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자료

아직도 박근혜 탄핵이 부당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by Ddak daddy 2018. 9. 21.


아직도 박근혜 탄핵이 부당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정치,시사 2018.08.11 14:47

+ 향후 보수정당의 생존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그림자를 얼마나 많이 지워내고, 새로운 가치와 인물을 찾아내는가에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공이 없는 건 아니지만, 냉정히 말해서 공보다 과가 훨씬 크기 때문에 지금의 사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국정원 댓글, 특활비 수수, 민간인 사찰, 블랙리스트, 민간인의 국정농단 - 이런 사건들은 보수진보 이념을 막론하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 상대적으로 이명박의 그림자를 지우는 일은 수월하다. 이명박을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지지자들도 거의 없고, 정치권에서 친이계라는 집단은 이미 소멸한지 오래니까. 반면, 박근혜를 지우는 작업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아직도 친박은 자유한국당의 최대 계파를 차지하고 있으며, 보수의 핵심 지지층이라 할 수 있는 반공보수 유권자들은 박근혜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들 중에서는 박근혜가 잘못하긴 했지만 탄핵당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박근혜에 아직 미련을 갖고 있거나, 박근혜가 복권되고 명예를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 박근혜 탄핵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보자면, 나는 국회의 탄핵 소추와 헌재의 탄핵 심판 과정이 비록 완벽하진 않았지만, 우리 헌정체제와 법치주의의 틀 안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결론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박근혜의 탄핵과 파면이 부당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박근혜는 탄핵당할 만 해서 탄핵당한 것이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정말로 심각한 스캔들이었고, 그건 헌법적인 징계 없이 그냥 넘어갈 만한 사건이 아니었다. 박근혜는 끝까지 책임을 지지 않고, 거짓말로 국민을 기만하며 파면을 자초했다. 


+ 탄핵은 사법적인 판단과는 거리가 멀다. 또, 형법적으로 반드시 유죄가 되어야만 탄핵 사유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기도 전에, 어떻게 일국의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느냐 한다. 하지만 이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왜냐하면 대통령은 내란/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임기 중에 기소를 받지 않는 특별한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임기 중에 법원에서 유죄를 받는 일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는다. 대통령이 법적으로 유죄를 받아야만 탄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탄핵이라는 제도 자체를 무력화하라는 것과 똑같은 말이다. 


+ 탄핵은 본질적으로 사법적인 판단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판단에 더 가깝다. 우리나라는 국회가 탄핵을 소추하고, 그 판결을 헌법재판소가 하기 때문에 사법 판단의 요소가 가미되어 있긴 하지만, 다른 대통령제 국가들 (ex. 미국, 브라질)의 예시를 봐도 탄핵은 의회의 고유 권한이다. 정치적인 판단인만큼 당연히 국민 여론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태극기 집회 등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여론에 떠밀려 대통령을 탄핵했다는 비아냥도, 사실은 매우 공허한 주장이다. 국민 다수의 신임을 배반했다는 헌재의 판단에 더 힘을 실어줄 뿐이니까.


+ 그렇다고 헌재가 탄핵 심판을 여론에만 떠밀려 졸속으로 진행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헌재는 안종범의 업무 수첩, 안종범, 정호성의 피의자 전문 조서 등을 증거로 채택했고, 수십명에 달하는 관련 증인들의 진술을 듣고 교차검증하며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헌재가 졸속으로 재판을 진행했다고 떠들어 대는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이렇다 할 근거가 전혀 없다.   



+ 최순실 태블릿 PC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음모론자들이 있다. 마치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연상케 한다. 나도 태블릿PC 음모론의 여러 가지 버전을 듣고 알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근거가 미약하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끼워맞춘 듯한 느낌이 들어서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중요한 사실은, JTBC의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는 박근혜 탄핵의 기폭제 역할을 하긴 했지만, 그 자체가 탄핵 심판의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박근혜 뇌물수수 재판의 증거도 아니다. 괜히 엉뚱한데에 힘 쏟는 사람들을 보면 참 딱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 박근혜는 헌재에서 뇌물수수 혐의로 파면된 것이 아니었다. 세월호 역시 탄핵사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박근혜는 오직 하나의 사유, 최순실의 국정개입을 허용하고, 최순실의 사익 추구를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했다는 이유로 파면당했을 뿐이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KD코퍼레이션 청탁, 인사자료/국무회의자료를 비롯한 청와대 기밀 유출 등이 이 사유에 포함된다. 형사재판에서는 직권남용, 공무상 비밀 누설 등에 해당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헌법재판소의 현명함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는데, 만약 헌재가 뇌물수수나 세월호를 파면 사유로 인정했더라면 나는 헌재의 판단력을 의심했을 것이다. 뇌물죄는 법정에서 다툼의 여지가 크기 때문에 헌재에서 판단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고, 세월호는 정말 말도 안되는 탄핵 사유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재는 정말 깔끔하게 여러 가지 곁가지 혐의들을 전부 기각했고, 이 사건의 핵심인 최순실 국정농단만 탄핵 사유로 인정했다.




+ 헌재는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방조, 허용하고, 권한을 남용한 박근혜의 잘못을 물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와 동시에 헌재가 판단했던 것은 박근혜가 만약 국정에 다시 복귀한다면 제대로 국정 수습을 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물론 헌재는 박근혜가 대통령으로서 헌법 수호의 의지가 없다고 보았고, 박근혜가 다시 국정에 복귀하면 안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박근혜는 대국민담화에서 본인이 했던 약속과 다르게, 검찰과 특검 조사에 일절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했으며, 여러 증거를 인멸하고 시간끌기로 탄핵 심판을 지연시켰다. 박근혜가 탄핵 심판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는 국가 최고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 마지막 이야기. 반대로 박근혜의 탄핵을 찬성하는 사람이라면, 대통령 탄핵 사태가 우리 사회에 남긴 부작용에 대해서도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부작용은, 이제 우리 국민들이 최고 지도자를 '잠재적 탄핵 소추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건 노무현 탄핵 때부터 있었던 일이지만, 박근혜 파면 이후로 좀 더 심해졌다고 본다. 이제 대통령이 뭘 좀 잘못해도 툭하면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 파면해야 한다, 이런 여론이 솟구칠 가능성이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반대파들도 탄핵 얘기를 공공연하게 꺼내는데, 이것도 별로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정책적 실패나 정치적 무능은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명시한 적이 있다. 만약 특정 정책을 잘못 시행하거나, 정치적으로 무능한 행위를 했다고 해서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여론이 자꾸 비등하게 되면, 대통령이 통치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은 매우 좁아지고, 자칫하면 대통령제 자체의 근간이 뿌리채 흔들릴 수 있다. 정책 실패나 정치적 무능을 이유로 지도자를 그때그때 갈아치우고 싶으면 차라리 대통령제를 포기하고 내각제를 하면 된다. 임기 5년이 보장된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탄핵은 정말 웬만하면 피해야 하는 것이다. 국민의 손에 의해 선출된 국가원수를 파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국민 분열과 같은 심각한 후유증도 많이 남는다. 물론 박근혜의 경우는, 그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파면으로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컸기 때문에' 파면된 것이지만 말이다. 대통령 탄핵 제도가 양날의 검이라는 사실을 항상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