분되는 것도, 종교로 결속되는 것도, 그리고 국경선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또한, 민족이란 언제든지 새로 생겨날 수 있으며, 언젠가는 종말을 고하게 되는 개념일 뿐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르낭은 그러한 독일식(인종과 언어로서 민족을 구분하는) 민족주의 원리를 배격하며, 인간 자체를 생각하자고 주장한다.
한 때 독일학자 몸젠(Theodor Mommsen)이 인종적, 언어적인 것을 고려할 때 알자스, 로렌 지역이 게르만 독일에 소속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을 했는데 이에 대해 르낭은 아래의 반박글을 남겼다.
"(책내용에 있는 다른 내용을 좀 더 보태서 그대로 전한다) 당신(몸젠)은 알자스 인구가 게르만족이고 언어도 독일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독일 민족이라는 것이 증명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럽에 눈을 돌려 보십시오... 프랑스에서는 다섯 가지 언어가 사용되고, 스위스에서는 세가지 언어, 두 개의 종교, 서너 인종으로 구성되지만 프랑스와 스위스를 두고 민족적 통일성과 애국심이 모자란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민족국가를 결정하는 것은 .... 인종과 언어를 떠나 사람들의 사상, 이해 관계, 애정, 추억, 희망 등을 통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때 .... 그것이 바로 조국이지요. 사람들이 함께 전진하고, 함께 일하며, 함께 싸우고, 함께 살기를 원하고, 때로는 서로를 위해서 죽음을 불사하기도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함께 하기를 원하는 것이 바로 '민족'이란 것이다라는 말, 멋진 말이 아닐 수 없다. 하나의 민족이 되려면, 그렇다!, 우선 서로 원해야 한다. 서로 원하기 위해서는 이기적이어서는 안되고 이타적이어야만 한다. 욕심을 넘어선 탐욕, 자기의 기득권만 지키고, 더 가지려는 무리들은 절대 한민족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르낭은 또한, 위에서 기술한 각 항목들에 대하여 조목조목 반박을 하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종족이란 것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민족은 종족에서 유래한다고 믿고 있는데, 르낭은 한 마디로 이것은 '착각'이라고 말한다. 고대 부족과 도시국가에서는 사회적으로 확장된 형태가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이러한 아테네, 스파르타, 이스라엘 등의 작은 도시국가 및 집단에서 로마 제국이라는 큰 덩어리로 그 논리가 옮겨 가면 내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실상 로마 제국은 종족이라는 개념 보다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오히려 훌륭한 통합의 기제[基劑]였다.
르낭에 의하면, 프랑스는 켈트족이기도 하고, 이베리아족이가도 하고, 게르만 족이기도 하다. 독일은 게르만 족이기도하고, 켈트족이기도 하며, 슬라브족이가도 하다. 이탈리아는 종족 분류가 가장 어려운 나라이고, 영국은 켈트족, 게르만족의 피가 혼합되어 있는데 그 비율을 명확하게 밝히기는 매우 어렵다고 한다.
결국 르낭이 말하는 진실은, 순수한 종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이란 나라를 바라볼 때도 그렇다. 우리는 한민족, 순수 백의민족이 맞는가. 말이 길어지니 일단 생각나는 대로 한 번 쭉 적어보겠다. 거란, 여진, 말갈, 돌궐, 선비, 흉노족 그리고 고려는 몽고와 40년씩이나(와우!) 싸웠다.
물론 이들이 다 우리조상들이라고 생각한다면 할 말이 없다. 문제는 적어도 내 주위에는 거란, 여진 등을 우리 민족, 조상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아직까지 '오랑캐'라 배우고, 그렇게 부르고 있다(아닌가?ㅡ.ㅡ)
2. 언어에 대하여.
르낭은 언어 역시 민족을 가늠하는 절대적 기준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영국, 스페인계 아메리카와 스페인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스위스 같은 경우는 서너 개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하나의 민족을 잘 형성하고 있다. 여기서 르낭은 중요한 내용을 언급하는데, 그것은 인간에게는 언어를 초월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구성원, 즉 '(한민족이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 라는 것이다. 여러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구성원들이 하나를 이루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많은 장애를 극복하고 통합을 이룩한다는 것이다(남한과 북한은 어떤가?).
