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은교'로 이해하는 로리타 콤플렉스
최근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은교’가 개봉돼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은교’는 파격적인 노출 장면과 배우 박해일의 노인 분장 열연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주목을 사기에 충분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은 바로 70대 노인과 17살 소녀와의 사랑과 욕망을 소재로 독특한 성적 코드인 ‘로리타 콤플렉스’를 표현했다는 점이다. 로리타 콤플렉스란 사춘기 이전의 소녀를 대상으로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을 뜻하는 말로서 러시아 출신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1955년에 쓴 소설 <롤리타>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 험버트가 12살 소녀 롤리타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게 되어 아내를 사고로 죽게 만든 뒤 롤리타를 차지하려 하지만 결국 파멸로 이르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소설이 발간 될 당시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면서 ‘로리타 신드롬’ ‘로리타 콤플렉스’라는 말이 탄생 되었고 그 이후 지금까지 어린 소녀에게 품는 비정상적인 성욕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로리타 콤플렉스가 ‘은교’ 에서는 정확히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 있는 것일까?
젊음에 대한 욕망이 부른 로리타 콤플렉스
‘은교’ 에서 주인공 이적요는 자신의 탁월한 재능으로 최고의 반열에 오른 천재 시인이지만 70대라는 나이와 한없이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한탄하며 살아가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던 중 이적요는 자신의 시인 세계를 동경하는 17살 소녀 은교의 싱그러움에 빠져 사랑과 욕망에 휩싸이게 되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는 로리타 콤플렉스가 생기게 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이적요는 분명 돈과 명예 어느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젊음이다. 이적요의 대사 중 “너희의 젊음이 노력해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그는 젊음을 잃어버린 채 하루하루 벌을 받듯 늙어가며 살아가는 존재로 표현된다. 그런 그에게 있어 청춘의 절정에 서있는 17살 은교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은교의 뽀얀 피부와 앳된 얼굴이 가진 젊음과 순수의 에너지는 이적요로 하여금 청춘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젊음에 대한 욕망이 17살 소녀 은교에 대한 그릇된 욕망으로 바뀌게 되고 이것이 곧 로리타 콤플렉스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젊음을 탐하는 욕망은 비단 작품 ‘은교’에서만 접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인류 역사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 <구약성서>에서는 열왕기에 다윗왕이 쇠약해지자 신하들이 수넴 마을의 어린여자를 바쳐 동침 하게한 이야기가 실려 있고, 중국 의서 <본초강목>에도 11세 이전의 어린 남녀와 동침하면 그 기운을 흡수하여 양생(養生)에 좋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렇듯 젊음은 예로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경과 욕망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욕망이 현대사회에 접어들어 로리타 콤플렉스로 재탄생 되었고 이 같은 로리타 콤플렉스는 ‘은교’에서의 주인공 이적요와 같이 절제하지 못한 젊음에 대한 과도한 욕망이 부른 탐욕적인 결과라고 이해할 수 있다.
로리타 콤플렉스의 심리적 요인
젊음에 대한 과도한 집착 이외에도 로리타 콤플렉스를 발생 시키는 또 다른 원인에는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로리타 콤플렉스는 심각해질 경우 의학 용어로 ‘페도필리아’라고 하는 소아성애증이 나타나게 되며 사춘기 이전의 소녀 또는 소년에게서 과도한 성적 욕구와 집착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러한 페도필리아를 겪고 있는 환자 대부분이 어릴 적 심각한 정신적 외상이나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병적인 페도필리아 환자가 아닌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정도의 로리타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소외감과 단절감을 느껴 대인관계가 서투르고 일상생활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등 정신적 요인이 로리타 콤플렉스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나있다. 따라서 이들 대부분이 어떠한 정신적 외상으로 심리적 불안과 서투른 대인관계를 갖게 되고 때문에 접근이 쉬운 어린아이를 성적 쾌락의 대상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대적으로 스트레스에 많이 노출되고 제대로 된 정서적 교류를 할 만한 대인관계가 적어지게 되는 중년 혹은 노년의 남성들이 젊은 남성들보다 로리타 콤플렉스에 취약해지는 이유다.
이는 <은교> 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17세 소녀 은교는 시인 이적요의 집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적요의 시적 세계를 동경하고 이적요와 많은 대화를 하면서 정서적 교류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은교에게 이적요는 단순히 정서적 교류를 넘어 은교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이와 같은 과정에서 이적요는 은교로부터 노년기에 접어든 자신에게 느껴지는 소외감을 상당 부분 탈피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이 은교에 대한 사랑 즉, 로리타 콤플렉스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은교는 이적요에게 있어서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자신과 소통을 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어린 은교에게 매력을 느끼는 일은 앞서 말한 로리타 콤플렉스가 갖는 심리적 요인에 비춰봤을 때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이적요의 행동이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부분임을 알 수 있다.
