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꾼과 선녀 설화(바이칼호를 중심으로)
옛날 금강산 기슭에 한 나무꾼이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생활이 어려워 나무를 해다 팔아서 살아갑니다. 어느 날 나무꾼은 쫓기는 사슴을 구해 주고 사슴은 그 보답으로 선녀와 혼인하는 방법을 일러 줍니다. 나무꾼은 사슴이 알려준 대로, 구름 타고 내려와 목욕을 하고 있는 선녀의 옷을 감추어 하늘로 가지 못한 선녀를 데려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사슴은 나무꾼에게 아이를 네 명 낳기 전에는 선녀 옷을 돌려주지 말라고 했지만 나무꾼은 선녀가 하도 간청하는 바람에 아이 셋을 낳았을 때 날개옷을 돌려줍니다. 그러자 선녀는 아이들을 양팔과 두 다리 사이에 끼고 하늘로 올라가고 맙니다. 슬픔에 잠긴 나무꾼은 사슴의 도움으로 금강산 연못에서 목욕물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늘로 올라간 나무꾼은 지상에 두고 온 어머니를 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선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용마(龍馬)를 타고 하강하여 어머니를 만납니다. 선녀는 나무꾼에게 “절대 용마에서 내리지 말라.”고 합니다. 나무꾼은 어머니가 끓여주는 호박죽을 먹다가 용마의 잔등에 엎지르자 깜짝 놀란 용마가 펄쩍 뛰는 바람에 나무꾼은 말에서 떨어져 죽고 맙니다. 용마는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 나무꾼은 죽어 수탉이 되었다고 합니다.
잘 아시는 ‘나무꾼과 선녀’입니다. 이 설화는 여러모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꿈꾸어보았을 이야기이기도 하겠지요. 마치 여자가 ‘신데렐라 신드롬’을 가지고 있듯이 남자도 ‘온달 신드롬’이나 ‘나무꾼과 선녀 신드롬’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나무꾼과 선녀’에는 이 세상에서는 보기 힘든 아름다운 하늘의 여자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여자가 알몸으로 물에서 멱을 감음으로써 남성들의 성적(性的) 자극은 말할 것도 없고 성적인 유혹의 클라이맥스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광경을 보고 참을 수 없던 나무꾼이 이들의 옷을 감춤으로써 그 하늘의 여자를 아내로 삼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설화는 문학에서는 오랫동안 연구의 주제였고 끝없이 사람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나무꾼과 선녀’에서의 주요 연구 주제는 지상과 하늘나라의 사랑 문제, ‘금기’를 지키지 못한 나무꾼의 심리적 문제, 여성을 붙잡아 두고 싶은 남성들의 욕망 등등이 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무꾼과 선녀’는 뭔가 좀 이상합니다.
첫째, 선녀라면 세상 최고의 여자이고 나무꾼은 세상에서 아주 지위가 낮은 천민(賤民) 류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결혼을 해요? 신분이나 지위의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나는 게 아닐까요? 마치 요즘 세계적 재벌의 귀한 딸이 날품팔이와 결혼하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둘째, 하늘나라의 선녀라면 상당한 정도의 힘과 지혜가 있어야 하는데 너무 맥없이 나무꾼의 장난에 놀아납니다. 선녀는 찍소리도 못하고 그저 나무꾼이 하자는 대로 합니다. 도대체 이 선녀들의 출신이 하늘인지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셋째, ‘나무꾼과 선녀’에서 나타나는 선녀의 이미지는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선녀의 이미지와는 달리 그저 평범한 가정주부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선녀가 나중에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다면 우리 이웃의 아줌마나 다름이 없었을 것입니다. 모르죠. 결혼하기 전에는 모두 선녀였다가 결혼 후에는 그저 평범한 아줌마나 ‘바가지 꾼’이 되는 것이 여자의 운명인지(백마 탄 왕자가 ‘배불뚝이 아저씨’로 변하는 거랑 같은 이치겠죠).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기원과 관계가 있는 바이칼 호수 부근에 사는 부리야트족(칭기즈칸의 종족)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의 설화에는 옛날 사냥꾼이 새를 잡으러 갔다가 호수에서 깃옷[羽衣]을 벗고 여자가 되어 헤엄을 치고 있는 백조 세 마리를 보고 깃옷 하나를 감추어 여자와 함께 삽니다. 아이를 여섯이나 낳고 살던 어느 날 아내는 술을 빚어 남편을 취하게 한 후 깃옷을 얻어 다섯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로 날아갔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유형의 이야기는 비단 바이칼이나 한반도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에도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이죠.