따라서 언어라는 것이 한 민족을 구성하는 촉진제는 될 수 있지만, 민족을 가늠하는 절대적 기준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3. 종교에 대하여.
종교 역시 르낭은 그 잣대는 되지 못한다고 한다. 르낭은 신자의 면면을 본다면 이제는 더 이상 통일된 방식의 신자 대중이란 존재하지 않고, 종교라는 것은 각자 나름대로 믿고, 종교의식을 행하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국가차원의 종교는 없으며, 따라서 카톨릭, 개신교, 유대교 신자이지만 프랑스인, 영국인, 독일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종교는 개인적인 것, 각자의 양심에 관계되는 것이 이미 되었다고 말한다.
4. 이익공동체?
약간 생뚱 맞지만, 르낭은 이익 공동체에 관해서도 짧게 언급을 하는데 한 마디로 이익 공동체는 상업상의 조약이지 감정적인 면이 있는 민족성과는 무관하다고 말한다.
5. 지리에 대하여.
이 지리적인 상황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민족'을 구분하고 있는 듯 보이는데, 르낭은 강과 산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른바 자연적인 국경선이라고 부르는 그것들만으로는 민족을 구분짓지 못한다고 한다. 확실히 민족을 구분하는데 일조 할 지언정.
산이야 물리적인 요소로서 분할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쳐도 강 같은 경우는 오히려 물길로써 두 민족 혹은 나라를 어떠한 형태로 결합시키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강'은 종족들을 인도하지만, '산'은 그들을 멈추게 한다고 기술했다.
아무튼 지리, 이 영토라는 것 역시 민족을 구분하는 촉진제는 될지언정 절대적 기준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민족은 토지라는 외형에 의해 결정된 집단이 아니라 역사의 깊은 분규의 결과로 생긴 정신적 원칙이며 영적인 가족으로서의 집단이라 말한다.
요약.
르낭이 생각하는 민족이란 개념을 재요약하면, 하나의 민족은 하나의 영혼이며 정신적인 원리이다. 과거의 풍요로운 추억과 함께 살고자 하는 현재의 묵시적인 동의 그리고 받은 유산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지!이다(이 문장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또한 르낭은 민족의 개념을 넘어 인간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인간은 인종의 노예도, 언어의 노예도, 종교의 노예도, 강물의 흐름의 노예도, 산맥의 방향의 노예도 아니다. 인간들의 대결집, 건전한 정신과 뜨거운 심장이야말로 민족이라 부르는 도덕적 양심을 창출한다. 이 도덕적 양심이 공동체를 위해서 개인을 버린 그 희생들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힘을 증명하는 한, 그것은 정당하며 존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것에 대해 부정하는 자들이 있다면 르낭은 기다리자고 말한다. 이 문장을 읽는데 지금의 정치적 시국, 우리의 처지가 대입되었다.
"강한 자들의 멸시를 감내하는 법을 배웁시다. 아마도 결실 없는 모색을 많이 한 후에야 사람들은 경험한 해결책, 우리의 경험으로 검증된 해결책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미래에 옳은 편에 서는 방법은, 특정한 때에 시류에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인내하고 받아들일줄 아는 자세입니다".
