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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 이야기

Ddak daddy 2017. 1. 15. 20:18








엿 이야기
- 외할머니 -

최원현


내가 어렸을 때 설이 되면 할머니께선 꼭 엿을 만드셨다.
설날엔 떡과 함께 내놓으시던 맑은 갈색 엿에 떡을 찍어 먹곤 했는데, 엿은 대개 설이 되기 삼사 일 전에 하곤 했다.
밖에서 돌아오면 달큰한 냄새가 집안에 가득하고, 할머니께서는 아궁이의 불을 돋우시며 대 막대로 열심히 솥 안을 젓고 계셨다.
내가 부엌으로 들어가면 아궁이의 장작불을 보라시거나 어쩔 땐 대 막대로 엿을 저으라고 하셨다.
그 막대를 엿죽방망이라 불렀다. 헌데 처음엔 부뚜막이 따뜻해서 좋다가도 조금 오래 젓다 보면 올라오는 열기로 덥기도 하고, 또 팔도 아프고 하여 게으름을 피우게 되면 할머니께서 막 야단을 치셨다.
엿은 얼마나 잘 젓느냐에 따라 잘 되고 못 되고 한다는 것이었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할머니께서 빙빙 돌려 젓던 엿죽방망이를 따라 같이 돌던 어린 날, 내겐 설을 맞는 가장 큰 기쁨이 이 엿을 먹는 일이었던 것 같다.
엿은 보리를 물에 담구었다가 삭을 틔워 말린 엿기름을 맷돌에 갈아 분말을 만드는 작업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이 맷돌질이 싫었다.



처음 잠시 동안은 재미있지만 조금 지나면 팔이 저려 오고 지루해진다.
가만히 핑계를 대고 빠져나갈 궁리를 할라치면 내 낌새를 알아채신 듯 할머니께선 옛날 이야기의 문을 여신다.
옛날 어느 산골 마을에 홀어머니와 나이 어린 너 만한 아들이 살고 있었단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아들이 처음엔 말을 안 듣고 공부도 안 한다. 뒤늦게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을 깨닫고 멀리 떠난다.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고향의 원님이 되어 돌아온다. 어머니는 아들이 떠난 날로부터 치성을 드리다가 몸져누웠는데, 아들을 본 후 숨을 거둔다.
효도 한 번 못해 본 아들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고을을 잘 다스렸다는 이야기를 하나쯤 끝내면 밤이 꽤 이슥해졌을 때이고, 나는 어느새 맷돌에서 물러나 배를 쭉 깔고 엎드려 할머니의 얘기를 듣고 있곤 했다.
이렇게 갈아진 엿기름을 가는 채로 쳐내어 고운 분말을 만들고 물에 풀어 엿기름물을 만든다.
그런 다음 꼬슬꼬슬하게 밥을 지어 엿기름물에 밥을 담궈 삭히게 되는데 이렇게 대여섯 시간 삭히면 밥알이 하나 둘 뜨기 시작하고, 이내 밥알들이 송송 거의 다 뜨게 되면 퍼내어 체를 받치고 짜낸다.
이때 엿물을 짜낸 밥 찌끼가 엿밥인데 친구들과 어울려 이 엿밥을 훔쳐다 먹고 배가 아파 데굴데굴 구르던 일이 생각난다.
짜내진 엿물은 허여스름한데 이 물을 솥에 붓고 고게 된다.
이 고는 작업이 중요한데 불이 조금만 세어도 엿물이 끌어 넘치고 바닥에선 눌어버리게 되므로 불을 알맞게 하여 은근하게 달이되 엿죽방망이로 계속 저어 엉킴이 없이 고루고루 달여지게 해야 한다.
이렇게 아궁이에선 쉴 새 없이 장작불이 타오르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무쇠 가마솥에선 엿물이 뽀골뽀골 끓기를 한 밤이 이슥토록 고다가 엿죽방망이를 위로 들어보면 엿물이 또로록 떨어지는데, 이 때의 엿으로 강정을 만들며 떨어진 끝이 말리면 이 때의 엿은 물엿으로 먹게 된다.
이 가락엿을 한입 크기로 잘라 밀가루를 묻혀 놨다 접대용으로 쓰기도 하고, 가락엿에 물엿을 묻혀 콩을 묻히거나 깨를 묻히면 콩엿 또는 깨엿이 된다.



