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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자료

역경의 인물, 링컨 그리고 행복

by Ddak daddy 2018. 5. 16.





역경의 인물, 링컨 그리고 행복

이 상 철(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부 명예교수)


1. 역경의 링컨

인간의 위대함은 역경을 이겨내고 일어서는데 있다. 역경에도 불구하고 일어설 수 있고 있는 사람만이 위대해 질 수 있다. 행복도 그렇다. 좋은 일이 있어 행복한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하지만 역경 가운데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역경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마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위대해 질수 있다.

토인비가 위대한 것은 역경을 고난이 아니라 미덕(virtue)으로 본데 있다. 그가 말하는 역경의 미덕이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역경이 크면 클수록 그 뒤에 오는 번영과 행복은 더욱더 크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위대한 인물이나 천재는 좋은 환경보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인물이 많다.

미국의 44대 대통령 가운데 어려서 일찍 아버지를 잃은 인물이 12명이나 된다. 이들 가운데는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과 44대 현직 대통령인 오바마도 있다. 또 44대 대통령 가운데 학교를 전혀 다니지 못했거나 대학을 나오지 못한 인물도 11명에 달한다. 이들 중, 링컨(16대)을 포함해 워싱턴(1대), 먼로(5대), 잭슨(7대), 트루먼(33대)등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 많다. 그러나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을 들라면 단연 링컨이다. 링컨은 미국의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100만 배나 더 흥미롭다는 말도 있다. 미국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링컨은 예수 다음으로 존경을 받는다.

2. 링컨의 유년기

이 지구상에서 누구나 적어도 초등학교를 다녔다면 링컨과 링컨이 외딴 숲속의 통나무(log cabin)집에서 태어났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링컨의 어린 시절을 보면 너무나 비참했다. 링컨의 부모는 링컨이 7살 때 켄터키 통 나무 집으로부터 인디애나 중남부의 아주 외딴 곳으로 이사를 했다. 마실 물을 얻기 위해 매일 1.6킬로미터를 걸어야 할 정도로 숲이 우거진 한적인 곳이었다. 이곳에 이주한지 2년도 채 못돼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어린 링컨이 9살, 누이 사라가 11살 때였다. 링컨의 부친은 홀로 도저히 농사와 가족의 생계를 꾸려갈 수 없게 되자 어린 두 남매를 외딴 나무 숲속에 버려둔 채 새로운 부인을 찾기 위해 옛 고향인 켄터키로 떠났다. 이 두 어린 남매는 더럽고 인적도 없고 먹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나무 숲속에서 거의 동물과 같은 생활을 했다.

링컨의 부친은 6개월이 지난 후 새로운 부인과 함께 돌아왔다. 다행히도 어린 링컨은 계모인 사라 베시 존스턴을 좋아했다. 계모는 어린 링컨에게 글을 읽는 법을 가르쳤고 성경을 읽도록 독려했다. 링컨은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그 대신 링컨은 성경을 통해 세상을 알게 되고 영적인 눈도 뜨게 됐다. 그는 성경을 통달했고 성경의 권위자가 됐다. 후에 그를 위대하게 만든 연설내용과 말들은 거의 성경에 근거한 것이었다.

계모는 어린 링컨의 멘토 역할도 했다. 계모의 증언에 의하면 링컨은 어려서부터 글을 쓰고 이야기 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을 뿐 아니라 남다른 훈련을 쌓았다고 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자신이 읽은 것 가운데 중요한 단어와 의미 그리고 언어의 모호성과 표현의 명료성을 일 이리 노트북(공책)에 적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그리고 메모용지를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그때그때 생각나는 단어, 구절, 아이디어를 적는 것을 습관화 했다.

3. 링컨의 위대성

링컨은 시와 공을 초월해 예수 다음으로 널리 영향력이 있고 또 존경을 받는다. 톨스토이도 링컨을 예수의 축소판이라고 했다. 링컨은 온 인류 역사상 예수 다음으로 영감을 주는 말을 많이 했다. 현 교황인 프란체스코도 링컨을 자유의 수호자로 불렀다. 링컨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에 관한 모든 여론 조사에서 건국의 아버지인 워싱턴을 누르고 단연 1위를 차지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링컨에 대한 서적도 예수 다음으로 많다. 2015년 링컨암살 150주기를 맞아 포드극장(링컨이 암살된 곳, 2009년 새로 단장)측은 링컨에 관한 1만5천권의 서적을 전시했다. 링컨에 관한 서적은 매년 50권 이상 씩 쏟아져 나오지만 그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이같이 링컨 관련 책들은 무한한 영감을 주고 매력이 있기 때문에 링컨에 관한 책을 내는 회사에 취직을 하면 평생 직장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말까지 있다.

둘째, 링컨은 예수와 같이 용서와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다가 순교했다. 미국이 남북전쟁에서 희생된 전사자는 60만 명을 넘었다. 이는 미국이 그 후 주요 해외전쟁(1,2차 대전, 한국 전, 월남 전)에 참전해 희생된 병사수보다 많은 수자였다. 이에 북부에서는 남부에 보복을 해야 한다는 원성이 높았다. 하지만 링컨은 피살되기 한 달 전에 있었던 재취임 연설에서 “아무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고 만인을 사랑으로”라는 용서와 사랑에 대한 불후의 명언을 남겼다.

