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교육에서 ‘학점’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이수 시간’, 다른 하나는 ‘평가 결과’이다. 아마 교육의 이해에서 다루고자 하는 학점은 전자의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학점의 두 가지 의미는 서로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이수 시간과 평과 결과는 학점이라는 같은 대상을 다른 범주에서 표현하는 것이다. 때문에 두 의미는 공통의 기반 위에 있으며, 공유하는 문제의식도 유사하다.
이수 시간으로서의 학점은 한주를 단위로 하여 강의 시행 시간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교육의 이해가 3학점이라는 것은 한주동안 교육의 이해 강의가 3시간 진행된다는 의미다. 학점은 한 학기(15~16주)동안 적용되므로, 3학점 강의는 한 학기에 총 45~48시간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수 시간으로서의 학점은 학생의 성취를 표현하는 양적·형식적 기준이다. 사회교육과 일반사회(정치·경제·사회·문화) 전공 이수 기준은 42학점이다. 일반사회를 전공하기 위해서는, 졸업할 때까지 총 630~672시간동안 사회교육과 전공과목을 수강하는 데 할애해야 한다. 42학점을 이수하면 고등교육 수준에서 일반사회과의 내용을 충분히 습득한 것으로 인정된다. 이것은 중등교육 대상자들에게 일반사회를 가르치는 데에 부족함이 없음을 뜻한다. 마찬가지로 교육의 이해를 약 50시간 수강하면 교육학과 관련된 일반적인 교양을 성취했다는 것이 보증된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중등교육에 종사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교육학적 지식을 습득했다는 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학점은 학생의 성취도를 표현하는 시간적 범주이다.
평가 결과로서의 학점은 질적·내용적 기준으로 학생의 성취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필자가 교육의 이해에서 C학점을 받는다고 하자. 절대 평가를 가정하면, 필자는 교육의 이해 강의에서 설정된 교수 목표 중 70%정도를 성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상대 평가를 가정하고 학생들의 학점이 C를 평균으로 A에서 D까지 표준 분포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라면, 필자는 전체 학생 중에서 중간 정도에 위치한다고 말할 수 있다. 평가의 범주에서 학점은 학생의 성취를 수직적이고 구체적인 기호로 표현한다.
학생의 성취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이수 시간으로서의 학점과 평가 결과로서의 학점은 공통성을 갖는다. 동시에 두 의미는 성취의 다른 측면들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한 학기동안 교육의 이해를 약 50시간 수강하면 기본적인 교육학적 교양을 얻은 것으로 인정되며(이수 시간), 얼마나 높은 성취를 했는가는 점수로 표시된다(평가 결과). 이수 시간으로서의 학점은 학생이 어느 분야에 지원할 수 있는가 혹은 어느 분야로의 진출이 적합한가를 뜻한다. 평가 결과로서의 학점은 학생이 특정 분야에서 얼마나 능한가를 나타낸다. 의사가 되려면 의과대학에 가야하며, 의과대학에서 얻은 성적은 그 학생이 얼마나 뛰어난 의사인가를 반영한다. 이런 점에서 학점의 두 가지의 의미는 2중의 함의를 갖는다. 학점은 현대사회에서 고등교육이 갖는 ‘기능 혹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학점이 갖는 문제점은 모호성과 비신뢰성에 있다. 이수 시간의 측면에서, 정말로 한 학기에 교육의 이해를 50시간 들으면 교육과 관련된 기본적인 교양을 쌓을 수 있는가. 있다면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교수의 재량에 따라서 격주로 강의를 할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도 애초에 규정된 학점은 변동되지 않는다. 즉 학생의 성취를 나타내기 위한 이수 시간으로서의 학점의 존재 근거가 매우 취약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각각 다른 교수들이 강의하는 여러 교육의 이해가 있는데, 각각의 교육의 이해에서 A학점을 받은 학생들은 모두 동일한 성취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는가. 표현을 완화하여 비슷한 성취를 이룬 것인가라고 질문한다고 해도, 부정적인 결론을 결론내릴 수밖에 없다.
학점은 고등교육의 성취를 평가하는 잣대로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학을 사회 발전을 위한 인재 양성소 또는 직업 교육 기관으로 규정하려는 자본주의적 시도와 대학의 본질적인 의미간의 마찰에서 유래한다. 학점은 학생의 진출 분야와 능력 정도를 지시하는 기능을 가진다. 반면 대학은 본질적으로 학문 공동체이다. 대학의 학문 공동체적인 성격에서 교수의 자율성이 파생된다. 대학은 기본적으로 교수와 학생을 장인과 도제의 관계로 설정하기 때문에, 교육내용과 평가방법에 있어 교수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 문화와 사회라는 강의명을 달고 실제 강의에서 니체를 읽든 푸코를 읽든 그것은 교수 자유다. 교수가 오로지 자의적인 기준으로 학생들을 평가한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이러한 대학의 기본적인 성격에 학점이라는 객관적인 개념을 적용했을 때, 평가의 모호성과 비신뢰성이라는 문제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노동 시장에 인재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학에 객관적인 교육적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은 양복에 저고리를 입는 것만큼이나 우스꽝스럽다.
*어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 준다면서 이수시간을 변칙적으로 지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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