끝으로, 이 책을 읽고 도저히 북한이란 나라, 우리가 한민족이라 생각하는 이 나라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남한과 북한은 과연 어떤 관계인가? 한민족이 맞기는 한 것인가. 만일 한 민족이 맞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르낭의 말대로라면 남한과 북한은 한민족이라고 하기엔 어렵다. 오히려 철천지 원수다. 르낭은 민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과거의 풍요로운 추억과 함께 살고자 하는 현재의 묵시적인 동의 그리고 받은 유산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지!"라고. 이 '함께'라는 말. 이 '함께'라는 말이 상호 통용되지 않는 이상 그것은, 피부색과 그 무엇이 다 똑 같아도 같은 민족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출처: https://thinkingandfate.tistory.com/30
민족이란 무엇인가』, 에르네스트 르낭 著, 신행선 譯, 책세상, 2002
사회주의가 붕괴한 이래로 세계는 지금 민족 간의 분쟁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그런데 과연 순수한 단일 민족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근대국가의 성립 이후 민족이라는 개념이 인류의 역사에 발을 붙이면서 시작된 민족 간의 갈등은, 인류에게 수많은 갈등과 오해와 아픔을 던져주었다. 심지어 민족이라는 이름하게 다른 민족을 대량학살하는 비극적인 만행이 자행되기도 했다. 이러한 불행을 야기하는 민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에레네스트 르낭은 민족은 인종에서 유래하는 것도, 언어로 구분되는 것도, 종교로 결속되는 것도, 그리고 국경선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민족이란 언제든지 새로 생겨날 수 있으며, 언젠가는 종말을 고하게 되는 개념일 뿐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르낭은 민족보다는 인간 자체를 생각하자고 주장한다. 민족이 아닌 인간을 먼저 생각하자는 르낭의 주장은 서로 경계 긋기에 몰두하고 있는 우리의 편향된 의식에 경종을 울린다.
제1장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
르낭이 이 글을 쓴 시기는 1870년 보불전쟁이 발발한 직후의 시대상황이다. 이 전쟁에서 프랑스는 독일에 패해 알자스 로렌 지방을 독일에 내줘야했다. 르낭은 전쟁이후의 상황에 대해 전쟁 이전의 프랑스, 독일, 그리고 영국사이의 동맹에 기반을 둔 유럽의 지적 도덕적 위대함의 퇴보를 걱정한다. 본문에서도 그는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전쟁은 문명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불행'이라고 통탄해 한다.
전쟁의 원인은 엄격하고 타산적이며 관용적이지 못한 프로이센의 성향에 일부 책임이 있으며 일부는 독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나폴레옹 1세의 몰지각함, 군대의 자만과 무지, 외교관들의 경솔함, 신중하지 못했던 나폴레옹 3세 제국 정부의 태도 등에도 책임이 있다고 르낭은 보고 있다.
봉건적 거만함, 극단적인 애국주의, 과도한 개인적 권력, 대륙에서 의회 정부가 그다지 발전되지 않은 것 등이 문명에 끼친 해악(유럽동맹의 붕괴와 그로 인한 민족간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의 힘, 즉 유럽이 그 대안이라고 르낭은 주장한다. 유럽에서의 평화는 공통된 이해에 의해서만, 나아가서는 위협적인 태도로 넘어가고 있는 중립국들 간의 동맹에 의해서만 확립되고 유지될 수 있다. 이러한 전쟁의 해소와 유럽의 발전을 위해서는 유럽 강대국들의 공동체로 구성된 유럽연맹 구상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르낭은 보고 있다. 민족자결주의라는 원칙에 유럽 연방의 원칙, 즉 모든 민족들에 우선하는 집단의 원칙을 결합시킬 때에야 비로소 전쟁의 종말을 보게 될 것이다.
제2장 민족이란 무엇인가
르낭의 민족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870년 프랑스의 패전과 그에 따른 영토 상실이라는 역사적 맥락을 떠나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1882년 소르본 대학에서 강연한 이 글은 알자스 로렌 지방의 병합을 정당화했던 독일의 종족적, 언어적 개념을 조직적으로 반박함으로써 잃어버린 두 주의 반환을 요구할 수 있는 정당한 근거를 제시하고 한 것이다. 과거와 전통을 찬미하며 인종, 언어 땅 등에 그 토대를 두고 있는 게르만적 독트린에 하나씩 반대하면서 그의 민족 개념을 정의해 나간다.
- 민족을 많은 사람들이 종족에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민족의 원칙을 종족원칙으로 바꾼 것은 오류이며, 이러한 오류가 지배적이게 된다면 유럽의 문명은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유럽 역사를 보더라도 종족적인 고려는 민족국가들을 구성함에 있어 상관이 없다. 순수한 종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종족적인 분석에 정치의 근거를 두는 것은 공상에 기초를 두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유럽의 지도를 형성시키는 본능적 의식은 종적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며, 유럽의 중요한 민족들은 본질적으로 혼혈 민족이다.
