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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음악

도니체티 오페라 ‘안나 볼레나’(Donizetti, Anna Bolena)

by Ddak daddy 2015. 9. 18.

 

 

도니체티 오페라 ‘안나 볼레나’(Donizetti, Anna Bolena)

 

Donizetti, Anna Bolena

도니체티 ‘안나 볼레나’

Gaetano Donizetti

1797-1848

Anna Bolena: Anna Netrebko

Giovanna Seymour: Elīna Garanča

Enrico VIII: Ildebrando D'Arcangelo

Lord Riccardo Percy: Francesco Meli

Lord Rochefort: Dan Paul Dumitrescu

Smeton: Elisabeth Kulman

Chor und Orchester der Wiener Staatsoper

Conductor: Evelino Pidò

Wiener Staatsoper 2011

Evelino Pidò/Wiener Staatsoper 2011 - Donizetti, Anna Bolena

열여덟 살 때부터 약 20년간 벨칸토 오페라의 대가로 활동했던 조아키노 로시니가 <빌헬름 텔>(1828)을 끝으로 오페라 작곡을 그만두면서, 본격적으로 도니체티와 벨리니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사랑의 묘약>(1832), <루크레치아 보르자>(1833), <마리아 스투아르다>(1835), <람메르무어의 루치아>(1835), <돈 파스콸레>(1843) 같은 걸작 오페라로 유명한 가에타노 도니체티의 첫 성공작은 1830년, 그의 나이 서른셋에 밀라노 카르카노 극장에서 초연한 <안나 볼레나>였습니다. 이폴리토 핀데몬테의 <엔리코 8세 또는 안나 볼레나>, 알레산드로 페폴리의 <안나 볼레나> 등의 원작을 토대로 한 이 오페라는 벨리니에게 자극을 주어 <노르마>(1831)를 탄생시키기도 했답니다.

<안나 볼레나>는 16세기 영국사의 실화를 기초로 한 본격 사극 오페라입니다. 튜더가의 군주였던 헨리 8세의 총애를 잃어버리고 참수형으로 죽은 두 번째 왕비 앤 불린(1501-1536)의 이야기죠. 1969년 <천일의 앤>, 2008년 <천일의 스캔들)>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헨리 8세는 형이 세상을 떠난 뒤 형수 캐서린과 결혼했지만, 메리 공주만을 낳고 아들을 낳지 못하자 캐서린과 이혼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이 이를 승인하지 않자 가톨릭교회를 떠나 영국 국교회를 창립한 뒤 스스로 교회의 수장이 되어 캐서린의 시녀였던 앤 불린과 결혼하죠.

하지만 앤이 엘리자베스 공주(훗날의 엘리자베스 1세)를 낳은 뒤 아들을 사산하자, 이번에는 앤의 시녀였던 제인 시모어(1508-1537)와 결혼하기 위해 앤을 불륜죄로 법정에 세웁니다. 이혼을 하면 목숨을 구해준다고 헨리 8세가 회유했으나 앤은 자기 딸의 지배권 상속을 위해 끝까지 이혼을 거부했고, 결국 사형선고를 받고 참수 당했습니다. 도니체티의 오페라 <안나 볼레나>는 바로 앤이 참수당한 1536년의 윈저 궁을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앤 불린 초상화, 1534년경

‘천일의 앤’을 주인공으로 한 본격 사극 오페라

이 오페라의 대본은 영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쓰였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이름들이 달라집니다. 앤 불린은 안나 볼레나(소프라노), 헨리 8세는 엔리코(베이스), 제인 시모어는 조반나 세이무어(메조소프라노), 그리고 앤의 젊은 시절 연인이었던 리처드 퍼시 경(테너)은 리카르도로 등장합니다.

