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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도서

성전신학

by Ddak daddy 2018. 10. 17.




그레고리 K. 비일 <성전신학>-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그레고리 K. 비일 (Gregory K. Beale) "성전신학 : The Temple and the church's Mission강성열 역,  새물결플러스.


거룩한 곳(성전): 에덴동산, 성전, 그리고 새하늘과 새땅 


성전의 최초 모형은 '에덴동산'이었다.  

아담에게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는데 (창2:15) 이 두 단어는 "섬기고 보존하다(지키다)"로도 번역된다. 

특히 '경작하다'(abad)가 '지키다'(samar) 와 함께 쓰이면 주로 '섬기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이스라엘을 가리키거나 (10회 사용) 성막 봉사로 지키는 제사장(민 3:7-8; 8:25-26; 겔44:14등)을 가리킨다. 


창 2:15의 아람어 번역본을 보면 

"율법 안에서 수고하고 그것의 계명들을 지키도록 " 아담이 거했다고 기록한다. 

이것은 아담을 성전에서 일하면서 성전을 지킨 원형적 제사장임을 암시하고 있다. 


제사장이 성전에서 일하면서 부정한 자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파수하는 역할을 했던 것처럼(대상 9:23; 느11:19) 아담도 거룩한 에덴동사을 파수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그 중심에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있었고 

인간과 뱀이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이 있는 거룩한 곳을 오염시키도록 허용한 죄를 아담이 지었다고 주장한다. 

즉, 아담은 성전을 지키는데 실패한 것이다. 


그리고 이후로 거룩한 곳은 그룹들이 지키게 된다. (창 3:24 에덴동산, 출37:7-9 성전 속죄소)  


실패한 아담 이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제사장의 직분-

이 피조세계에 나타나야 할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일을 맡기신다. 


하지만, 결국 인간들은 실패하고, 

사람의 손으로 지은 가시적인 성전도 하나님의 임재를 담아내기에 충분치 못했다. 


에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수행하지 못한 아담이 그 동산을 오염시킨 것 처럼 

인간들이 가시적 성전을 우상숭배의 모습으로 오염시켰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성전을 허무시고,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임암아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셨다.

아담은 실패한 제사장이었지만, 예수는 성공한 대제사장이 된 것이다.


바울서신과 히브리서는 이 새로운 성전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며 

그와 연합하여 성전으로 지어져가고 있는 성도들을 말하고 있다. 


이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은 유형적인 건물에 갇혀 있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온 세상을 향하 계시 되었고, 

그 이후로 하나님의 영광은 성전과 다름 없는 전 세계 교회(성령의 임재로 말미암아 교회된 성도들)안에 성령을 통해 거주하시고 나타내신다.


결국, 에덴-성막/성전- 그리스도로 이어진 하나님의 임재는 이제 성도들(교회)에게로 옮겨졌고

 또한 그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다.


성도들(교회)는 이 땅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만을 대표하기에 

아직 하나님의 임재와 다스림은 세상 모든 곳으로 퍼져가지는 못한다.  

그래서 다가올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 그 결과 우주적인 확장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으며 이 시대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성취되지 못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마지막으로 다시 오실 때에야 비로서 그는 옛 우주를 파괴하고 새 우주를 창조하실 것이요 하나님의 임재는 그 안에 완전히 머물 것이다."   (p531)



계21:27에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에 속된 것은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다시는 실패 없이, 완전히 지켜지게 될 것이다. 


이사야 65:17-18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성전은 하늘과 땅의 축소판


바깥 뜰은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세계를 표상하며, 

성소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 하늘과 그 곳에 있는 빛의 근원들을 상징하고, 

지성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 우주의 차원, 즉 하나님의 거주지를 상징한다.


성전을 보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땅과 하늘의 축소판으로 볼 수 있다. 

바깥뜰은 <사람이 거주하고 사는 이 땅의 세계>, 그곳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 

다른 이름으로 ‘이방인의 뜰’로 불리웠다. 

예수님 시대에는 바깥뜰에서 소, 양, 비둘기 등 제물을 사고 팔았고, 환전상 등의 장사꾼들이 모였던 곳이다.

  

성전 안 뜰로 들어오면 그곳에서는 희생 제사가 드려지고 성소로 들어가기 위한 씻음이 있다.

이것은 세상과 하나님을 이어주는 예수님의 사역을 의미하며 교회가 그 일을 담당한다. 

그리고 성소 안으로 들어가면 눈에 보이는 하늘, 빛의 근원들을 만나게 된다. 

일곱 개의 등잔 불은 해, 달, 별을 나타낸다는 주장도 있고, 계시록에서는 7개의 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지성소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천상의 주거지를 나타낸다. 

그룹들이 하나님의 보좌를 지키는 것과 같이 그룹 둘이 언약궤를 둘러싸고 있다. 

대제사장만 1년에 한 차례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지만 

 16:13을 보면 향연이 진해서 영화로운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보지 못한다.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우게 할찌니 그리하면 그가 죽음을 면할 것이며” 



에덴으로부터 새 하늘과 새 땅까지 

  

에덴의 모습은 성전을 지나 마지막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어진다. 


에덴에 한 줄기 물이 흐르는 것처럼 (창2:10) 포로기 이후의 성전(아리스테아스의 편지 89-91장)도 물이 중심부로부터 흘러 나온다. 그리고 장차 세워질 성전 역시 물이 중심부로부터 흘러 나올 것이다. (겔 47:1-12; 계22:1-2) 


또 에덴의 보석들은 성전의 구성요소이기도 하고, 제사장 의복에도 사용된다. 역시 새 하늘과 새 땅에도 보석들이 기록되어 있다. 


에덴은 산에 있는 장소이다. (겔28:14,16)  이것은 시온산 성전도 마찬가지이며 (출15:17) 마지막 성전도 동일하다. (겔40:2; 계21:10) 


선악을 알게하는 지혜의 나무는 지혜로 이끄는 율법과 연결된다. 나무 열매를 먹는 자는 정녕 죽듯이 법궤를 만지는 자는 반드시 죽게 된다. 물론 율법을 어기는 자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끊어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에덴의 입구가 동쪽(창3:24)이듯이 성전입구,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성전 입구(겔40:6)도 동쪽이다. 


성전에는 순결한 등잔대가 항상 여호와 앞에 서 있는데(레24:4) '주 앞에 서있다'는 말은 신실하신 하나님과 영원토록 안전한 관계를 의미한다.(희년서 30:18-20) 

이것은 마지막 때 두 증인(두 감람나무, 두 촛대)의 모습이기도 하다. 

스가랴는 두 증인을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들은 성전 재건의 방해에도 완성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자들이며 

성전에서 등잔불과 같은 존재들이다. (슥 4:6-9) 


그리고 이것은 마지막 때(예수의 승천이후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시대) 성령의 충만으로 권능을 받은 이들이 복음을 방해하는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사역을 완수할 것을 말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사람의 손으로 지어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다니엘서에서 '사람의 손을 대지 않은 돌'과 연결된다. 

이 돌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눅 20:17-18)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은 온전한 장막이며(히 9:11)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이 지어진 것처럼 온전히 회복될 것이다.    

 

(본 글은 책 내용을 바탕으로 글쓴이의 생각이 첨가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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