로리타 콤플렉스의 폐해
로리타 콤플렉스는 어린 아이에 대한 비정상적인 성욕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에 그 개념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상당히 불순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른바 ‘영계’를 밝히는 성향은 뭇 남성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있어 왔지만 로리타 콤플렉스는 그것을 뛰어넘어 더 어린 나이의 성적 대상을 찾게 되고 병적인 집착이 생긴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또한 어린아이에 대한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만한 길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로리타 콤플렉스는 단순히 개인적인 욕구에 그치지 않고 아동에 대한 범죄로 이어져 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 시킨다. 2009년 9월 온 국민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일명 ‘나영이 사건’으로 대표되는 아동성범죄가 바로 그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에 로리타 콤플렉스는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의 비난 속에서 사회의 ‘불편한 진실’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로리타 콤플렉스는 정신질환의 일종이고 그것은 얼마든지 사회적 병폐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에 따르면 7세에서 12세 사이 아동에 대한 성폭력 범죄는 2000년 122건에서 2010년 972건으로 무려 8배가량 증가하였고, 일반 성범죄의 재범률이 14.5% 정도인 것에 비해 아동 성범죄의 재범률은 52.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자료는 로리타 콤플렉스가 사회적으로 방치 되었을 경우 심각한 문제점을 초래시킬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로리타 콤플렉스의 예술적 가치
얼마 전 유명 모 가수가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딸하고 키스하다 혀를 넣어 혼나기도 한다. 혀를 넣으면 딸이 ‘혀 빼’라고 소리를 지른다”라는, 자칫 로리타 콤플렉스를 연상시킬 만한 발언을 해 대중들에게 질타를 받는 등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이렇듯 로리타 콤플렉스는 어린 아이에 대한 비정상적인 성욕이라는 점에서 유교적 도리를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은 물론, 상대적으로 성의식이 개방적인 미국에서조차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는 사항일수록 예술가들 사이에선 그것을 깨려는 시도가 있기 마련이다. 1955년 소설 롤리타가 발간돼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이후 1962년 스탠릭 큐브릭 감독의 영화 ‘롤리타’에서 로리타 콤플렉스가 다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었고, 그 후 오랜 침묵을 깨고 1997년 애드리안 라인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로리타 콤플렉스의 진정한 의미를 성찰하게 하였다. 또한 로리타 콤플렉스를 영화 전면에 세운 작품이 아닌 일반 영화에서도 로리타 콤플렉스적인 요소를 찾아볼 수가 있는데 그 중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이 바로 ‘레옹’이다. 영화 ‘레옹’에서는 냉혹한 전문킬러 레옹이 부패한 경찰에 의해 가족을 모두 잃은 고아 소녀 마틸다의 복수를 위해 싸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영화의 내용 중 주인공 레옹과 마틸다의 관계에서 로리타 콤플렉스적인 요소가 충분히 반영된 것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이미 로리타 콤플렉스를 패션 분야와 게임 분야에 활용하여 예술적, 상업적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어떨까? 언뜻 생각하기에 우리나라와 같이 성의식이 개방적이지 않은 나라에서 로리타 콤플렉스가 예술의 요소로 활용되는 것이 힘들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2011년 개봉되어 온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영화 ‘도가니’에서는 청각장애인학교의 어린 학생들에게 가해졌던 성범죄에서 로리타 콤플렉스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 ‘아저씨’가 있다. 영화 ‘아저씨’에서는 옆집 소녀 세미를 목숨 걸고 구하려는 주인공 차태식의 정서에서 레옹과 비슷한 로리타 콤플렉스를 충분히 발견해낼 수 있다. 이러한 시도들이 밑거름이 되어 로리타 콤플렉스를 영화 전면에 내세운 작품 ‘은교’가 탄생할 수 있었고, 그것은 단순히 17살 소녀를 둘러싼 사랑이야기가 아닌 ‘한국적 로리타 콤플렉스’의 대표격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기타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로의 뜻 (0) | 2018.11.10 |
---|---|
추수감사절의 유래 (0) | 2018.11.07 |
생선회와 사시미의 차이 (0) | 2018.09.30 |
사시미와 생선회의 차이 (0) | 2018.09.30 |
무화과 나무의 비밀 (0) | 2018.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