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신각라(愛新覺羅)의 뜻
우연히 청나라 황실의 성씨인 애신각라(愛新覺羅)의 의미에 대하여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일부의 국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위 애신각라의 의미가 “신라를 사랑하고 잊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그러한 주장이 담긴 글들이 인터넷 상에 상당히 퍼져 있는 실정이며, 다수 사람들이 그러한 주장을 비판 없이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한 주장은 물론 지나친 국수주의에서 나온 견강부회라고 생각됩니다.
이에 그러한 주장이 별로 근거가 없다는 것을 밝혀 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그러한 주장이 나오게 된 저변을 살펴보면,‘女眞족이 세운 金나라의 시조가 신라 왕족인 金씨의 후예이기에 나라 이름을 金으로 정하였고, 또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이 처음에 국호를 정하면서 金나라의 정통성을 이었다는 의미로 후금(後金)이라고 정한 것’이라는 설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금사』에는 “금나라 시조 함보(函普)는 처음에 고려에서 와서 완안부(完顔部)에서 오래 살았다. 금의 색은 흰색인데 완안부는 흰색을 숭상한다. 그래서 국호를 대금(大金)이라 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금나라 황실의 성씨는 시조가 살았던 부족 이름을 따서 완안이라 합니다.
금나라 시조 함보가 신라 경순왕의 후손이라는 설도 있으나, ‘金나라 시조가 신라왕실의 후예이기에 왕실의 성인 金을 따서 나라 이름을 金으로 하였다’는 설은 공식 기록에서는 나타나지 아니하므로 다소 근거가 부족하다고 하겠습니다.
청나라 황실 시조의 탄생과 성씨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제가 번역하여 주석을 단 ‘흠정만주원류고’에 실려 있습니다.
“살펴보면, 만주(滿洲)는 본래 부족이름이다. 이제 삼가 『발상세기(發祥世紀)』를 고찰해 보면 "장백산(長白山)의 동쪽에 포고리산(布庫哩이 있고 그 아래에 포륵호리(布勒瑚里)라는 못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세 명의 선녀가 그 못에서 목욕을 할 때에 신령한 까치(神鵲)가 붉은 과일(朱果)을 물어다 막내의 옷 위에 두었는데, 막내가 그 과일을 입에 넣자 문득 뱃속으로 들어갔다. 이로 인하여 선녀가 임신을 하게 되어 사내아이 하나를 낳았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능히 말을 하였고 몸 생김새가 기이하였다. 아이가 자라자 선녀는 과일을 먹게 된 연유를 이야기 하고, 사내 아이에게 애신각라(愛新覺羅)라는 성과 포고리옹순(布庫哩雍順)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저는 애신각라의 의미에 대하여 중국과 국내의 여러 자료를 찾아 연구하고 다음과 같은 주석을 위 전설의 말미에 달아 놓았습니다.
[주] 애신각라(愛新覺羅)의 뜻에 대해서는 국내에 구구한 설이 유포되어 있으나, 중국의 인터넷 검색결과 설명자료를 보면 "애신각라 : 청조 황실의 성이다. 만주어로 애신(愛新)은 金이란 뜻이다. 각라(覺羅)는 姓氏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만주어 중 「姓氏」라는 단어는 원문이 hala(한자로 哈喇、哈拉)이다. 만주의 성씨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한 부분은 姓(哈拉)이며, 또 한 부분은 혈연 종친 관계를 나타내는 씨족명(氏族名)이다. 애신각라에서 <각라>가 성(姓)이고, <애신>은 씨족 명이다." (索有搜索 인용) 우리식으로 치면 본관+성으로 ‘덕수이씨’와 비슷하다. (흠정만주원류고 상권, p47. 남주성 역주, 이병주 감수, 글모아)
청황실의 성씨에 대하여는 중국 학자들 간에 여러 설이 있지만 대표적인 두 가지만 들어 보면, 그 첫째로서, 청태조 누르하치의 할아버지 각창안(覺昌安)은 여섯 형제가 있었는데 그 형제들의 자손은 줄기에서 떨어진 가지라는 의미에서 각라(覺羅)로 칭하고, 누르하치의 아버지인 탑극세(塔克世)의 자손은 줄기라는 의미에서 대종(大宗)으로 불렀는 데 각창안의 자손은 金나라를 계승한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金을 추가하고 각라(覺羅)와 합하여 성으로 삼았다는 설이 그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누르하치의 조부 각창안의 여섯 형제가 영고탑에 살 때에 조부가 살던 마을 이름이 각라(覺羅)인데 마을이름을 성으로 삼았다는 설이 있는데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한편, 각라(覺羅)라는 마을과 관련하여서는 『금사』를 보면, 고려와 금나라가 갈라전(曷懶甸)이라는 지역을 사이에 두고 전쟁(1104년)을 벌이는데 서로 가까운 곳이 아닌가 의심됩니다. 갈라수(曷懶水)도 있지요. 여진족은 그들이 사는 지역 이름이나 부족명을 성씨로 삼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우리말의 겨레와 만주어 각라는 서로 의미가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여러 갈래, 우리 끼리 너희 끼리라고 할 때의 갈래/끼리라는 단어도 어원이 같은 것으로서 씨족이나 부족을 지칭하는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각라씨는 또 사는 지역에 따라서 서림각라, 애신각라, 격륜각라 등 여러 성씨로 분화됩니다. 『청조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습니다.