- 인간에게는 언어를 초월하는 무엇인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의지이다. 언어에 부여하는 정치적 중요성은 언어를 종족의 표식으로 간주하는 데서 오는데 이 또한 잘못된 것이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우선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라는 기본적인 원칙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프랑스 문화, 독일 문화, 이탈리아 문화 이전에 인류의 문화가 있다.
- 종교 또한 근대 민족의 확립에 충분한 기반을 제공하는 것일 수 없는 것이다. 통일된 방식의 신자 대중은 존재하지 않으며 각자 나름대로 믿고, 종교의식을 행하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국가 차원의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 이익 공동체는 인간들 사이에 강력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분명하나, 관세동맹이 조국이 될 수 없듯이 이해관계가 하나의 민족을 만드는데는 충분하지 못하다.
- 지리, 사람들이 국경선이라 부르는 그것은 확실히 민족을 구분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나 종족이 하나의 민족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듯이 영토 역시 민족을 만들지는 못한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인간은 인종의 노예도, 언어의 노예도, 종교의 노예도, 강물의 흐름의 노예도, 산맥의 방향의 노예도 아니다. 인간들의 대결집, 건전한 정신과 뜨거운 심장이야말로 민족이라 부르는 도덕적 양심을 창출한다.
인간의 의지는 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민족은 영속적인 그 무엇이 아니다. 민족들은 새롭게 생겨났고, 언젠가는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유럽연맹이 민족들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알자스 로렌 지방을 프랑스로 귀속시키는데 제시한 르낭의 귀속 근거는 지리적 조건, 언어, 종교와 같은 문화·역사적 조건이 아니라 해당 지역 주민의 스스로의 의지에 두었다는 점에서 문화적 귀속에 근거한 민족이라는 개념을 개인의 정치적 선택의 문제로 전환 시켰다는 점에서 르낭은 주관주의적 민족이론의 원조에 속하는 셈이다.
르낭은 생물학적 인종주의는 거부한다고 말하면서도 흑인, 아시아인들에 대해서는 인종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분명히 드러냈다. 르낭에게 유대인은 아리아인과 더불어 인종의 위계 질서에서 상층에 속하는 부류이다. 당대의 많은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르낭 역시 인종의 불평등을 과학적 사실로서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다.
유대인들에 대한 르낭의 입장은 조금 다른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라는 우수한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유럽인의 열등감을 반영하면서도 유대인들의 편협성, 부정적 성격 등이 유대인들을 유럽인보다 열등한 위치에 놓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그의 유럽 중심적인 사고를 나타내고 있다.
저자 소개-에르네스트 르낭(Ernest Renan)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종교사가, 언어학자인 에르네스트 르낭은 예수의 신성을 부정한 소설『예수의 생애』의 저자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부정, 자연에 대한 신뢰, 이성은 진보한다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종교계로부터 배척당해 교수직에서 해임당했을 때도 그는 당당했다. 그를 신봉하는 자들은 이례적으로 폭넓다. 아나톨 프랑스, 로맹 롤랑 같은 공화주의자에서부터 샤를 페기, 모리스 바레스 같은 민족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개성을 지닌 인물들이 그의 커다란 날개 아래서 무리를 이루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 당시 그는 독일의 신학자 슈트라우스와 서신을 교환하면서 자유주의 사상을 교유하고 전쟁이 중지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패배로 끝난 이 전쟁으로 그는 민주주의에 분노를 느껴 권위주의자가 되었다. 그리고『지적·도덕적 개혁』이라는 저작을 통해 프라스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프로이센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에 반영된 상황이 자신이 원하던 바가 아님을 깨달은 그는 공직에서 물러나 저술 활동에 주력한다. 이후 가장 권위 있는 학술기관인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이 되고 1883년에 다시 콜레주 드 프랑스에도 복직한다. 주요 저작으로는『예수의 생애」『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비판적 역사』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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