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도서

붉은 줄의 기적

Ddak daddy 2018. 8. 3. 09:35



[붉은 줄의 기적] 독서 감상문

우리가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알려면, 우리의 눈을 열고 그분의 창조물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모든 것을 진심으로 사랑하신다.

우리는 그분의 작품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알뿐만 아니라, 본능으로 그 존재를 안다. 우리는 천성적으로 하나님을 의식하고 있다.

우리의 양심은 끊임없이 그분의 형상대로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천국에

계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그분은 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다.

그분은 영생의 근원이시며, 그분 안에는 생명이 있다.

그분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그 창조물의 질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한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지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우리의 한계를 이해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모습 그대로 꾸밈없이 그분께 나아갈 수 있다.

그분께서는 긍휼과 호의와 이해와 애정으로 우리를 받아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를 인생의 메마른 광야에서 끌어내기 원하시고,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맞이하여 한 식탁에서 식사하기 원하시며,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집에서 살기 원하신다. 우리는 그분의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진심으로 알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자신의 아들을 희생

제물로 보내셨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하셨다.

하나님은 그분이 정한 때에, 그 자신을 우리와 같은 몸으로 준비하시고 피조물 중 한 사람이 되도록 계획하셨다. 그분께서는 어디에서 태어날 것인지, 어떤 이름을

갖게 될 것인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자세히 알고 계셨다.

심지어 자신이 어떻게 죽을 것인지도 알고 계셨다.

예수께서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셨다.

하나님의 시간에 그분께서 태초에 자신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우리 중

하나로서 살과 피와 뼈를 가지고 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동정녀의 태에서 나셨다.

그분께서는 남자의 씨가 아닌 여자의 씨에서 나셨기 때문에 그분의 혈관 속에

흐르는 피는 죄로 더렵혀지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원죄라고 하는 아담이 전가한 사망의 피의 질병을 갖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모든 사람과 동일시 하셨다.

33년 동안 그분께서는 완전한 삶을 살았고, 세상의 죄를 위한 완전한 희생제물이 되기 위한 삶을 사셨다.

세상의 기초가 놓일 때부터 죽임당하기로 예정된 ‘하나님의 어린양’이 모든 인류를 위해 언약을 자르셨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 있었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본성을 떠맡으셨다.

모든 인류가 갖고 있던 죄에 대한 책임을 떠맡으시고 이 모든 것들을 대신하셨다.

우리 안의 죽은피의 질병, 즉 영적 문둥병은 예수께 부어졌고, 죄를 전혀 몰랐던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 이 모든 것을 짊어지신 것이다.

이제 그분이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시는 방법을 배워본다.

대 홍수 후 500년이 지나 세상은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우상숭배로 가득했다. 이런 환경에서 하나님은 사랑의 언약을 맺기 위해 아브람을 부르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셨고, 그와 피 언약을 세우셨다.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짐승을 잡아 아담과 하와의 죄를 덮어주고

장차 세상에 올 구원자를 약속하셨을 때, 그들과 맺으셨던 언약과 동일한 것이다.

어떻게 피조물이 창조주와 언약을 맺을 수 있을까?

약하고 죄 많은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떻게 언약을 맺을 수 있을까?

전능자께서는 자기 자신과 언약을 자르시고 아브람이 해야 할 그 역할을 대신하신 것이다. 그분은 아브람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아브람이 쪼개져 피가 흐르고 있는 짐승의 몸을 분리해 놓을 때 그 사이로 누군가 지나갔다. 그는 아브람이 걸어가야만 하는 자리를 걸어가면서 말했다.

“나는 자신을 죽이고 있다. 나는 내 생명의 권리를 포기하고 있다. 나는 죽음에

이를 때까지 내 언약의 동반자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과 자신이 언약을 자르기 위해 나사렛 예수의 모습으로 세상에 올 바로 그 시간을 묘사하셨다.

그리고 언약 의식에 따라 하나님과 아브람은 이름을 교환했다.

YHWH의 H를 취하여 Abram의 이름은 Abraham으로, Sara의 이름은 Sarah로

바뀌었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이름을 취하여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되셨다. 언약을 자를 때 서로에게 사랑과 신뢰함으로 항복해야 한다.

즉 자신의 생명과 전심을 언약의 상대방에게 기꺼이 드려야 한다.