1막

1막은 윈저 궁의 홀에서 시작합니다. 시종과 시녀들이 왕비 안나와 함께 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왕의 관심이 요즘 다른 여자에게 쏠려 있는 것 같아 안나는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왕의 여자가 자신이 총애하는 시녀인 조반나 세이무어라는 사실을 안나는 아직 모르고 있죠. 10대 소년인 시동 스메톤(메조소프라노, 바지 역)은 안나를 위해 악기를 연주하며 지나간 첫사랑의 행복을 노래합니다.

왕이 은밀히 찾아오자 조반나는 이런 밀회를 끝내고 싶다고 말하죠. 왕비의 자리를 원하는 조반나의 뜻을 알아차린 엔리코 왕은 그녀에게 정식결혼을 약속합니다. 안나와 이혼하려는 것입니다. 안나의 오빠인 로슈포르 경은 궁의 정원에서 안나의 옛 연인인 리카르도 퍼시를 만납니다. 엔리코 왕은 안나 때문에 추방했던 퍼시를 최근에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도록 허락했는데요, 안나와 퍼시가 다시 가까워지도록 한 다음, 불륜죄를 물어 안나와 이혼하려는 왕의 계략입니다. ▶제인 시모어 초상화. 한스 홀바인, 1536년

한편, 왕비 안나를 흠모하는 시동 스메톤은 안나의 초상화가 든 메달을 간직하려고 가져갔다가 아무래도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할 것 같아 몰래 방에 들어옵니다. 발소리를 들은 스메톤은 재빨리 몸을 숨긴 채, 안나와 퍼시가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퍼시는 열렬히 사랑을 고백하지만, 안나는 왕비의 자리를 잃게 될까봐 단호하게 거절하는데요, 절망한 퍼시가 자결하려고 칼을 뽑아들자 스메톤은 안나를 보호하려고 달려 나오고, 소란이 벌어지자 왕이 시종들을 거느리고 안나의 방에 나타납니다. 이때 스메톤이 품고 있던 왕비의 메달을 보게 된 왕은 불륜을 저지른 안나를 재판정에 세우겠다고 선언하고, 안나는 결백을 주장하며 왕에게 격렬하게 저항합니다. 그러나 왕은 방에 있던 모두를 감옥으로 보냅니다.

2막

2막은 안나가 갇힌 런던탑의 감방 앞에서 시작합니다. 왕의 시종무관 헤르베이는 “왕이 모든 시녀들에게 판사의 신문에 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전합니다. 조반나는 안나를 찾아와 왕을 사랑하게 된 죄를 고백하고, 안나는 분노하면서도 “너를 유혹한 왕이 나쁜 것일 뿐 너에게는 죄가 없다”라며 조반나를 용서합니다. 헤르베이가 다시 나타나 “스메톤이 왕비와의 간통을 인정했다”고 알립니다. 인정하면 왕비의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왕의 꼬드김에 순진한 스메톤이 넘어간 것이었습니다. 안나는 왕 앞에서 당당하게 “내게 죄가 있다면 왕비의 지위가 탐나 고귀한 성품을 지닌 본래의 연인을 버리고 왕과 결혼한 것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 퍼시는 크게 기뻐하며 왕에게 “왕비는 원래 내 아내인데 왕이 빼앗아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조반나는 왕 앞에 엎드려 안나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탄원하지만 왕은 말을 듣지 않죠. 헤르베이가 나타나 “안나의 불륜이 입증되었고 이 사건에 연루된 모두는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전합니다. 퍼시와 로슈포르에게는 왕의 사면 명령이 전달되지만, 안나의 처형이 철회되지 않자 두 사람은 모두 단호하게 이를 거절하고 죽음을 택하기로 합니다. 안나는 시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성한 모습을 보여 모두를 안타깝게 합니다. 밖에서는 요란하게 예포가 울려 벌써 왕과 조반나의 결혼을 알립니다. 안나는 “복수를 원하지는 않는다”며 마지막으로 격정적인 아리아를 부르고 사형대를 향해 나아갑니다.