사탕이나 과자가 귀하던 때였으니 아이들도 사탕 하면 대개 엿을 생각게 되었고, 엿을 실컷 먹어 볼 수 있는 설날은 다른 어떤 날 보다도 기다려지는 즐거운 날이었다.
요즘 백화점에 가 보면 호박엿이나 가락엿이 엿목판에 놓여 팔리고는 있는 걸 본다.
허나 맛깔스러움을 느낄 수가 없고, 얼른 사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문명의 이기로 인한 편의주의의 늪 속에 갇힌 바 되어 맛깔스럽던 물엿처럼 끊이지 않고 흘러내리던 끈끈한 인정 내지는 어린 날 나를 감싸고 있던 그런 분위기들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제조 기술이 발달하여 더 맛있게, 곱게, 좋게 그리고 짧은 시간 내에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해도 자꾸만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짙어지는 것은 분명 향수만이 아닌 우리 옛것에 대한 애착과 뿌리 정신이 보이지 않게 땅 속으로만 흐르고 있는 물줄기같이 우리의 가슴 깊이 흐르고 있음이 아닐까?
어색한 몸짓으로 현대의 물결 속에서 밀려나고 있는 우리의 것들이 참 주인이 되어 의젓하게 우리의 생활 속에 자리잡고 앉아 흔들리잖고 우리 속에 있게 할 수는 없을까?
지금은 정신이 혼미해지셔서 나조차 잘 못 알아보시는 외할머님.
허나 돌아오는 설엔 꼭 찾아 뵙고 내 두 손으로 할머니의 야윈 두 손을 꼬옥 부둥켜 감싸고 할머니께 들었던 옛 이야기를 내가 다시 돌려 드리리라.











            <엿 먹어>가 욕이 된 사연   



입담이 좀 걸다 싶은 인사들이 자주 쓰는 말, “엿 먹어”. 아니면, 일이 안 풀릴 때 무심코 쓰는 말, “엿 같네”. 걸쭉하고 정겨운(?) 욕설은 재미라도 있을지 모르지만, ‘엿’이 들어가는 욕은 거두절미 ‘엿 같이’ 들릴 텐데.

 

엿 싫어하는 사람 드물 테고, 한국사람 치고 인절미에 찍어 먹던 ‘조청의 추억’ 안 간직한 사람 드물 테다. 꿩 대신 닭이라고 꿀단지 구경 못 해 물엿 찍어 먹는 것만은 아닐 테고, 한 겨울 떡볶이 사먹는 것 같은 정겨움이 엿에는 녹아 있다.

 

그런데 이런 엿을 욕으로 쓰다니? 그만큼 ‘엿 먹어라’가 욕이 된 사연을 두고 온라인상에서 한동안 구구한 설명이 있었다. 나름 그럴듯한 얘기들. 이쪽 귀가 혹하고 저쪽 귀가 당기고.

 


시신을 깨끗이 닦고 저승옷(수의)을 입히는 절차를 ‘염습(殮襲)’, 줄여서 ‘염’이라 하는데, 시신에서 닦아낸 것들을 먹으라는 욕, 다시 말해 ‘염 먹어’라는 말이 발음상으로 ‘엿 먹어’가 됐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 염을 보는 것도 힘든데, 거기서 나온 것들을 먹으라니, 큰 욕은 큰 욕이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염’이 ‘엿’으로 바뀌는 과정에 대한 근거가 없으니 일단 패스.

 

하지만 패스 못 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 염이 염병, 즉 장티푸스를 뜻한다고 생각해 ‘염 먹어’가 ‘장티푸스에나 걸려’, 즉 ‘뒈져 버려’라는 뜻이고, 이것이 오늘날 ‘엿 먹어’가 됐을 것이라는 설명. 단어가 같아서 혼동을 일으킨 케이스 같으니 이것도 일단 패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한국인을 비하하기 위해 엿이라는 말을 나쁘게 썼을 것이라는 말도 있다. 한국 것이라면 다 나쁘게 말하던 일제가 신문물인 설탕과 비교해 엿을 나쁜 뜻으로 쓰기 시작했을 것이고 그 이후 설탕이 대중화되면서 다른 전통과 마찬가지로 엿도 천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을 것이라는 말. 이건 일본사람들이 정말로 엿을 비하하면서 그런 욕을 했는지 전혀 확인할 길이 없는데다가, 오히려 일본과 관련된 것은 다 나쁘게 말하기 위해 엿도 그럴 것이라고 추측한 케이스이므로 무조건 패스.