그런데 이 이야기는 전혀 엉뚱하게도 민족 기원과 관련된 신화라는 것입니다. 즉 부리야트의 신화에는 백조가 지상에 딸 하나를 남겨두고 하늘로 가지요? 바로 이 딸로부터 부리야트족이 시작된다는 것이지요. 몽골 부리야트족의 신화를 다시 한 번 봅시다.
“호리이도는 노총각으로 외롭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바이칼 호수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있는데 아름다운 백조 한 마리가 호수로 내려와 아름다운 선녀로 변하여 옷을 훌훌 벗더니 목욕을 하였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호리이도가 살금살금 다가가 선녀의 옷을 숨겼다. 잠시 뒤 목욕을 마친 선녀는 옷이 없어 하늘나라로 올라가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 호리이도는 그녀에게 다가가 위로하고 그녀를 데리고 자기의 집으로 가서 살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선녀는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칸의 미희(美姬)였던 텡거리 고아(天美)가 변해서 된 선녀였다. 호리이도와 선녀 부부는 호리라는 성을 가진 11개 부족의 선조가 되었다.” [그도리야프체프,『부리야트 蒙古民族史』(東京 : 1943) 55∼56쪽]
“성무황제[聖武皇帝 : 북위의 시조인 신원황제(神元皇帝)의 아버지]가 사냥을 나가 산 속 호수가에 있는데 하늘에서 천녀(天女)가 내려왔다. 천녀는 천제(天帝)의 명으로 성무황제와 인연을 맺기 위해 왔다고 하였다. 이에 성무황제는 천녀와 하룻밤을 함께 지냈다. 다음날 천녀는 하늘로 올라가면서 다음 해 같은 날 같은 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약속한 날이 되자 천녀는 하늘에서 내려와 아들을 맡기면서 왕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이 아이는 자라서 후일 위(북위)나라 시조 신원황제가 되었는데 이름을 역미(力微 : [리웨이?])라고 하였다(<北史> 卷1 魏本紀 1)”
만주 쥬신의 신화는 다소 길어서 그 내용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분석하도록 합시다[아래의 전설은 『청실록(淸實錄 : 中華書局 影印本)』태조실록(太祖實錄), 『청사고(淸史稿 : 1927)』, 장기탁(張其卓)ㆍ동명(董明)의 『만족삼노인고사집(滿族三老人故事)』과 이마니시하루아끼(今西春秋)『滿和對譯滿洲實錄』(최학근 대역)(서울 : 1975) 1권 박시인 『알타이신화』(청노루 : 1994) 등에 있는 내용을 순서에 맞게 체계적으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옛날 하늘 위에 세 명의 아리따운 압캐 살간[선녀(하늘의 여인 : 天女)], 즉 선녀 세 자매가 살았다는데 은꾸륜(恩固倫), 정꾸륜(正固倫), 뿌꾸륜(佛固倫)이었다. 세 선녀는 하늘 생활이 싫증나 있는데 지상에 궤리만싸엔아린[果勒敏珊延阿林山 : 만주어로 장백산(長白山 : 백두산)을 가리킴)]에 천지(天池)가 있어 그 연못은 물이 맑고 온갖 꽃들이 피어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 가서 놀고 싶어 했다. 막내 선녀 뿌꾸륜은 총명하여 흰 구름으로 깃털을 만들고 깃털을 걸친 팔을 날개로 삼아 몸을 흔드니 한 마리 새하얀 백조로 변했다. 두 언니도 그녀를 따라 천지 옆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이 광경을 사냥꾼 삼형제가 목격하고 백조들을 따라 갔는데 백조는 선녀 세 자매로 변하여 옷을 벗고 천지의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위의 글은 만주 쥬신 신화의 첫 머리입니다. 그리고 몽골의 부리야트 신화와는 거의 일치하지요?