국왕 엔리케가 왕비를 불륜죄로 몰아붙여 이혼하려 하자 왕비 안나 볼레나가 격렬하게 반발한다. MET Opera 2011

구조가 명료한 대본, 서정과 격정이 교차하는 음악

이 작품이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드라마틱한 격정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극적인 음악 덕분이었습니다.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와 유사한 ‘광란의 장면’(mad scene)이 20분간 계속되면서 오페라의 피날레를 장식하는데요, 특히 이 장면에서 안나가 퍼시와의 사랑을 회상하며 부르는 ‘고향으로 나를 데려다주세요’는 고요하면서도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명곡입니다.

도니체티와 대본가 펠리체 로마니는 이 작품에서 여러 주인공들이 각기 다른 텍스트를 각기 다른 멜로디로 함께 노래하는 방식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는데요, 특히 추방이 풀려 돌아온 퍼시가 왕과 왕비를 알현하는 5중창 장면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오페라에서는 특히 대본가의 역할이 두드러집니다. 도니체티는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 활동 초기의 희극 오페라 <엄마 만세!>(Viva la Mamma!)(1827)의 대본을 직접 쓰기도 했고 이후 몇 차례 대본 작업에 관여했습니다. 그러나 탁월한 대본작가 로마니와의 공동 작업은 <안나 볼레나>를 성공으로 이끄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로마니는 명료한 구조의 대본을 만들었고, 불필요하거나 느슨한 장면을 전혀 집어넣지 않았으니까요.

여주인공 안나는 처음부터 뚜렷하게 확정된 성격이 아니라, 극의 진행에 따라 성숙하고 완성되어 가는 캐릭터로 설정되었는데요, 이 점이 이 오페라를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들었습니다. 로마니는 이후로 <사랑의 묘약>, <루크레치아 보르자> 등의 걸작을 도니체티와 함께 작업했고, 벨리니의 주요 작품들의 대본도 썼습니다. <안나 볼레나>는 1830년 이탈리아의 성공적 초연 이후 1831년 런던, 1832년 마드리드, 1833년 빈, 베를린, 부다페스트, 1839년 뉴올리언스 등지에서도 대성공을 거두면서 오페라 작곡가로서 도니체티의 명성을 세계에 알렸답니다.

Donizetti, Anna Bolena Act 2 Scene 3 'Coppia iniqua' (복수를 원하지 않는다)

Anna Netrebko, soprano

Marco Armiliato, conductor

MET Opera 2011

추천 음반 및 DVD

1. 마리아 칼라스(안나 볼레나), 니콜라 로시 레메니(헨리 8세), 줄리에타 시미오나토(조반나 시모어), 잔니 라이몬디(리카르도 퍼시) 등. 잔안드레아 가바체니 지휘,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1957년 녹음 (음반)

2. 비벌리 실즈(안나 볼레나), 폴 플리슈카(헨리 8세), 셜리 버렛(조반나 시모어), 스튜어트 버로우즈(리카르도 퍼시) 등. 줄리어스 루델 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및 존 올디스 합창단, 1972년 녹음 (음반)

3. 디미트라 테오도슈(안나 볼레나), 리카르도 차넬라토(헨리 8세), 소피아 솔로비(조반나 시모어), 잔 루카 파솔리니(리카르도 퍼시) 등. 파브리치오 마리아 카르미나티 지휘, 가에타노 도니체티 베르가모 음악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프란체스코 에스포지토 연출, 2006년 베르가모 도니체티 극장 공연 실황 (DVD)

4. 안나 네트렙코(안나 볼레나), 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헨리 8세), 엘리나 가랑차(조반나 시모어), 프란체스코 멜리(리카르도 퍼시) 등. 에벨리노 피도 지휘, 빈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에릭 제노베제 연출, 2011년 빈 국립오페라극장 실황 (DVD)

이용숙 (음악평론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주제 전체>문화예술>음악>극음악/오페라 201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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