패스한 것 말고도 많은 사람이 ‘엿 먹어라’의 기원으로 알고 있는 설명이 있다. 그 유명한 ‘무즙 파동’ 때부터 ‘엿 먹어’라는 욕이 생겼다는 것. 1964년 12월 7일, 서울 지역 중학교 전기(前期) 입학시험 자연과목 문제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나왔다.

 

다음은 엿을 만드는 순서를 차례대로 적어 놓은 것이다.

1. 찹쌀 1㎏ 가량을 물에 담갔다가

2. 이것을 쪄서 밥을 만든다.

3. 이 밥에 물 3ℓ와 엿기름 160g을 넣고 잘 섞은 다음에 60도의 온도로 5~6시간 둔다.

위 3.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 무엇인가?

 

당시 발표한 정답은 보기 1번 ‘디아스타제’였으나 보기 2번 ‘무즙’을 택한 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초등학교 자연 교과서에는 “침과 무즙에도 디아스타제가 들어 있다.”는 구절이 들어 있었고, 실제로 ‘무즙’이라고 답을 쓴 학생들의 부모들이 들고 일어났다.

 


교육당국은 오락가락했다. 아무 문제가 없는 문제라고 했다가, 해당 문제를 무효화한다고 했다가,  보기 1번을 선택한 학생들의 부모들이 들고 일어나자 다시 디아스타제만 정답으로 인정한다고 했다가, 실로 가관이었다. 결국 이 문제는 서울고등법원까지 올라갔고, 이듬해 3월 무즙도 정답으로 인정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당시 30여 명의 학생이 구제를 받아 정원 외로 각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갈팡질팡 대응한 당시 고위 당국자들은 결국 사표.

 

무즙 쪽 어머니들의 항의 방법이 재밌다. 무즙으로도 엿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실제로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솥째 들고 시위에 나섰다. 당시 문교부, 서울시 교육청 등에 찾아가 엿을 들이밀면서, “엿 먹어라. 이 엿 한번 먹어봐라. 이게 무로 만든 엿이거든!” 했다나.

 

한겨레신문사에서 운영하던 ‘디비딕닷컴’(현재의 ‘엠파스 실시간 지식’)에 무즙 파동과 이 욕을 연관시킨 네티즌 글들이 올라왔고, 또 책으로도 나오면서 이 설명이 유명해진 것. 그러나 ‘엿 먹어’라는 욕은 그 이전부터 사용하던 말이다. ‘무즙 파동’의 사회적 파장이 무척 컸던 데다 어머니들의 항의 방법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면서 이 욕이 이때부터 시작된 것처럼 오해를 산 케이스.

 

‘엿 먹어’는 남사당패 사이에서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은어였다는 것이 국어학계의 정설. ‘먹다’라는 말도 ‘성교’를 뜻하는 은어로 현재까지 널리 쓰이는 말.

 

말이 나온 김에 ‘디아스타제’에 대해 한 마디. 우리나라 어머니들 치맛바람 대단하다는 건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치맛바람이 나오는 구조가 있으니 그걸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건 어리석은 일. 그러나 우리나라가 아동 학대 또는 청소년 학대 수준을 넘어서는 교육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건 왈가왈부해야 할 일.

 


대한민국 성인 중에 디아스타제가 뭔지 아는 사람 손 좀 들어보시길. 학교에서 배웠는지도 가물가물. 시험에 나온다니 달달 외우기는 했을지도 모르겠고, 더러는 시험에서 정답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디아스타제의 유효기간은 딱 학교 졸업하는 순간까지.

 

엿 한번 만들어본 적 없는 어린 학생들에게 실제 엿을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을 제공하는 것도, 엿기름 이외의 다른 재료를 써서 엿을 만들어 오든지 그런 방법을 조사해오는 학생에게 창의성 점수를 쳐주는 것도 아니다. 집에서 어머니가 엿 만드는 걸 한 번도 거들어주지 않고도 디아스타제 달달 외워서 대학만 가면 됐다.

 

일제고사 부활과 성적 조작 사건으로 시끌시끌하다. 근대 이후 서구에서 자리 잡은 중등교육 과정까지의 ‘보통교육’, ‘평등교육’의 이상은 한국에서 도무지 자리를 잡지 못했고, 그나마 ‘무즙 파동’으로 촉발돼 그 방향으로, 더디지만, 진행시키고자 한 큰 방향은 현 정부 들어 모조리 용도 폐기된 상황.

