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영혼의 소리 (The Voice of the great spirituality)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제목은 “선한 능력으로” 라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목사님이 사형 되기전 사랑하는 약혼녀에게 보낸 시를 독일 기독교 음악가인 ‘지그프리트 피에츠’(Siegfried Fietz)라는 분이 곡을 붙여서 만든 고백찬송입니다. 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https://youtu.be/Iu2jOUfwGPg
“선한 능력으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 시/지그프리트 피에츠 작곡)
1. 선한 능력에 언제나 고요하게 둘러싸여서 보호받고 위로받는 이 놀라움 속에 여러분과 함께 오늘을 살기 원하고 그리고 여러분들과 함께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기 원합니다. (후렴) 선한 능력에 우리는 너무 잘 보호받고 있으며 믿음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이나 아침이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또한 매일의 새로운 날에 함께 하십니다. 2. 옛 것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어두운 날들의 무거운 짐은 여전히 우리를 누르지만 오 주님, 내몰려 버린 우리의 영혼에게 주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을 주옵소서!
3. 주님께서 우리의 어두움을 밝히신 촛불은 오늘도 밝고 따뜻하게 타오르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다시 하나 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는 압니다. 당신의 빛이 어둠을 비추고 있음을!
제2악장 Grave non tanto(느리고 장중하나 너무 지나치지 않게) 본회퍼는 20세기 독일이 낳은 가장 위대한 신학자이자 목사님 중의 한사람입니다. 그는 1906년 2월 4일 브레슬라우에서 8남매 중 6번째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그의 아버지 카알 본회퍼는 의사이며 대학 교수였으며 아버지와 어머니 집안 모두가 명문 출신의 전통 있는 가문에서 성장해서인지 본회퍼의 신앙과 학문도 어릴 적부터 탁월했습니다.
17세가 되던 1923년에 그는 튀빙겐대학교와 베를린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그 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목사 견습생으로 목회활동을 시작하다가 베를린대학에서 처음으로 강의를 했습니다. 그는 이미 스물한살 때 “성도의 교재”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썼습니다. 이때 쓴 박사학위 논문을 당대 독일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라고 불리는 칼 바르트가 크게 칭찬 할 만큼 본회퍼는 신학적 천재였습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신학자인 본회퍼의 인생은 참으로 안타깝고 불우했다고 보여 집니다. 그가 주로 활동했을 때가 1930~1940년 때로 보면 전 세계가 전생의 소용돌이 속에 접어들어 갔을 때 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1차 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은 자신들의 경제회복과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새로운 희망이 필요한 그런 때였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등에 업고 등장한 인물이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이었습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히틀러의 인기는 너무나도 대단했습니다. 심지어 독일교회는 하나님이 영혼구원을 위해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듯이 지금 현재 독일의 "경제적, 사회적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히틀러를 보내주었다."고 주장하며 구겨진 우리 게르만 민족의 자존심을 찾자. 히틀러야 말로 하나님께서 무너진 독일을 다시 세우고 온 세계의 번영을 가져다 주기위한 이 시대의 구세주라고 선전하고 나치는 이를 위해 행동하는 적극적인 기독교도들이다 하고 칭송하기 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히틀러를 우상시하고 찬양하고 있을 때 본회퍼 목사님은 히틀러가 독일의 총통이 된 바로 그 이튼 날 베를린 국영 라디오방송에서 히틀러를 우상시하고 총통으로 섬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면서 바로 반기를 들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기독인들이 이렇게 히틀러를 높이는 것은 매우 우상 숭배적이고 반 기독교적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방송은 곧 중단 되었고 이때부터 본회퍼 목사님은 독일의 비밀국가경찰인 게슈타포(Gestapo)의 감시를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히틀러에 대한 계속적인 비판으로 본회퍼 목사님은 안타깝게도 1945. 4. 8. 설흔아홉의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가 죽기 4개월 전 하루하루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긴장과 공포의 환경 속에서 본회퍼 목사님은 사랑하는 약혼녀에게 편지를 씁니다. 편지의 제목은 “1945년 새해”입니다. 1944년 12월 28일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해오는 절대철명의 고통의 순간에 본회퍼는 사랑하는 약혼녀에게 새해를 위한 덕담으로 시를 하나 써 보냅니다. 본회퍼가 쓴 시의 제목은 “선한 능력으로”입니다. 이 시에 독일의 음악가 지그프리트 피에츠(Siegfried Fietz)가 곡을 부쳐서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유두브에서 가사를 잘 보시고 음미하면서 꼭 이 노래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제3악장 Morendo(점점 느리고 사라지듯이)
1945. 4. 9. 새벽에 본회퍼는 플로센뷔르크 수용소(Flossenbürg concentration camp)에서 교수형을 받았다. 그때 교도소 의사로부터 최후의 광경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날 아침 5시와 6시 사이에 피고들이 감방에서 끌려 나왔다. 군사법원의 판결문이 낭독되었다. 막사에 있는 한 방의 반쯤 열린 문을 통해 나는 본회퍼 목사가 죄수복을 벗기 전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기도의 열심과 확신은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윽고 아침이 왔고 죄수들은 옷을 벗으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리고 침착하게 계단을 밟고 교수대로 올라갔다. 사형을 받는 사람들에게 잠시 동안의 시간 여유가 허락되었다. 본회퍼는 벌거벗긴 체 교수대 아래 끓어 앉아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5분 뒤에 그의 삶은 끝이 났다. 그의 나이 설흔아홉이였다. 본회퍼가 죽은지 3주 후에 히틀러는 자살했고 한 달 뒤에 독일 제3제국은 무너졌으며 히틀러의 반란자들은 자유를 얻었다. 그리고 본회퍼 목사님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마침내 이 시대의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제자의 삶에 중요한 한 모형이 되었다.
제4악장 Finale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는 본회퍼 목사님의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죽음이라는 절체철명의 위기 속에서도 희망의 근거를 하나님께 찾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따라 자녀 된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염되고 혼탁한 그 시대의 구정물 같은 속에서도 밝고 맑은 하나님의 말씀을 울려 퍼지게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디모데 후서 4장 7~8절의 말씀을 그에게서 보았습니다. ⑦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그리고 본회퍼는 밤이나 아침이나 주님이 우리 곁에 계심을 굳게 믿고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했던 것처럼 청주장로성가단의 무익한 한 단원인 나도 앞으로 노래하는 찬양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찬양이 되도록 연습에 연습을 힘써 가며 주님의 선한능력이 늘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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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s 2. 조재민 장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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