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Driving Miss Daisy)는 1900년대 초반과 중반의 미국사회를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인종과 계층의 벽을 넘어서 어떻게 사람들이 정을 주고받으며 오랜 세월에 걸쳐 진정한 친구가 되어 가는지를 무리 없이 보여준 영화이다. 이 영화의 도입부에는 칠십대가 된 돈많은 과부이자 전직 여교사인 미스 데이지가 운전을 하다가 실수로 후진을 하면서 차를 위험하게 박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대목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지는 하녀 이델리아의 눈앞에서 차는 망가져서 견인을 당해갔다. 늙었지만 곱고 품위 있고 꼬장꼬장한 미스데이지는 아들이 운전사를 고용하라는 것을 거부한다. 자신이 운전을 못할 만큼 늙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엄마를 위하지만 몹시 바쁘기도 한 사업가인 아들 불리는 운전사로 호크라는 나이든 흑인을 고용해서 어쨌든지 엄마가 위험하게 운전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아들이 돈을 내고 붙여준 운전사가 사사건건 못마땅한 미스데이지는 운전사 호크를 사사건건 구박한다. 그러나 넉살좋게 그 구박을 받아가며 자신의 차에 미스데이지를 태워야하는 사명을 가진 운전사 호크의 부드럽고 유머러스한 태도는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따뜻하게 해준다. 결국 호크의 끝없는 설득과 어떤 구박도 웃으며 견디는 태도에 넘어가게 된 미스데이지는 육일 만에 호크가 운전하는 차를 타게 된다. 작전에 성공하여 신이 난 호크가 전화상으로 미스데이지의 아들인 불리에게 보고를 하면서 한말, "육 일만에 성공했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한 것과 같은 시간인 꼭 육 일만에 나도 목표를 모두 이루었단 말이네." 이 영화는 1940년대 아틀란타를 배경으로 하는데 그 시절에 전형적인 남부 주인 아틀란타는 흑백차별이 엄연했던 곳이다. 노예제도는 폐지가 되었지만 흑인은 공공장소를 이용할 수 없었고 백인과 함께 먹을 수도 없었던 시절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런 차별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명백한 정치적인 메시지가 아닌 그저 그 시절을 그리기 때문에 끼워 넣어진 장면처럼 자연스럽게 보이는 대목들이 미국 사회에서 늘상 들어오던 흑백차별이란 정치적 이슈를 강도 높게 전하는 대신 생활속에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으로 독자들에게 그 장면을 스스로 소화할 자유를 준다. 이를테면 식사하는 대목이 그렇다. 하녀 이델리아가 죽고 난 후 이집에는 미스 데이지와 호크밖에 없다. 둘이 거의 모든 일상을 친구처럼 함께 하게 되는데 그래도 미스 데이지는 자신의 식탁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호크는 부엌에 있는 작은 테이블에서 혼자 식사를 한다. 먹는 음식은 결국 미스데이지가 요리를 한 같은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이 영화는 메시지를 높이지 않는다. 그냥 둘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들의 식사를 마치고 또 나머지 일상을 함께 한다. 이 장면은 왠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여기서 독자들은 아니 백인과 흑인이라고 단 둘이 있는 집에서 따로 따로 식사를 하다니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바보 같은 짓인가 하고 핏대를 올리게 되지 않는다. 자신이 요리한 닭고기를 스무 명은 앉아도 남을 것 같은 커다란 식탁에서 조용히 혼자서 식사를 하는 미스 데이지에 대한 연민이 먼저 생기게 된다. 그녀는 사회적으로 백인이고 부자이지만 내면적으론 자신의 운전사인 호크에게 마음을 의지하여 외로운 일상을 이어가는 늙고 약한 영혼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모든 것을 가진 괴팍한 기득권층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그런 감정은 여기에서 생겨날 수가 없게 한다. 한편으로 호크는 늙고 가난한 흑인이지만 마음이 담백하고 즐겁고 너그러운 사람이어서 운전사라는 겉껍질을 벗기고 보면 그는 오히려 받는 사람이 아니고 주는 사람에 해당한다. 까다롭고 괴팍한 미스데이지를 마냥 받아주며 언제나 대화를 만들어서 이어나가고 눈이 와서 길이 얼고 전기가 나가도 얼음길을 운전하여 따뜻한 커피와 도넛을 아침으로 사서 혼자 눈에 덥힌 집에 갇힌 미스데이지를 돌보아 준다. 주인과 운전사, 가진 자와 없는 자, 백인과 흑인이라는 이분법은 더 이상 별 의미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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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영화로
인하여 더욱 유명해진 노래 " 달에게 부치는 노래 (Song to the moon)인데요,
이 노래는 체코의 작곡가 드보르작 (Antonin Leopold Dvor'ak)의 오페라 루살카
(Rusalka)에 나오는 아리아로 이 영화에서는 목련꽃 화사한 정원을 배경으로
데이지가 거실에 앉아 수를 놓는 장면에서 나오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소프라노 루치아 폽(Lucia Popp)이 부른 것으로서 화면의
분위기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선곡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한 때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리릭소프라노로 꼽혔던 루치아 폽은 1993년 11월 16일 향년 54세의 나이로
영면하였습니다.
황혼은 모두에게 찾아오지만, 그 황혼을 아름답게 맞이하려면 몸과 마음 모두 아름답게 가꾸며 살아야
된다는 점을 요즘들어 절실히 느낍니다. 비록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자세로
살아야 되겠다는 각오를 다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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