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소개·서평

목욕, 역사의 속살을 품다.

by Ddak daddy 2017. 11. 27.











목욕, 역사의 속살을 품다
캐서린 애셴버그 지음|박수철 옮김|예지|320쪽|1만5000원

"내일 저녁  파리로 돌아가겠소. 씻지 마시오." 1796년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오랜 전투 끝에 귀가하는 남편이 부인에게 씻지 말라니. 19세기 프랑스  평민 출신인 나폴레옹과 조세핀은 매일 상당 시간 뜨거운 물에서 목욕을 즐겼다고 한다. 비데를 선호한 나폴레옹에겐 스펀지를 담는 은박 상자와 수정 유리병이 붙어 있는 은박 비데도 있었다.

그런 나폴레옹이 아내에게 씻지 말라고 한 것에 대해 이 책의 저자는 "대부분의 고대문명에서는 때로는 외설적이고 저속한 느낌의 체취가 강력한 최음제가 될 수 있다는 암묵적인 통념이 있었다"며 "아마 둘만의 시간을 위해 꽤 신경 썼던 모양인 이 커플이 그 고대문명의 유산을 잇는 듯하다"고 분석한다. 범죄 코미디 영화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1988)에서 주인공 케빈 클라인이 제이미 리 커티스와 침대에 들 때마다 자신의 겨드랑이 냄새를 강하게 들이마시며 '의욕'을 불태우는 코믹한 장면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

 

 이 책은 목욕의 문화사이다. 말을 바꾸면 '청결' 관념의 변화사이고, '냄새'의 문화·사회사이기도 하다.

 CBS의 라디오 프로듀서로 '애도자의 춤: 사람들이 죽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등의 책을 낸 저자는 호메로스의 그리스에서 미국의 남북전쟁, 히포크라테스에서 세균설, 그리고 프랑스혁명·산업혁명·1960년대와 1970년대의 성(性) 혁명 등 몇 개의 혁명까지, 청결이 이 모든 역사적 사건에 개입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청결'이라는 단어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녔다. 오늘날 서양 중산층에게 청결이란 날마다 샤워를 하고 방취제(防臭劑)를 바르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17세기 프랑스 귀족에게는 아마포 셔츠를 꼬박꼬박 갈아입고 손만 살짝 씻는 것을 의미했다. 1세기 로마인에게 청결이란 다양한 온도의 물에서 하루 2시간 넘게 몸을 담그고 찜질을 하며 쇠로 만든 긁개로 땀과 기름을 닦아낸 뒤 다시 온몸에 기름을 바르는 것을 가리켰다. 그럼에도 현대 중산층과 17세기 프랑스인과 1세기 로마인은 하나같이 청결이 문명의 지표이며 자기들의 방식만이 깨끗함의 왕도(王道)라고 여겼다. "일견 청결의 정의는 보편적이며 영구적인 듯이 보이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문화 창조의 복잡한 과정이자 끊임없이 진행되는 작업이다."

사실 위생 관념은 언제나 "이민족을 바로잡는 만만한 회초리"였다. 모름지기 이방인(異邦人)은 '더러운' 족속이기 마련이다. 그리스인들은 잔잔한 물에 지저분한 몸을 담갔는데, 고대 이집트인은 이를 불결하게 여겼다. 19세기 말의 미국인은 유럽인의 불결함에 할 말을 잃었다. 나치는 유대인이 더럽다는 관념을 조장했다. 중세 이후 유럽의 여행자들은 재미 삼아 가장 불결한 나라를 뽑았는데, 그 당사국은 주로 프랑스나 에스파냐에 돌아갔다.

목욕 문화를 사악한 쾌락으로 간주했던 중세 기독교인들은 깨끗이 씻는 행위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게다가 14세기에 치명적인 전염병 페스트가 창궐하면서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목욕탕이 사라졌다. 프랑스의 역사가 미슐레는 그 이후의 시기를 '목욕 없는 1000년'(이 책의 저자는 400년이라고 주장한다)이라 불렀다.

유럽과 달리 미국은 목욕 문화의 선구자로 나섰다. 특히 1940~50년대 미국의 젊은 여성들은 면도기 회사의 대대적인 광고 공세를 맞아야 했다. 여성의 다리와 겨드랑이털이 '나쁜' 것이고 특히 겨드랑이는 심한 체취를 풍긴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광고들이었다. 이후 구취와 체취는 파혼·해고 등 사회생활 파탄의 주범으로 등극했다.

지난해 영국일간지 인디펜던트가 선정한 '최고의 역사서 10'에 든 이 책은 '깨끗해지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로 마무리하고 있다. 일단 잡으면 책장을 덮기 힘들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책소개·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염병의 문화사   (0) 2017.12.18
전염병의 문화사   (0) 2017.12.18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   (0) 2017.11.11
RAIN . 비   (0) 2017.11.10
식물의 힘   (0) 2017.11.08