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둥지 증후군
누구나 살다보면 위기를 만난다. 인생은 숱한 위기의 연속이고 삶은 위기를 이겨내며 굳은살을 만든다. 위기를 대나무로 비유하면 더 큰 성장을 위한 마디인 셈이다. 인생이 직면하는 위기 중에 대표적인 것이 사춘기와 갱년기다. 급작스러운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겪는 시기다. 그래서 우울증이 많고 자살률도 높다.
그중에서도 인생의 후반부에 겪는 갱년기에는 신체적 변화뿐만 아니라 인생의 성취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찾아온다. ‘위기의 중년’이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이러한 실존적 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느라고 헉헉대며 달려가다가 갑자기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나기 때문이다.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중년의 회의와 갈등은 이 지점에서 극대화된다. ‘나는 누구인가?’를 자문하게 되는 정체성의 혼란이다.
빈 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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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세 주부 신경옥씨(가명)는 남편을 출근시킨 후 TV 아침드라마를 켜놓고 멍하니 앉아있다. 요즘 매사 짜증스럽고 가사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제 저녁식사를 한 후 귀찮아서 그냥 쌓아둔 설거지감이 개수대에 수북하고 며칠째 청소도 하지 않았다. 남편과는 생활과 관련한 건조한 대화 몇 마디를 나누는 것이 고작이어서 집안에는 언제나 TV만 저 혼자서 떠들어댄다.
신씨는 두 달 전에 외아들을 결혼시켰다. 아들은 신씨의 집과 그리 멀리 않은 곳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신씨는 아들을 많이 믿고 좋아했다. 외아들인 탓도 있지만 아들이 재치도 있고 엄마를 곰살맞게 챙겼었다. 하지만 ‘품안에 자식’일 뿐이라 막상 장가들어 따로 살림을 나고 보니 허전함이 밀려온다. 그동안 엄마와 아내로만 살았을 뿐이라서 갑자기 밀려드는 이 헛헛한 감정을 어째야할지 모르겠다. 자신의 상실감에 대해 찬찬이 얘기해볼 마땅한 상대도 없다.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매일매일 해왔던 일이 부질없게 보인다. 자신이 빈 포대처럼 느껴진다.
자녀가 자라 어른이 되면 저마다 제 짝을 만나 부모의 곁을 떠난다. 신혼부부는 깨가 쏟아지지만 금이야 옥이야, 행여 다칠세라 노심초사하며 자식을 길러온 부모는 어쩐지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느낌이다. 이와 같이 자식을 결혼시킨 중년의 주부들이 느끼는 허전한 심리를 공소증후군(空巢症候群) 혹은 '빈 둥지 증후군'이라고 한다. 이 증후군은 집안살림, 자녀교육, 남편 뒷바라지, 시부모 봉양, 그리고 주부 자신의 자아실현 등 주부 혼자 짊어져야 하는 총체적 가정문제에 대한 부적응 상태인 주부증후군(또는 주부신경증, 주부장애증)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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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둥지 증후군은 중년기 위기 증상이다. 남편은 바깥일에 몰두하고 자식들은 커갈수록 진학·취직·연애·결혼 등으로 각자 독립적이 되면서 가정이 빈 둥지만 남고 아내와 엄마로써의 역할에 충실했던 주부들이 소외감을 느끼면서 심리적 불안에 빠진다. 중년기 위기는 여성들의 폐경기를 전후해서 나타난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사람들이 40세를 전후로 이전에 가치를 두었던 삶의 목표와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중년기 위기(Midlife Crisis)가 시작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중년기 위기는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억압하며 살아온 것에 대한 회의와 현재의 삶의 무가치감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심리적 상실감과 시간적 공허감은 주부 자신에 대한 체념 혹은 정반대로 지나친 관심을 촉발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자신에 대한 연민과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는 중년 여성들의 건강염려증이나 성형수술을 들 수 있다. 또한 늦둥이를 가지려 한다거나 심리적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특히 늦둥이 출산은 과거 한 때(1990년대 중반) 일종의 신드롬으로까지 발전했었다.(네이버 두산백과)
50대에게 가족이란? 함께 밥 먹는 존재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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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둥지 증후군의 우울증상이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남성의 경우에도 실직 등으로 집에 혼자 있게 되는 경우가 많은 탓에 절망감과 상실감, 무력감이 우울증으로 번질 수 있다. 밥맛을 잃고 사는 것이 무미건조해진다. 가족을 위해, 회사를 위해 인생의 대부분을 바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구조조정과 냉대와 무관심이다. 고작 이걸 위해 그렇게 애를 썼던가 싶다. 열심히 살기만 하면 모든 게 다 잘될 줄 알았건만 결과는 너무나 초라하다.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인(www.albain.co.kr)이 회원 1,695명을 대상으로 ‘우리가족 행복점수’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가족 행복점수의 평균이 약 62점으로 나타났다. 