《清朝通志·氏族略·满洲八旗姓》。
Gerungioro Hala 格倫覺羅氏 ,Harhagioro Hala 哈尔哈覺羅氏, hagolo Hala 阿哈覺羅氏 Ayangoro Hala 阿颜覺羅氏 Aisingoro Hala 爱新覺羅氏 Tongyangiolo Hala 通颜覺羅氏 Hilingiolo Hala 西林覺羅氏 Calagolo Hala 察喇覺羅氏 Hulegiolo Hala 呼倫覺羅氏 Susugiolo Hala 舒舒覺羅氏
누르하치(奴兒哈赤)가 처음부터 애신각라라는 성씨를 사용하였을까? 그렇지는 아니합니다. 왜냐하면, 애신각라라는 성씨는 누르하치가 죽고 기록한 <청태조실록>과 <만문노당>에 처음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누르하치 생존 당시에 明朝의 문헌과 조선의 문헌에는 동누르하치(佟奴儿哈赤)、동누르하치(童奴儿哈赤)로 성씨가 동(佟) 또는 동(童)으로 표기되었습니다.
누르하치의 6대조로 추존되는 맹가첩목아(猛哥帖木兒)는 조선 조정으로부터 상만호의 칭호를 부여받는데, 조선왕조실록 태조편에는 협온맹가첩목아(夾溫猛哥帖木兒), 동맹가첩목아(童猛哥帖木兒) 등으로 기록되어 나옵니다. 이 협온(夾溫)은 『금사』에는 협곡(夾谷)으로 나오는데 ‘협곡은 仝(동)이다’고 하였으며, 명나라와 조선에서는 동(佟)또는 동(童)으로 표기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조선 후기 학자들의 기록을 보면 ‘청제의 성을 애신각라라고 한 데 대하여는 여진(女眞)의 방언(方言)에, 금(金)을 애신, 종실(宗室)을 각라라 하는데, 청제가 자칭 금의 후예라 하여, 애신각라로 성을 삼은 것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규경, <청제(淸帝) 세계(世系)의 원류(源流)에 대한 변증설> <<오주연문장전산고>>, 인사편)
그러하던 것이 후대 누르하치 시대에 내려와서 왕조를 창업하면서 조상이 살던 영고탑의 부락이름을 따서 각라라는 성을 삼고 또 金나라를 이었다는 정통성과 존귀한 집안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 앞에 金을 넣어서 새로운 성씨를 창씨한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길게 살펴보았지만, 결론적으로 애신각라는 ‘신라를 사랑하자’라는 의미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신라의 金씨들과 金나라를 창업한 완안씨가 모두 金의 밝고 변치 않는 고귀한 특성을 따서 성씨나 나라 이름을 정한 것과, 금나라 황실인 완안씨의 시조가 고려인으로서 백색을 숭상하였으며, 청나라 황실이 金나라를 계승하였다는 뜻에서 성씨에 金을 넣어서 정통성을 강조한 점을 보면 ‘金을 존귀하게 여기며 백색을 숭상하는 겨레의 정신’은 서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애신각라가 신라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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