그런데 이 첫 대목에서 두 가지 중요한 코드(ethnic code)가 있습니다. 하나는 선녀, 즉 천녀(天女)이고 다른 하나는 장백산(長白山 : 백두산)이라는 쥬신의 영산(靈山)입니다. 장백산을 봅시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장백산은 쥬신의 제2의 발상지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산입니다. 위에서 나오는 궤리만싸엔아린(山)이란 만주어인 궤리만(長 : 크거나 길다) 싸엔(白 : 희다)이라는 말에다 아린(山)을 합친 말인데 이것을 과륵민산연아림산(果勒敏珊延阿林山)이라는 한문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장백산은 모든 쥬신의 성산(聖山) 부르항산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동과 만주를 터전으로 하는 쥬신에게 있어서 가장 신령스러운 산으로 숭배의 대상이 되는 산이지요. 원래 쥬신의 시원(始原)은 알타이지만 긴 세월이 흐른 뒤 장백산을 중심으로 다시 민족 부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니까요. 따라서 시조신화가 시작되는 장소가 쥬신의 영산(靈山)인 장백산(백두산)임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겠지요.
“삼형제가 선녀들의 옷을 감추어버리자 목욕이 끝난 선녀는 울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냥꾼 큰 형은 자신의 옷을 벗어 언꾸륜의 몸에 걸쳐주었고, 둘째는 정꾸륜의 몸에 걸쳐주었으며, 막내는 뿌꾸륜의 몸에 걸쳐주었다. 그래서 세 형제는 세 자매를 데리고 각자 자신의 작은 움막으로 들어갔다. 세 자매는 인간 생활이 즐거워 아예 눌러 앉아 살게 되었고 그 사이 2년이 흘렀다. 그러자 선녀 세 자매는 하늘의 벌이 두려워 남편이 숨겨놓은 옷을 찾아 각자 어린 핏덩이(세 아이)를 놓아둔 채 다시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이 세 아이들은 자라 송화강(松花江)을 따라 목단강(牡丹江)과 만나는 곳까지 가서 정착했고 후손들이 번성하여 모두 자신의 성(姓)이 있어 세 가지 성으로 나뉘었다. 그래서 이 지방을 ‘삼성[三姓 :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이란현(依蘭縣)]’이라고 불렀다.”
이 내용은 우리나라의 ‘나무꾼과 선녀’와 거의 같은 내용인데 이 세 아이가 헤이룽강(黑龍江 : 아무르강) 쪽으로 이동해 갔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헤이룽강이 주요 근거지였다는 말인데요. 즉 하늘의 피를 이어받은 어린 아이가 북으로 이동하여 삶의 터전을 잡은 것이죠. 그러나 좀 깊이 생각해보면 망국의 백성들이 다시 뿔뿔이 흩어져 부족 상태로 돌아간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지요? 왜냐하면 조선이 망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버리고 만주로 이동했지요? 고구려(高句麗), 신라(新羅)나 발해(渤海) 등이 망했을 때 역시 마찬가지겠죠.
“한편 하늘로 간 세 선녀는 땅에 두고 온 아기와 인간세상의 생활이 그리워 신장(神將)의 수비가 삼엄하지 않을 때를 틈타 구름으로 깃털을 만들어 세 마리 백조가 되어 궤리만싸엔아린(장백산) 위에 도착했다. 하지만 남편과 아이를 찾았으나 모두 보이지 않아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며 송화강(松花江)을 따라가다가 삼성(三姓)이라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후손(後孫)임을 알았다. 그런데 삼성의 후손들이 천성이 싸우는 걸 좋아해 칼부림이 나고 원한은 갈수록 깊어져 있었다. 이 문제를 고민하던 중 선녀들은 목욕을 했는데 막내 선녀는 까치 한 마리가 하늘에서 날아와 천지의 상공 위로 날아와서는 입안에 물고 있던 것을 그녀의 옷에 뱉는 것을 보고 올라왔다. 옷소매 위에 잘 익은 붉은 열매가 놓여 있어 입에 물고 있다가 그만 삼켜버렸다. 그러자 막내는 몸이 무거워져 날 수가 없었고 나머지 선녀들은 먼저 하늘로 가버렸다. 막내 선녀는 목마르면 천지의 물을 마시고, 배고프면 짐승을 잡아먹고 열매를 따먹었으며, 추우면 불을 피우고 하여 12개월이 지나 눈썹이 짙고 눈이 큰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는 낳자마자 바로 말을 하고 며칠이 지나자 17∼8세의 아이처럼 되었다.”