이는 수우미양가로 따져봤을 때, ‘양’에 해당하는 보잘 것 없는 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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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별로 살펴보면, 20대의 행복점수가 평균 68점으로 가장 높고 30대는 65점, 40대는 60점, 50대 이상은 낙제점인 53점이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행복점수는 낮아진다. 특히 20대는 행복점수 ‘100점’을 선택한 비율이 7.4%였지만 50대 이상의 경우 100점을 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그렇다면 이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가족의 의미란 무엇일까? 전체회원 중 34.9%는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항상 의지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뒤로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존재’가 31%로 근소한 차이를 보였으며 그 밖에 ‘모든 것을 이해해주는 존재’(13.7%), ‘진심을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존재’(13%) 등의 답변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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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가족의 모습도 이와 비슷할까? 먼저 20대를 살펴보면, 현재 우리 가족은 어떤 존재인지 묻는 질문에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존재’(28.4%), ‘항상 의지할 수 있는 존재’(28%)가 1,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한 집에서 함께 사는 존재’라는 답도 15.9%가 선택해 서로 소통이 부족한 가족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가족 행복 점수가 낮았던 50대에서 더욱 크게 도드라진다. ‘한 집에서 함께 사는 존재’라는 응답자가 33.3%로 가장 많다. ‘함께 밥을 먹는 존재’라는 답변도 18.5%를 차지해 그들의 서글픈 심정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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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가족 간 애정표현에 대해 물은 결과, 애정표현을 ‘따로 하지 않는다’(38.5%)는 응답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각자가 제 방에 틀어박혀 있다가 밥 먹을 때만 만나서 말없이 밥숟가락을 놀리는 가족이 많다. 같이 살아도 각자가 외로운 삶이다. 어버이날에도 ‘특별히 해드린 것이 없다’는 비율이 13.6%나 된다. 자녀에 대한 헌신과 사랑이야 어찌됐든 50대는 자녀로부터 찬밥취급을 받는 신세인 것이다. 자식들이 부모나 교사에 대한 욕을 하는 인터넷카페도 있다고 하니 욕만 안 먹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부모가 자식을 그렇게 길렀고 가족을 위한다는 미명아래 탐욕스럽게만 살아, 모범이 되거나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됨을 보여주지 못했으니 자업자득이라고 해야 할까?
마음이 먼저 아프고 그 다음 몸이 아프다
하늘의 뜻을 헤아린다는 지천명의 50대는 도무지 하늘의 뜻은 고사하고 자식과 배우자의 마음도 어쩌지 못한 채 혼돈스럽기만 하다. 그 혼돈은 곧 심적 고통이 되고 마음이 먼저 아픈 후 몸이 아프게 된다. 우울증의 신체적 증상은 소화불량, 두통, 목에 뭔가 걸린 듯한 느낌, 변비, 설사, 성욕감퇴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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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50대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부가 함께 취미를 갖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가생활을 즐기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두산백과)”는 둥, 좌절하지 말고 생애설계를 다시 하라는 둥 조언이 많다. 혹자는 또 “실존적 외로움은 아무도 대신 들어줄 수 없다. 가능하면 외로움이란 놈을 찬찬히 지켜보자. 성급히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지 말고 외로움과 의연히 상대하자. 적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을 친구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위와 같은 처방들은 말처럼 쉽지 않다. 자신을 변화시킬 경제력과 마음을 컨트롤할 만한 직간접적 경험, 가족의 협조 등 각각의 형편에 따른 난제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성바오로병원 정신과 윤수정 교수는 50대의 우울증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신이 우울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에 자신의 몸 상태에 관심을 갖고 동료나 자녀 등 주위 사람들과 대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주변 사람이 우울증 증상을 보일 경우에는 즉시 의사에게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환자에게 막연히 의지가 약하거나 게을러서 우울증상이 생긴다는 등의 충고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병이 악화될 수 있으므로 치료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