셋째, 링컨이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감명과 감동을 주는 놀라운 웅변술 때문이었다. 링컨은 위대한 커뮤니케이터였고 위트와 재치가 넘치는 논쟁 가이고 웅변가였다. 그의 연설은 우레 소리와 같은 힘과 감동이 넘쳤다.

그의 많은 연설문 가운데 가장 많이 인용되고 회자하는 것이 게티즈버그 연설이다. 게티즈버그는 5만 명의 병사가 희생된 남북전쟁 최대의 격전지였다. 링컨은 이 연설에서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인민의 정부는 영원히 지구상에서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불후의 명언을 남겼다. 이 연설은 앞서 열거한 재취임 연설과 함께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명연설에 속한다.

링컨이 1858년 일리노이 주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가 됐을 때 한 연설도 명연설에 속한다. 링컨은 성경의 구절(마태복음 12:25)을 비유적으로 인용해 “미국이 노예주와 자유주로 갈라져 반목하면 장차 미국이라는 나라는 지탱될 수 없다”고 했다. 링컨은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링컨은 이 명연설로 인해 순식간에 전국적인 인물로 부상했고 2년 후인 1860년 당당히 대통령에 당선됐다.

넷째, 링컨이 위대해 질수 있었던 것은 미국 역사상 최고의 문장가이고 이야기의 귀재였다. 그가 남긴 명언들 가운데는 이런 것들이 있다. 만일 노예제도가 그리지 않다면 이 세상에는 그른 것이 아무것도 없다. 노예제도는 독립선언문(1776)에 위배된다. 남부와 북부 인들은 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하나님께 서로 자기편이 돼 달라고 기도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선거가 전쟁의 희생물이 될 수 없다.

다섯째, 링컨이 위대해 질수 있었던 것은 그가 초당적이었고 여론의 선구자였기 때문이다. 링컨은 공화당 출신의 대통령이었으나 민주당은 그가 공화당 출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와 좌 즉, 공화당과 민주당은 다 같이 자유롭게 링컨을 경외하고 존경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여론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여론을 바꿀 수 있는 지도자만이 정부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남북전쟁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 링컨이었다면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은 뉴욕 트리뷴의 그릴리였다. 그릴리는 “2천만의 기도”라는 사설(1862.8.20)을 통해 링컨이 즉각 모든 노예를 해방시킬 것을 요구했다. 링컨은 그릴리에 대한 회신을 가장 영향력 있는 트리뷴이 아닌 무명의 지방지인 워싱턴의 한 신문에 게재 했다. 여론을 의식한 회신내용도 분명하고 단호했다. 이 전쟁에서 최대목적은 노예제도를 유지하거나 폐지하는데 있지 않다. 만일 한명의 노예도 해방시키지 않고 조국을 구할 수 있다면 본인은 이를 택할 것이고, 모든 노예를 해방시켜 조국을 구할 수 있다면 이를 택할 것이며, 일부 노예를 해방시켜 조국을 구할 수 있다면 이를 택할 것이라고 했다.

여섯째, 링컨의 결혼생활도 그의 위대성에 한 몫을 했다. 부인은 격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부인인 매리 토드와 23년간의 결혼생활을 하면서 정치에 관한한 부인이 자신과 의견을 같이 한 것이 그가 장차 대통령이 되는 강력한 힘이 됐다. 1850년 링컨이 오리건 주의 주지사로 임명됐을 때 이를 거절하도록 설득한 것도 부인이었다. 부인은 링컨이 언젠가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만일 링컨이 멀고 외딴 지역인 오리건 주의 주지사가 되면 이런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4.링컨의 유머와 행복

김동길(연세대 명예교수)은 “대통령의 웃음”이란 저서에서 링컨의 웃음은 아침놀(sunrise)같이 빛난다고 했다. 그는 역경 가운데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남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노예를 해방시킬 때도 울지 못해 웃는다고 했다. 남북전쟁에서 60만 이상의 병사가 희생된 비참한 상황에서도 죽지 못해 웃는다고 했다. 링컨이 역경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잃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언제나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을 보면 예외 없이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인물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인물이다. 링컨은 가장 유머러스한 대통령이었다.

그는 1846년 하원의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합동정견발표에서 상대후보가 링컨이 신앙심이 없음을 비꼬았다. 그러면서 여러분 천국에 가고 싶은 사람은 모두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링컨만 손을 들지 않았다. 그럼 당신은 지옥에 가겠다는 거 군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링컨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지금 천국도 지옥도 가고 싶지 않습니다. 오로지 의사당(국회)으로 가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링컨은 보좌관들 앞에서 개의 꼬리를 다리라고 한다면 개의 다리는 몇 개냐고 물었다. 당연이 보좌관들은 다섯이라고 했다. 그러나 링컨은 넷이라고 했다. 꼬리를 다리라고 한다고 해서 꼬리가 다리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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