그것은 자기의 자아가 죽고 언약을 맺은 상대방에게 완전히 항복하는 것이다.

언약에 대한 아브라함의 충성심은 독자 이삭을 바치는 최고의 희생 제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은 자기를 위한 대속제물을 주실 것을 믿고 순종한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살펴보자

그는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것을 믿었다.

그리고 자신의 독자가 하나님께 드릴만한 충분한 제물이라고 믿고 드렸다.

그는 삼일 동안 자신의 아들이 진실로 죽은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대신할 제물을 준비하시거나 아니면 자신의 아들 이삭을

통해 많은 후손을 보도록 이삭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실 것을 믿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브라함이 믿었던 것과 동일한 것을 믿기를 요청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신 성자 예수와 성부 하나님께서 맺으신 언약을 우리가 믿기를 요청하신다. 우리는 의로운 행동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수 없다.

우리가 언약에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힘없는 자임을 고백하고, 우리도 아브라함이 했던 것처럼 우리를 대신하여 걸어가신 그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초자연적인 탄생을 믿어야 한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의 유일한 독생자를 육신으로 세상에 보내셨다. 그분은 아담의 원죄와 상관없이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셨다.

언약의 성취를 중단시키려는 사탄의 공격을 물리치고 30세로 장성하셨다.

3년간의 사역 후, 33세에 예수께서 산의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어깨에 번제를 위해 나무를 지운다.

그 나무는 예수께서 자원하셔서 짊어지신 십자가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축복을 가져다주는 번제물로 자신의 독생자를 드리셨다.

이천년 전 이삭을 제물로 받았던 하나님 자신이 바로 그 산 위에 세워진 십자가

제단에 올라가신 것이다. 이것이 그분께서 태초부터 스스로 맹세하신 언약이다.

그곳에서 주님은 자신을 대속물로 드렸고 온 세상이 그분을 보았다.

3일 후에 부활하신 그분은 하나님 언약의 첫 번째 자녀가 되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분을 높이셨고 모든 이름보다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의로 여기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모든 영적인 축복으로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언약에 대해 “예”라고 긍정해야만 한다. 메시아 예수의 피를 통한 사랑의 언약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한다.

우리 모두는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의 상태로 있었다.

그들의 고통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인들이 하나님께 올 때 죄 용서를 위한 희생제물의 피를 통해 나오기를 원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유일한 조항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인들이 십계명을 들을 때, 가능한 빨리 성막으로 가서 양을

죽이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죄를 대신 할 제물의 피를 드리기를 계획하셨다.

히브리인들은 십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막에서 제사장이 드린 희생제물을 통해 나아갔다.

하나님께서 이 옛 언약을 세우신 것은 단지 히브리인들에게 새 언약을 지시해주는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방식이다.

성막은 상징적으로 참 성막이신 우리 주 예수를 가리킨다.

성막은 하나님께서 그분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과 만나시고 그들과 거하시는 곳이다. 성막은 히브리인들이 자신들의 죄를 대신할 희생물들과 찬양의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물을 가져오는 곳이었다. 히브리인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성막으로 가야만 했다. 성막은 뜰이나 바깥의 둘러싼 곳에 세워졌다.

뜰 안에는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으나 성막에는 제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일 년에 단 한번 대제사장만 지성소라 불리는 성막 안쪽의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성막 바깥의 덮개는 오소리 가죽으로 만들었고 안쪽의 덮개는 숫양의

가죽으로 만들어 붉은 물을 들였다. 숫양은 이삭 대신 드려졌던 제물이다.

성막 뜰로 들어가려면 하나뿐인 동쪽 문을 통하여야 하는데 반드시 들어가기에

합당한 제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번제의 제단에서 이 제물을 드리고

죄를 용서받고, 제사장으로부터 축복을 받게 된다.

즉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명하신 피의 제사를 통해 나아갔던 것이다.

물두멍이란 놋대야는 제사장들이 제단에서의 일을 행하기 전에 손과 발을 씻는 곳이다. 물두멍은 그가 얼마나 더러운지 보여주는 동시에 씻을 물도 제공해 준다.

물과 피의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하나님께 나아와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막 뜰이 구원의 모형이라는 것을 제단과 물두멍에서 발견한다.

