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예술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오로지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석가모니가 그러했듯이 ‘사랑’ 하는 것이다.” ―이사도라 덩컨(1877~1927)―
“내 인생은 오직 두 개의 동기를 갖고 있다. 사랑과 예술이 그것인데 이들은 끊임없이 싸운다. 왜냐하면 사랑도, 예술도 나의 전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현대무용의 개척자 ‘이사도라 덩컨’ 의 삶은 자신의 말대로 치열하게 그녀를 요구한 ‘사랑’ 과 ‘예술 ’ 에 바쳐진 생애였다. 그녀는 1877년 5월 2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네 아이를 데리고 이혼한 덩컨의 어머니는 그녀를 임신했을 때 냉동한 귤과 샴페인만 먹었다고 한다. 자서전에 덩컨은 이렇게 썼다. “어머니 자궁 속에서부터 나는 춤췄다. 귤과 샴페인은 ‘아프로디테’ 의 음식이었으므로.”
3류 무용수로 살다 22세 때 가축수송선을 타고 유럽으로 건너간 그녀에겐 새 세상이 열렸다. 엄격한 격식에 따른 전통 발레에 익숙해 있던 유럽에서 그녀의 춤은 충격이었다. 님프처럼 거의 옷을 걸치지 않고 ‘맨발로 춤을 추는’ 그녀를 보려고 군중이 쇄도했다.
그녀는 하나의 단순한 동작을 만들기 위해 수년간의 노동과 조사를 거듭했다. 스스로 “내 춤의 스승은 니체” 라고 말하며 인간의 영혼을 가장 자유롭게 표현 하는 고도의 예술로 춤을 확립했다.
“인생의 10%가 아니라 전부를 던져 살아야 한다.” 고 강조했던 그녀는 사랑에 서도 마찬가지였지만 행복하지는 못했다. 독신을 고수하면서도 연인들과의 사이 에서 두 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1913년 보모와 함께 나들이를 나갔던 아이들은 차 사고로 모두 목숨을 잃었다. 슬픔을 딛고 일어선 그녀는 러시아에서 15년 연하인 시인 세르게이 예세닌을 만나 1922년 결혼했다. 그러나 3년 뒤 예세닌마저도 권총 자살로 덩컨의 곁을 떠났다.
지상의 삶과 끝내 화합할 수 없었던 이 ‘아프로디테’ 는 죽음까지 극적이다. 불행하게, 1927년 프랑스 니스에서 타고 가던 자동차의 뒷바퀴에 빨간 스카프 의 끝자락이 끼는 바람에 목이 졸려 숨졌다. 차에 오를 때 그녀가 친구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이랬다 “안녕, 나는 영광을 향해 떠나.” <퍼 온 글에서 일부 삭제, 보충했음>
[ 영화 ‘맨발의 이사도라’ ]
이사도라 덩컨은 전통무용을 배웠으나 차차 예술은 물론이고 개인 생활에서조차 전통과 관습을 거부하는 파격을 보인 인물이다. 영화는 남자 비서에게 자신의 인생을 구술하면서, 삶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관습을 배격하는, 자유분방한 연애와 동거, 개인 생활, 그녀의 춤 모두는 당시 보수적이고 편협한 사람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그녀의 춤은 고대 그리스 무용 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맨발로 무대에 선 것으로 유명하다.
재봉틀 거부 파리스 싱어(제이슨 로바즈), 러시아 시인 세르게이 에센닌과의 사랑, 두 아이들의 비극적 죽음 등 그녀의 인생은 성공과 비극적 최후라는 롤러코스터와 도 같았다. 이사도라 덩컨은 자신의 규칙에 따라 삶을 살았으며, 여성 해방과 자유로운 사고, 현대 무용에 기여한 업적으로 인해 열렬한 찬미자를 거느리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의 전설적인 현대 무용수 이사도라 덩컨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그린 전기 영화로, 이미 1977년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바 있는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가 이사도라 덩컨 역을 열연, 그해 각종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1968년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후보, 칸느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뉴욕 비평가상 여우주연상 수상했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