신화만으로 본다면 선녀들이 2차로 강림(降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선녀들의 1차 강림으로 주류 만주 쥬신이 형성되었지만 다시 이 나라는 멸망하고 민족은 뿔뿔이 흩어져 민족의 장래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2차 강림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분열된 민족을 새롭게 통일하는 자의 등장을 나타내는 것이죠. 그렇지만 신화에서 같은 선녀들이 내려온다는 것은 1차 강림 때의 천손족이나 2차 강림 때의 천손족이 그 근본(ethnic entity)은 서로 다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부리야트 삶의 터전 바이칼호의 사계(四季).
한반도에서 이조 역사를 제외하면 반만년 모계사회.
한반도에서 남성우월론이 존재한 시기는 불과 500 년.
그것도 엄밀히 따지면 유교사상이 지배했던 이조 후반.
남녀평등은 한반도 반만년 역사상 남자에게 과분한 시기.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은 모계사회로부터의 전설이다.
한반도의 여성우월사상을 잘 알려주는 대표적인 설화.
그 설화 속에 담긴 숨은 의미를 좀 더 파헤쳐보기로 하자.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
목욕하는 선녀의 옷을 감춰 두 자식을 낳고 살던 나무꾼.
그제서야 감췄던 날개 옷을 돌려주자 하늘로 날아간 선녀.
마음 착한 총각 시절 사냥꾼에게 쫓긴 노루를 구해준 나무꾼.
노루가 선녀 목욕장소를 가르쳐 주고 옷을 감추라고 알려줬다.
노루는 아이 셋 낳기 전에 날개옷을 돌려주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이 둘은 선녀가 품에 안고 하늘을 날 수 있어도 셋이면 어렵다.
나무꾼은 노루의 당부를 잊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뒤늦게 후회한다.
이때 다시 고맙게 하늘에서 내려오는 두레박 위치를 알려준 노루.
노루의 천기누설 보은 덕분에 그 두레박을 타고 가족과 극적 상봉.
훗날 지상에 두고 온 어머니를 뵈러 내려와 지상에 남게 된 나무꾼.
천마에서 내리지 말라는 금기를 어겨 지상에 홀로 남게 된다는 전설.
.................................................................................................
우리나라에서는 일부분 또는 전부가 옛부터 널리 전해내려온 전설이다.
나무꾼과 선녀가 자식을 낳고 죽기까지 행복하게 살았다는 전설은 없다.
권선징악 행복결말(해피 앤딩)인 우리나라 전설과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에는 풀리지 않는 베일의 수수께끼가 숨어있다.
이승에서 행복한 결말 없는 ‘나뭇꾼과 선녀’ 전설 = 몽골 백조처녀 신화.
아이 셋으로 선녀를 곁에 붙잡아 두고 싶은 것은 남성들의 본능적인 욕망.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부근의 몽골 브리야트 족은 백조를 신성하게 여긴다.
생명은 백색 설원에서 태어나, 백색의 설원으로 돌아 간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 믿음 때문에 바이칼 호수 일대가 조상뿌리인 민족은 하얀 옷차림이 특색.
사냥꾼은 깃옷을 벗고 여자가 되어 헤엄치는 호수의 백조 세 마리를 본다.
사냥꾼은 한 마리의 깃을 감춰 날아가지 못한 여자와 여섯 아이를 낳는다.
어느 날, 아내가 소주를 빚어 사냥꾼을 취하게 한 후 깃을 달라고 애원한다.
그 옷을 내어주자 백조로 변한 아내는 다섯 아이를 데리고 하늘로 날아갔다.
그 백조가 천신 에세게 마란의 딸이었고 남은 한 아이가 브리야트인들의 조상.