성막 안에는 성소와 지성소 두 개의 방이 있다.

안쪽에 있는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가 거하시며, 이 방으로 들어가려면 성소를

지나가야 한다. 성소에 있는 금 등잔대는 성소에 필요한 모든 불빛을 제공해준다.

자연적인 빛은 그 안에 들어올 수 없다.

금 등잔대의 맞은편에는 진설병을 두는 상이 있다.

열두 덩어리의 빵들이(12지파) 6개씩 두 무더기로 상 위에 놓여 있는데, 안식일

마다 이 전의 빵들은 거두어 제사장이 먹고 새 빵이 진설된다.

빵 옆에는 포도주의 그릇이 놓인다.

빵과 포도주는 피 언약에서의 음식을 나타낸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의 생명(몸과 피)을 의미한다.

안식일에 제사장이 빵을 먹고 포도주를 쏟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먹고 그 자신이 (그리고 그가 대표하는 백성들이) 그것을 받아들임을 나타낸다.

두 번째 휘장 앞에 분향단이 있는데, 일년의 하루 속죄일 날에 대제사장은 이

단의 뿔에 속죄제의 피를 뿌리고 그의 앞에서 피어나는 향료와 함께 지성소로

들어간다.

성소는 섬김의 모형으로, 등잔대와 진설병을 두는 상 그리고 분향단은 제사장적

섬김과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우리의 사역의 모형인 것이다.

두 번째 방이 하나님께서 계신 보좌의 방으로 지성소이다.

오직 대제사장만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것도 일 년 중 속죄일

하루뿐이다. 지성소 안에는 언약궤가 있다. 궤 안에는 싹이 난 아론의 지팡이와

만나가 담긴 작은 항아리와 십계명을 쓴 돌판이 있다.

아론의 지팡이는 히브리인들이 아론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를 거부했었음을 상기시킨다. 만나가 담긴 항아리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이 땅의 것들을 히브리인들이 거절했던 것을 의미한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에 백성들이 이르지 못함을 하나님께 알리는 것이다.

언약궤에 붙은 뚜껑을 시은좌라 한다. 언약궤 양 끝에 두 그룹(천사)이 붙어 있다.

두 그룹의 한가운데와 시은좌 위에는 눈부신 불빛이 있다.

이 밝은 빛은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이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죄 없는 희생제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온다. 향이 가득차면 대제사장은 시은좌에 피를

뿌리고 하나님께서는 영광의 구름 위에서 내려다보신다.

죄 없는 희생제물의 피는 죗값을 치르기 위해 그 생명이 드려졌음을 하나님께

 말한다.

시은좌를 덮은 피는 하나님의 보좌를 심판의 보좌에서 자비의 보좌로 바꾼다.

공의는 행해졌고 분노는 풀어졌다. 이렇게 하나님은 죄인들이 그분과 화목하게

되는 방법을 마련하신 것이다.

이제 우리가 예수를 우리의 구주로 영접할 때, 그의 피가 우리를 예전이나, 지금이나, 미래의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 그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에 충분하다. 그리스도인은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음을 자신의 영으로 믿는 초자연적인 믿음을 성령에 의해 받은

사람들이다.

사람이 믿을 때, 주 예수를 통해 하나님과 피 언약에 들어간다.

그 피 언약은 절대로 깨질 수 없는 영원한 약속이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이 보증하시는 신성한 피 언약 관계이다.

예수의 보혈은 모든 사람이 하늘에 있는 하나님 보좌의 방으로 바로 갈 수 있는

길을 여셨고, 모든 사람이 성령님을 통해 그분과 교제하게 하셨다.

그분의 보혈이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보좌를 은혜의 보좌로 바꾸었다.

우리가 거듭났을 때 우리의 영은 구원받았고(과거), 우리의 혼은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구속하심으로써 지속적으로 구원받고 있는 상태이고(현재), 우리의 몸은 구원 받을 것이다(미래). 할렐루야!

성령께서는 피 언약 안에 있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영의 증인이 되시고 우리를 책임지신다. 우리의 죄를 드러내신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능력으로 그 죄들을

씻어 없애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과 교재 가운데 우리 자신의 영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다. 우리는 그분과 화목하며 우리 서로 간에도 화목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한 분을 경배한다. 나사렛 예수께서 그분이시다.

할렐루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