 

운동부원과 지체장애 학생들은 학교 성적 떨어뜨린다고 시험 칠 기회를 박탈하는 교사와 학교는 문제 삼지 않고, 시험 치지 않을 권리를 알려주고 학부모의 동의까지 받은 교사는 파면하는 상황. 평등은 고사하고 극단적 무한경쟁의 교육시장을 조장해 불평등을 양산하는 지경에 이른 대한민국 교육.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 모를 크나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교육을 돈벌이를 위한 시장판으로 만들어 버리는 상황을 보면서, 남사당패의 은어 한 가지를 더 소개할까 한다 

보통 팔다리, 즉 사지를 남사당패에서는 ‘육갑’이라고 했다. ‘육갑을 떨다’라는 말이 바로 여기서 나온 말. 옛날에 남사당패가 우리의 교육 현실을 보았다면 뭐라 할까.






그런데 왜? 시험을 보는 사람에게 엿을 주는 걸까?  

 

혹자들은 엿을 주는 이유를.. '엿은 잘 안 떨어져서 끈끈하니까, 붙는다.' 그렇게 생각들 한다.

그런데, 그 유래는...
옛말에 '엿을 열 섬이나 버리고도 방이 붙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머리가 우둔한 사람을 빗대어 한 말로 아무리 공을 들여도 시험에 붙지 못함을 원망하는 뜻이

담겨 있다. 옛날 과거길 개나리 봇짐에 손바닥만한 강엿을 넣어 가지고 떠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는 허기를 면하기 위해서였다 한다.


'엿을 먹이면 시험에 붙는다'라는 속신(俗信)은..

아마도 쫄깃쫄깃 달라 붙는 엿의 성질처럼 시험에 철썩 붙기를 기원하는 바람에 나온 믿음이 아닐까?
이러한 주술적 믿음에 대해 이론적으로 정의를 내린 견해를 살펴보자.

인류학자 제임스 프레이저(James G.Frazer)는 주술에는 물을 붓는 의식으로 비가 오게 하려는 것과

같은 유사 법칙에 따른 모방주술(imitative magic)과 사람의 머리털이나 이빨을 불 살라서 저주를

불러오려는 것 같은 접촉의 법칙에 따른 감염주술(contagious magic)이 있다고 분류하였다.
엿을 먹으면 시험에 붙는다는 것도 일차적으로 유사 법칙에 다른 주술적인 믿음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좀더 깊이 살펴보면 엿 붙듯 시험에 붙길 기원하는 주술적 이유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다.
공부 같은 정신 노동에는 단 것이 좋다.

이는 오랜 체험을 통해 터득한 지혜로 과학적인 근거도 충분히 있다.
머리를 많이 쓰거나 신경을 긴장시키면 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혈당을 에너지화하는데,

이때 핏속의 당분이 소비된다.
따라서 몸은 소모된 혈당을 보충하기 위해 단 것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에너지를 필요로 할 때 단 것에 대해 강한 욕구를 느낀다.
피의 성분인 포도당, 곧 혈당의 분량이 공복감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동맥 속의 혈당량이 낮아져 정맥속의 혈당량과의 차이가 혈액 100ml당 10mg이하가 되면 배고픔을 느낀다.

배 고플 때 단 것을 먹으면 동맥속의 혈당량이 높아져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한다.

얼마전 T.V에서 방영한것 처럼, 아침을 먹은 아이와 안 먹은 아이의 학업 성취도가 현저한 차이가 나듯이..


이런 이유로, 머리회전이 좋아지고, 공복을 달랠 수 있는 엿을 주는게 좋은데..

우리것을 낮추는 못된 습성(?)과 위에 쓴 '엿 먹어라'의 유래 때문에, 엿 대신 현 세대의 사람들은

외국에서 온 '초코렛'을 엿 대신 주는 경향이 많다.ㅠ.ㅠ

암튼, 이렇게하여 엿에 관한 다양한 풍습이 생겨났고, 과학적인 논리도 뒷받침을 하는것 같다^^; 

주변에 수능보는 조카,손자녀(?) 등등...엿이나 찰떡을 많이 사주자~~~ 코큰 서양인들이 전해준

초콜릿은 효험이 없다나 ~^^


 






 


 

 

                                                                          

 

                                                                                               매기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