그들이 백조를 숭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백조 처녀 이야기는 유럽 몽골, 시베리아, 중국과 일본까지 널리 퍼져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백조도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로 떠나버린다는 것이다.
한가지 다른 점은 사냥꾼에게는 천기누설이나 금기 사항이 없다는 대목이다.
신화에서 사냥꾼이 술에 취해 깃을 내준 것은 실수가 아니다.
사냥꾼은 실수 후에 가족들과의 이별로 슬픔을 겪지도 않는다.
백조처녀의 전설은 브리야트족이란 민족의 탄생신화이기 때문.
'에벤키 족' 웅녀는 새끼를 사냥꾼과 절반 씩 나누어 갖는다.
단군신화 관점에서 보면 맥족이고 중국역사로 보면, 예 & 맥.
천신의 딸과 사냥꾼이 헤어져야 브리야트족이 존재할 수 있다.
선녀와 나무꾼 전설은 배달민족의 탄생 뿌리에 관한 전설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의문점이 떠오른다.
한반도에는 백조처녀가 조상의 뿌리가 되었다는 설이 없다.
몽골에 있는 것이, 일본에도 있는 것이 왜 한반도에 없을까?
한반도는 농본국가였기 때문에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
몽골과 일본은 유목민 생활 관습 탓에 '백조처녀의 전설.'
한반도는 배달민족 한겨례 과정에서 두 전설이 뒤섞인 듯 싶다.
사냥꾼은 나무꾼으로.. 백조는 선녀로.. 백조의 깃은 날개옷으로.
브리야트 기원 신화에서 주인공은 사냥꾼이 아니다.
그 백조는 지상에 딸 하나를 남겨두고 승천하기 때문.
이 딸이 브리야트족 조상이기에 백조는 신성한 어머니.
모계사회 성모신앙이 엿보이는 신석기시대의 전설이다.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 남녀 주인공은 누구일까?
부모님 모시고 사는 착한 나무꾼 총각이 남 주인공.
날개옷을 빼앗기고 아이 둘을 낳은 선녀가 여 주인공.
역시, 모계사회의 풍습이 담겨있는 신석기시대의 전설.
우리나라 역사상 남자가 가장이었던 시기는 이조시대 뿐.
그것도 쥐구멍에 볕든 날처럼, 역사상 남성이 반짝한 시기.
이조 후반에 사대부 양반가문만 축첩 및 일부다처제가 허용.
자고로 여자를 경시하는 나라(가문)는 패망의 역사를 겪는다.
선진국일수록 여자를 소중히 알고 위하는 전통이 전해져온다.
모계사회 일처다부제 남편은 한지붕 가족도 아니었다.
오늘날 현대 사회는 다시 모계사회로 돌아간 느낌이다.
남자는 나무꾼이고 여자는 선녀의 제 위치로 돌아간 듯.
아이 셋을 낳을 때까지 서로 참고 살다보면 행복이 온다.
아이를 둘만 낳더라도 셋 낳기 전까지는 참고 살라는 교훈.
죽을 때까지 감출 것이 있다면 끝까지 감추며 살라는 가르침.
덧 말.
산행을 하다보면, 남자는 성실한 나무꾼 모습이 보기가 좋다.
산행을 하다보면, 여자는 아름다운 선녀 모습이 보기가 좋다.
추천도서: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
이 책은 신화학 박사이자 꿈분석가인 고혜경씨가 『심청』『콩쥐팥쥐』『해님달님』
『나무꾼과 선녀』『공주와 바보 이반』『연이와 버들소년』『머리 아홉 달린 거인』등
7편의 옛이야기를 통해 우리 무의식 안에 잠재되어 있는 ‘자기’를 태고의 신화와 연결시켜
풀었다. 그동안 동화를 읽을 때는 생각없이 그저 재미로 읽었는데 이 책에서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운운하며 신화와 같이 동화를 분석하면서 전개되는 것이 좀 낯설을 수 있으나
끝까지 읽어보면 작가의 의도를 조금씩 알 것이다.
작가는 이 책을 쓴 목적이 진정한 여성의 아름다움과 자긍심을 길러 가려는 연장으로 썼으며,
특별히 집단 무의식에 접근하기 위해 우리 옛이야기를 택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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