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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하얀 손수건 -나나 무수꾸리

by Ddak daddy 2017. 10. 2.





Me T'Aspro Mou Mantili (하얀 손수건) - Nana Mouskouri





 




Me T'Aspro Mou Mantili
                (하얀 손수건)

Sung By
Nana Mouskouri



Me t'aspro mou mantili
Tha s'apoheretiso
Ke gia na mou 'rthis piso
Stin ekklisia tha bo
Tha anapso to kantili
Ke to keri tha zviso
Ta matia mou tha kliso
Ke tha se onirefto.
Giati ise lipimeno
Ke de milas ki esi
Pouli taxidemeno se makrino nisi.
Iha ta dio sou hili
Krifo tis nihtas teri
Ma to diko mou asteri
Min pernis ap' edo.
Sou harisa kohili
Na to kratas sto heri
Os t'allo kalokeri
Pou tha se xananaido.
Giati ise lipimeno
Ke de milas ki esi
Pouli taxidemeno se makrino nisi.
 




Nana Mouskouri

단아한 품위와 청순한 아름다움을 지닌 Nana Mouskouri는 1935년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태어나 오페라 가수의 꿈을 키우며 성장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대한 남다른 재능을 보인 그녀는 명문인 아테네 음악원에 입학하여 성악을 전공하게 된다. 그러나 음악원의 졸업시험을 앞두고 우연히 접하게 된 재즈음악에 매료된 후 그녀의 인생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Billie Holiday와 Duke Ellington과 같은 재즈뮤지션들의 음악뿐만 아니라 포크와 샹송 등 대중들의 심금을 울리는 다양한 팝음악을 섭렵하며 제 2의 Maria Callas가 되는 것을 과감히 포기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음악원을 졸업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게 되었지만 나나 무수쿠리는 그리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가수로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번안 가요로 잘 알려진 '하얀 손수건’과 아노스 하지다키스의 작품인 '아테네의 흰 장미’가 1960년 당시로는 경이로운 120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를 올리면서 나나 무수쿠리는 일류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그녀의 인기는 급속히 퍼져나갔고, 영화 [Never on Sunday]의 주제가를 부르며 더욱 견고한 명성을 쌓게 되었다.

본격적인 성공은 미국 대중음악의 거목인 Harry Belafonte가 그녀를 정식으로 미국에 초청하면서 이루어졌다. 미국인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으며 펼친 나나 무수쿠리와 헤리 벨라폰테의 1964년 카네기 홀 실황은 성황을 이루었고 유럽에 이어 미국시장에서도 그녀의 인기를 이어나가게 한 디딤돌이 되었다.

공연장과 대학가를 중심으로 전미공연을 펼치며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나나 무수쿠리는 40년이 넘는 활동기간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전 세계에 걸친 그녀의 팬들을 매료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