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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자료

기독교인의 미신행위

by Ddak daddy 2018. 11. 23.





기독교인과 미신행위

 



 

 

 

최근에 어떤 기독교 신문의 기사 중에 한 대목이다.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는 자매의 말이 나 내년부터 삼재래 그래서 나쁜 것 오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중이야.”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삼재란 말은 불교에서 유래된 재앙 명으로 12지간에 따라 인간에게 9년마다 걸쳐 찾아오는 3년간의 악재를 말한다.



1. 확실한 통계가 없기에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한 수의 기독교인들이 점집을 드나든다고 한다.


새해 신년 운세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정동진이나 산봉우리에 올라가서 무언가를 향하여 소원을 비는 행위가 과연 기독교들에게 합당한 일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십자가의 구원과 승리를 믿는 사람들이며, 우리가 구해야 할 꿈과 소원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일 뿐,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자고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목회자들조차도 분별력 없이 교인들을 데리고 산꼭대기나 바닷가에 가서 소원을 비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충격이다. 그 신문에서 밝힌 어느 무속인의 말이다. “아주 친한 목사님이 있는데, 그 분은 심지어 선교지를 나갈 때에도 어디가 좋을지 찾아와 묻기도 합니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 목사님들은 특히 가정을 꾸리시기 때문에 특별히 물질과 관련해 조언을 듣길 바라죠.”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목사는 삯군이거나 거짓 선지자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잘못된 길로 인도되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두렵다. 무속은 현세를 중시하기에 물질적이고, 기복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독교인들도 현세의 복을 구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현세의 복을 구하는 것만을 놓고 보자면 기독교보다 무속이 훨씬 영험해 보이기 때문에 기독교가 현세의 복을 구하는 한 이미 무속신앙에 패배하고 있는 것이다.


2.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현세의 복이 아니라,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종교다.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고자 하는 미신적인 마음이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 성도는 확실한 미래-악인의 심판과 성도의 구원의 완성-를 알기에,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자녀 됨의 권세와 축복과 그 사랑을 알기에 모든 불안을 떨치고,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평강을 누리는 자들이다. 그러기에 성도가 구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인류 역사에 많은 전쟁 중에도 미국의 남북 전쟁은 인간의 평등을 위한 전쟁이었다. 7년 동안 전쟁이 계속되면서 많은 희생자가 생기자 아브라함 링컨의 참모진들이 고민에 빠졌다. 그때 한 참모가 링컨에게 "각하!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하고 말했다. 왜냐하면, 남북이 모두 기독교인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느 편이냐에 따라서 승리가 결정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자 링컨이 대답하기를 "나는 하나님이 내 편에 서 계시는 것을 염려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를 염려합니다."고 말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나님 편에 서서 올해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해가 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축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아는 자들이고, 내가 그 사랑과 은혜가 전달되는 일에 통로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랑과 은혜는 구호나 이론일 뿐이고, 오히려 자기 이익을 위해서 광분하며, 자존심과 명예를 위해서 눈에 핏발을 세우는 자들이 넘친다. 하나님의 영광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자신의 영화만을 추구하느라고 바쁘다. 이렇게 된 데에는 우리 목회자들의 책임이 크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그들이 배운 신앙이 오로지 교회 부흥을 위한 도구처럼 충성과 헌신만 강조된 신앙생활이기 때문에 삶에 문제가 생기면 공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배운 신앙에서 기도 제목들이 대부분 자신의 영광, 사업의 부흥, 가족의 건강, 좋은 배우자, 자녀의 성공 등이다. 이것을 하나님이 들어주시길 원하고 바라지만...뜻대로 안 되면 그들은 겉으로는 여전히 교회에 충성을 하지만, 실제로는 신앙에 회의가 오고, 하나님에 대해서 의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에 좀 더 효과적인 기복신앙에 의지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구복을 위해서 기도했던 자들이 점집을 찾는 것이다.

3. 그럼, 재미로 해보는 것도 안 될까? 그렇다. 기독교 신앙의 뿌리인 성경(18:15)은 점을 치거나 미신적이고, 무속적인 행위를 분명하게 죄악으로 선포하며, 철저하게 뿌리를 뽑으라고 하기 때문이다. “너희는....복술을 하지 말며 술수를 행치 말며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무속이 왜 악한가? 무속신앙은 이 세상과 역사에 대해서 책임을 강조하거나, 윤리적인 결단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자기들의 운명(미래)을 자신들이 스스로 조작하려고 한다. 말하자면 자기 삶의 주인 노릇을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무속과 미신적인 풍습을 금하시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죄라는 것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이라고 롬 1장은 말하는데, 이것을 창 3:6하나님처럼 되어라고 표현한다. 즉 자기 삶을 스스로 통제해서 자기가 주인노릇을 하려는 것이 죄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심을 믿지 않기 때문에 점집이나 무속인들을 찾아 내 삶을 스스로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점을 치거나, 운세를 보거나, 태양을 바라보고 소원을 비는 행위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 것이다. 인생의 미래에 대해서 두렵고, 불안하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펴라!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항상 해야 할 삶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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