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 이야기
엿 이야기
- 외할머니 -
최원현
내가 어렸을 때 설이 되면 할머니께선 꼭 엿을 만드셨다.
설날엔 떡과 함께 내놓으시던 맑은 갈색 엿에 떡을 찍어 먹곤 했는데, 엿은 대개 설이 되기 삼사 일 전에 하곤 했다.
밖에서 돌아오면 달큰한 냄새가 집안에 가득하고, 할머니께서는 아궁이의 불을 돋우시며 대 막대로 열심히 솥 안을 젓고 계셨다.
내가 부엌으로 들어가면 아궁이의 장작불을 보라시거나 어쩔 땐 대 막대로 엿을 저으라고 하셨다.
그 막대를 엿죽방망이라 불렀다. 헌데 처음엔 부뚜막이 따뜻해서 좋다가도 조금 오래 젓다 보면 올라오는 열기로 덥기도 하고, 또 팔도 아프고 하여 게으름을 피우게 되면 할머니께서 막 야단을 치셨다.
엿은 얼마나 잘 젓느냐에 따라 잘 되고 못 되고 한다는 것이었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할머니께서 빙빙 돌려 젓던 엿죽방망이를 따라 같이 돌던 어린 날, 내겐 설을 맞는 가장 큰 기쁨이 이 엿을 먹는 일이었던 것 같다.
엿은 보리를 물에 담구었다가 삭을 틔워 말린 엿기름을 맷돌에 갈아 분말을 만드는 작업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이 맷돌질이 싫었다.
처음 잠시 동안은 재미있지만 조금 지나면 팔이 저려 오고 지루해진다.
가만히 핑계를 대고 빠져나갈 궁리를 할라치면 내 낌새를 알아채신 듯 할머니께선 옛날 이야기의 문을 여신다.
옛날 어느 산골 마을에 홀어머니와 나이 어린 너 만한 아들이 살고 있었단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아들이 처음엔 말을 안 듣고 공부도 안 한다. 뒤늦게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을 깨닫고 멀리 떠난다.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고향의 원님이 되어 돌아온다. 어머니는 아들이 떠난 날로부터 치성을 드리다가 몸져누웠는데, 아들을 본 후 숨을 거둔다.
효도 한 번 못해 본 아들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고을을 잘 다스렸다는 이야기를 하나쯤 끝내면 밤이 꽤 이슥해졌을 때이고, 나는 어느새 맷돌에서 물러나 배를 쭉 깔고 엎드려 할머니의 얘기를 듣고 있곤 했다.
이렇게 갈아진 엿기름을 가는 채로 쳐내어 고운 분말을 만들고 물에 풀어 엿기름물을 만든다.
그런 다음 꼬슬꼬슬하게 밥을 지어 엿기름물에 밥을 담궈 삭히게 되는데 이렇게 대여섯 시간 삭히면 밥알이 하나 둘 뜨기 시작하고, 이내 밥알들이 송송 거의 다 뜨게 되면 퍼내어 체를 받치고 짜낸다.
이때 엿물을 짜낸 밥 찌끼가 엿밥인데 친구들과 어울려 이 엿밥을 훔쳐다 먹고 배가 아파 데굴데굴 구르던 일이 생각난다.
짜내진 엿물은 허여스름한데 이 물을 솥에 붓고 고게 된다.
이 고는 작업이 중요한데 불이 조금만 세어도 엿물이 끌어 넘치고 바닥에선 눌어버리게 되므로 불을 알맞게 하여 은근하게 달이되 엿죽방망이로 계속 저어 엉킴이 없이 고루고루 달여지게 해야 한다.
이렇게 아궁이에선 쉴 새 없이 장작불이 타오르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무쇠 가마솥에선 엿물이 뽀골뽀골 끓기를 한 밤이 이슥토록 고다가 엿죽방망이를 위로 들어보면 엿물이 또로록 떨어지는데, 이 때의 엿으로 강정을 만들며 떨어진 끝이 말리면 이 때의 엿은 물엿으로 먹게 된다.
이 가락엿을 한입 크기로 잘라 밀가루를 묻혀 놨다 접대용으로 쓰기도 하고, 가락엿에 물엿을 묻혀 콩을 묻히거나 깨를 묻히면 콩엿 또는 깨엿이 된다.
사탕이나 과자가 귀하던 때였으니 아이들도 사탕 하면 대개 엿을 생각게 되었고, 엿을 실컷 먹어 볼 수 있는 설날은 다른 어떤 날 보다도 기다려지는 즐거운 날이었다.
요즘 백화점에 가 보면 호박엿이나 가락엿이 엿목판에 놓여 팔리고는 있는 걸 본다.
허나 맛깔스러움을 느낄 수가 없고, 얼른 사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문명의 이기로 인한 편의주의의 늪 속에 갇힌 바 되어 맛깔스럽던 물엿처럼 끊이지 않고 흘러내리던 끈끈한 인정 내지는 어린 날 나를 감싸고 있던 그런 분위기들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제조 기술이 발달하여 더 맛있게, 곱게, 좋게 그리고 짧은 시간 내에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해도 자꾸만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짙어지는 것은 분명 향수만이 아닌 우리 옛것에 대한 애착과 뿌리 정신이 보이지 않게 땅 속으로만 흐르고 있는 물줄기같이 우리의 가슴 깊이 흐르고 있음이 아닐까?
어색한 몸짓으로 현대의 물결 속에서 밀려나고 있는 우리의 것들이 참 주인이 되어 의젓하게 우리의 생활 속에 자리잡고 앉아 흔들리잖고 우리 속에 있게 할 수는 없을까?
지금은 정신이 혼미해지셔서 나조차 잘 못 알아보시는 외할머님.
허나 돌아오는 설엔 꼭 찾아 뵙고 내 두 손으로 할머니의 야윈 두 손을 꼬옥 부둥켜 감싸고 할머니께 들었던 옛 이야기를 내가 다시 돌려 드리리라.
<엿 먹어>가 욕이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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